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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14화 (114/254)

114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2)

"우주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대형의, 그리고 강력한 병종이 필요해."

"그리고 강한 화력도."

"맞아."

이브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 보기엔 아파트 옥상에서 밀회를 즐기는 남녀로 보이겠지만, 지금 우리는 조금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구상한 방법은 두가지가 있어. 하나는 철저한 습득으로 인한 완전 복제, 다른 하나는 적당한 모방으로 인한 결합."

"무슨 말인지 알겠네. 둘다 장단점이 있어 보이는데."

이브가 제시한 방법은 각각 적들의 모든 기술을 그대로 복제할 것이냐, 군단의 방식으로 재창조에 들어갈 것이냐로 나뉘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건 이미 답이 나온것으로 보였다.

"근데 아무리 이브 너라도 생체조직이 아닌건 복제할 수도, 창조할수도 없잖아."

군단의 힘이 만능은 절대 아니었다. 인간문명이 자랑하는 기계문명.

사용법을 배워서 이용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군단은 그것을 만들어내는게 불가능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모방하여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전술과 병종을 만드는 것."

"그럼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건 뭐지?"

"초대형종에 버금가는 다양한 대형 생물체. 그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도 하늘에 뜰 수 있는 생명체가 필요해. 형상력으로 모든 부분을 충당하기엔 에너지 효율이 끔찍하게도 나빠. 따라서 군단식 생체 우주전함을 만들때 형상력으로는 화력에 집중할거야. 그 외 부분은 순수 육체능력으로 해결해야해."

이브가 내 머릿속으로 한가지 정보를 전송했다. 방금 전 사이트를 사진찍듯 그대로 복사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계의 샌드스위머, 그리고...에리시움의 거대하늘돛새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계의 샌드스위머는 사막지형에 살아가는 거대한 양서류를 닮았다.

마계는 딱히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건 거대하늘돛새치.

하늘을 바다처럼 유영하며 헤엄치는 이 거대생물은 자료도 목격담과 스케치 뿐.

지구도, 마계도 아닌 전혀 다른 곳의 생물이었다.

"뿐만아니라 우주공간에서 전함을 어떻게 운용하고 다루는지도 알아야 돼."

"지금 네가 요구한 모든 것, 우리가 그에 걸맞는 지위를 달성하면 얻을 수 있어."

지금 시국엔 감히 한 나라의 대통령도 함부로 알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수호자 연합에 속하면 그걸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공식적으로 알려진 수호자 연합 소속 사람들이 일반인 포함 전세계에서 억 단위를 넘어간다.

그리고 그중에서 중요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숫자는 정해져있다.

"그걸 위해선 역시 네 신분부터."

나는 그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나름 다져 온 인맥을 활용할 때였다.

"오늘 고생했다. 철수 직전에 갑자기 열린 게이트, 거기서 추정 등급 A급의 고위 마족이 나왔던데."

"그럭저럭 잘 처리 되었죠."

"그래? 왜 전화했는지 알 것 같은데."

전화를 받은 상대가 낄낄거렸다. 그는 수호자 연합에서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자, 한때 A급 헌터로 이름 날리던 백종훈이라는 중년의 헌터.

물론 그의 반응은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에, 한숨만 쉬고 가만히 기다렸다.

"대체 그 여자애는 누구냐?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걸?"

"그래서 그것 때문에 팀장님한테 따로 전화드렸습니다."

"이거 이거, 수상한데?"

역시 예상과 다르질 않았다. 내 말투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그도 웃음기를 거두고 목소리를 진지하게 바꾸었다.

"그 애, 저희 조직에 입단시키고 싶은데."

"그렇다면 정식으로 절차를 밟으면 되는걸 나한테 굳이 말한다라."

"힘좀 써주시죠. 우리 애가 사정이 좀 있어요."

나는 그냥 대놓고 말했다. 어차피 둘러대고 거짓말 해봐야 일처리를 해줄 팀장에겐 다 들킬테니까.

하지만 중간실무자인 그가 잘 협조만해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근거는 그동안 쌓아 온 신뢰 단 하나뿐이었다.

"흐음..."

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발 그가 수락하길 바랬다.

거부한다면,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브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를 산채로 감염균에 감염시켜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내 성격 너도 알지? 나는 실력만 본다. 그리고 인성이랑. 출신, 신분, 과거...그딴거 전혀 신경 안쓰지. 저 괴물놈들 때려죽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잘 알죠."

"지부로 데려와. 테스트만 통과하면 견습 딱지 정도는 바로 주지.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믿을만 하겠지."

진중하게 태도를 바꾼 그는 이브를 데리고 내일, 지부로 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의 성격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방금 말한 것 처럼 과거 자신이 헌터가 아니던 시절엔 부모님을, 최근 벌어진 마족들과의 전쟁에서는 군대에 간 스무살짜리 아들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 원한의 크기가 매우, 굉장히 깊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창현 지부장처럼 의기심 높은 사람이기도 해. 내일 가서 실력만 보여주면 문제 없을거야. 널 기억을 잃은 여자애라고 소개하면, 신분도 알아서 만들어 줄테고."

"좋아."

"전혀 알아들은 것 같지가 않은데."

이브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속내를 알고 있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조금의 교육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특히 인성? 이브에게 인간의 성품을 바라는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

"뭘 보고 계십니까?"

"그냥 이것저것. 앞으로 우리와 깊게 엮일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이슈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대단하시군요."

그녀가 냉소했다. 정작 홀로그램 단말기에 지구의 인터넷을 연결해 보고 있던 사내는 피식 웃을 뿐.

화면 안에서는 한 여학생이 한 남자와 페어를 이루며 강한 적을 단번에 처단하는 군인의 바디캠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저희 연맹과 에볼루션과의 협력은 예고된 것이었는데."

"...신경쓰지 마시길. 그쪽 사람들은 모를까, 그 어떤 지구인도 자기 몸을 산채로 해부한다는걸 좋아할리 없으니까."

"해부라니요. 저희의 기술력을 무시하진 마시죠. 역사를 보면 저희도 한때 지금의 지구처럼 미개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마취조차 없이 그쪽의 신체를 구석구석 조사할 수 있으니 아플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은 차지연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지금 이것은 플레이어의 뜻. 그녀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연맹 놈들의 기술은 너희와 비교할 수 없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놈들과 협력해서 나쁠게 없다라는게 플레이어의 판단이다]

'알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 차지연이 고개를 떨궜다. 플레이어는 인간연맹에 대해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전함 한척 가져 온 그들이 가진 힘이 현재 지구에선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도.

마계에서 마수의 왕 가르틴에게 가까스로 살아남은 차지연과 크리스는 회복 기간을 가지고 그 이후로도 계속 활동했지만 구심점을 잡은듯한 상대의 힘이 예상치 이상으로 점점 더 강해졌다.

그렇기에 그녀의 플레이어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연맹과 손을 잡으려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가 바로 이것이었다.

에볼루션 소속의 헌터들을 그들에게 실험체로 제공하는 것.

"이쪽으로."

제복을 입은 여인이 다가와 그녀를 인도했다.

겉보기에는 연맹의 사람들도 지구인과 거의 흡사하게 생겼다.

차지연은 이 외계 인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사실 상대를 신기하게 보는건 그녀를 보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연맹의 연구원들이 그녀가 선보이는 푸른 전격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차지연이 보여주는 초능력은 드넓은 우주를 영역으로 삼은 그들조차 상상으로나 그리던 것이었으니까.

'그게 말이 돼?'

물론 차지연은 그들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이렇게 발달하고, 수많은 행성을 세력으로 두고 있는 그들이 인간이 이런 초능력을 다룰 수 있다는걸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 우주 전체 인류의 수준을 진일보시킬 중요한 연구 결과가..."

그녀가 나체로 커다랗고 신기하게 생긴 투명한 실험관 안에 들어간 사이 밖에 있던 연구원들이 뭐라뭐라 떠들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인류가 서로의 특이점을 알아가는 실험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어때보이나 소장. 그들이 가진 힘, 우리 에레스 인들도 이용할 수 있을지?"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 감도 못잡고 있습니다 함장님. 대체 그들이 다루는 신비로운 힘이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배우면 쓸수 있다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배워 쓸 순 없습니다."

차지연이 시험관에 들어가고, 그녀의 전신에 투입한 나노머신으로 실시간으로 출력하는 결과물을 보고 있던 그는 다가온 함장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과가 없다는 말에 당연히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던 함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거 실망스러운 보고로군."

"이제 시작했으니 조금은 더 기다려 보시지요. 어차피 같은 인간종이니, 여차하면 용병으로 고용하거나 포섭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그보다 지금 신경써야 할 신비로운 현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함장의 기분이 어떻든간에, 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지구인들이 마계라고 부르는, 그 외계종들이 사는 땅. 워프 기술에 맞먹는 게이트 기술도 놀랍지만 그곳의 좌표를 얻는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마치 행성 전체를 숨긴 것 같다고 했지."

"그렇기에 함대를 보낼수도 없죠. 어쩌면 그것이, 저희가 이곳으로 워프하며 겪었던 그 기묘한 파동과 연관이 있을까요."

그의 눈이 반짝였다. 지구에 대한 정보를 접수하고 워프하며 발생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동은 함선에 탑승했던 수천명의 승무원들이 모두 느낀 것이었다.

"마치, 우주와 우주를 단절하고 있던 막을 투과한 느낌. 따지고보면 이상하긴 합니다. 지구인들 정도면 분명 그들이 뿜어내는 신호나 존재감을 우리 연맹 소속 세력들이 놓쳤을리 없는데."

"그런 유치한 음모론을 믿는건가? 과학자가?"

"증거가 있다면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지요."

그의 사고는 어떤 거대한 존재가, 우주에 벽을 쳐 나누어 둔게 아닌가 하는 것까지 발전했다.

유닛과 플레이어가 아닌 존재가 어느정도 게임과 관련된 것까지 유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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