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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08화 (108/254)

108화-각자의 목적(6)

'어떻게...해야 하지?'

찰나의 순간 스쳐간 수많은 가설, 그리고 도출되는 동일한 결과.

승리를 위한 공식은 그간의 경험과 역사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일부인 둥지와 신목과 군단병들이 작열하는 화염에 타버리고 소멸해가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손실된 둥지 면적은 전체의 2할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브는 지금 적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놈들인지도 모른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무력함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저 높은 우주권에서 폭격하는 적들을 상대로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놈들을...'

[그도 당연히 이 상황을 보고 있다. 그리고 정신 차리라는 말을 전한다. 넋놓고 당할 셈이냐. 그는 네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웃, 웃기지 마. 지금 우리가 승리할 방법 따윈 없어."

[그가 승리가 전부냐고 묻는다. 자존심을 굽혀라. 지금은 적당히 방어하는 선에서 끝내는게 전부다. 그러면 길이 있을텐데]

"...지금 나보고 패자가 되라고?"

분노한 이브가 치를 떨었다.

그동안 파죽지세의 승리를 겪어오며 이브의 철저한 계산에서 모든 기준은 상대를 절멸시키는 '승리'에 맞춰져 있었다.

당연히 패자, 그리고 도태는 변화와 진화 그 자체인 이브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되었으며 그 감정은 자연스레 오만함으로 발전했다.

[그가 말하길, 패자가 되어도 상관 없다고 했다. 진정한 승자는 결국 마지막 순간 살아남는 것이니까. 만약 네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실망시킨다면, 플레이어로서 직접 명령하겠다고 했다]

"...실망해? 내게...?"

그 와중 신우가 전하는 말만이 이브의 사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브는 잠시 폭격이 멈춘 사이 끓어오르던 분노를 보다 차가운 분노로 바꾸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놈들인지 모르나! 반드시 한방 먹여주겠습니다!'

'가서 어떤 이들인지 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거기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서브마인드들인 레이나와 강도연이 서둘러 움직이자고 독촉했다.

상대가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진 폭탄 수백발에 생전 처음으로 큰 위기에 몰린 이브는, 그 의견들을 받아들였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지만...반드시, 전부, 나와 하나되게 해주지."

그러면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사실 지금까지 이브에게 우주는 그닥 큰 흥미를 끌기 어려운 곳이었다.

어차피 게이트만 있으면, 세상을 옮겨다니는건 가능했으니까. 심지어 한 세상을 전부 정복한 지금은 다른 곳으로 급격히 확장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가 달라졌다.

미궁을 기어나와 땅 위를 정복한 자신이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임을 일깨워준 저 우주의 적들에게 이브는 강렬한 탐식을 뻗쳤다.

그것도 기존의 단순한 탐식이 아니었다.

분노와 살의를 뭉쳐 담은 아주 강력한 감정이었다.

"감히 위대한 우리에게 덤벼든 적들에게, 죽음을!"

이브의 분노와 살의는 군단 전체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먹어치우고 그 주변도 물들여가던 거점 둥지에 있던 레이나가, 그 분노에 영향을 받아 광기를 터트리며 군단의 둥지에서 수십가닥의 촉수를 이용해 자신의 전신에 연결시켰다.

도시 하나분의 에너지를 가진 둥지 전체의 에너지를 자신이 직접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다중결합마법ㆍ100중첩 공명식ㆍ마도직사포.'

레이나가 자신의 뇌는 물론, 군체의식까지 빌려 시전한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에 펼쳐졌다.

도시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마법진을 필두로, 크고 작은 마법진 일백개가 서로 겹치며 하나의 거대한 포신이 되었다.

현재 연구된 마법체계로 이론의 한계의 한계까지 담아낸 초월적인 마법.

'보인다.'

동시에 단신으로 우주권까지 치솟은 강도연의 시야에 행성의 권역에 들어와 있는 함대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강도연이 보는 시야는 모든 군단이 공유한다.

'떨어트려!'

이브의 명령에 조준을 끝낸 레이나가 마법을 작동시켰다.

강도연은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저 아래 먼 땅에서 쏘아진 한줄기 섬광이 대기를 찢으며 쏘아져 폭탄을 투하하던 세 척의 함선 중 작은 함선 하나를 투과하며 폭발, 동시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덩치 큰 놈은 순간 형상력을 이용한 방어를 시도하여 충격파를 상쇄했어.'

'맞아. 나도 봤어.'

'레이나의 두번째 공격에는 시간이 필요해.'

'내가 갈게.'

강도연이 심호흡을 했다. 이브의 강렬한 분노는 지금 그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레이나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그녀도 화가 났다.

지금 갑자기 쳐들어 온 저 우주선들은 명백한 방해꾼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원수일 확률도 높았다.

자신의 친구를 습격하고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고 끝내 죽음 직전까지 밀어넣은 놈들이란 뜻이었다.

가면 속 눈이 번득였다.

순혈 흡혈귀의 계약자인 다르크를 도시 일부분과 함께 동시에 날려버리는데 썼었던, 손에 쥔 태도를 겨누고서.

그녀는 전속력으로 하나 남은 호위함에게, 에너지 쉴드를 두르지 않은 그 함선을 향해 날아갔다.

고속으로 돌진한 그녀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외벽에 착지했다.

외부 방어체계가 가동되기 전에 그녀는 함선을 향해 태도를 꽂아넣었다.

*

"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어지간하면 당황하지 않는 굳건한 성격을 가진 함장 에이든.

그런 그가 오늘 두번이나 말을 더듬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들리는 소리를 믿을 수 없었다.

"오, 오릭스 호가...소멸...본함의 우측 에너지 방어막은 36%소실..."

그 앞에 앉아있던 부관의 더듬거리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위함 하나가, 아무리 퇴역 직전의 구식이여도 엄연히 전함인 호위함 하나가 부품 단위로 산산히 터지고 부숴졌다. 생존자는 당연히 0.

아무리 연맹의 신형 에너지 병기라도 전함을 일격에 소멸시키는 행위 따위는 불가능했다.

"연맹! 연맹 놈들인가! 아니면, 그 푸르딩딩한 외계인 놈들이 협정을 어긴 것인가?!"

에이든이 책상을 내리치며 기함했다.

그의 상식으로 이것과 비슷한 짓거리가 가능한 존재들은 몇 되지 않았다.

"큰일났습니다! 지금 우측 호위함인 제레스 호에 침입자 발생!"

"...침입자?"

다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단 다급히 고도를 올려 회피하려는 그 찰나에, 바로 곁에 있던 호위함에서도 비명에 가까운 지원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나 그 지원 요청의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지금 침입자라 한건가?"

"그, 그렇습니다."

모자를 벗은 에이든이 그 내용을 듣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급한 지원 요청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고도를 높이며 행성 권역에서 벗어나는 기함 사이세커 호에 비해 호위함은 쥐죽은 듯 조용히 그자리에 있었다.

"응답하라! 응답..."

게다가 통신까지 끊겨버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은 알 길이 없었다.

"으아악!"

"쏴! 쏴버려!"

복잡하고 동시에 넓직한 호위함 제레스 내부. 그곳에서 승무원들은 공포에 질린 채 미친듯이 저항했다.

그들이 쏜 철갑탄은 지구의 소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형상력을 뿜어내 만든 베리어에 모조리 튕겨나가며 재수없이 맞은 아군을 살해할 뿐이었다.

"대체 무..."

방아쇠가 달칵거릴 때까지 미친듯이 총을 쏘던 사내는 단숨에 자신의 앞까지 도달한 형체에게 허탈한 외마디와 함께 그대로 목이 베어 떨어졌다.

강도연은 그 거대한 검을 조금의 불편함 없이 휘둘렀다.

뿜어진 에너지에 베이고 터져나가는 함선 내부가 철저하게 망가져가며, 발전기와 엔진은 가동도 멈춰버리고 통신도 끊겼다.

'하찮은 인간...이 미개한 인간 놈들이...! 어떻게!'

강도연의 눈으로 자신을 공격한 이들의 정체를 파악한 이브는 큰 충격과 함께 다시 한번 분노했다.

그간 자신이 무시하고 깔보던 인간이라는 종에게 제대로 당해버린 셈이었으니까.

'제일 커다란 함선이 떠나고 있어.'

'...지금 우리에게 행성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날 수단은 없어. 대신 지금 잡은 그 함선, 절대 놓치지 마.'

강도연이 창 밖으로 기함이 떠나는 모습을 발견했다. 다시 냉정을 되찾은 이브는 강도연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강도연은 그 즉시 함선을 파괴하는 행위는 멈췄다.

"으아아아! 죽어라 괴물아!"

그 와중에 외골격 탑승물에 탑승한 한 대원이 그녀를 향해 큼직한 무기의 끝을 겨누었다.

뿜어져 나온 것은 포탄이 아닌, 자줏빛 광선이었다.

그것이 형상력임을 알아차린 강도연은 날개를 들어 그것을 막아내었다.

형상력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용종의 힘은 여기서도 도움이 되었다.

중전차도 뚫어버리는 광선이 막히자 벙쪄버린 대원은 그대로 그녀가 손을 펼쳐 뿜어낸 힘에 탑승물 채로 뭉게져 죽어버렸다.

"구역을 분리해라!!"

살아남은 호위함의 함장이 최후의 수단으로 강도연이 날뛰던 구역을 강제로 함선에서 분리해버렸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짓이라는 듯, 강도연은 단숨에 외벽을 부수고 우주공간으로 튀어나와 공간을 가로질러 함선 외벽에 붙었다.

그것을 보고 기겁한 함장이 바닥에 넘어졌다.

"아..아아..."

창을 사이에 두고, 거꾸로 뒤집힌 가면 속 번득이는 붉은 눈과 바닥에 넘어져 두려움에 질린채 흔들리는 눈이 마주쳤다.

"어?"

그때 그녀의 모습이 창에서 휙 사라졌다.

반파된 함선 내에 겨우 남겨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는 함선 내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함장님. 설마 이대로 물러난..."

"잠깐. 지금 함선이 움직였다."

그렇게 계속 부하들과 함께 긴장하고 있던 함장의 눈이 커졌다.

분명 움직일리 없는 함선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위가 아닌 지상을 향해서.

"으, 으아아! 추락한다!"

"이건 말도 안 돼! 고도유지장치 만큼은 멀쩡한데...응답바람! 응답! 지금 우리 떨어지고 있다고!!"

지금 추락하고 있다는것을 깨달은 순간 그들은 꺼진 통신기를 붙잡고 아우성을 쳤다.

'레이나. 강도연을 엄호해.'

이브는 레이나에게 장전된 두번째 포격을 이용하여, 전력을 다해 호위함 제레스를 추진장치 이상의 힘으로 밀어넣고 있는 강도연을 엄호하게 시켰다.

덕분에 에이든이 탄 기함 사이세커 호는 긴급히 호위기들을 발진시켰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함재기들만 소실했다.

'다 타버리고 망가진 고철덩이에서 뭘 얻을 수 있겠냐만.'

곧 제레스 호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별을 바라보는 이브의 감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인간이란 종이 무리짓는다는 것쯤은 당연한 상식이었다.

'이미 들킨데다, 생존자들까지 보내버렸으니 곧 그들이 몰려올 것.'

이게 시작일 뿐이라는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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