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13화 (113/254)

113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1)

내가 이브에게 말한 '위장'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그냥 평범한 인간 여자를 연기하며 계속 나와 함께 움직이자는 뜻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지구를 먹는게 아니라 이곳에서 얻은 정보로 레드리움에 있는 본대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니까.

그걸 위해 수호자 연합에서 실적을 내고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각종 정보들에 접근하기 쉬워진다.

그러니 완전 평범한 일반인이어도 안 된다. 그러면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문제는 그렇다고 너무 유명해지는 것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것.

"지금 저것들이 뭐 하고 있는거지?"

"...내게 맡겨. 그리고 가만히 있어줄래? 우리의 안전한 위장을 위해서. 제발."

나는 우리에게 달려오는 군인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브는 절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적대한다. 그리고 이 스탠스는 나와 하나 된 지금 이후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우호적일 필요가 없으니까.

하나가 된 지금은 더 잘 알 수 있다. 이브의, 군단의 타고난 본성은 차라리 모든 것을 먹어치워 흡수하고 그 빈자리를 자신의 세포로 채워넣을지언정 다른 생물군과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헌터님? 그, 이 분은...?"

"어, 제 동료. 아는 동료입니다."

일단 이브를 내 뒤로 숨기고 달려온 현장지휘관에게는 발뺌했다.

마족들은 지휘개체인 고위마족이 우리에게 죽자마자 게이트를 닫고 후퇴했다. 남은건 이 사태를 잘 넘기는 것 뿐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대단한 실력이시던데...게다가, 혹시 학생입니까?"

"아니요. 그건..."

하필 이 대위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 시국이 시국이라 무슨 거짓말을 해도 어째 말은 된다는 것 정도.

'널 난처하게 만들고 있어. 역시 다 죽여버려야겠어.'

"어, 혹시 어디 불편하신지...절 굉장히 노려보고 계시는데..."

하지만 중간에 낑긴 내가 어떻게든 무마하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었다.

"그, 그렇네요! 역시 좀 불편한 곳이 있는 것 같으니 어서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죽여버린다는 말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던 나는 서둘러 말을 끊고, 이브의 손을 잡은채 허겁지겁 차량으로 복귀했다.

"다 봤어. 잘 싸우던데."

차에서 기다리던 강도연이 운전석에 늘어진 날 보곤 코웃음을 쳤다.

"내 말 잘들어 이브, 제발 평범한 인간을 연기해줘. 안 그러면 위장을 들킨다고."

"내가 인간에 대해 모르는게 아니야."

겨우 숨을 돌린 내가 뒷좌석으로 몸을 돌렸지만, 팔짱을 낀 이브는 어딘가 뚱해보였다.

"인간의 종족 특성은 유연함과 다양성이지. 인정할텐데? 우리가 가진 그 어떠한 데이터에도 인간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생물종은 없어."

이브의 말이 뼈를 관통했다. 나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마족은 마족답고, 요정은 요정다우며 용종은 용종다웠다.

하지만 인간은 달랐다. 지구인, 연맹, 마법사 학회, 심지어 군단의 둥지를 폭격했던 이들까지.

인간들은 그야말로 수많은 모습과 문화, 특성, 습성, 성향과 사상을 가지고 무수히 많은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평범한 인간? 너무 모호해서 특정할 수 없어."

"내가 말을 잘못했어. 평범한 지구인, 아니 한국인처럼 굴어달란 이야기였어. 하지만 그래...네게 평범한 한국인에 대한 개념은 없겠지."

나는 거기서 이브를 설득하는걸 포기했다. 애초에 지능 대결로가면 내 필패다.

"그럼 최소한 내 말만큼은 잘 들어줘.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야."

"그건 어렵지 않아."

다행히 차선책에는 납득한 이브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미 이브의 자아는 너무나 강력하게 성장했다. 설득과 회유가 유일한 해답이었다.

"뒷처리 안해도 되는거야?"

"애초에 우리 임무는 싸우는 거. 그거 하나 뿐이야."

나는 겨우겨우 차를 출발시켰다. 혼란스러운 진중을 빠져나온 차는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마계와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후, 사회는 전과 비교해도 많이 변해버렸다.

사람들은 지금을 헌터와 게이트, 마물이 처음 나타난 그때와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왜 10년전에 지구와 마계의 게이트가 연결되었는지도 알게 되었지."

"...그게 정말이야?"

지구와 마계의 역사. 어째 이브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보였지만 강도연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일단 기존에 계속해서 열리던건 게이트가, 정확히는 의도해서 열어젖힌 게이트가 아니야."

"지구와 마계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실낱 같은 레드리움과의 연결보다도 강해. 당장이라도 게이트를 열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게이트 이야기에는 이브도 반응했다. 방금 이브가 말한대로, 두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마물들이 열어젖히는 게이트인줄 알았던 공간의 연결이 사실 일종의 자연현상이었다는 것도 최근 밝혀졌다. 플레이어를 통해 진짜로 게이트와 관련된 술수를 배우기 전에는, 그냥 걸어서 넘어왔을 뿐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그날 내가 먼저 보냈던 연구팀이 마계에서 가져온 자료를 분석하여 촉발된 마계 역사 연구가 활발해지며 알아낸 것들이었다.

"두 세상이 이렇게 연결된 이유는 지금 우리의 적이 되어버린 마계 연합과 관련 되어 있고."

"대체 그게...용사? 여신?!"

"그들끼리의 싸움이 우리 세상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 뿐이야. 나머지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에 불과해. 중요하진 않아, 그냥 굉장히 오래된 옛날 이야기지."

나는 알고있는 내용을 군체의식을 통해 공유했다. 익숙해지니 이거 상당히 편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이거야. 지금 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된거라고 생각해? 갑작스럽던 세상의 비밀이 밝혀지고, 마족들이 연합하고,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게."

"게임, 그리고 게임을 이용한 교류."

이브가 즉답했으나 사실 질문의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공유하니까.

"우린 그냥 얌전히 받아먹기만 하면 돼."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계획이었다. 이렇게 거대 세력들의 각축장에서 자연스럽게 지식과 힘을 흡수하여, 군단은 더 강해진다.

나는 룸미러로 괜히 이브를 흘끔거렸다. 당연히 눈이 마주쳤다.

내가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브가 자신의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바꿔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투쟁과 탐식뿐인 삶에 또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

"혹시 느끼는 바가 있어? 아름답다거나."

석양이 지는 늦은 오후. 나는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에 이브가 서 있었다.

굳이 이브를 어머니와 만나게 하지는 않았다. 이브는 실제로 내 어머니에게 아무런 감정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

머리로는 부모 자식관계를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말 없이 황금색 빛이 내려앉은 도시를 바라보던 이브가 몸을 돌렸다.

"강도연이 굉장히 슬퍼했어."

"...그럴 수밖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어머니는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생환하자 숨넘어갈듯 놀라시곤 엉엉 울며 껴안았다.

의심 따위는 없었다. 아니 설령 의심된다 하더라도 고려조차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공식적으론 사망처리한 딸이 살아돌아왔는데, 대체 어느 부모가 의심부터 할까.

하지만 우리 세 가족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건 이제 불가능했다.

동생도 나도...이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역시 인간의 감정은 비효율적이야. 특히 슬픔이라는 감정은, 의욕을 갉아먹고 전투 의지를 낮추지."

"너 역시 그 감정을 배웠어."

"나는 달라."

이브가 눈을 휘게 하며 피식 웃어보였다. 어딘가 섬짓한 웃음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필요에 따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생물이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글쎄. 그런것 치곤 나한테 한소리 듣고 급격히 흔들리던게 당장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인데."

"인정해. 내 유일한 약점이었지."

그 의기양양한 모습에 괜히 한소리 했더니 이브가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치만 이제는 아니야."

그러더니 웃으며 그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이제 이브는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유약한 플레이어를 치워버리는데 성공했다.

나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는 점에서 정서적 안정 역시 찾았다.

"넓은 세상."

이브가 그 손으로 이번엔 눈앞에 펼쳐진 도심을 가리켰다.

"수많은 생명."

그리고선 눈을 번득였다.

지금 이브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안다. 군체의식 전체에 울리고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우리가 저것들을 이용해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그 광기는 진짜였다. 감히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

혹시 세상의 아름다움이니 어쩌니 하는 것들로 이브에게 변화를 줄수 있지 않을까 구상들은 싹다 폐기했다.

이브에게 아름다움이란 결국 자신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며, 평화로움이란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지금 그 모습으로 그러니까 되게 중2병 같다는 말도 억지로 삼켰다.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게 뭔지 생각해봐."

"답은 이미 나왔어. 놈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우리가 먹어치우고 이용할만한 표본."

이브가 즉답했다.

그대로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알고있는 정보를 공유해줬다.

"확실한건 아니지만 연맹은 적대하고 있는 다른 세력들이 있다고 했어. 반군연합이 그중 하나지. 놀들이 쓰던, 어딘가 구식으로 보이던 장비의 주인이 반군연합으로 추정된다던데."

"...코볼트와 놀의 플레이어들이 유닛을 통해 엮였다면 논리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야. 하지만 이걸로는 아직 확실히 특정할 수 없어."

"그 정보 역시 우리 지위를 더 올리면 얻을 수 있을거야."

부끄럽지만 철저한 실력과 실적위주인 수호자연합에서 내 지위는 사실상 아직도 말단이었다. 단지 연합군에서 있었던 일 덕에 그나마 유명세가 좀 있다 정도지.

"먹어치울만한 표본은?"

"그것에 관해선 내가 뭐라 말하긴 그렇고, 네가 판단해보는게 어때."

나는 이브에게 휴대폰을 열어,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 하나를 알려주었다.

대단한건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된 인터넷 사이트니까.

그곳에 정리되어 업로드 되는 자료들은 모두 마계의 생물들을 다루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에게 없는 정보도 많았다.

"쓸만하지?"

"..."

대답은 없었다. 이브는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을 들여 지금 세계에서 가장 트래픽이 많은 사이트 탑 20안에 드는 사이트의 모든 정보를 외워버렸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아등바등 자료를 수집해 이브에게 전달하고, 이브는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든 효율적인 대응책을 쥐어짜던 미궁속 집단이던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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