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침략과 침식(10)
"하아...하악..."
가쁜 숨이 차오르고, 품위도 잊고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헉헉거렸다. 신체 강화마법을 썼는데도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밤을 새워 걸었더니 하늘에 떠 있던 이정표가 점차 가까워진다.
이건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군대가 소집되었어.'
언덕에 오른 그녀는 저 멀리 점만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기적처럼 군단병들을 만나지 않았다. 애초에 이브가 지금 인근의 모든 군단병을 동원해 다른 쪽에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누구와 전쟁을?'
그덕에 아직 진위를 모르던 그녀는 혼란스런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집된 인간들의 군대는 전투를 준비함과 동시에 마치 목적지가 정해졌다는 듯 계속 앞으로 향했다.
"...이건!"
그때 무언가 감지한 그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면에 그림자를 그리며 새까맣게 몰려오는 덩어리를 본 그녀가 경악했다.
"아아악!"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종들의 습격에 그녀는 머리를 감싸고 땅에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비행하는 괴물들은 지금 그녀 같은 일개 인간 한마리에겐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이럴수가."
상상도 못했던 괴물들이 떼거지로 군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순간 레이나의 얼굴이 굳었다. 저 괴물들의 출처를 본인은 분명 알고 있기 때문에.
"로제스..!"
이를 악문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어서 빨리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저, 저것 좀 보십시오!"
레이나가 서둘러 이곳을 향해 오고 있을 때.
당연히 본대에게도 비행종들의 습격이 관측되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날짐승들이 정확히 이곳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소란떨지 말게! 하늘을 나는 놈들이 있다는 것도 이미 보고되지 않았나!"
나름 노련한 지휘관이던 총사령관이 당황한 사람들을 다그쳤다.
"마도공성포격기를!"
그의 지휘에 맞춰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흙으로 만든 골렘의 등에 짊어진 거대한 발리스타.
골렘들이 땅에 팔을 대고 자세를 잡자, 이 특수하게 만든 발리스타의 앞부분에 복잡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준비 끝났습니다!"
"발사!"
장전된 창에 가까운 거대한 화살들이 그대로 발사되었다.
마법진을 통과한 창이 순간 마력 추진까지 받아 급가속하더니 이내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좋았어!"
그 일격은 하늘을 날아오던 적들을 꼬치로 만들다 못해 아예 충격파를 터트리며 산산히 부숴버릴 정도였다.
그 일격으로 오백은 넘을 것 같던 비행종들이 단숨에 절반 가까이 줄어버렸다.
"다시 발사!"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재장전한 화살들이 다시 한번 발사되었다.
그 순간, 비행종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듯 허공에서 기민하게 흩어지며 화살 대부분을 공중으로 흘려보냈다.
"저게 무슨...누가 조종이라도 하는것처럼..."
포격기의 발사와 계산을 담당하던 담당관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들이 보기에도 방금 전 비행종들이 보여준 움직임은 빠르고 정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래봤자 짐승인 것을! 화망을 펼쳐, 놈들이 덮치지 못하게 만들어라!"
총사령관의 명령에 맞춰 마법사들이 나섰다.
그들은 일정한 좌표를 자신의 몸으로 그리며 서 있었다. 동시에, 마력을 움직여 동일한 주문을 영창했다.
진법의 스타스 학회와 화염의 블레이클 학회가 연합하여 시전하는 대형 마법.
연달아 생성되는 수십발의 화염탄이 그 위력을 증폭시키며 하늘을 향해 연사되었다.
"보이나. 저것이 괴물들의 최후다."
총사령관이 씩 웃었다.
물리적으로 피할 틈도 없이 퍼부어지는 화염탄 난사. 비행종들이 하나 둘 격추당하며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진격!"
그렇게 첫 충돌에서 압승을 거둔 본대는 계속해서 앞으로 행군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
마법사들이 다시 한번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도곡사포!"
"준비! 쏴!"
수십km 너머에서 멈춰 선 마법사들이 둥지를 향해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사3인이 1조가 되어 시전하는 다중결합마법.
아직 군단에겐 정보가 없던 이 전쟁용 마법의 효과는, 에너지를 한계까지 눌러 담은 포탄을 곡사로 착탄지점까지 쏘아내는 것이었다.
자주포보다 사거리가 길고, 민첩하며 연사속도가 빠르다.
그만큼 시전하는 3인 모두 평범한 포병은 상상도 못할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지만 현재 여기 있는 이들은 숙련도가 충분했다.
"별것 아니지 않는가."
총사령관은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포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포탄은 곧 목표로한 둥지에 정확히...착탄하지 못했다.
검은 신목의 주변에 발현된 검붉은 방어막이 정확히 착탄지점에 나타나 포격을 막아내었다.
"총사령관! 놈들이..!"
"제길, 대체 무슨."
일개 골렘에게도 쓸려나간 고대의 괴물이 마법을 막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형상력을 사용하는 군단의 상위종은 지금껏 그 목격자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였기에 정보가 없었다.
"계속 사격!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살짝 당황한 총사령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속 사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애초 현재 군단이 보유한 에너지 총량을 모르기에 내린 선택이었고, 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마법사들이 마력 부족으로 탈진해 교체되어야 했다.
"계속 진격한다."
결국 본대는 진형을 풀고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 포격이 안된다면 근접해서 전부 불태워버리면 되니까.
물론 이건 군단의 하이브마인드인 이브가 원하고, 유도한 바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병력이 없다. 그나마 외부로 돌린 병력들에게도 오히려 내륙으로 진격할 것을 명했으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
"역시 신기한 마법들이 참 많아. 그 활용성과 가능성도 저들은 무궁무진하게 가지고 있지."
옥좌에 앉아 있던 이브가 피식 웃었다.
이제 적들의 본대는 거점둥지들을 불태우고 이곳, 침식둥지 거의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말로만 들은 것들이 많아. 다양한 것들을 더 보고 싶은데 역시 우리가 만만하게 보여서 안보여주는거겠지. 그게 아니면, 그냥 저들이 약해서."
이브는 본인이 크게 한방 먹었음을 인정했다. 이곳의 인간들이 발달시킨 마법이란 학문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했으며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더, 더 궁금해져. 더 갖고 싶어."
옥좌에서 벌떡 일어난 이브가 대기시켜둔 최후의 군단병들을 동원했다.
지금 둥지로 쳐들어 오는 이들은 정규군도 아니다. 이틀만에 소집된 일종의 향토방위대 개념을 가진 예비대에 불과했다. 즉 인간들의 전력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이다. 이브는 자신이 더더욱 진화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새겼다.
세상을 모조리 먹어 치우려는 괴물에게, 고작 한끼 식사도 되지 않을 저들에게 고전한다는건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스승님들에게, 우리의 성과를 보여줘볼까."
순간 일대가 진동했다.
이브가 에너지 대부분을 무차별적인 확장에 투입하면서도 남겨둔 약간의 여력은 있었다.
그 여력으로는 새로운 병종을 만들어냈다.
대형종을 넘어선 초대형종. 단순한 질량만으로 상대의 마법공격을 견딜 수 있는 무식한 힘과 방어력을 갖춘 개체.
아직은 실험단계이지만,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미궁에서 만난, 파멸균에 의해 멸종했던 가장 거대한 짐승인 동굴소에 동굴전갈의 갑주, 군단의 압축근육까지 때려박고 덩치를 키웠다. 오직 돌진하여 상대를 짓밟고 뚫어버리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새로운 병사]
땅을 진동시키며, 휴면을 취하던 병사들이 숲의 아름드리 나무를 으스러뜨리고 전방을 향해 질주했다.
그 덩치는 이미 정상적인 생물의 크기를 벗어나, 커다란 집과 맞먹었다. 어깨높이 10m에 무게만 수천톤인 거체가 한계를 벗어난 속도로, 마치 귀상어와 같은 넓적하고 날카로운 돌기가 창날처럼 달린 단단한 머리를 휘둘렀다.
그런 괴물들이 총 십여마리.
그 곁에는 진형이 부숴진 적들을 학살하기 위해 달리는 4발짐승 베이스의 중형 군단병들이 수백마리씩 떼지어 달렸다.
[놈들이 저항한다. 마법과, 강력한 창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가렵지도 않은 공격이지만 누적되면 외갑이 상하고, 속살이 노출되면 일격에 사망할 수도 있다]
"선물을 주자."
이브가 그 모든 공격을, 이 귀한 초대형종들에게 그대로 퍼붓게 하지는 않았다.
초대형종들 위에있던 상위종의 군단병 하나가 등갑을 열고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쐐기꼴의 진형 한가운데 날아선 상위종이 동력기관을 이용해 하나의 회로를 그렸다.
그 주축은 지금 달리고 있는 초대형종의 심장역할을 하는 동력기관이었다.
"비록 이정도 사이즈의 동력기관으로는 형상력은 커녕 그 거체를 유지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병종을 조합하여 사용하면 그 시너지를 효율적으로 낼 수 있지."
히죽 웃은 이브의 눈에, 경악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지난날 잡아먹은 스타스 학회의 젊은 마법사. 꿋꿋이 버티던 그도 뇌가 녹아버릴 정도의 고문을 받으며 끝내 학회의 비전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지금 그 성과가 나타났다. 기사와 마법사가 보여준 진법을 상위종과 초대형종 군단병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