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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89화 (89/254)

89화-혼돈과 영웅(7)

"그 어느때보다 강한 마수 군단이, 분명 내 손에 있다..."

마수의 군주 가르틴. 한때는 마왕의 군단장들 보다도 위에 서서, 마계를 호령했던 강자.

적어도 봉인이 풀린 이상 지구의 풋내기 헌터들 몇 정도는 능히 상대할 정도는 되었다.

실제로 척살권을 맞고도 극복한 그는 자신에게 덤벼들던 지창현과 크리스, 차지연 셋을 모두 격퇴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능력은 본신의 무력이 아닌 바로 마수의 군단.

그가 이끄는 마계생물들로 이루어진 마수군단은 두려움을 모르는 돌격대였으며 지나친 모든 것을 짓밟는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그런데...대체, 대체 저놈들은 뭐냐!"

해골 속 푸른 안광을 번득이던 가르틴이 분노에 차 부리를 딱딱거렸다.

분명 압도적인 힘으로 건방진 인간들의 본대를 짓밟아 버렸던 마수군단이, 지금 그렇게 자랑하던 힘과 기세에서 대놓고 밀리고 있었다.

"끄어어억!"

마수군단의 훌륭한 주력중 하나라 할만한, 몸에 단단한 비늘을 두른 고릴라인 늪지네손고릴라.

네개의 팔을 가지고 뛰어난 육박전을 벌이는 이 5m크기의 고릴라들이 거대한 검치를 가진 네발짐승과 날카로운 독니를 가진 거대 거미등에게 비명을 지르며 속수무책으로 뜯기는 중이었다.

가르틴은 그 검은 괴물들을 보고 같은 마수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온갖 생물들의 특징과 강점만을 절묘하게 긁어모은 그 모습은 자연적인 생명체라기 보다는 한때 마계에서 유행하던 흑마술인 키메라에 가까웠다.

그러나 군단이 가진 유전자조작술, 그간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는 그까짓 합성괴물과 비교할 수 없었다.

"대체..."

그리고 마수군단이 자랑하는 돌격병인 마계사막가재.

말그대로 사막에서 살아가던, 집게발 4개 짜리의 거대한 가재로 그 크기는 대형 버스에 맞먹는다. 마수군단에서는 대형에 속하는 크기였다.

끄직-

그러나 인간들의 전차도 그냥 밀어버리던 그 단단한 갑각의 가재들이 단숨에 짓밟혀 터져버렸다.

초대형종이 우직하게 돌격하며 창과 같은 돌기들이 돋은 그 커다란 망치 머리를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마수들이 터지고 꿰여 죽었다.

"이놈들은..."

움찔거리던 가르틴의 눈에 비슷하게 생긴 검은 갑각의 괴물에게 산채로 머리가 뜯겨 죽어나가는 마계땅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에선 거미의 입을 가진 비행종이 타오르는 불을 뿜어 괴조들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마수의 군주이자, 마수들을 부리는 존재로서 이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지옥도. 이건 마족이 보기에도 지옥도였다.

'살아있는 생물이 맞긴 한것이냐!?'

순간 정신을 놓을뻔한 그는 자신에게 발톱을 드러내고 달려들던 비행종 하나를 창으로 꿰여 죽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비명 같은 소리도 없다. 그저 달려들어서 싸우고 죽을 뿐이다.

물론 명령을 듣고 싸우는건 그의 마수군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수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체, 그리고 감정도 가지고 있다.

"내 지배력이!!"

당황한 가르틴이 고함을 터트렸다. 마수군단 전반에 대한 그의 지배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마수들이 그의 명령보다 생존을 우선 하게 되었다는 것.

즉 상대에게 두려움을 품고 공포를 느끼게 되었단 뜻이었다.

"그렇게 두겠느냐!"

마력을 터트린 가르틴이 허공을 가로질러, 마수들의 진형을 부수고 있는 초대형종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마력이 타오르는 창을 겨누어, 그 단단한 외갑을 꿰뚫어버렸다. 창을 통해 쏘아낸 일격이 초대형종의 머리를 관통해, 그 밑에 있던 땅까지 뚫어버릴 위력이었다.

"어, 어째서..."

그러나 초대형종은 즉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생물종은 뇌가 자리한 머리가 약점이겠지만, 애초에 군단병들에게 발달한 뇌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초대형종을 호위하던 상위종 셋이 창을 들고 당황한 가르틴을 향해 덤벼들었다.

"감히 이 모기 같은 것들이..!"

격노한 그는 창을 뽑아 풍차처럼 휘둘렀다.

상위종들이 기민한 움직임의 합격술을 보이며 그의 움직임을 틀어막았다.

둘이서 그의 창을 받아치면 하나는 반드시 그의 헛점에 창을 찔렀다.

비록 그의 마력은 상위종의 동력기관을 훨씬 상회했지만, 상위종들은 마치 하나 같은 움직임과 진법으로 그를 상대했다.

"오래된 땅의 벌레여! 다시 한번 나를 도와라!"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시간이 끌리며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군단이 전멸할 것을 직감한 가르틴이 승부수를 띄웠다.

강진이 발생한 것처럼 요동치는 전장. 미리 진동을 감지하고 있던 군단병들은 빠르게 몸을 피했으나, 결국 가르틴이 있던 초대형종은 끝내 땅을 뚫고나온 거대 생물에 의해 몸이 뒤집혀 짓눌렸다.

"전부 쓸어버려라!"

땅을 뚫고나온 데스웜은 연합군을 습격했던 기존의 데스웜보다 거대했다.

가르틴은 히죽이며 데스웜의 앞에 날아올랐다. 이 거체가 그저 한번 움직이는 것 만으로 적들이 죽어나갈테니까.

"네놈들 같이 미개한 놈들은 이녀석의 외갑도 뚫지 못할..."

그러나 그순간, 그의 몸을 가리고 있던 거대한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것도 아주 감쪽같이.

그는 멍청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방금전까지 있었던, 땅을 뚫고 나온 데스웜이 구멍만 남긴채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이, 이제 놔줘도 돼. 근데 정말 처리 가능한거 맞아? 저렇게 큰데."

"거긴 우리 본진이야 오빠. 그런 애벌레 하나는 문제 없어. 저놈은 문제겠지만."

강도연이 품에 안은 신우를 데리고 땅에 내려앉았다. 신우의 손에는 방금 전 데스웜을 촬영한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이...이놈...인간! 인간 네놈이!!!!"

적어도 신우가 무슨 수작을 부렸다는건 눈치챌 수 있었으니 그 어느때보다 격노한 가르틴의 푸른 안광이 불타올랐다.

"이제 뒤로 멀리 가 있어. 애들이 지켜줄거야."

"...알았어."

강도연은 상위종들에게 신우를 넘겨주고, 자신이 가르틴의 앞에 섰다.

그때 찰나의 순간 소리를 찢으며 날아든 가르틴의 창이 그녀의 심장을 향해 꽂혔다.

"...!"

그러나 강도연은 가까스로 몸을 틀어 그 일격을 피하고, 검붉게 타오르는 날개를 휘둘러 마력을 둘러친 그의 몸을 베었다.

"인간의 얼굴에, 괴물의 몸을 한 암컷이로구나!"

가르틴이 다시 한번 마력이 덮인 창을 찔러들었다.

그녀는 몸을 틀며 날개를 뻗었고, 서로의 날개와 창이 스쳐지가가며 땅에 폭발과 함께 깊고 긴 흔적을 남겼다.

"그 인간놈들과 똑같군. 쓸데없이 화려하고,미숙하고, 어리다."

합을 주고받았지만 한발 더 빠른건 가르틴이었다. 짓씹듯 말한 가르틴이 회수한 창대로 그녀의 배를 후려쳤다. 베리어는 단숨에 부숴졌다.

배에 두른 갑주가 박살나며 튕겨날아간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체액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일어설 수 있지?!"

그러나 강도연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한방 먹은건 똑같지만, 그녀는 차지연이나 지창현과는 달리 내장이 파열되고 팔다리가 부러져도 단숨에 재생하고 일어설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니까.

그저 싸우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싸울 수 있는게 군단이 그녀에게 준 축복이었다.

"감히...감히, 감히, 감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가르틴이 고함을 질렀으나, 어느새 주위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그게 네 전부인가 해골?"

"...네년은 또 뭐냐."

본능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임을 알아챈 그가 부리를 갈며 몸을 돌렸다.

가면 속 안광을 빛내는 이브가, 손에 들고 있던 늑대 마수의 머리를 툭 떨어트렸다.

"이제 너 혼자 남았다. 표본으로 보내지는 놈들을 제외하고, 남은 놈들도 최대한 분석하기 위해 애썼지. 설령 아무것도 못가지고 돌아간다한들 지식은 남아있으니까."

이브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가르틴은 그 광경에 부리를 다물었다.

마수군단은 전멸했다. 이제 이 주위엔 군단병들 뿐이었다. 게다가 땅을 뚫고 자란 특수종인 신목과 끈적이는 곧 점액이 육벽이 되어 일대를 덮어 마수들의 시체를 분해하고 있었다.

이미 이 일대는 군단의 일부가 된 셈이다.

"검을 들어 군단장. 놈의 실력이 상당하니 우리 둘이 함께 상대한다."

자신의 몸을 움직인 이브는 검을 뽑아들었다. 강도연에게는 곁에 있던 상위종이 들고 있던 검을 쥐어주었다.

"네년들을 전부 때려죽이고, 그 머리를 증거로 가져가 선왕께 보고드려야겠군.

코웃음을 친 가르틴이 그 모습을 보고 창을 들어올렸다.

"...!"

그러나 이브와 강도연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검을 휘둘렀을 때. 눈을 휘둥그레 뜬 가르틴이 반으로 잘린 날개뼈를 회수하며 비틀거렸다.

'한번 더.'

서로 말을 나눌 필요도 없다. 눈짓을 주고 받을 필요도 없다. 파트너를 믿고 등쪽은 경계하지도 않았다.

오직 앞만보며 공격. 이브에게 찌른 창은 강도연이 쳐내고 강도연에게 날린 발차기는 이브가 막았다.

검과 창, 뼈와 살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과 충격파.

조금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합격에 전력을 다하는 가르틴의 공격은 오히려 모조리 막히고 몸에 두른 마력이 점차 깨져갔다.

분노한 그가 전력으로 휘두른 창을 이브가 강도연의 등을 밟고 튀어오르며 피했다.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돈, 거꾸로 뒤집힌 이브의 눈이 기겁한 가르틴의 눈과 코앞에서 마주쳤다.

"크헉..."

마침내 검붉게 타오르는 이브의 참격이 가르틴의 어깨를 크게 베었다.

그는 순간 이브에게 집중하느라 바닥을 구른 강도연이 자신의 발목을 베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발목이 잘려나간 가르틴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그대로 착지한 이브가 창을 잡은 팔을 베어버리고, 바닥을 굴렀던 강도연이 한쪽 무릎을 꿇은채 검으로 나머지 다리 하나를 절단냈다.

지금 두 존재가 함께 펼친 합격술은 이브가 그동안 습득한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고안한 새로운 기술.

철저하게 인간의 몸에, 공명법에 맞춰져 있는 이 기술은 이브가 오직 신우에게 알려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와 함께하기 위해.'

그리고 이 기술의 완성을 굳이 합격술로 만든 그 목적은, 언젠가 함께 싸우기 위해서였다.

모든 저항 수단을 잃고 무너져내린 가르틴이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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