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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99화 (99/254)

99화-타락이 아닌 진화(7)

"..."

가면 너머, 무차별적으로 폭격당하는 도시가 보였다. 이런 식의 마법 공격이 들어올지 몰랐던 그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가면 너머, 레이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손에 저 도시가 혼돈에 빠지는 그 모습을.

쏘아진 포탄에서 오스틴이 가까스로 몸을 빼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그녀의 분노가 더 커졌다. 그는 멀쩡해보였다. 자신이 그 고된 일들을 겪는 사이, 그는 단순히 현역 의원이라는 이유로 터치 받지 않았다.

"역겹게도."

그녀는 오스틴에게서 눈을 떼고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한때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학회 본부가 있는 아름다운 중앙도시.

그리고 그토록 존경하던 유명 마법사들.

그런 것들이,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에 한심하고 무력하게 부숴지고 있었다.

"내가 멍청했지. 저들은 그저 한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은데."

그녀는 슬며시 웃었다. 저것들을 동경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자신의 손을, 몸을 바라보았다. 비록 검은 갑각과 가죽에 덮인 괴물의 몸이지만 온 몸에 힘이 넘친다.

바로 이것이 자신이 바라던 진정한 마법의 힘이었다. 미개한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 군단과 하나가 되어 얻은 진화한 힘.

계속해서 포격을 이어가던 레이나가 어느 기점이 되자 상위종들을 이끌고 빠른 속도로 하강해 도시 한복판에 착륙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고통받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마음대로 날뛰어봐.'

그녀에게 자율권을 준 것은 이브였다. 애초에 강도연과는 달리 나름의 동기가 있는 레이나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는게 이브의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레이나는 그렇게 자율권을 얻자마자,망설임 없이 소수 병력만 이끌고 단숨에 이곳 메나스로 쳐들어 왔다.

"대체..."

"잡아! 기회다!"

그녀의 착륙에 당황하면서도, 인간들은 기회라 여기고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레이나와 상위종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며 또 하나의 군단식 거대 주문을 그 즉시 발현시켰다.

"...!"

사방으로 뿜어지는 화염폭풍에 비명과 고함소리가 어설프게 들려왔다. 수많은 이들이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산채로 타죽었다.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좋아..."

레이나는 의도적으로 감각을 극대화해 그것들을 만끽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그것들을.

그들의 비명이, 그들의 몸이 타는 냄새가 고문실에서 지르던 자신의 비명과 자신의 몸이 지져지며 나던 냄새와 겹쳐졌다.

한무리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허겁지겁 몰려온게 그때였다.

"근위대! 진형을 잡아라! 적은 마법사다!"

제 1근위대장 라크가 이를 갈며 기사들을 지휘했다.

이미 강도연의 난입때 제대로 놓쳐버리며 체면을 구긴 라크는 이번엔 반드시 이길 생각이었다.

근위대가 자리를 잡자, 스타스 학회의 마법사가 진형에 맞춰 강화주문을 걸어주었다.

그걸 본 레이나도 상위종들을 움직였다. 그걸 본 스타스 학회의 마법사가 숨이 넘어갈 듯 경악했다.

"가, 감히 신성한 우리 학회의 마법을!"

"진정하시오 부학회장. 지금 쓰러트리면 될 일이니!"

라크가 수하들과 함께 땅을 박찼다.

마찬가지로 몸을 강화한 레이나와 상위종들이 지팡이를 겨누어, 이글거리는 화염 줄기를 폭사했다.

"크아악..."

강화된 육신을 뚫고 피부를 태우는 열기.

라크는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오직 적을 베고, 이곳을 지킨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곁에서 버티지 못한 수하들이 죽어나가도 분노를 삼키며 앞으로 전진했다.

"근접하면! 이긴다!"

다행히 라크를 비롯한 근위대는 마법사를 상대해본 경험이 풍부했다.

아무리 몸을 강화해봤자 마법사는 육체를 단련하는 기사에 비해 몸이 둔했고, 그렇기에 근접하면 이긴다는게 필승의 전법이었다.

곧 불길을 뚫은 라크와 일부의 근위대가 검을 빗겨들고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어..?"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하는 이들의 근본이 애초에 마법사가 아니라 괴물, 게다가 괴물집단에서도 특별히 만들어진 상위종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었다.

진형을 갖추고 있던 레이나를 비롯한 상위종들이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진형을 바꾸었다.

마법사의 진형이 아니었다. 상위종들이 지팡이를 마치 창처럼 들고, 아귀가 먹이에게 입을 벌리듯 빨려들어 온 기사들을 향해 그 끝을 겨누었다.

"크헉.."

"아아악!"

가까스로 불길을 뚫고 온 기사들이 근접전에서 단숨에 제압당했다.

체술과 창술을 펼치는 상위종들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었으며, 그 합격술은 감히 근위대조차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라크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가장 믿었던 자신의 부관도 상위종의 창에 심장을 관통당해 쓰러지고 있었다.

"저놈이 우두머리...어서..."

"브렌!"

라크는 쓰러지는 부관을 붙잡고 분노를 터트렸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이 일의 원흉을 베어내는 것.

"으아아아!"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킨 라크가 자신에게 쇄도하는 창들을 쳐내고 레이나를 향해 돌진했다.

상위종들이 시전한 마법에서 빛나는 마력의 사슬들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휘감았으나 그는 힘으로 그것들을 뿌리치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보여? 그는 방금 자신의 한계를 넘었어. 저것이 바로 내가 갖고 싶은 인간의 가능성이야.'

이브는 그 모습을 보며 그를 인정했다.

'그러니 네가 증명해봐. 내가 그것을 이미 가졌다는걸.'

"네."

이브의 말에, 나지막히 중얼거린 레이나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악귀야차처럼 얼굴을 구긴 라크의 검이 그녀의 베리어를 강하게 내리쳤다. 방어막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그의 복부를 지팡이로 쳐서 날려버린 레이나가 지팡이로 땅을 찍어, 대지의 마법을 시전했다.

"절대로..!"

치솟아서 자신의 온 몸을 파묻은 바위를 힘으로 부순 그가 피칠갑을 한채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덤벼들었다.

이번엔 레이나의 베리어가 깨졌다. 검이 그녀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검이 틀어박히기 직전, 라크는 소름이 돋으며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걸친 코트에서 큼직한 눈알 하나가 꿈벅이더니, 검이 내리쳐진 부분에 어느새 중첩되어 나타난 작은 베리어들이 겹쳐 검을 막아내었다.

"커헉."

그 사이 레이나가 그의 목을 손으로 붙잡았다.

가면 속 빛나는 붉은 눈과 이글거리는 그의 눈이 마주쳤다.

언어를 포함한 소통이 곧 오염의 수단이라 생각하던 이브는 자신의 서브마인드들을 지키기 위해 강도연을 포함한 군단장들에게 자신을 제외한 존재들과의 언어 소통은 금지시켰다.

그렇기에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레이나는 목을 조르는 손과 노려보는 눈으로 자신의 증오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너는...누구냐.."

그의 투지와 그녀의 증오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지만 그가 레이나의 원한을 이길수는 없었다. 그가 가진 근위대장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정의는, 결국 대륙전체가 아닌 이 도시의 기득권과 권력자들에게만 향했으며 한때 간절한 도움을 갈구하던 그녀를 돕지 못했었으니까.

"끄흑..."

뼈가 시린 한기가 그의 몸을 덮쳤다. 그가 패배함에 따라 감염균이 끝내 그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소매 부분을 칼날로 변형시켜, 비틀거리던 그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

'효과가 있는걸까? 신기하네.'

이 모든 광경을 이브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레이나의 인간다운 행동은 이브의 입장에서 비효율의 극치였다. 본대와 함께 포격지원만 해줘도 무난하게 쓸어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자율권을 부여받은 레이나는 망설임 없이 소수 기동대만 데리고 메나스로 떠났다.

그 목적은 오직 복수, 그리고 학살.

그리고 실제로 레이나는 그곳에서 자신의 증오를 마음껏 쏟아내었다.

강도연의 침입때와는 결이 달랐다.

레이나는 진심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 들었으며, 그 짙은 증오와 살의의 감정은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인간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학, 학회장님..!"

"어서 방어진을 펼쳐라.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의는 인간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단순한 괴물이자 짐승이라고 생각하던 존재가 자신들에게 짙은 살의와 원한을 품고 있다는걸 안 순간.

좌중에 미지의 공포심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이브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레이나에게 지휘권을 맡긴 상위종들 역시 그 감정에 영향을 받고 있어. 실험은 성공적인것 같은데."

[예상 이상의, 충분한 혼란과 타격을 줬다. 하지만 저곳이 적진 한복판인 것은 마찬가지다. 후퇴시키지 않을건가?]

"예상치 못한 기회를 잡았는데 더 이용해야지."

이브는 서브마인드-레이나가 자신이 생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걸 흥미로워 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계산을 시작했다.

현 상황을 이용할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드디어 나타났나?"

레이나의 눈으로 현장을 보고 있던 이브가 피식 웃었다.

대치하고 있는 마법사들 사이로 누군가 나타났다.

은발의 머리, 번득이는 금색 눈. 그리고 어딘가로 이어져 있는 영혼의 끈 스트링.

유닛으로 추정되는 두 존재가 제대로 대면하는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나가 아니다]

"더 있겠지."

게다가 유닛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다르크의 곁에도 스트링을 가진 이들이 몇 붙어 있었다.

"한번 계속 날뛰어 봐. 놈들이 가진 모든 것을 뽑아내."

이브는 레이나에게 후퇴 대신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목적은 탐색. 이 기회에 적들이 가진 전력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레이나는 명령에 따라 그들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때, 다르크가 혀를 차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레이나와의 연결이 끊기며 그 몸이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척살권?"

피식 웃은 이브가 자신의 힘을 움직여 이미 자신의 혼과 하나였던, 육신에서 이탈한 레이나의 혼을 붙잡았다.

그리고 양분을 보충하며 대기하던 모든 군단병들에게 돌격명령을 내렸다.

척살권을 썼다는건, 더 이상 그들에게 남은 여력이 없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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