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7)
"효과가...없나..!"
화면을 보던 지휘관 로빈슨이 침음했다. 분명 그들은 교범대로, 나름 착실하게 대응했다.
분명 인간이 아닌 괴물을 상대로한 지상 방어전의 기본은 함대가 적들을 포격하고, 지상에선 기갑부대를 중심으로 승부보는 형태를 띄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 상대하는 적들은 그들이 상대했던 그 어떤 적들과도 다른 전술과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움직임은 그들의 교범을 대놓고 무시하며 아주 간단히 무력화시켰다.
고속 고화력의 포탄을 쏴대던 전차 앞에 화망을 뚫은 상위종이 날개를 접고는 창을 들고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화망을 향해 대놓고 떼지어 몰려오는 괴수무리와는 전혀 달랐다.
이 검은 적들은 빠르고 영리하게 움직이며 단숨에 방어선을 돌파하고 근접전은 상상도 못해본 그들에게 일대다 근접전을 강요했다.
"터트려!"
일단 적의 근접을 예상하고 미리 설치해둔 폭탄이 푸른 화염과 함께 터졌다.
그러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베리어와 갑주의 방어력으로 그 충격을 견뎌낸 상위종이 내지른 창에서 검붉은 에너지가 폭사, 자리를 든든히 지키던 전차가 그 힘에 관통당해 터져버렸다.
"이, 이런..."
소총을 들고 저항하던 병사들의 안색이 굳었다. 경험이 많든 적든 상관 없이 지금 죽음을 직감했다.
평범한 인간의 감각으로는 쫒아갈수도 없는 그 움직임에 지금까지 그들이 싸워왔던 방식으로는 도저히 놈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여기다 괴물아!"
그렇게 상위종 단 하나의 개체에 의해 수백이 지키던 방어선이 붕괴하려는 순간.
누군가 철컹이는 소리른 내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휘두른 검이, 겨누어진 창을 찍어내렸다.
'기사.'
상위종의 눈으로 현장을 보고 있던 이브는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금속으로 된 강화외골격을 입은 사람은 반군연합의 사람이 아니었다.
숙련된 솜씨로 대검을 휘두르는 이 사람은 분명 현지의 기사였다.
"확실히 힘이 넘친다!"
크게 흥분한듯 보이는 그 기사는 강화외골격의 힘을 제대로 활용했다.
기계의 힘을 빌려, 적어도 단순한 힘만큼은 상위종에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연합의 병사들과는 달리 이런 경험도 풍부했다.
힘에 취한 그는 이를 악물고 대검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역시, 적들도 진화해.'
이브는 그 광경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결국 창에 배를 관통당한 기사가 피를 토하며 휘두른 마지막 검을 피하는 사이, 날아든 대구경의 총탄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상위종의 베리어를 부숴버렸다.
이브의 입장에선 경계되면서도 기대되는 모습이었다.
이미 자신의 대적자가 너무 약해 오만해진 대가는 얼마 전 톡톡히 치뤘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면, 곧 그것을 배워 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배우고 모방한뒤 변형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이브의 특기였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 목표를 먼저 이뤄야 해. 방해가 많아지는건 좋은게 아냐.'
그리고 이브의 감탄에 다급해진 강도연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상위종들을 보내 전방위적인 혼란을 주고 본인은 방어가 가장 출중한 중앙으로 들이닥쳤다.
"쏴라!"
문제는 역시 대비가 철저히 되어 있다는 것.
쏘아진 광선포에 그녀가 날개를 교차시켜 그것들을 막아내었다.
"오만한 괴물.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 온거냐."
목표물, 현지 총 지휘관 로빈슨 중령. 확성기처럼 생긴 물건을 입에 댄 그가 홀로 선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거치형 광선포대 3문, 전차 6대, 기관포 8문, 외골격을 장착한 현지 기사들 3인, 거기에 마법사로 추정되는 이들 5인에 보병 수백.'
'남은 시간 1분여. 그 시간을 넘기면 다른 지역에서 지원이 온다.'
강도연과 이브는 찰나의 순간 계산을 끝냈다.
그나마 다행인건 저 우주에서 포신을 겨눈 함대는 아군을 오폭할까 포격을 못하고 있다는 것.
'충분해.'
그녀가 결단을 내리고 단숨에 앞으로 치달았다.
당연히 그 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엄청난 화력이 주변 도시가 부숴지고 터져나가는걸 무시하고 쏟아져내렸다.
"으, 으아아아! 막아!"
그녀가 하늘로 치솟으며 동시에 이곳을 향해 점차 가까워지자 기겁한 인간들이 미친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군체의식까지 빌리고, 전신의 힘을 극대화한 뒤 허공과 땅을 오가며 펼치는 그녀의 회피기동에 화력의 상당수가 무의미하게 허공을 갈랐다.
"아..."
첫 희생자는 엄폐한 구조물 뒤에서 총을 쏘던 보병 한명.
그 사람은 그녀가 딱히 상대하지 않고 곁을 지나간 것 만으로 베리어에 치여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흠, 9초?'
이브가 체크한, 강도연이 그 엄청난 화력 견제를 뚫고 수백미터를 주파하는데 걸린 시간은 9초.
"막아라!"
진법을 통해 스타스 학회의 강화마법을 받은 외골격 기사들이 당황스러움을 억누르고 합격을 펼치며 단숨에 최종방어선까지 돌파한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휘둘러진 검이 그녀의 목, 가슴, 한쪽 다리를 노리고 동시에 휘둘러졌다.
그렇게 검날이 그녀의 목에 닿기 직전.
검을 휘두른 기사는, 자신의 검이 검은 날개에 가로막히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잡았..."
누군가 잡았다고 외치는 순간.
그 시선이 갑작스레 하늘을 날았다.
몸과 분리된 머리에 달려 피를 뿌린 기사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휘둘러진 날개에서 뿜어진 참격에 휩쓸려 붕괴하는 자신의 동료들과 전열이었다.
"이런 미친 괴물딱지 같으니..."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던 수백의 병력. 그리고 그 강한 화력.
채 30초도 안 되는 시간에 반 이상이 파괴되고 죽어나갔다. 대응을 안한게 아니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름 철저하게 대비했는데도 이렇게 박살난 것이다.
로빈슨은 어느새 반파된 전차를 짓밟고 자신의 앞에 내려앉은 그녀를 보고 주저앉았다.
그동안 군인으로 가져 온 모든 개념과 상식이 부정당했다. 법칙을 초월하는 개인의 무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목도했다.
"커헉!"
강도연은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저 멀리서 달려오는 지원이 도착하기 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른 상위종들도 동시에 자리를 떠났다. 고작 7개체가 습격한 추정 인구 수만의 도시에서 그들은 주둔하던 부대 반 이상이 죽거나 파괴당하고 지휘관이 납치당한다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그들이 분명 대비책을 마련해 올거야.'
'그렇다면 잘된거지. 묘하네, 우리는 그들을 닮으려 하고 그들은 우리를 닮으려 한다는게.'
강도연의 말에 대답한 이브가 피식 웃었다.
이브의 입장에서, 오늘 일로 그들이 군단의 전략을 이것으로 오해하고 그에 맞는 대비를 철저히 해온다면 오히려 고마운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브가 계획하고 있는 진짜 전쟁은 어쩌면 그들에게도 익숙한 대규모 함대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
"..."
"면목 없습니다 사령관님."
"자네들 잘못은 아니겠지. 그 누가 이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전송된 영상을 보던 리암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지휘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당장 현지에서 맞서 싸웠던 이들처럼 지휘부도 충격에 말을 잊을 정도였다.
"대체 어디서?"
가장 큰 문제는, 감쪽 같이 사라진 적들의 둥지였다.
지금 우주권에 머무는 함선들이 퍼져 행성 전체를 스캔하고 있지만 한번 움직임을 놓친 이후로 그 어떤 움직임도 감지하지 못했다.
스캔이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지형지물등으로 가려져 있는 곳은 볼 수 없었다.
"나타났을 때도, 사라졌을 때도. 마치 하늘을 의식하듯 스캔이 불가능한 곳으로 사라졌습니다."
"어쨌든 다들 믿을거라 생각하지. 놈들이 단순한 우주벌레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인류의 대사전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길지도 모르고."
견제하려던 이브의 의도가 제대로 먹히는 순간이었다.
크게 충격을 받은 그들은 더 이상 전처럼 편안하게 현지에 영역을 늘려 나갈 수가 없었다.
방어 태세를 갖추고 서둘러 대응 방법을 찾아야했다.
"하지만...현지인들이 용종이라 부르던 그 거대괴수들도 사냥해야 하는데..."
"오늘 관측된 그 괴물들의 무력에 대응할 방법을 찾는게 급선무지. 다들 그것에만 집중하게.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가장 쉬운건 함포로 저격하는거지만 보니까 그걸 그냥 맞아줄리가 없지."
리암은 성격답게 신중하고 꼼꼼하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가진 정보와 상황에선 나름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선택이었다.
"그리고...우선 본성의 각하께 현지 상황을 연락해야겠지? 지원을 받아서 나쁠게 없어. 지금 우린 절대 방심해선 안 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쓰게 웃은 그가 마지막 지시를 내리자 다들 놀라서 얼굴이 굳었다.
리암은 아무 생각도 없지만, 의심 많은 독재자 총통에게 견제 받는 탓에 그 입지가 불안하다는 것은 그의 부하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버티고 있었지만 상황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곧 임무를 실패 했다는 뜻이고 그렇게 된다면 총통에게 명분을 주게 된다는 뜻.
리암을 제외, 현장에 있는 그의 부하들은 모두 유능한 상관을 잃고 싶지 않았다.
"파르헨, 사령관께는 그냥 지시하신대로 보고했다 말하게."
"하, 함장님들..."
회의가 파하고 리암에게 지시를 받은 여성 보좌관에게 함선의 함장들이 단체로 찾아왔다.
그 선두에 에이든이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독특하긴 하지만 우주 함대를 이길 순 없다. 여차하면 전부 날려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총통은 아니야. 우리는 그 사람을 거스를 수 없고, 사령관님을 지킬 방법은 이것 뿐이지."
"자네도 사령관님이 떠나는건 바라지 않잖나. 우리도 알고있네. 두 사람 관계."
함장들이 사적인 이야기까지 꺼내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그들과 같은 생각인 점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시간대, 리암에게는 상부에 보고가 온전히 들어갔다는 거짓 보고가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