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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02화 (102/254)

102화-타락이 아닌 진화(10)

"..."

최초로 그 균열을 발견한 것은 바닥을 어슬렁어슬렁 기어가던 놈이었다.

놈이 코를 킁킁거리며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한 대기의 흐름을 감지했다. 큼직한 호박색 눈이 꿈벅였다.

계속해서 킁킁거리던 놈의 감각기관은 마침내, 아주 오래 전 맡았던 냄새를 기억해냈다.

마법사의 냄새. 그것도 아주 많은 마법사의 냄새였다.

곧 어슬렁거리던 그 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죽한 몸통과 거친 암석과도 같은 비늘. 길쭉한 목만 빼면 말그대로 악어를 닮은듯한 이 생물체는 홀린듯 냄새가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륵..."

그리고 그 냄새를 눈치챈건 그놈뿐만이 아니었다. 일대에 있던 모든 용종들이 그곳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땅을 걷는 지룡, 날개를 단 비룡, 불을 뿜는 화룡 등등.

한때 이 세상의 패권을 두고 마법을 익힌 인간들과 전쟁을 벌여 결국 그들을 이세계로 내쫒은 이곳의 지배종이었다.

하지만 기껏 세상의 주인이 되었어도, 퇴화하여 그저 파괴와 살육의 화신이 되어버린 이들에겐 세상을 발전시킬 여력은 없었다.

본능에 새겨진 탐욕도 오만도 그 대상이 없으니 그저 빈 깡통.

'이것은 기회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미세한 흐름을 읽어낸 그들의 지배자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고의인지 사고인지 그딴건 상관 없었다.

파괴하고 살육할 새로운 목표물이 나타났다면 그 본성대로 행하는 것 뿐이었다.

가장 먼저 선두에 선 한 지룡이 그대로 게이트를 넘었다.

발에 밟히는 흙과 풀등은 화창한 태양빛 아래, 모든게 척박해진 레드리움과는 달리 생의 기운이 넘치는 땅이었다.

"..."

지금까지는.

눈을 가늘게 뜬 지룡은 실로 오랜만에 자신을 향한 강렬한 살의를 느꼈다.

그 대상은 지금 정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군세.

대부분은 지룡보다 작았지만, 덤프와 맞먹는 덩치를 가진 대형종들은 지룡과도 덩치에서 밀리지 않았다.

"저것들이 이곳 인간들이 말하던 용종인가?"

지룡의 모습을 보고서도, 이브는 딱히 동요가 없었다.

애초에 그동안 사로잡아 정보를 뽑아낸 인간들이 많으니 그 존재와 역사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놈들을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도.

"그래봤자 퇴화한 도마뱀들이잖아."

하지만 자신은 용종을 두려워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먼 옛날, 인간에게 마법을 전수해준 기원이 고대의 용. 하지만 그 용의 후손들은 반기를 들어 자신들의 조상들을 죽이고, 인간들을 공격했다.

그 대가로 고결함을 잃은 용종의 후신들은 마법의 근원에서, 마법의 천적으로 바뀌었다. 는게 지금껏 인간들이 증언한 역사였다.

"패배하고, 도태된 놈들에게 질리가 없어."

다른건 다 상관 없이 이브는 그들이 퇴화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이브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발전하지 않고, 진화하지 않고 고이다 못해 오히려 퇴보하는 행위.

[그가 이 말을 전하라고 했다. 용종은 퇴화한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물론 그 말도 맞아."

'...'

단숨에 긍정한 이브는 순간 어이가 가출한 서브마인드들의 감정은 무시한채, 본대의 뒤에 있던 레이나에게 명령했다.

"한번 마법을 먹여봐. 듣기로, 놈들은 아주 강력한 마법저항력을 갖고 있다고 했지. 인간들의 마법을 무력화시키고 본인들은 체급을 이용해 싸우는 방식을 썼다고."

'알겠습니다.'

명령을 수신한 레이나가 그자리에서 지팡이를 들었다.

혼자서 시전하는 다중결합마법. 그 위력은 단신으로 도시 하나를 유린할 수 있을 정도.

채 1초가 안되어 펼쳐진, 중첩된 마법진에서 뿜어진 포탄이 소리를 찢으며 지룡을 향해 하늘에서 내리찍었다.

지룡은 피하지 않았다. 애초에 피할수도 없는 일격이었다.

"...상당한가본데."

적중한 자리에, 자욱한 연기와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터졌다.

결과적으로 지룡의 몸은 그대로 으깨져 터져버렸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정도의 위력으로 결국 저 한마리를 죽인 것 뿐.

"거짓말은 아니야. 원리는 모르겠지만 형상력에 대해선 상당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으니."

이브는 포탄이 지룡에게 명중하는 순간, 그곳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포착했다.

미처 다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포탄에 들어있던 에너지를 흡수하는 지룡의 모습을.

"전술과 진형을 바꿔."

이브는 방금 전 그 지룡을 시작으로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종들을 보며 군단병들을 조절했다.

도움이 안될 대형종 미만의 병종은 전부 뒤로 물리고, 초대형종을 비롯 덩치로 용종에 맞먹을 수 있는 군단병들을 재배치했다.

"한 세상을 그 튼튼한 몸과 덩치로 점령한 괴물들이니, 그에 맞게 상대해 줘야겠지."

히죽 웃은 이브가 그대로 군단병들을 돌진시켰다.

지룡을 시작으로, 자신만만하게 게이트를 넘어온 용종들이 당황한게 보일 정도였다.

지금껏 그들이 상대해 온 상대는 마법을 쓰는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처음 마주한 적들은, 이미 자신들에 대해 알고 있는, 동시에 자기들 만큼이나 거대한 군단.

군단의 동력기관이 오직 그 불합리하고 거대한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쿵쿵 울리는 발걸음은 지축을 흔들었다.

"짓밟아. 그리고, 끌고와. 산채로 분해하여 알아내야겠어."

히죽 웃은 이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본적인 몸집만 수m를 넘어가는 대형 생물들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부딪혔다.

*

"어서 대피시키고. 게이트를 추가로 여시오."

"하, 하지만..."

"이대로 가면 공멸은 커녕 쓸려버릴 뿐 아니오."

도시 바로 앞에서 벌어진 상상을 초월한 괴물들의 대전쟁.

잠시 넋을 잃은 사람들의 정신을 다르크가 일깨웠다.

지금 전황은 일방적이었다. 그의 시선에, 하늘로 날아오른 거대한 비룡이 자신의 몸에 빼곡히 달라붙은 비행종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룡이 입으로 물어죽여도 비행종들은 그 가죽에 계속해서 독침을 박아넣었다.

분명 지금의 상대는 전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게이트라는 좁은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종들은 밀리고 있었다.

"크흑. 게이트 추가 개방!"

다르크의 명령을 받은 아도스 학회의 마법사들이 어쩔 방법 없이 서둘러 차원의 균열을 더 커다랗게 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후방으로 대피, 최악의 수를 대비합시다."

다르크는 점차 더 많이 뿜어져 나오는 용종들을 보며 몸을 돌렸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도망치고 숨어들어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이미 일반 시민들의 대피는 다 끝난 상황.

지금 여기 있는 중진들과 병력만 빠지면 한때 인구 300만이 살았던 대도시 메나스는 텅 빈 유령도시가 된다.

"이런..!"

"막아라!"

그러나 이브가 그들을 곱게 보내줄리가 없었다.

하늘을 가로지른 레이나가, 상위종들을 이끌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리석은. 고작 수십으로 지난번처럼은 안될거다."

다르크가 이끄는 수하들이 철수를 겸해서 모조리 도시 방위 병력에 합세했다. 적어도 수천은 되는 숫자였다.

"...하."

그러나 그건 당연히 이브도 알고 있었다.

소수로 그들을 가로막은 레이나의 뒤로, 진동하던 땅이 터져나가더니 거대한 데스웜이 3층 건물을 입으로 부수며 튀어나왔다.

데스웜이 다시 땅으로 들어가고 남은건 산산히 부숴진 건물의 잔해.

그 거대한 싱크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수백 이상의 상위종들을 비롯해 중형군단병들이 만든 그 끝을 알 수 없는 물결이었다.

이브는 전장에서 뺀 모든 전력을 이곳에 투입했다.

"다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겁니다."

그 광경을 보며 조용히 혀를 찬 다르크가 눈을 번득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시길."

"으...으아아아!"

"길을 뚫어라! 그리고 버텨라! 대피 게이트를 만들 수 있을때까지!"

그의 말이 끝나는 것을 신호탄 삼아 그대로 전투가 벌어졌다.

악에 받힌 마법사들이 마법을 쏘아내고, 상위종들이 진형으로 파고들어 기사들을 베고 마법사들을 잡아 죽였다.

그 한복판, 레이나가 쏘아낸 작열하는 거대한 화염줄기가 다르크가 뿜어낸 붉은 마력의 폭풍에 막혔다.

"전부...죽인다."

안광을 번득인 레이나가 다시 한번 증오를 태우며, 동시에 계산하여 그려내는 수십개의 마법진을 펼쳤다.

아군 군단병이 휘말리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 무차별한 마법 대폭격.

전장의 한복판에 대폭발을 일으켜, 거리 하나를 통째로 날리고 거대한 구덩이를 만드는 그 일격에 다르크는 넝마가 된 소매를 내리고 이를 악문 얼굴을 드러내었다.

하필 태양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대낮이었다. 다르크에겐 만전이 아니란 뜻이었다.

'아도스 학회의 마법사들. 반드시 생포해라.'

버텨서 살고자 하는 이들과 오직 죽이려는 자들이 벌이는, 도시 전체로 번진 처절하고 끔찍한 전장.

포로도 자비도 없이 오직 죽음뿐인 전장에 이브가 몇몇 개체들에게는 특수한 임무를 내렸다.

"버텨라. 버티지 못하면 죽는다!"

근처에서 블레이클 학회의 학회장을 중심으로 일부 마법사들이 뭉쳐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슬쩍 들어간 구석에서 기를 쓰고 지키려는 것은 이 포위망을 벗어나 후방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려는 아도스 학회의 마법사들.

즉, 반드시 사로잡아야 할 적들이었다.

단숨에 정보를 공유한 군단이 근처의 상위종들을 그곳으로 파견했다.

"이놈들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쏴라!"

모든 것을 걸고 발악하는 마법사들의 마법이 상위종들에게 틀어박혔다.

네개의 손에 검을 들고 꼬리를 휘두른 상위종은 베리어를 활성화시켜 마법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 자식들 설마!"

물론 학회장급의 전력을 상위종 수준의 출력으로 막아낸건 아니었다.

어느새 뒤를 따라잡은 또 다른 상위종이 지팡이를 들어 시전한 스타스 학회의 마법이 검을 든 전사형 상위종들을 강화했다.

"블레이클, 스타스, 세클라드, 유칼레리아...모든 학회의 마법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이제 놈들에겐 단 하나만 남았소."

"설마."

군단병들의 의도를 눈치챈 블레이클 학회장이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만약, 만약 이런 놈들에게 게이트가 넘어간다면. 우리 세상이 망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그녀가 지팡이를 반대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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