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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01화 (101/254)

101화-타락이 아닌 진화(9)

'우리는 패배했고, 버티는 것 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해서 마법을 폭사하는 다르크의 눈이 가라앉았다. 곁에 모여든 마법사들이 희망을 가지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무려 1천의 목숨값으로 얻은 마력이지만 무적은 아니다. 지금 자신이 폭사하는 마법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이 이상 죽일 수도 없었다. 결국 자신의 그릇이 거기까지였으니까.

반면 지금 메나스를 함락 직전으로 몰아넣는 적들은 알려진 것의 '한줌'일 뿐이다.

"우, 우선 이렇게 위기를 넘기고, 제대로 뭉쳐 결사항전 해야 합니다!"

학회장 중 한명이, 서서히 줄어가는 적들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들은 이번 위기도 가까스로 넘겼다. 그 수많은 비행종들이 이제는 거의 줄다 못해, 몸을 돌려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희망을 보았다. 이렇게 뭉쳐서 싸우면 버틸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아니. 그건 헛된 희망입니다. 우릴 갉아먹을 헛된 희망."

그러나 핵심 전력이던 다르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 의장님?!"

"이것 놔라! 이게 무슨..!"

한순간에, 현장에 모여있던 고위직 대부분이 단숨에 제압당했다.

모습을 드러낸건 모두 다르크와 같은 소속인 유닛들.

그들 역시 다르크처럼, 평시에는 기존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뒤에서는 철저히 그에게 충성하며 유닛으로 행동하던 이들이었다.

제압당한 이들은 이런 와중에 자신의 부관, 상관, 동기로 믿었던 이들에게 제압당하자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마력이...마력이 안 움직여!"

"...마법사들의 우두머리가, 마법에 대한 대비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르크가 단숨에 마법이 봉인되어 당황한 이들을 보며 씁쓸히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동족들을 상대하는것은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 때를 대비해 오래 전부터 구상해둔 것이었다.

단지 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제, 다들 내 말에 따르시오. 우선 이 위기에서 살아남고, 우리의 마법을 한단계 더 진일보시킬 새로운 마법을 가르쳐 줄테니. 바로 혈마법을 말이오."

말투를 고압적으로 바꾼 다르크가 새로운 마법, 혈마법이라는 말에 마법사 집단 답게 순간 좌중에 술렁임이 퍼졌다.

하지만 그런 술렁임도 잠시, 곧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누군가 끌려나오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짓이오 의장! 감히 학회의 학회장을!"

"입 닥치시오 세이델. 이제 의원 투표를 진행할 것이오. 내가 지금부터 이 사태의 유일한 해답을 제시할 테니, 거수로 투표를 진행하겠소."

다르크의 수하가 끌고 온 것은 바로 아도스 학회의 학회장 마커스였다.

학회 마법사들이 발작하듯 발끈했지만 그는 조금의 신경도 안썼다.

"...의장님."

"내 말에 대한 대답은 여전한가? 레드리움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 두 괴물집단을 싸움 붙이자는 것."

자신을 노려보는 마커스에게 이젠 어딘가 초연해 보이는 다르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절대. 안 됩니다."

마커스는 당연하고 당당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규율이었고 사명이었으니까.

"대체 근거가 무엇입니까. 괴물과 괴물을 싸움 붙인다니요. 그저 괴물들이 두배로 늘어나는 것 뿐입니다! 마법사를 잡아먹으려는 괴물들이!"

"의장님. 당신 지금 설마!"

마커스의 고함등으로 현장에 붙잡힌 고위 마법사들 모두가 경악했다.

특히 원로들의 반응이 더 격했다. 그중에는 눈을 부릅뜬 오스틴도 있었다.

"미친 짓이오 의장! 지금 하는 짓보다 더욱 더! 그 도마뱀들은 진정한 재앙이오. 불의 화신이자, 마법의 천적이며! 기어다니는 죽음이오!"

"설마하니 당신까지 그런 말 할줄은 몰랐소 오스틴 슐츠. 지금까지 일들로 느낀게 없단 말인가? 직전까지 이 도시를 유린했던 그 검은 괴물들이, 레드리움의 도마뱀들보다 덜 사악하고 끔찍하단 말이오?"

"그, 그건!"

버럭한 오스틴은 냉소하는 다르크의 말에 움찔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는 그 끔찍함을 몸소 겪었지만, 오스틴은 애초에 처음부터 그 괴물들과 맞섰던 사람이었으니까.

순간 오스틴의 뇌리에 자신과 눈을 마주친 가면 속 눈이 스쳤다. 금발을 휘날리던 가면의 눈이.

당연하게도 이 도시 그 어디서도 레이나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체마저도.

애초에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도 않았고, 관심 갖는다 한들 찾는 것도 불가능했겠지만.

"생각 잘들 해보시오. 내가 제시한 의견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수용하겠소. 저 미친 심연의 군단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면!"

소리친 다르크가 좌중을 노려보았지만 오스틴이 입을 다문 시점에서 그 누구도 입을 열진 못했다.

만족스럽게 그 광경을 바라본 그는, 곧 그 자리에서 투표를 시작했다.

"잘 생각해서 손드시오. 당신들 손짓 하나에, 우리의 영광과 수억의 생명이 달려 있으니."

"이건 말도 안 돼!"

마커스가 발작했다. 거의 모든 의원들의 손이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으니까.

학회장들을 비롯한 학회 마법사들은 의회의 횡포에 기겁하면서도 대놓고 반대하진 못했다.

"절대 불가능! 절대 안 되오! 그 끔찍한 곳과의 연결을 영구차단 하는 것이 우리의, 내 사명이오!"

결정은 났으나, 학회장 마커스의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반응이 차게 식어도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렇다면 다른 학회 사람들이 협조해줄 수밖에."

"크..흐흐핫! 그게 가능할거라 보시오? 레드리움의 좌표와 관련된 모든 지식은 오직 학회장에게만 있소! 내가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단 소리지!"

앞으로 다가와 눈을 번득인 다르크에게, 덜덜 떨던 마커스는 마구 웃어보였다.

그러나 다르크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이젠 틀렸다고 생각한 그 순간.

"무, 무슨 짓이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해왔지. 마커스 레벨턴. 네놈은 네가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이런 미친...아아악!"

마커스의 머리채를 붙잡은 다르크가, 그가 채 저항하기도 전에 그의 목덜미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끄억...끄으윽.."

마커스의 모든 것이, 그렇게 빨려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이라 모든 이들의 사고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들에게 흡혈귀란 존재는 그 개념조차 없었으니, 받은 충격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좌표를 줄테니."

흥건한 피를 닦아내고, 바싹 마른 시체가 된 마커스를 던져버린 다르크가 무심히 눈을 빛냈다.

"지금 당장 게이트를 여시오."

다르크의 묵직한 명령이 단체로 정신이 나가버린 현장을 휘어잡았다.

*

"따로 대응하진 않을 생각인가?"

태양이 화창한 하늘에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

또 한무리의 대병력이 메나스를 시야에 두고 접근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드넓은 평원 전체를 검게 물들이는 대군세가 그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짓밟고 뭉게며 다가왔다.

선발대로 보냈던 비행종들과는 달리, 다양한 형태와 그 형태에 맞춘 다양한 병종으로 구성한 진짜 본대였다.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걸까."

'적 유닛들이 가진 해괴한 마법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쓸 수 있는 수단은 분명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둥지에서 군단병들을 지휘하는 이브의 의문에, 레이나가 답했다.

현재 죽음에서 돌아온 레이나는 둥지에 있지 않다. 이번에는 이브의 지휘에 맞춰 높은 하늘 위에서 마법형 상위종, 비행종들과 함께 천천히 비행하며 본대를 쫒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죽기를 선택했을리가 없어. 내가 봤을 때 그 다르크라는 사람은 분명 그럴 사람이야.'

군체의식을 통해, 지금은 전장에서 수백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강도연이 현장을 보며 자신이 의견을 전했다.

'동의합니다. 의장 다르크 유타 크루거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레이나가 강도연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이브의 생각도 그들과 다르진 않았다. 언제나 변수를 경계하고, 그 경우의 수를 계산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가장 효과적인 공략을 계산하는 것이 이브의 습성이었다.

"뭔가 더 있으면 나쁘지 않지."

물론 설령 상대에게 숨겨놓은 수가 더 있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살아남는건 둘 중 하나뿐이다. 인간과는 판이한 이 사고과정에서 지금껏 그렇게 살아 온 이브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세상의 법칙이자 진리였다.

그 어떤 적이 온다 한들, 결국은 쓰러트리고 먹어치울 대상일 뿐.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자신은 그 상대와 싸우며 강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 무엇으로 더렵혀졌든 이 세상을 완벽하게 정화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군단과 하나될 수 있는 은혜와 영광을!'

"인간식으로 생각하면 내 행동이 그렇게 되는거야?"

'...전혀 아니야.'

레이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을 보이자, 강도연이 바로 부정했다.

'그리고 저걸 봐. 아무래도 단순한 수작질 정도가 아닌 것 같으니까.'

강도연이 주의를 돌렸다. 사람들이 모두 대피한 메나스 주변도심의 상공.

대놓고 거대하게 응집하는 힘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혹시 저것이."

순간 이브가 눈을 번득였다. 서서히, 그리고 과격히 찢겨나가기 시작하는 공간의 틈.

그토록 염원하고 바라던 것. 게이트를 새로 만드는건 오직 중앙의 아도스 학회만이 가능했다.

지금 그 게이트가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그도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다. 단지 이상한 것은 대체 왜 지금 게이트를 저기에 열었냐는 것]

"그러니까 그 무엇이 나오든 절대 지지 않아."

갑작스런 게이트의 출현에도 이브는 흔들림이 없었다.

싸우고,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죽는것. 그것이 당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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