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각자의 목적(5)
"통신기의 신호가 잡히고 있다 합니다."
"다행히 우리 영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닌 것 같군?"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결과를 살폈다. 통신기가 있다 한들, 그 신호를 수신할 거점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신호를 받는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걸린다.
하지만 신호는 희미하게나마 금방 잡혔고 이는 곧 그들의 세력이 뻗쳐있는 거점 중 하나와 가깝다는 뜻이었다.
"좋아. 자네 말을 확실히 믿어주지 렉스."
"가, 감사합니다 각하!"
긴장 가득한 얼굴로 대기하던, 렉스라 불린 중년 사내가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개 소규모 거점의 방위사령관인 자신과 비교하면, 그는 거대한 세력을 대숙청 이후의 철두철미한 독재로 다스리고 있는 대총통이었으니까.
"그래서. 신호와 가장 가까운 거점은 어디지?"
"제 7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행성, 리만입니다."
"움직이라고 전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 한마디로 함대의 출격을 명령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렉스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한줄기 흘렀다.
'어떻게든 된 건가?'
일단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대총통의 군대를 움직인다는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보의 출처가 무엇이라고?"
"그, 그것은 이제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 행성에 잠입했던 연맹의 공작원 하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로, 그놈은 그 직후 사망하는 바람에..."
"어리석군."
"죄송합니다!"
렉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진실을 숨길 수만 있다면, 차라리 이렇게 잔소리를 한번 듣는것 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MG-109와 연결된 지구...에 대해서는 절대 말 못하겠군. 그곳엔 연맹의 유닛도 있을거라 추정되니.'
그는 로제스의 정보는 발설했으면서도 자신의 유닛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는 필사적으로 숨겼다.
이는 본인의 안위를 생각한 당연한 행동이었다.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개인, 즉 아무리 강한 집단에 속해있다 해도 그 집단의 힘을 자기 유닛을 위해 마음대로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설령 자신이 그 집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들 독재자가 아닌 이상 주변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근거가 필요했다.
하물며 렉스 같이 지위도 그리 높지 않다면 그 움직임은 더더욱 제한되었다.
"그곳에 분명 지성체가, 아니 정확히 인간종이 살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흥미롭군."
눈을 번득이는 대총통의 표정을 본 렉스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저 탐욕의 화신 같은 인간에게 자신이 플레이어니 유닛이니 게임이니 하는것과 엮여 있는걸 들킨다면, 절대 안 된다고.
"각하. 지금 함대가 계산을 끝내고 움직였다고 합니다."
"멍청하게 전군을 끌고 가진 않겠지? 렉스 자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7함대 사령관에게 전달하게."
그때 다시 통신이 도착했다. 명령을 받은 함대가 발진했다는 소식이었다.
"솔직히 좀 갑작스럽습니다."
"나도 그래 임마. 아니 갑자기 출격이라니? 그것도 항로 밖 외우주로."
렉스가 대총통과 이야기 할때. 본성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이곳, 리만의 함대는 움직이라는 지시를 받은대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각하께서 명령하신것은 전투를 가정한 탐색입니다만..."
"규정대로 하자고. 위치가 어디지? 어쨌든 각하께서 이 변방 방위군에 관심을 주셨으니 성과로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냐. 애초에 신호가 잡히고 있으니 거짓은 아닐거다."
함대의 사령관은 갑작스런 명령에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부하들을 독촉했다.
그가 준비한 전력은 1척의 대형 전함과 2척의 호위함으로, 보통 외우주를 탐사할 때 쓰는 조합 중 하나였다.
"위치는 이곳에서 꽤 떨어져 있습니다. 일반항해로는 몇개월이 걸릴테니 역시 사이세커 호의 워프 엔진을 쓰시는 것이."
"노후된 함선이라 기회가 별로 없는데...어쩔 수 없지. 함장과 바로 연결해."
혀를 찬 그의 명령에 곧 화면 하나가 떠올랐다. 화면 안에 있던 사내는, 사령관을 보자 각잡힌 경례를 올렸다.
성격답게 조금의 틈도 없이 굳게 다물어진 입은 딱딱해 보였으며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던 거친 사내의 얼굴엔 흉터가 선명했다.
"에이든 함장. 지금 많이 당황스러울테지만, 어쨌든 각하께서 내린 명령일세."
"그렇습니다! 탐사 및 정찰 임무,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쩌렁한 목소리에 움찔한 사령관은 상투적인 말로 그를 격려한 후 한숨을 쉬며 통신을 끊은 뒤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는 보고서들을 살폈다.
"난 이 말이 이해가 잘 안되는군. 외계의 괴물들? 충분히 알지. 현지인들? 한때 내 조상들도 그런 이들이었지. 근데 마법이라니? 내가 아는 그 마법이 맞나? 외계인들이 쓰던 그런...이상한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렉스가 알려준 현지의 정보도 담겨 있었다.
다만 사령관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모자를 벗고 머리를 긁적였다.
마법이라는 신비로운 힘. 그들에게 그런 힘은 인간종이 아닌 다른 외계인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하긴. 애초에 겉모습만 똑같은 다른 종일 수도..."
"사령관님. 지금 사이세커 호가 호위함 2척과 함께 워프 인에 성공했습니다."
때마침 준비를 마친 전함이 저 위 우주공간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워프는, 그것도 함선 단위 소규모 워프는 그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번 한번이 큰 에너지와 엔진의 수명을 소모하는 힘든 일이었다.
"통신 연결해봐. 구경이나 해보게. 신세계 개척은 오랜만이군."
"알겠습니다."
곧 끊겼던 통신이 다시 연결되었다.
그러나 화면에 보이는 것은, 어딘가 굉장히 놀라보이는 함장 에이든 대령의 모습이었다.
저 목석 같은 에이든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 이들은 놀랄 정도의 모습이었다.
"무, 무슨 일이지 함장?! 문제가 생겼나?!"
"그건 아닙니다. 단지...워프하는 순간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을 뿐. 워프의 부작용은 아닙니다."
경악한 사령관의 말에 에이든이 화면속에서 자기 심장부를 문지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통과하는, 그런 느낌. 어째서지?'
에이든은 정신을 다잡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부하들을 지휘했다.
전함은 대열을 갖춰 신호가 잡히는 행성을 향해 접근했다.
푸르른 바다와, 하얀 구름과, 초록빛 생명을 모두 갖고 있는 행성이었다.
"무난한 행성으로 보입니다. 신호가 잡히는 곳은 대륙 동쪽입니다."
"고도를 낮춰. 보고서에 흥미로운 것들이 적혀 있더군."
"아, 검은 갑각을 갖춘 외계 벌레들 말입니까?"
에이든은 시스템 앞에 앉은 부관과 이야기 하며 전방을 살폈다.
분명 보였다. 푸르거나, 갈색이거나 하얀 지면의 땅들 중 그 일부에 이질적인 색깔이 보였다. 검은색에 가까운 검붉은 색이었다.
에이든은 지휘통제실의 수많은 부하들과 함께 확대한 화면을 통해 그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면을 덮은 군단의 둥지와 위로 뻗은 신목들을.
"으음...징그럽습니다. 무슨 저런..."
"정보에 따르면 현지인들이 저 괴물들에 의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들을 구출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에이든은 합당한 판단을 내렸다.
그들의 주목적은 엄연히 세력 확장이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현지인들을 포섭하여 세력에 편입시키는 것이 기본적인 전술.
그렇기에 현지인들을 적대하는 적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고도를 더 낮춰라. 격납고에서 녹만 슬어가는 대용량의 벙커버스터 정도면 벌레들 태우고 때려잡는데는 쓸만하겠지."
"예,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고고도 폭격을 결정한 그는 함대를 이끌고 행성의 권역에 진입하여, 대륙을 횡단했다.
동시에 지상에 자리한 기괴한 둥지를 향해 호위함과 함께 수백발의 폭탄을 투하시켰다.
한발한발의 크기가 지구의 마을 버스와 맞먹는, 본디 같은 인간 세력과의 전쟁에서 제공권을 잡고 지상의 방어군을 폭격할 때 사용하는 폭탄.
이제 그들에게도 구닥다리의 구식 유물이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아직까지도 쏠쏠하게 쓰이고 있었다.
그 금속으로 이루어진 비가, 우주쪽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던 군단의 둥지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
"캬아악!"
20m 크기의 지룡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아무리 버둥거려도, 그 억센 턱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결국 지룡은 그대로 목이 꺾여 죽었다. 지룡의 목을 물어죽인 것은 바로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지룡이었다.
단지 다른점은 이 지룡은 전신을 검은 갑각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덩치와 힘이 더 좋다는 점, 지룡의 이빨과 발톱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
"나쁘지 않네."
이브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확장도 순조롭고 건방지게 자신의 영역에 눈독을 들이는 용종을 상대할 병력을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군단이 확장과 생산을 위해 움츠러든 사이 자신만만하게 세력을 확장하던 용종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숨어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인간놈들도, 저 멍청한 도마뱀들도 전부 치워버리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유닛이 되는건가? 승자가 되는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래? 그러면..."
[하지만 이 세상을 먹는다고, 끝이라 생각하나]
그러나 이브는 끝까지 웃을 수 없었다.
뜨거운 열기와 충격파.
순식간에 굳어버린 이브는 시선을 돌렸다.
치솟는 불기둥과 함께 대규모로 소멸하는 자신의 육신인 둥지가, 세포가 느껴졌다.
그 불기둥은 수십개가 넘어갔다.
그리고 내리꽂히는 폭탄들은 아직 수백발이 넘게 남아있었다.
신목을 움직여 형상력을 이용해 펼친 방어막도 이 막강한 화력을 견디며 넓은 둥지 전반을 커버하기에는 부족했다.
마치 마법사들이 군단의 공격에 방어막이 뚫리고 폭격당했듯.
[새로운 적은, 이 세상에 속한 적이 아닌 것 같군]
그대로 넋을 잃은 이브의 뇌리에 무심한 말 한마디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