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각자의 목적(3)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둑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강도연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더 높이, 저 드넓은 하늘과 찬란히 빛나는 별들을 향해 더욱더 속도를 높였다.
점차 떨어지는 산소와 급강하 하는 온도에 그녀의 육신이 한계에 부딪히자 자동적으로 형상력을 바탕으로 한 검붉은 베리어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형상력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기적의 에너지. 거기다 신체를 자기 의지대로 조작할 수 있는 그녀는 사실 필요하다면 숨을 쉴 필요도 심장을 뛰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모든 에너지를 형상력으로 대체한 상태에서 마침내 강도연은 이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두게 되었다.
지구와 비슷한 푸르른 행성. 하지만 주변에 인공위성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지? 궤도에서는 벗어나지 마. 네 육체를 다시 만드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막대해.'
이브는 그 행동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효율적이었으니까.
'우리, 언제가는 우주로도 나가지 않을까?'
'잡아먹을 적이 우주에 있다면 당연히.'
'한번 연습해본 것 뿐이야. 그날을 위해서.'
쓰게 웃은 강도연이 다시 몸을 돌렸다. 이미 목적지의 좌표가 어디인지는 뇌에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상공으로 치솟은 그 속도 그대로 그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공기의 저항이 덜해서 그 속도가 더 빠르다.
점차 가까워지는 태양과 함께, 그녀는 순식간에 대륙을 횡단했다.
목적지에 다다른 이후에는 그속도 그대로 하강하며 몸에 둘러친 베리어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아. 전부 죽여.'
'...알았어.'
마침내 목적지로 잡은 도시가 그녀의 눈앞에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 피부 일부분이 비틀리며 가면이 씌워졌다. 물론 그녀의 정신은 또렸했다.
자신이 괴물임을 인정하고 길을 선택한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또렸한 정신으로, 그녀는 이브의 학살명령을 수행해왔다.
그 손에 죽어나간 인간들이 이미 세자리 수를 넘어섰다.
"으, 으아아!"
"꺄아악!"
급가속한 그녀가 도시의 마법방어진을 몸으로 부수고, 가장 높은 탑을 관통한 채 거대한 충격과 함께 땅을 뒤흔들며 착륙했다.
깨지고 터져나가는 땅이 흙먼지를 터트렸고 근처에 있다 휘말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바닥을 구르며 넘어졌다.
이 시골 소도시 최후의 보루였던 방어진은 그녀의 베리어와 부딪히며 산산히 부숴져 내리고, 그녀가 몸으로 부수고 뚫어버린 거대한 시계탑은 휘청거리더니 천천히 붕괴했다.
'적장은 어디 있지?'
그녀는 자신을 보고 경악한 주변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에게 덤벼들, 이곳의 지휘관들이나 전사들을 찾았다.
스스로도 위선적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이것이 자기 자신의 자아를 위해 시도하는 최소한의 방어 장치였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나서 싸우는 이유는 결국 강해지기 위해서.
그렇기에 죽이는 상대는, 항상 지휘관이나 무기를 든 전사들 뿐이었다. 일반인들을 학살하는건 함께 온 다른 군단병들이 맡았다.
"시, 시장님!"
"망설이지 말고 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게!"
메나스 소식을 듣고 황급히 게이트로 주민들을 더 후방의 도시로 대피시키던 소도시의 시장은 도망치려는걸 마치 다 알고 찾아왔다는 듯한 눈앞의 광경에 침음했다.
저 멀리 보이는 현장, 흙먼지와 함께 그것이 보였다. 휘날리는 한쌍의 검은 깃털 날개가.
"절망을 부르는 날개..."
시장은 그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이미 군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퍼져있는 가운데 저 날개를 가진 존재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분명 그 괴기한 가죽과 갑각 안에는 아름다운 여체를 가졌을, 그러나 그 내면은 그 어떤 기사도 마법사도 가차없이 베어죽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라고.
그러나 저 날개는 시작일 뿐이었다. 날개는 혼자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수하로 부리는 괴물 무리와 반드시 함께 움직이며 진정한 핏빛 재앙은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떠도는 공포스런 소문이었다.
"시장님. 저희가 가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하지만 란돌프경!"
"듣기로 저 날개는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힘 없는 약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오로지 기사와 마법사만 골라 죽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대신 이곳의 대표, 시장님을 죽이기 위해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십시오. 저희가 놈의 시선을 끌며 시간을 벌겠습니다."
시장을 호위하던 호위기사가 부하들을 이끌고 굳은 얼굴로 앞에 나섰다.
시장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지금은 차마 그들을 말릴 방법이 없었다.
"반드시 살아 오시오."
"당연합니다."
기사단장, 란돌프는 결연한 표정으로 시장과 마지막 악수를 하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투구를 눌러썼다.
"가자. 저 심연의 괴물에게 우리 기사단의 힘을 보여주자."
그는 부하들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이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시민들을 가로질렀다.
땅을 달려가며 일심동체로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적은 지금 몇명의 병사와 마법사들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짓밟고 서 있었다.
전해진 소문이 사실이라는 듯, 그 곁에서 땅에 넘어져 벌벌 떨고 있는 어린 아이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전사의 명예를 아는 괴물아! 우리와 싸워라!"
검을 꼬나쥔 란돌프가 고함치며 적의 시선을 돌렸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전력으로 땅을 박찼다.
그리고 조금의 방심도 없이 모든 것을 담아 검을 내질렀다.
사명감, 투지, 열정, 분노 그 모든 것이 담긴 일격이었다.
*
'이놈은 뭔가 특별하군. 역시 그놈과 같은 부류의 유닛인가?'
"커헉...크흑..."
기사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진 광장.
반으로 갈라진 란돌프의 시신을 자기도 모르게 짓밟은 강도연은 두 다리를 절단한 마지막 생존자의 목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으로 현장을 보는 이브는 단숨에 생존자의 몸에서 이질적인 부분들을 발견했다.
이미 지난번 전투에서 분석을 끝낸, 다르크와 같은 소속의 유닛과 동일한 성분을.
'혈류에 형상력이 흐르고, 그것을 이용해 여러 수작질을 부리는 놈들이지.'
다만 이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우선 그 능력은 복제하는게 불가능했다. 일종의 마법과 같이, 형상력의 특별한 체계가 있는데 그것은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으로는 가져 올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것을 배우는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로잡은 포로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얻은 것은 다르크가 유일하게 '진조'라 불리는 순혈의 권능을 받았으며 오직 그만이 이 혈마법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증언이 전부였다.
'그럼 어쩌지?'
'그 다르크란 놈을 제외하곤, 그냥 전부 죽여버려. 팔다리를 자르고 곤죽을 내놔도 살아남는 질긴 놈들이지만 결국 내버려두면 죽으니까. 목을 베.'
'알았어.'
강도연은 손을 툭 놓은 뒤, 그대로 날개를 휘둘러 땅에 떨어져 있던 생존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날개를 펼쳐,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이제 몇분 뒤면 군단병들이 도착한다.
이미 방어체계가 부숴진 이 도시는 그 한줌의 군단병들도 막을 수 없다.
"아아..."
"기사님들이..."
그녀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빠르게 활공하자, 대피하던 사람들은 절망과 패닉에 빠져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멍청하고 미개한 놈들이 도망치겠다고 서로 밀고 밟아 죽이는 것봐.'
'...'
강도연은 그런 광경엔 그냥 처음부터 일절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목적으로 정한 게이트를 부수기 위해 앞으로만 전진하여, 시청 한가운데 마침내 사람들이 서둘러 통과하고 있는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막아라...기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라!"
시장을 비롯, 이 도시 최후의 마법사들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시작했다. 긴급한 방어진을 펼치고 그녀에게 마법을 쏘아보냈다.
그들의 저항을 받아 허공에 멈춰 선 강도연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날개의 관절부에 박힌 동력기관이 빛을 내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 직후 날개에서 뿜어진 두 줄기의 섬광이 그들에게 꽂혀 대폭발을 일으켰다.
용종의 심장을 흡수하여 동력기관의 출력과 효율이 상승했기에 가능한 공격.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트린 시장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반쯤 타버린 채 그녀의 몸을 스쳐 날아가버렸다.
"어쨌든 이곳에도 다르크는 없었어."
'증언을 확보했으니 딱히 상관은 없지.'
창공으로 날아오른 강도연이 군단병들에게 학살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브는 이번에 보다 자세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대륙수도 메나스를 잃은 인간들이 동쪽 끝자락의 또다른 요충지로 모이고 있다는 정보였다.
물론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이들도 아직 전 대륙에 많이 퍼져 있었다.
그들은 소수의 생존자 무리가 되어 대륙 중앙을 장악해가는 용종을 피해 더 깊숙한 변방으로 몰리는 중이었다.
"바로 이동할까."
'그렇게 해. 레이나까지 붙여주지. 가서, 다르크를 끝장내고 인간들의 희망을 완전히 꺾어버려.'
정보를 얻은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브는 남은 병력을 용종을 피해 모두 이동시켰다.
가까스로 숨만 붙어있는 상대를 저격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