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17화 (117/254)

117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5)

"한순간에 일이 이렇게 되다니..."

"면목 없습니다."

"자네 탓이 아니야 에이든."

우주공간에 정지해 있는 기함, 사령관 리암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늘어졌다.

곁에는 지난번 이 행성으로 탐색을 왔다가, 호위함 2척을 잃고 패퇴하듯 뒤로 물러난 함장 에이든이 굳은 얼굴로 서있었다.

"변방의 사령부가 졸지에 너무 중요한 임무를 맡아버렸어. 현지인들과의 협상은 어떻게 되가나."

"그들이, 특히 마법사라는 그들의 지도부가 저희를 지나치게 경계해서 그렇지 협상 자체는 순항중입니다."

"대단하신 총통께서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시지. 특히 연맹이 이곳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가능성도 크시다 하시며."

그들의 수장이 사령부 대다수를 파견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었다.

거짓된 정보로 이곳에 대한 정보의 출처가 그들이 적대하는 연맹이라 알고 있는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연맹을 경계했다.

거기다 그들의 수장은 이 행성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눈이 뒤집혀, 연맹과 전쟁을 벌여서라도 얻어야 겠다 천명한 상태였다.

"마법. 마법이라. 솔직히 믿기 힘들지만, 이렇게 증거도 있으니까."

리암이 보는 화면 동일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고 있었다.

현지의 마법사들이 시전하는 마법을 담은 영상으로 절대 허구가 아니었다.

물리법칙을 비트는 새로운 개념의 힘. 이 힘의 가치는 그 누구나 다 알아보았다.

이 힘을 이용한다면, 어쩌면 그동안 고착화된 세력 다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미 그들의 수장 대총통의 머리에 단단히 자리잡은 참이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아직도 흔적을 찾지 못했나?"

에이든이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자, 리암이 혀를 차며 화면을 바꾸었다.

"끔찍한 외계 행성의 벌레들에 대한 데이터는 많지."

그가 보는 화면은 지난번 있었던 전투 기록들이었다.

땅을 덮은 거대한 둥지, 폭격...그리고 반격.

호위함 한척이 지상에서 쏘아진 거대한 광선에 의해 소멸하는 장면에서 에이든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내가 지금까지 수십년간 군에 있으면서, 지상에서 우주권에 있는 함선을 저격하는 벌레들은 보지 못했는데."

"놈들은 평범한 벌레가 아닙니다."

에이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희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건 맞지만, 그 드넓은 둥지의 일부분일 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곧바로 시도된 반격으로 저희도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본대와 합류해 다시 지상으로 향했을 때."

"그 드넓은 둥지가 싹 사라져 있었다라."

리암도, 에이든도 말을 잃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것들은 기존의 단순한 우주괴수 카테고리에 넣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그것들에 대해 현지인들은 뭐라던가. 거의 멸망 직전에 몰렸었다던데."

"그들은 그 괴물들을, 과거 존재했던 파멸귀란 괴물들의 후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깊고 깊은 지하 미궁에서 겨우 연명하다 최근에 다시 기어 올라왔다는."

"이해할 수 없구만, 그들의 증언과는 너무 다르지 않나? 단순한 감염체형 괴수군은 나도 많이 알고 있네. 하지만..."

리암이 수집한 파멸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의문을 품었다.

현지인들은 파멸귀와 같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직접 관측한 괴물들은 그들의 역사에 기록된 파멸귀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저 몸의 굴곡, 설마 가슴인가? 진짜 여성체라고?"

"임시 코드번호는 01-00, 저희는 놈을 현지인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단장급'의 인간형 전사 타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현지인들이 크게 두려워 하던 특색있는 네임드의 괴물이며 그 이명은 절망을 부르는 날개라고 합니다."

크게 띄운 화면을 보고 중얼거리는 리암에게 에이든이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큼직한 화면에 떠오른 것은 기함에서 촬영한, 우주공간에서 호위함 제레스를 반파시키고 있는 인간형 괴물.

한쌍의 검은 날개와 검붉은 에너지 쉴드를 두른 그 모습은 결코 그들이 상대해온 단순한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비록 놈들이 지금 사라졌다 한들 따로 팀을 꾸려서 대응법을 개발하라 말해야겠군. 생각해보게 함장. 단신으로 충분한 화력을 뿜어내면서 저런 초소형 기동전이 가능한 괴물 수십마리가 전장에 난입한다면 함대는 그 거대한 덩치를 이용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몰살이네. 전쟁의 판도가 뒤집힐거야."

"그렇습니다. 반드시 대처법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 대처법에 현지인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독재 권력을 손에 쥔 총통의 견제로 한직으로 좌천되었지만 그는 한때 연맹세력의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적도 있는 능력 있는 지휘관. 한가지 아이디어를 직접 생각해낸 리암이 눈을 반짝였다.

*

'역시 그들을 노리기 보다는, 그들과 긴밀히 접촉하는 현지인들을 노려야겠어.'

저 높은 우주에서 나름의 대비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그 논의의 당사자가 된 강도연은 여전히 피난민촌에 있었다.

'어째서지?'

'그야...외계 행성에 탐사를 나온 그들은 분명 현지인들보다 철저할 테니까. 신변에 이변이 생기면 금방 알아차릴지도 몰라.'

'뭐야. 근거 없는 예측이로군. 하지만 좋아. 네 뜻대로 해.'

이브는 강도연의 계획을 승인했다. 그녀는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다.

타깃을 바꿔, 우선은 최근 협상을 진행중이라는 현지의 협상단 중 한명을 습격하여 정보를 알아낼 셈이었다.

"...무슨 일이죠?"

문제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린 피난민촌은 지금 무질서 그 자체라는 것.

그리고 그런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겉보기에 가녀린 여인일 뿐인 그녀가 혼자서 돌아다니면 범죄의 타깃이 되기도 쉬웠다.

밤거리를 가로지르던 강도연은 천막촌에서부터 자신을 따라 온 사내들에게 둘러 쌓였다.

"걱정 말라고. 너도 혼자서 살아가는 것 보단, 이게 훨씬 나을테니까."

거친 밧줄을 들고 히죽 웃은 사내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혼란한 시기에 꼭 등장하는 부류 중 하나로, 그들은 힘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여인들을 반강제로 납치해 보호를 빌미로 몸을 팔게 시키는 질 낮은 무리였다.

'차라리 잘 됐어.'

'산채로 갈아서 양분으로 삼는 것보다 더 좋은 계획이 있나?'

'...더 큰 혼란이 퍼진다면 노리기도 더 쉬워지겠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 얼굴을 굳힌 강도연이 즉흥적으로 계획에 새로운 단계를 추가했다.

"겁먹지 마라. 네가 즐기고자 하면 아픈건 잠깐이니까."

굳은 그녀의 얼굴을 겁먹은 것으로 착각한 그들이 낄낄거렸다.

"어?"

그러나 사내들 중 한명이 강도연에게 뻗은 손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애초에 강도연이 괜히 인적 없는 이 폐허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잡아챈 검고 거친 괴물의 손이 달빛을 받으며 점차 드러나는걸 보고 시선을 따라가며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

팔부터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건 검은 갑옷을 두른 괴생물체.

표본으로 받은 지구의 갑오징어를 비롯, 위장능력이 있는 온갖 생물종의 위장능력을 결합하고 조작해 극대화한 군단의 위장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으, 으아악!"

"이놈들 대체 언제..."

폐허속에 잠입하고 있던 상위종 군단병들이 일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기겁한 사내들을 그 즉시 조금의 소리도 없이 제압했다.

그리고 피부를 통해 감염균들을 주입시켰다.

"커헉...끅..."

그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번져가는 검은 핏줄과 함께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다.

"가서, 날뛰어."

강도연은 감히 포식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입에 들어 온 불쌍한 희생자들을 피난민촌으로 파견시켰다.

그들은 몸을 마구 뒤틀며 광기를 터트리곤 미친듯이 달려나갔다.

피난민촌은 밤중에 느닷없는 테러를 당하고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린 이동하자."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소리. 그 모습을 지켜본 강도연은 자신도 위장 능력을 발현하며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다.

내부의 혼란이 더욱 커지면 자연스럽게 경계가 풀어질 테니까.

"대체 무슨 일이냐!"

"의, 의원님! 지금 피난민촌에..."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협상단의 중심 중 하나이자 한때 대륙 의회의 의원 중 하나였던 노구의 마법사가 기겁하며 자신의 숙소에서 뛰쳐나왔다.

강도연은 모든 이목이 피난민촌으로 쏠렸음을 확인하고 그대로 움직였다.

그녀를 비롯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육체를 뒤바꾼 군단병들이 어둠을 가로지르며 그를 향해 뛰었다.

"토레스님!"

"무, 무슨?!"

그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괴한들의 습격에 검을 빼들었지만 상대가 안되었다.

중년의 깡마른 여인이나 다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맨손을 휘두르자 기사들의 검이 부러지고, 발차기를 날리자 흉갑이 우그러지곤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크학..."

그는 마법을 채 영창하기도 전에 강도연에게 목을 붙잡혀 벽에 쳐박혔다.

휘둥그레 뜬 눈이 그동안 가면속에 철저히 감춰지던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봤지만 이제는 상관 없는 일.

그의 몸에 침투한 감염균이 빠르게 퍼져나가며 온 몸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졌을 때.

거리에서는 그 누구도 흔적조차 남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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