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20화 (120/254)

120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8)

"그들은 연맹본부의 독선에 반기를 들고 떨어져 나간 여러 세력의 연합. 하지만 최근, 한명의 존재에 의해 그 여러 세력의 지도자들이 숙청당하고 완전히 하나로 뭉쳤다는데."

"...진짜 사람사는데 다 거기서 거기구나."

요란하게 쳐들어가 납치해 온 적군의 지휘관. 그는 심문 당하며 지금껏 당했던 이들처럼 자신이 아는 내용을 모조리 토설했다.

나도, 이브도 그렇게 얻은 정보를 기존에 그나마 알고 있던 정보들과 비교하며 확정지었다.

적어도 적들의 소속이나 역사, 대략적인 전력등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정도 윤곽이 보였다.

"인간들의 장점이자 단점이지."

내가 혼란스런 그들의 정치상황을 듣고 쓰게 웃자 이브가 비웃었다.

다양성이라던가? 확실히 득이 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덕에 우주 함대를 거느린 거대한 세력마저도 그 다양성 때문에 자기들끼리 계속해서 투닥거린다는 상황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우리 정체를 드러냈으니, 서둘러야 하는거 아니야?"

"그건 놈들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할 수 있어."

비행기에서 내리며 이브가 눈을 반짝였다.

만약 이번에 이렇게 습격 받은 그들이, 기민하고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준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일을 좀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된 대처를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면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주한 본거지인 레드리움 청소가 아직 반도 채 끝나지 않았어. 만전을 기해서 나쁠건 없으니까."

"그치만 그들도 나름의 전술을 발달시키고 있잖아."

"그건 사실이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도 못하는 놈들에 불과해. 강도연도 그렇고 상위종들이라 하지만 고작 십수 개체에 휘둘리고 있지. 우리의 진정한 힘은 고작 소수로 펼치는 게릴라 따위가 아니야."

이브는 고개를 저으며 내 의심을 잠재웠다. 그사이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해외 여행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옆에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도 하나 끼고 있는 상태로.

"크흠. 혹시 한국에서 오신 강신우씨?"

"아, 맞습니다."

다만 지금의 내가 난생 처음 해외에 와서 이렇게 걱정 없이 당당할 수 있는건 이브와 하나 된 이후 얻게 된 언어의 자유 때문.

실제로 인터넷 탐색을 위해 단 하루만에 지구상 주류 언어를 전부 습득한 이브덕에 나는 마중 나온 수호자 연합의 외국인에게 유창한 불어로 대답할 수 있었다.

"저는 가엘 바란..그냥 가엘이라 부르시죠. 지부에서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말을 굉장히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우릴 마중나온 가엘이란 남자는 프랑스에 있는 수호자 연합 지부의 팀장.

그가 우리와 관련해 맡은 임무는 간단했다.우리를 지금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게이트 너머, 마계로 안내하는 것.

"한국, 그 먼곳에서 직접 자원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분은 아직...미성년이신데."

운전기사와 함께 앞자리에 앉아 있던 가엘이 룸미러를 보며 이브를 흘끔거렸다.

움찔한 내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맞장구쳤다. 전혀 모르는 가엘이 보기에도 지금 이브의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니까.

'인간놈들이 너무 많아. 거북해.'

'...조금만 참아.'

이브에게 인간은 인간이 벌레를 보는 것과 똑같았다.

기본적으로 혐오하고, 고작 개미 떼가 곁을 지나간다고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는 않는 그런 느낌.

특히나 그 개미에게 최근 한번 세게 물린 터라 혐오감은 더 심했다.

"전장에 가실 때까지 불편함 없이 봐드리겠습니다."

다만 가엘은 단순히 이브의 기분이 안좋아보여서 저렇게 친절하게 구는게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애초에 이브가 손쉽게 신분을 손에 넣고, 미성년의 나이로도 자원해서 험지에 파견 갈 수 있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극단적인 인력부족. 지금 마계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연합군의 군세는 아슬아슬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게 설령 확률높은 죽음으로 떠미는 것이라도.

지금은, 그런 시대였다.

"우리의 목표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줄게. 어, 일단 현장 상황부터 한번 보고."

마계에 진입하기 전 나는 이브를 붙잡고 마지막 교육에 들어갔다. 자료는 가엘이 준, 극비 자료에 해당하는 현지 상황 정보 데이터.

이브에게 사명감 같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단지 본인이 가진 무력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줄 뿐.

"무엇이든 좋아.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라면."

다행히 아직까지는 잘 먹히는 것 같았다.

*

"으아...이런 미친! 놈들이 또 몰려 온다!"

"자리 지켜! 여기가 밀리면 피해가 더 커진다!"

황무지 그 자체인 척박한 땅, 이곳은 최근 끊임 없이 들려오는 폭음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주둔지를 중심으로 전선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전선을 끌어올리며 적들의 근거지를 타격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면 적들은, 그것을 뚫기 위해 병력을 들이부었다. 그게 지금 계속해서 반복되는 중이었다.

"오늘이야말로, 저 거추장스러운 포대를 날려버려라."

적들의 주축은 지난 번 연합군 한개 부대를 괴멸시킨 미노타우로스, 혹은 우두귀라고 불리는 마물들.

최근 봉인에서 깨어나 그들을 지휘하게 된 우두귀 출신 고위 마족 하나가 돌격하는 부하들과 함께 땅을 내달렸다.

게이트를 통해 공간을 건너뛰어, 거슬리는 포병들의 포격에서 벗어난 그들이 부대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곧바로 이쪽으로 포격이 집중되었지만 그들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마력풍이 그들의 몸을 감쌌다.

이 정령술은 원래 다른 유닛들이 자신의 플레이어에게 배운 이계의 기술. 하지만 연합으로 묶인 그들은 협정에 따라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고 더욱 강해졌다.

"이건...?!"

마력풍의 호위를 받아 직사로 날아오는 포탄을 견디게 된 놈이 이내 한껏 올라간 콧대에서 콧김을 내뿜으며 침음했다.

교류하고 강해지는건 그들만 그런게 아니었으니까.

이번엔 인간측에서 최근 손에 넣은 새로운 무장을 사용했다.

지구에 찾아 온 연맹이 제공해준, 큰 에너지를 파괴력 있는 광선으로 쏘아내는 광선병기.

그 고성능의 광선병기가 푸르게 번쩍이며 마력풍을 부수고 달려들던 소머리 괴물들 여럿을 일격에 바닥을 구르게 만들었다.

"전부 죽여라!"

이를 악문 놈이 손에 든 할버드를 들고 발굽으로 땅을 박차 뛰어 올랐다.

미친듯이 발포하던 기관총 초소를 단숨에 부숴버린 놈이 마력이 담긴 포효를 내지르며 진지 한가운데서 날뛰기 시작했다.

소총을 든 보병들은 놈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난입한 놈들에게 모두가 몰살.

"전부 물러서!"

"대열을 지켜라!"

이때 나선 것이 각자의 무기를 쥔 헌터들이었다.

곧 임시로 만들어진 포병진지 한복판에서 집단 난전이 벌어졌다.

"...쏴. 우리 임무는 계속 쏘는거야!"

포병들은 애써 그 치열한 전장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덕에 포탄은 계속해서 적진에 떨어졌다. 결국 어느 한쪽이 버티느냐 못버티느냐의 싸움이었다.

"커헉."

"이런 비실한 놈들 따위가 감히..."

문제는 고위마족인 우두귀들의 우두머리가 너무 강했다.

검을 들고 덤벼든 헌터를 손에 든 할버드로 단숨에 반으로 갈라버린 놈의 눈이 번득였다.

그 흉흉한 기세에 주변 헌터들 대다수가 전투 의지가 꺾여 움찔거렸다. 방금 반으로 갈라져 죽은 헌터는 그들 중 나름 실력 있다고 꼽히던 무투파였는데, 그를 단 일격에 죽여버렸으니까.

"지난번 놈보단 세 보이는데."

그때 한쌍의 남녀가 전장에 난입했다.

땅을 박찬 그녀가 손에 검 한자루를 들고 단숨에 허공을 날아, 그대로 놈의 위로 찍어내렸다.

'어쩌면 이런 경험도 군단의 번영에 도움이 되겠어.'

이브는 사전에 수집한 각종 데이터와, 지금 직접 보게 된 전투 장면을 보고 의외의 결론을 내렸다.

'본대가 겪는 전투 양상과 비슷해.'

화력전, 그리고 그 화력전을 방해하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의 싸움.

지금 지구연합군과 마계의 싸움은 강도연을 필두로 한 군단의 본대가 겪고 있는 상황과 매우 흡사했다.

'상황별에 쓰일 전술과 변수등, 연구 가치가 있어.'

신우의 예상과 달리 이브는 오히려 이 상황을 흥미롭게 여겼다.

비록 지금 자신의 포지션은 본대와는 달리 공격자가 아닌 방어자. 하지만 때로는 반대의 입장에서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까.

강해지기 위한 탐식을 갈구하던 이브에겐 지금 이 상황 마저도 저 먼 외우주에 있을 본대의 성장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요소에 불과했다.

"이 인간 계집이..."

할버드의 창대로 찍어내린 이브의 검을 가까스로 막은 놈이 기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날려버릴 셈이었지만, 어째 찍어누르는 검이 너무 무거웠다.

'간다.'

그 사이 밑으로 파고든 신우와 이브가 동시에 움직였다.

괴성을 지른 놈은 당연히 두 사람 중 하나의 움직임은 놓쳤다.결국 자신의 다리가 크게 베이는 것도 모르고 할버드를 휘둘렀지만, 디딜 곳도 없는 공중에서 에너지를 방출해 자세를 기괴하게 뒤틀어버린 이브의 머리칼만 아슬하게 스쳤다.

"우두귀, 전에도 그다지 좋은 소재는 아니었지. 잘가 쓰레기."

이브가 휘두른 검에서 검붉은 참격이 뿜어지며 마지막 힘을 짜낸 놈의 할버드를 거센 바람을 뿜어낸 충격과 함께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비틀거린 놈이 어떻게 도주할 새도 없이 신우가 그 목을 베었다.

"...이거 데자뷰인가?"

땅에 착지한 이브를 받아 준 신우가 순간 이목이 집중된 주변을 보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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