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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16화 (116/254)

116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4)

"후..."

뜨겁고 건조한 공기. 척박하고 거친 땅.

뒤를 돌아본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게이트는 사라져 있었다.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왔다는 그 하룻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이브와의 연결은 기본적으로 이브쪽의 일방통행이기에 그쪽의 상황을 먼저 알 방법도 없었다.

"우리는 같은 자매나 마찬가지기에, 느껴집니다. 좀처럼 기분을 풀지 못하시는군요."

"레이나?"

그때 그녀의 곁에 다가온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가면을 벗은 레이나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지금 임무 수행중인게..."

"그분의 명령을 하달받아, 새로운 병종을 이끌기 위해 잠시 복귀했습니다."

레이나가 현재 군단병들을 이끌고 이 세상의 유일한 생물체인 용종들을 멸절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던 그녀는 살짝 놀랐으나, 레이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을 뿐.

"지금 당신께서 입으신 옷이 '그곳'의 복식입니까? 신기하군요. 아녀자의 다리를 허벅지까지 훤히 내보이다니."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야."

자신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에 흠칫한 강도연은 다시 한번 신체를 변형시켰다.

골격부터 뒤틀리고 내장기관이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 피부는 거칠고 질긴 가죽과 단단한 검은 갑각으로 덮이며 완전한 괴물의 몸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 모습이 더 편한것 같아.'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던 그녀가 검게 물든 눈에서 붉은 눈동자를 번득였다.

군단의 육신은 철저히 전투를 목적으로 최고한도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설계되어 만들어졌다. 적어도 몸을 움직이는데 만큼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오랜만에 인간의 몸으로 변했었다.

분명 그 전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현지 도시에 잠입해 수사관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등 활약하기도 했지만, 어제는 그때와 느낌이 좀 달랐다.

그때는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며 또다른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제는 아니었다. 어딘가 어색하고 위화감이 들었다. 불편했고, 비효율적이었다.

"..."

강도연은 순간 몸을 떨었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 부터가 믿을 수 없었다.

"아아...무엇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굳어버린 강도연에게 다가온 레이나가 히죽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마침내 당신께서도, 진정한 진화를 바라기 시작하셨군요."

"진화...? 아니야. 이건..."

"이해합니다. 아직은 거부감이 드는게 당연하죠."

히죽 웃은 레이나가 뒤에서 찰싹 껴안듯 달라붙어 강도연의 몸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레이나는 거칠고 단단한 갑각을 전신에 두른 그 몸을 만지며, 마치 극상의 비단을 만지는 듯 황홀하단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차마 그 손길에 저항하지 못했다.

"분명 당신께서도 머리로는 알고 계시죠. 유약한 인간의 몸에 비하면, 이 아름다운 몸은 완벽하다는 것을. 두려워 마세요. 이것은 축복이고 기적입니다."

대놓고 귓가에 속삭이는 레이나의 눈이 반짝였다. 이미 레이나는 다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의 굳은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군단과의 결합은 축복이며, 미개하고 열등한 종자들의 진정한 진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그 사상은 인간 시절엔 티끌만큼도 이룩하지 못했던 마법의 극한이라는 경지를 직접 성공시키고 개발하며 더더욱 확고해졌다.

'나는 뭐지?'

그 사상에 영향을 받은 강도연의 머리에 혼란스러움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그저 더 강해지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하고 괴물이 되어 싸웠다.

그러면 이브는 그만큼 보상을 주었고 그덕에 그녀는 계속해서 강해졌다.

그덕에 자신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미처 할 틈이 없었다.

차마 민간인에게는 손대지 못하고 싸우려는 이들만 골라 죽인 것도 그 혼란의 편린이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자랑스러운 군단의 첫째이자, 나의 자매, 나의 상관 강도연."

레이나가 몸을 띄워 자리를 벗어났음에도, 그녀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

"생각은 다 했나?"

"으아앗!"

그렇게 몇시간이고 서 있던 강도연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브?!"

그곳엔 분명 지구에 있을 이브가 서 있었다. 인간의 모습이 아닌 붉은 눈을 번득이는, 군단의 모습으로.

"어떻게..."

"이 육신은, 내 아바타일 뿐이야. 나는 군단의 힘이 미치는 곳 그 어디든 있을 수 있지."

"그러니 그 어떤 모습도."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고."

"너도."

"그도."

"내."

"일부야."

그러나 피식 웃은 이브가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동시에 둥지에 자리한 알들이 쩍쩍 갈라지며 여러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수가..."

강도연은 그것들의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지금 나체로 알을 찢고 나타난 이들의 얼굴이 너무나 익숙했기에.

자기 자신은 물론 오빠인 신우, 레이나, 먹어치웠던 현지인 등등.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한마디씩 내뱉은 그들은 조금의 감정도 없는 차가운 얼굴로 정렬해 섰다.

"혹시 위장에 필요할까 만들어 본 인간형 개체들이지."

"하, 하지만 그냥 겉보기만 똑같은 거잖아."

"맞아. 근본적으로는 결국 다른 군단병들과 같아."

이브가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리자 그들의 몸이 마구 뒤틀리더니, 인간의 형태에서 벗어난 만능형 군단병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강도연은 그들의 몸이 자신의 몸과 같은 만능세포로 이루어졌음을 알아차렸다.

이브는 에너지 효율이 굉장히 나쁜 만능세포는 오직 자신의 아바타나, 강도연이나 레이나 같은 고급 개체를 위해서만 투자해왔기에 이례적인 일이었다.

"임무를 주지 군단장. 지금 이들을 이끌고, 게이트를 넘어 그들의 세상에 '잠입'해. 마치 내가 그의 곁에 붙어 위장해 지구에 있는 것 처럼."

"잠입하라고?"

"놈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무엇보다 놈들이 정확히 어떤 놈들이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 지구에서 습득한 정보와 교차검증하여 진위를 가려낼거야."

이브는 강도연에게 임무를 하나 주었다. 잠시 눈이 흔들리던 그녀는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다시 떴다.

다시 떴을 때, 눈은 흔들리고 있지 않았다. 피부조직이 변화하며 생겨나는 가면이 서서히 그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정보를 알아낸 다음은?"

"우리가 이곳에서 충분한 힘을 갖췄을 때. 단 한번에 뒤집는거지."

이브가 무슨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히죽 웃었다.

*

"다들 물러서십시오!"

"세상에..."

"저것도 마법인가?"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곳.

그들은 모두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반파된 도시 위로 새로운 건물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몇가지는 추가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앞에 나서서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사내의 복식은 현지인들과는 좀 달랐다.

그는 함선에서 내려온, 묵직한 건물이 땅에 내려앉는걸 확인하며 스스로 자축의 박수를 쳤다.

"보십시오. 저희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 온겁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짧은 시간 큰 재앙을 겪은 현지인들의 호감을 사려는 여러 정책이 지금까지는 굉장히 잘 들어 맞는 순간이었다.

"대단하긴 하구먼. 저 거대한 비공정을 타고 우리처럼 다른 세상에서 왔다던데."

"그 끔찍한 검은 벌레들도 저들이 다 죽였다고 했지."

가족들을 이끌고 다닌 피난 생활에 지친 두 사내가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며 중얼거렸다.

다른걸 다 떠나서, 그들에게 한때 끔찍한 지옥을 선사했던 괴물들이 싹 사라진게 가장 안도하는 부분이었다.

"그게 정말이래요?"

"으음?"

그때 그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바로 옆에 가만히 서 있던, 흑색 단발의 여인이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살짝 웃자, 순간 올랐던 그들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다른 피난민들에 비해 상태가 좀 좋아보였지만 일단 어딜 봐도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으니까.

"피난 다니느라 몰랐수? 그 괴물들의 둥지, 싹 사라졌다더군. 그들이 말하길 자기들이 전부 불태워버렸다고 했수다."

"아아...자기들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살짝 흥이 났는지, 아니면 그녀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야기를 더 풀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솔직히 말하면 마법보다 더 대단하지. 마법사님들이 저런 큰 집을 소환하지는 못하잖수."

"에이...그래도 저들의 마법은 좀 불편해 보이던데."

그녀가 큰 리액션을 해주자 거기에 이야기를 하나씩 더 얹은 사내들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사람들은 저희를 계속 도와주겠대요?"

"글쎄. 그건 높으신 분들이 협상을 잘 끝내셔야 할터인데."

"우리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 저런 큰 강철 비공정을 수십척이나 가져 온 이계의 사람들과 협력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질문에 그들은 한숨을 쉬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이미 현지인들의 민심은 많이 돌아섰다. 구심점이 되어야 할 이들이 와해된 마당에 나타난 더 강하고 신비로운 세력은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고 있었으니까.

'...역시 관계자를 하나 잡아야겠는데. 하지만 정말 이게 그들의 목적일까. 자선활동이?'

슬쩍 그들과 떨어진 그녀가 표정을 지우고 군중 속에서 벗어났다.

피난민들이 자리잡은 폐허가 된 이 도시.

한때는 그녀, 강도연이 군단병들을 이끌고 습격했던 도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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