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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06화 (106/254)

106화-각자의 목적(4)

"연락이 끊기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소. 그리고 지금 이곳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소."

"그럼 그저 죽기를 기다릴 텐가? 놈들이 어떤 괴물인지는 알텐데. 놈들은 이 세상 전체를 먹어치울 놈들이오.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지."

다르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이 동부지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직접 겪어 봤다면, 도저히 희망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용종들을 불러들여 싸움 붙인다는 계획은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았지만 그래봤자 시간을 조금 벌었을 뿐이었다.

"그럼 대체 우리가 어떻게 그놈들과 싸워 이긴단 말이오...!"

원로 학회장 세이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으나 다르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지금 그들의 조직력은 완전히 박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미 대륙의회는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살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난 이들도 많았다.

오스틴 역시 그중 하나였다.

'싸워 이겨?'

다르크는 세이델의 말에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싸워 이기는건 불가능했다.

그가 생각하는 적들이 가진 불합리함은, 실은 일개 세포 덩어리에서 시작해 미궁 최하층부터 기어올라오며 기적 같은 성장을 성공시킨 대가.

그 결과물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기댓값은 비교 성립이 안 될 지경이었다.

"나의 플레이어, 위대한 일족의 황녀 에실리."

홀로 남은 다르크가 허공을 향해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는 패했소."

저 하늘에서 빠르게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다르크는 그것의 정체를 본 순간 패배를 직감했다.

그 역시 나름 성장과 진화를 위해 그동안 그토록 노력해왔지만, 상대가 가진 미친 성장 속도는 애초에 근본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권능에 가까웠다.

그 어떤 마법도 닿을 수 없는 저 먼 거리에서, 누군가 이곳을 향해 거대한 마법진을 겨누는게 보였다.

그 마법진에서 쏘아진 섬광이 도시의 방어벽과 충돌한 순간.

도시 전체가 요동치며 방어벽은 부숴지고 건물이 붕괴하며 그 풍압에 직접 노출된 재수 없는 수백의 사람들은 피분수를 뿜으며 터져버렸다.

"보인다. 그들이 당황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분노하는 모습이...너무나 아름다워."

함께 마법을 시전한 마법형 상위종들과 함께 지팡이를 내린 레이나가 반쯤 벗은 가면 너머, 황홀하단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선 자신의 곁에 둥둥 떠 있는 생물체의 갑각을 부드럽게 만지작 거렸다. 그 갑각 안에는 뇌가 들어있었다.

"로지나,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생물체의 정체는 촉수로 그녀의 척추에 연결되어 연산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조된 뇌. 겉모습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 뇌의 내용물이 한때는 블레이클 학회의 학회장이던 여인의 뇌라는 점이 다를 뿐.

물론 산채로 머리 뚜껑을 열고 그 뇌를 꺼내 군단과 하나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그 자아는 대부분 붕괴해 남아나지 않았지만, 레이나는 이 뇌를 높게 평가했다.

"아직 주력이 도착하지 않아서 우리끼리 모든 이들을 전멸시키는건 불가능해."

"알고 있습니다. 다르크, 그자가 보이는군요."

그 모습을 탐탁찮게 바라보던 강도연의 말을 가볍게 흘린 레이나가 손으로 다르크를 가리켰다.

그녀들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석양이 지며, 태양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르크를 비롯한 그 일족들은 태양이 없으면 그 힘이 상승한다는 정보는 확보한 상태.

하지만 레이나도, 강도연도 이브도 그리 신경쓰진 않았다.

"용종의 힘까지 흡수한 저희가 그깟 놈들에게 지겠습니까."

레이나 웃으며 자신의 가슴팍을 쓸었다. 이미 그녀도 새롭게 얻은 힘으로 육신을 강화한 상태였다.

무려 마법사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들의 힘이었다.

즉 절대 질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방심하진 않는게 좋아. 내가 먼저 갈게."

강도연이 먼저 날개를 펴고 레이나의 포격 한번에 반파된 도시로 날아갔다.

이따금 포격이 날아왔지만 피할 가치도 없는, 약하고 부정확한 공격들이었다.

"긴 말은 않겠다."

강도연이 직행한 곳은 당연히 적들의 우두머리이자 가장 강한 존재로 추정되는 이.

도주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가만히 서서 그녀를 맞이한 다르크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당장 도주하라는 명령이다!]

"어리석은 소리."

그는 뇌리에 울리는 목소리를 듣고 비웃음을 흘렸다. 이곳으로 도주한 이후, 그는 플레이어의 모든 명령을 거부했다.

지금 당장 도주하라는 명령도. 좌표를 부를테니 이곳으로 게이트를 열라는 명령도.

"놈들도 분명 게이트 관련 기술을 손에 넣었고, 한번 연결을 성공시키면 그것이 곧 길잡이가 되지. 당신네 세상이, 이 끔찍한 괴물들을 상대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일족들 모두를 저놈들의 먹이로 고스란히 바칠 셈인가? 아니, 절대 엮이지 마시오. 일족에게도 엮이지 말라고 전하시오."

미친놈처럼 흐흐 웃은 그가 손에 쥔 홀을 치켜들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황녀라면 황녀답게. 일족을 위해 희생하시오. 나와, 당신의 권속들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 말 한마디를 내밭은 그는 그 마력을 강도연을 향해 폭사했다.

건물을 포함 그 일대를 통째로 폭발시켜버리며 날려버리는 일격.

강도연은 날개를 교차시켜, 그 충격을 견뎌내었다. 이미 형상력에 대한 용종의 방어력을 손에 넣은 그녀는 오히려 그의 마력을 일부 흡수할 정도였다.

동시에 땅을 박차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도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모든 힘을 짜내는 마지막 발악일 뿐. 그대로 짓밟아버려.'

강도연의 시선을 통해 본 그의 눈에서 이브는 그 의도를 읽어내었다.

"흐르는 선혈이 곧 검이다."

그의 몸이 길게 베이며 피가 흩뿌려졌으나, 그가 그 피를 휘두르자 뿌려진 피가 칼날이 되어 강도연의 몸에 적중했다.

팔로 막아낸 그녀는 갑주의 방어력을 뚫고 남은 긴 상흔을 보고 움찔했다.

"태양이 사라지고, 피의 마법은 더 강해진다."

그가 시전한 마법에서 강한 충격파가 터져나오며 강도연을 밀어버렸다. 이제 태양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거짓말. 하지만, 인정하지. 말과는 달리 지금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다는걸.'

이브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비웃었다.

상대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라는걸 알아차리자 강도연의 기세가 급변했다.

"...검?"

다른 이들과 싸우다 하늘을 가로질러 온 상위종이 강도연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검이었으나, 단순한 검이라기엔 너무 컸다.

날폭만 어른 손바닥보다 크며 그 길이는 강도연의 키보다 길었다. 대도를 넘어선 태도(太刀)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전체가 하나의 검붉은 광석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미친..."

강도연이 그 검을 쳐들고, 막대한 에너지를 공명시켜 하늘로 뿜어올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린 다르크는 고개를 쳐들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안타깝지만 사로잡는건 절대 불가능할것 같으니, 그냥 죽여.'

동시에 그 거대한 검이 휘둘러졌다. 현장의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던 그 순간.

뿜어진 거대한 폭풍이 어둑해지던 일대를 밝게 점멸시키며 도시 한부분을 그대로 덮쳐 갈아버리고 쓸어버렸다.

*

"이 끔찍한 재앙이, 언젠간 사라지길."

"의원님. 아무래도 의장은 사망한 것 같습니다. 단 몇십의 괴물들에게...도시가 붕괴했습니다."

어둑한 밤하늘,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오스틴이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통신구를 통해 겨우겨우 결집하고 있던 인류의 마지막 보루가 함락되었다는 소식 역시 도착했다.

오스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의회도 학회도 모조리 와해되었고 동원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다.

"숨어들고, 도망칠 준비를 하라 명하라. 이제 우리는 바람 앞 촛불과 같으니, 죽고 사는건 우리의 의지를 벗어났다.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그저 피해서 지나가길 기다려야지."

소도시 하나정도의 소규모 무리를 이끌게 된 오스틴은 사실 상 저항은 포기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자신들이 아닌 타의에 달렸다는 소식에, 깊은 절망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이럴...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는, 다르크를 배신하고 몰래 오스틴을 따라 온 로제스도 있었다.

낡은 망토에 딸린 후드로 얼굴을 가린 그는 어둑한 피난촌의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사실상 유일한 끈인 다르크와 그 세력이 완전히 죽고 와해되었다.

학회도 붕괴한 마당에 이제 그를 지켜줄 수 있는 권위와 권력도 없었다.

"우리 총통께서, 큰 결단을 내려주셨다, 라고 하셨다."

"알겠다! 대체 내가 뭘 해야 하느냐! 뭘 어째야 지원군을 보내줄 수 있다고!?"

사람이 없는 근처 숲속으로 들어온 그가 빽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화면에는 자신의 유닛인 코볼트 대족장과, 그동안 동맹 관계로 지내온 놀들의 왕이 대면하고 있었다.

"간단하다, 이것을, 제물로 받고, 지니고 있으라, 하신다."

놀들의 왕이 요상하게 생긴 기계장치를 코볼트 대족장에게 전달했다.

"그러면, 대총통의 자랑스러운 함대가, 그곳으로가, 그 괴물들을 전부, 죽여버릴 것이라고."

코볼트 대족장은 제물로 그 기계장치를 바쳤고, 그 장치는 곧 그가 손에 쥔 수정구를 통해 그의 눈앞에 전송되었다.

'반군연합...이라고.'

로제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들어올려 품에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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