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6)
"강도연이 성과를 보고 있어."
"그래. 나도 보여."
이브는 군체의식을 통해, 나는 화면을 통해 현장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한가로이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는 걸로 보이겠지만, 지금 우리 둘다 신경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아쉽긴 하네. 증언을 들어보면, 다르크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 굉장하긴 했는데."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참혹한 고문 장면을 계속 보고 있는건 좀 그래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미처 얻지 못했던 혈마법에 대한 아쉬움이 다시 생겨났다.
증언을 듣자니 그들의 수장이었던 다르크는 상대를 고문할 필요도 없이 모든 정보를 뽑아내는 능력이 있었다던가.
안타깝게도 다르크는 혈투 끝에 시체 조각도 못찾을 정도로 분쇄되어 이브는 미처 그 능력을 손에 넣지 못했다.
"그들의 언어로 레펙토라 불리는, 반군연합이 확실하네. 행성 리암에 주둔하던 제 7함대라."
하지만 이브는 이미 지나간 일 따위엔 딱히 관심 없어보였다. 무엇보다 효율의 문제였지 꼭 필요한 능력은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지금까지 신경계를 직접 조작하는 군단식 고문을 견뎌낸 존재는 전혀 없었다.
"..."
[신경쓰이는 부분이 따로 있나?]
내 표정이 조금 굳어지자 글자들이 떠올랐다. 곁에 있던 이브를 슬쩍 쳐다 본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또 그놈이야?"
"그래."
"마음에 안들어."
내가 보는것을 볼 수 없던 이브는 내가 글자에 반응한 순간 그것을 알아차리고 심기가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방해가 들어 온 셈이니까.
이브의 힘도 결국 시스템의 권능을 뛰어넘진 못했다.
[숨기고 싶다면, 숨겨도 된다. 이브는 네 생각까진 알 수 없으나 나는 다르니까]
그리고 관조자는 이런 우리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굴었다.
[강도연이 걱정되나? 성장과 진화를 핑계로 그 아이가 점점, 군단과 하나되어 과거의 모습마저 잃어가는 것 같아서]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정확히 내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알게 된 이브도 못하는데, 사람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건 너무 사기 아닌가?
[확실히 강도연은 지금 급격히 변해가고 있지. 더 이상 네가 알던,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외강내유의 여고생은 이제 없다. 그 내면도 점차 닳고 닳아간다. 과거의 트라우마? 이제 그녀에게 그 옛날의 흉터는 상처도 아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시점은 이제 고문당하는 희생자가 아닌, 군단병들을 시켜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는 내 동생 강도연을 비추고 있었다.
이브가 사람들을 고문해 정보를 캐낼때마다 강제로 감정을 다스려주는 가면을 써야했던 전과는 달랐다.
편해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동생은 두 눈 똑바로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성장하는건 좋지만 변해가는 모습에는 나도 모르는 걱정스런 마음이 계속 들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바로 그것인가?]
내가 애써 무시하던 현실을 콕 집어주던 글자들이 한순간 반전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글자들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그 반투명한 화면 너머, 어느새 입술을 깨물고 뚫어져라 나를 보고 있는 이브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나만 봐. 하나가 되었으니까 이제 나만 보란 말이야.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향해 그 흔들림 없는 붉은 눈을 부릅뜬 이브의 의지가 연결된 군체의식을 타고 내게 흘러들었다. 그 집착, 그 의존 본능, 그 소유욕.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된 지금도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물들어 가는건 어느 쪽이지? 너는 그것을 버틸 수 있는가?]
만약 내가 지금 동생처럼, 서서히 닳아서 완전히 군단에 물들어 간다면.
기껏 구상했던 모든게 어그러진다.
이브는 아무짓도 하지 않고 나를 물들일 것이고, 정신마저 군단과 완전히 하나 된 나는 막아보려던 그 파괴와 탐식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도 내 주변부터.
[내 스탠스가 궁금한것 같군]
이런 상황에서 한가지 의문인 것은 대체 관조자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
그는 분명 이브를 최강최흉의 유닛으로 만든다고 한 주제에 이제는 내게 간접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그것도 맞다. 이브를 최강으로 키우는 것. 동시에 너희 모두 행복을 찾는 것 모두 내가 바라는 일이다]
"대체 왜. 네가 뭔데?"
나는 육성으로 소리를 냈다. 이브가 움찔하며 내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다. 왜 나를 신경쓰지?
이브와 하나 된 이상 나는 큰 대가를 하나 치룬 것이다. 동시에 큰 짐짝이 치워진 것이다. 더 이상 훼방놓을 수도 없는데.
내가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중심이고, 플레이어지. 네 가치를 절하하지 마라. 다른 이들은 어쩌면 이브가, 군단이 이 게임의 그 본체이고 중심이라 보겠지만 나는, 나만큼은 아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네가 제일 중요했다. 어쩌면 이 세상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
"...내게도 지금 네가 보는 것이 들려. 그놈이 내게도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틀린말은 아니야. 네가 가장 중요해."
글자가 떠오름과 동시에 이브가 자기도 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단지 서로 말하는 중요하다의 의미는 정 반대 같았지만.
그리고 사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도 혼란스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후, 일단 가자. 비행기 시간이야."
나는 물건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잡은 이브는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출국장.
외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게이트를 넘어 발령 받은 우리 임무지로 가는게 목적이었다.
"알아낼 정보는 전부 알아냈어."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인데?'
"내 생각으로는, 선택지가 두개정도 있는 것 같은데."
비행기 안. 나는 화면과 군체의식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강도연과 이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브가 강도연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젠 이런 것도 의식되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서브마인드 한정이지만 어쨌든 이브의 사회성이 조금이나마 오른것 같기도 하고.
"첫번째 선택지는 과감하게, 우리 정체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목표한 바를 빠르게 해치우는거지. 근거는 그들은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두번째는, 지금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정체는 철저히 숨기는 것."
강도연이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브리핑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렇게 이브와의 교류가 늘어날 수록 이브의 사회성과 비례하여 동생이 점차 이브에게 물들어 간다는 것이다.
'놈들은 그 땅을 완전히 자신들 것으로 만들 생각이야. 나는 그걸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만약 시간을 더 준다면, 훗날 더 귀찮아질지도 모르지.'
"적당히 견제하라는 소리로 들리네."
이브는 계산을 끝마치고 첫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면 분명 그 이득을 크게 가져올 수 있다는 것,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모습을 드러내 움직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까.
"지금 바로 갈게."
화면에 보이던 동생의 육신이 마구 뒤틀리더니 어느새 가면을 쓴 군단의 군단장이 되었다.
날개를 펼친 녀석이 망설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가지 확실한건 지금 강도연도 자신의 마음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러니 모든게 네게 달렸다. 네가 이브를 물들여라. 균형을 맞춰라]
실로 오랜만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해설이 떠올랐다.
물론 알아도 문제긴 하다. 이브를 물들이라? 무슨 굳센 신념도 신앙도 없는 내가, 대체 무엇으로?
"...무슨 짓이지?"
"그, 저기 앞에 계시는 분이 헌터분들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셔서...수락하신다면 좌석을 업그레이드 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멍을 때리던 나는 승무원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이브덕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선물?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데 호의를 가질 수 있지? 의심스러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그들을 지키는 일이니까."
나는 삐딱하게 투덜거리는 이브를 어르고 달래 자리를 옮겼다.
헌터들, 특히 수호자 연합에 소속된 헌터들에 대한 인식은 처음부터 좋았고 지금도 더 좋아지고 있었다.
"지킨다고? 내가 이놈들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해."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긴 한다. 군단 그 자체인 이브는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이세계의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동시에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만약에.
이 이면과 모순이 답이 될수도 있지 않을지.
*
"...보인다."
다른 곳의 상황은 모르는 강도연이 빠르게 고도를 낮췄다.
함께하는 이들은 함께 비행이 가능한 상위종 6개체.
편대를 이룬 그들은, 안 그래도 어젯 밤 벌어진 사태로 위축된 사람들이 기겁하며 도망다니는 도시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목적은 반군연합의 간부급 인물을 생포하고 놈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
그녀는 다시 한번 계획을 점검했다. 이미 뽑아낸 정보로 누구를 납치할지, 타깃이 어디 머무는지도 알아낸 이후였다.
'현지화 부대 대대장 중령 로빈슨.'
그녀는 목표로 삼은 갈색 피부의 사내를 떠올리며 속도를 더 올렸다. 비행 속도가 음속을 돌파하려는 그 순간.
도시쪽에서 푸른 광선이 날아들어 아차하는 사이 그녀의 보호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들이 가진 형상력 중 하나인 광선병기.'
허공에 멈춰선 그녀를 포함, 대형을 갖춘 상위종들의 힘이 공명했다.
레이나가 스타스 학회의 마법을 극도로 개량, 그 한계치를 수배 이상 끌어올린 군단전용 집단전술식.
광선이 계속해서 날아들었지만 공명하는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다.
"저것이 절망을 부르는 날개...어서 함대에 알려라! 소형 광선포로는 흠집도 못내는, 미친 괴물들이라고!!"
그 모습을 지상의 주둔지에서 확대한 화면으로 보고 있던 현장의 최고 지휘관 로빈슨은 다급히 우주에 있을 함대에 지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