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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88화 (88/254)

88화-혼돈과 영웅(6)

[그가 단신으로 적들의 앞에 섰다. 족히 수천은 되는 마수 군단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오히려 차분하고 평온하다]

"나도 알아. 느낄 수 있어. 지금, 동요가 없어. 확신을 가지고 있어."

[너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를 믿고 있다. 네가 자신을 위해 와주기를, 승리하기를]

"맞아. 그는 나를 믿고 있어."

이브는 강도연의 습관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느때보다 서로의 스트링이 강해졌다.

그덕에 이브는 그의 감정을 전부 알 수 있었다. 이건 지금 황무지에서, 홀로 몰려오는 적들을 마주한 신우도 마찬가지였다.

두 존재의 신뢰는 굳건하다. 오직 둘만 연결된 혼의 연결은 그만큼 강력했다.

"그에게 가서, 그의 적을 죽인다."

옥좌에서 벌떡 일어난 이브의 가면 속 안광이 번쩍였다. 군단 전체가 단 하나의 개체도 빼놓지 않고 요동쳤다.

결단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 이 출격은 자신 스스로가 정의한 존재의 이유, 성장의 이유, 생존의 이유를 위해서였으니까.

[하나이자 다수의 존재인 너에게 유닛소환권의 적용은 특수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그것은 네가 선택할 수 있다]

"압도적인 군세를, 저 거짓되고 미약한 짐승들에게, 진정한 군단이 무엇인지를."

[하지만 지금 동원 가능한 병력이 그리 많지 않다]

"비축한 에너지로, 과성장과 분열을 통해 군단병들을 양산한다."

[그렇게 하면 에너지의 비효율적인 손실이 과하다]

"상관 없어."

이브는 이미 계산과 예측을 모두 끝냈다. 애초에 플레이어인 신우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

"그를 위해서라면, 행성 하나쯤은."

그러니 신우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설령 행성 하나를 전부 파먹더라도 거기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 모두 그를 위해 투자할 수도 있었다.

곧 둥지 전체가 진동했다. 군단의 종족특성인 과속성장과 빠른 분열은 에너지를 미친듯이 빨아먹으며 단숨에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내었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면 절대 안할 짓이었다.

이브는 그 와중에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전리품 중 하나인 평범하디 평범한 철검이었다.

자신의 무기를 검으로 정한 것도 별게 아니었다. 그가 검을 배우니, 자신도 검을 택한 것 뿐이었다.

[준비해라]

곧 거대한 에너지가 움직였다. 이브는 눈을 반짝였다.

시스템을 움직이는 이 정체불명의 힘, 그것에도 탐을 냈다.

"하지만 이 힘은 분석도 접근도 불가능하네. 아직은. 일종의 권능에 더 가까워."

[...]

이브는 점차 빛에 휘감기는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이내 이브의 육신을 비롯한 군단의 일부가 세상에서 증발하듯 사라졌다.

*

"많기도 하네."

협곡의 입구. 나는 이곳을 향해 몰려오는 마수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람들은 결국 다 차를 타고 떠났다. 밍기적거리다 군단을 보게 되면 큰일이었는데 차라리 잘 된거다.

[군단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진짜 확실한거지? 하나만 튀어나오고 뭐 그런건 아니지?"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을 받았다. 내가 지금 미쳐서 혼자 여기 서 있는게 아니었다.

내가 믿는건 지난번, 처음으로 상대 유닛을 절멸시키고 보상으로 받은 유닛 소환권.

설명을 읽어보면 사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그리 메리트 있는 보상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개체 하나를 소환할 뿐이고 심지어 시간이 다되면 돌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내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군단은, 이브는 하나이자 다수. 즉 소환권으로 소환되는건 군단 전체다.

[하지만 전체를 옮겨오는건 불가능하니, 그 일부만 소환된다. 하지만 그 일부도 분명 충분할 것이다]

"좋아."

딱히 동요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군단이 이곳으로 소환되는것만 확실하다면, 나는 걱정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테니까. 확신한다. 우리가 이긴다.

같은 군단과 군단의 싸움? 이브는 저런 놈들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

괜히 여유가 생기며 놈들이 오는걸 마음 놓고 관측할 정도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지연이나 지창현은 어떻게 된거지?'

다른 사람들을 신경쓸 여유도 생겼다.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는 저 괴수군단은 놈들의 주력이라 할만하다.

본대를 궤멸시키고 도주하는 패잔병을 쫒기 위해 흩어진 놈들 중 가장 큰 덩어리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이들이 부디 살아남아 무사히 도망쳤기를 바랄 뿐이었다.

"평범한 괴물놈들이 조금 많이 덮쳐들었다고 본대가 부숴졌을리가 없어. 분명 뭐가 있다는거야."

나는 특별한 놈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저 괴물무리를 지휘하는 지휘개체가 분명 있으리라 짐작했다.

마물들이 유닛이 되어 단순한 짐승에서 탈피한 이후 전장의 양상은 최근들어 급격히 변했으니까.

이제 단순히 병력의 화력만 강하다고 이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저놈인가?"

실제로 그런 놈이 보이는 것 같았다. 차지연등 연합군의 강자들을 패배시킨 강자.

나는 품에서 감지석을 꺼냈다. 아직은 범위가 너무 멀어서 놈들이 유닛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땅을 진동시키며 몰려 온 괴수군단이 내 앞에 멈춰섰다.

내 예상대로 이 괴물들을 이끌던 우두머리가 있었다. 새하얀 백골인 상태로 창을 들고 있는 이 괴기한 생명체는 마치 새와 사람을 섞어 놓은 것 같이 생겼다.

"@#%!!"

"뭐라는거야 대체."

놈이 날 삿대질 하며 계속해서 부리를 딱딱거렸다.

눈치를 보니 나 혼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대놓고 나와 있는 나를 보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괴조들의 정찰등으로 내가 정말 혼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해골바가지의 얼굴에서도 어째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굉장히 기분이 나빠보였다.

'온다.'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곧바로 소환권을 사용했다.

감지석은 잠잠하다. 놈들이 유닛이 아니라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마지막 찜찜함마저 털어버렸다.

"어.."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놈이 초월적인 힘으로 던진 창을 놓쳐버렸다.

아차하는 순간 날아든 창, 내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창은 이미 내 가슴을 꿰뚫기 직전이었다.

"이브."

그때 나는 소리내어 그 이름을 불렀다. 내가 지어준 그 이름을.

어느새 나타나 내 앞에 흩날리는 짙고 긴 흑발. 비록 뒷모습이지만, 사실 나는 이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

대답은 없었다. 내게 던져진 창날을 손으로 잡아챈 이브가 그대로 창을 떨어트렸다.

[군단이 도착했다. 이제, 전쟁이다]

땅이 진동했다. 대기가 울렸다. 굳이 보지 않아도, 내 뒤에서 무엇이 몰려오는지 알 수 있었다.

"이브. 잠까..."

[지금 네가 할 일은 없다. 널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니 그냥 지켜봐라]

이브가 단숨에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나는 심하게 진동하는 땅에 그 뒤를 쫓을 수 없었다.

"큭..."

내 옆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지나쳤다. 화면으로나 보던 초대형종.

초대형종 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군단병들이 땅을, 하늘을, 땅 속을 헤치며 날 지나쳐 저 앞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해골바가지의 얼굴이 보였다. 당황한게 보일 정도였다.

[확실히 이 마계의 생물들은 강하지만, 그래봤자 일개 생물체에 불과하지. 애초에 그런 놈들을 분석하고 결합해 탄생한 군단병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그 검은 물결의 한복판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힘싸움에서 압도한 군단병들이 적들을 그대로 밀어내고 있었다.

지구의 연합군을 궤멸시킨 마수 군단은 확실히 강하다. 하지만 결국은 평범한 생물들이었다.

번식을 해야만 하고, 음식을 먹어야만 하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러니 지금은 우리가 더 강했다. 군단병들에게 그딴것들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소화기관도, 생식기관도 없이 오직 근육만으로 채워넣었다.

생존 역시 군단병들에겐 중요한게 아니었다. 오직 승리와 전투만을 위해 움직인다.

내 눈에 나름 덩치 있던 마수들이 초대형종과 부딪혀 날아가고 터져나가는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전차를 짓밟고 부수던 마계땅강아지들은 자기들을 베이스로 만든 채굴형 군단병들에게 머리가 뜯겨나가고 있었다.

"윽.."

그때 전장에서 튄 큼직한 파편이 내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 파편들은 내게 닿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해야겠지? 이브."

어느새 내 곁에 자리한 두 상위종들이 베리어를 활성화해 파편들을 막아주었다.

내 시선이 그대로 위로 향했다.

하늘에서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군단의 비행종들이 발톱과 독침등을 이용해 괴조들을 비롯한 비행형 마수들을 갈가리 찢어놓는게 보였다.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검은 날개 한쌍.

내 얼굴이 자연히 어두워졌다.

자신을 애워싼 적들을 단숨에 토막내고 베어버린 그 날개는 허공을 가르더니 빠른 속도로 내 앞에 착지했다.

"너, 괜찮은거 맞지?"

"오빠가 걱정할 거 없어. 난 지금 너무 멀쩡해. 그 어느때보다도."

몸을 돌리고 가면을 벗은 내 여동생 강도연이, 변함 없는 얼굴의 붉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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