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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03화 (103/254)

103화-각자의 목적(1)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학회장!"

"...시끄럽소. 놈들은 마법을 훔쳐쓰지. 그 수단은 모르겠지만 만약 게이트 관련 마법까지 놈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굳이 뒷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마법사들은 게이트를 열려던 아도스 학회의 마법사들을 전부 태워 죽여버린 블레이클 학회장의 말에 할말을 잃어버렸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죽는겁니다."

그녀의 단호한 결단은 당연히 이브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옥좌의 손잡이를 움켜쥔 이브의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다른 감정에 비해 지금껏 분노라는 감정은, 굳이 인간의 육신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었으니 익숙치 않은 탓이었다.

그 대신 이브는 자신의 아바타가 아닌 군단병들을 통해 그 분노를 그대로 폭사했다.

사실 이렇게 분노를 이용하는 것, 이브가 자아가 생기기 전에도 능숙히 하던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온다!"

상위종들이 검을 빗겨들고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배수진을 친 마법사들의 항전은 생각 이상으로 시간을 끌었으나 애초에 벌어진 숫자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거 징그럽게도 생겼구나."

단숨에 마법사들의 품으로 파고든 상위종의 검에 지팡이를 들고 있던 한쪽 팔이 잘린 블레이클 학회장이 자신의 배를 관통한 꼬리를 붙잡고 중얼거렸다.

이브는 당연히 그녀의 목을 참수하려했다.

감히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고 건방지게 저항한 미물에게 내리는 분노의 처벌은 당연히 죽음이라는, 살아가야만 하는 생물에게는 최악의 형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어머니의 그 분노, 단순한 참수로는 부족합니다!'

문제는 이제 이브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고통과 파멸을 바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레이나의 의견에 이브가 흥미를 보였다.

'죽음보다도 강력한 형벌이 있다고?'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네 생각, 비효율적이야.'

'학회장급이라면 쓸만할겁니다.'

짧은 시간 두 존재가 의견을 교환했다. 동시에 계산을 마친 이브는 레이나의 의견에 따라 당장 그녀를 참수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모든 인간들은 참수해 죽여버린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무슨...무슨 짓이냐! 어서 죽여라!!"

이브의 의도를 짐작한 그녀의 눈이 순간 커지며 오히려 죽음을 앞둔 그 순간보다 두려움에 물들었다.

체내에 침투한 감염균이 오히려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시작하자 더더욱.

'정말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 허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두려움은 그것보다 클것입니다.'

효율만을 추구하던 이브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고문은 그저 정보를 뽑아내기 위한 수단일 뿐.

하지만 레이나는 달랐다. 인간 같은 존재에겐 고통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단순한 놈들인줄 알았더니, 이 어지러운 전장에서도 조금의 틈도 없이 철저하군. 대체 네놈들은 어떤 놈들이냐."

레이나와 이브가 서로 통신하던 사이.

레이나는 이브가 그렇듯 다르크와의 전투 역시 동시에 진행하며 문제 없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강도연과는 달리 군단과 하나되기에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기뻐하던 존재이기에 그 적응도 능력의 상승폭도 큰 탓이었다.

"..."

레이나는 말 없이 그를 향해 마법을 쏟아부었다.

손에 홀을 든 그가 다시 한번 그 폭격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이제 홀에 들어있는 마력은 반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죽어서야 의미가 없다.'

다르크는 손에 쥔 홀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상대방 역시 척살권을 맞고도 다시 살아왔으니 척살권은 의미가 없다.

[준비해라. 플레이어가 네 요청에 따라 결단을 내렸다]

"도마뱀들이나 신경써야 할거다. 놈들도 한 끈질김 한다고 하니까."

곧 그의 몸이 빛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포함한 유닛들의 일부분이, 빛에 휘감기더니 이내 전부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종족보전권."

레이나가 혀를 차며 텅빈 전방을 바라보았다.

현지 권력과 결합해 초기부터 대다수의 유닛들을 조기에 처리한 다르크의 플레이어는 골드가 많았다.

상점에서 보전권을 사서 사용하는데 제한될게 없다는 뜻이었다.

'철수해. 게이트에서 나오는 용종들이 우리 병력 대부분을 쓰러트렸다. 어차피 인간들의 주력은 전부 분쇄되었고 수확은 거두었으니 이젠 좀 천천히 가도 상관없겠지.'

동시에 시간도 다 되었다.

자신들이 자랑하던 덩치와 힘에서 확연하게 밀리던 용종들은 인간들이 넓혀준 게이트를 이용해 결국은 꾸역꾸역 대형 군단병들을 쓰러트렸다.

애초에 갑작스런 상황에서 긴급히 대응하던 것이었으니 이브도 지금 가진 병력만으로 놈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퇴각 명령을 받은 레이나는 망설임 없이 철수 준비를 했다.

"레이나!"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가면을 쓴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그 이름을 부른 상대는 바로 오스틴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 하지만! 부디 다시 돌아와라! 넌 인간이다. 괴물이 아니야!"

"..."

만신창이던 오스틴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레이나는 찰나의 순간, 가면 너머로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불쌍한 사람.'

레이나가 품은 첫번째 감정은 연민이었다.

'군단과 하나되면, 저리 고통 받을 필요도 불완전할 필요도 없는 것을.'

물론 그의 말에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에게 오스틴의 외침은 그저 패자의 발버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군단과 하나되어, 이브에게 새로운 힘을 받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완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레이나에게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라는 오스틴의 외침은 개미가 인간에게 자신들처럼 되라고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위선자.'

무엇보다 그녀에겐 오스틴 역시 자신을 배신한 쓰레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퇴각 직전 그에게 지팡이를 겨눈 그녀가 번쩍이는 뇌격을 쏘아냈다.

기겁한 오스틴이 몸을 던져 가까스로 그 일격을 피했다.

"뇌, 뇌격계 마법을 어떻게..."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침음했다.

뇌격계 마법은 그 복잡한 작동원리와 어려운 계산식으로 과거 연구가 중단된 마법.

레이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극대화된 두뇌능력과 과거의 지식을 이용해 끝내 그것을 철저한 군단식 마법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럴 수가."

그것은 곧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별된 여러 실패 사례들 역시 재가공이 가능하다는 뜻. 그걸 알아차린 오스틴이 숨을 들이켰다.

레이나는 오스틴에게 몰려오는 사람들을 굳이 마무리 짓지는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다른 군단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단병들이 썰물이 빠지듯 빠르게 사라진, 폐허가 된 이 도시에 남은 것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

"의원님. 우선 몸을 피하시죠. 놈들이...옵니다. 결국 저 끔찍한 도마뱀들마저 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자축하며 포효하기 시작하는 용종들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룡들을 보던 오스틴은 참담한 눈으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

[종족보전권의 효과는 유닛의 일부를 다른 장소로 즉시 이동시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것. 하지만 그 위치는 결국 그 세상 어딘가다.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겠지. 결국 척살권처럼,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그 효과가 극명히 달라지는거고."

누군가에게 척살권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선고. 하지만 그것을 극복한 존재들에겐, 그저 상대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단일 뿐이었다.

"이브에겐 상관 없는 일이잖아."

나는 피식 웃었다.

보전권을 통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했다 쳐도, 이브의 말마따나 결국 도태된 패배자의 발버둥에 불과했다.

숨어서 다시 힘을 회복한다 한들 말그대로 모든 땅을 먹어 치우려는 이브에게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브는 죽기 직전에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도주한 놈들 보다는, 이번에 얻은 수확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그리고 네게는,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게 있고]

"맞아."

나는 그 말에 긍정했다.

이브는 결국 아도스 학회의 마법사 일부를 생포했고, 곧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이브는 대형종 생산을 두배 이상으로 늘렸다.

이제 인간들에겐 볼 일 없으니, 천천히 상대하며 게이트를 넘어오는 용종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용종들에 대해서는 걱정 안했다. 화면으로 보는 그 괴물들은 확실히 강해보였지만 이미 세상을 파먹기 시작한 이브가 저런 짐승무리에게 질리는 없으니까.

내 모든 관심은 게이트 기술을 기어코 손에 넣은 이브의 생각에 쏠려 있었다. 아마 머지않아 이브는 공간의 벽을 찢어버리고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브는, 결국 날 먹을 생각인가?"

[감정이 동요한다. 주의해라]

"알겠어."

나는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조절했다.

그동안 이브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며, 나는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혹시라도 이브가 내 생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덕에 이브가 두번째 서브마인드, 레이나와 나 몰래 이야기를 나누며 나에 대해 언급할 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명확한 사실은 이브가 생각하는 합일(合一)이 네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사실 뭐가 되었든 그리 내키지 않아."

갑이 나인가? 아니다. 내 말 한마디에 흔들릴 정도로 내 영향력은 아직 강하지만, 결국 강자는 이브고 갑도 이브였다.

하나가 되자는 그녀의 말에 수락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지금의 이브보다 정신적으로도 강하다 말할 수 없었다.

내 몸도 정신도 손에 넣은 이브가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브를 물들이긴 커녕, 내가 물들어버릴게 뻔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브에게 물들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이미 그 사고과정과 힘을 나와 만난 이후 채 1달이 안 되는 시간동안 한 세상을 붕괴시키는걸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나라는 제동장치도 없어진다면 이브는 손에 넣은 게이트를 이용해 온 우주로 퍼져나갈 것이다.

마치, 과거 지구를 침공하던 마물들처럼.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은?]

"...나만으로 이브를 물들이는게 불가능하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지."

어느 정도의 그림은 내 나름대로 그려놓았다. 이브가 가진 힘을 올바르게, 아니 올바른게 아니라 내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할 방법을.

"신우씨. 준비해 주세요. 적들이 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움직여왔다. 나는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검을 챙겨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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