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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73화 (73/254)

73화-침략과 침식(2)

"적이다아아!!"

그는 본능적으로 온힘을 다해 외쳤다.

그와 동시에, 어둠뿐이던 숲에 수많은 붉은 안광들이 번쩍였다.

"으아아악!"

"괴물! 괴물이다!"

숲에서 일제히 쏟아져 덮쳐오는 것들은 예상과는 달리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괴하고 끔찍한 괴물들의 습격.

방패를 든 병사들이 허겁지겁 방패를 올리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으나, 제대로 준비도 못한 일반인들의 힘으로는 그 돌진을 저지하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마치 전력으로 돌진해온 중장기병대에게 짓밟히는 보병들처럼 서둘러 방진을 만든 병사들은 중형 군단병 선에서 그대로 짓밟혀버렸다.

강철로 만든 갑옷이 발톱에 종잇장마냥 찢겨나가고, 강철로 만든 검은 놈들의 갑각을 뚫을 수 없었다.

'이런 미친.'

부소장은 놀라다 못해 기절할뻔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 본인이 무너지면 전멸이라는 본능적인 생각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전부 이곳으로!"

마력을 움직인 그는 단숨에 주문을 발현, 손으로 땅을 찍어 마법을 실행했다.

그가 손으로 찍은 곳부터 빛나는 술식이 빠르게 땅을 타고 흐르며 사람들을 휘감았다.

"이것은!"

"상급의 보호주문이다!"

병사들이 환호했다. 학회의 간부급이 사용하는 고급 마법은 그만큼 강력했으니까.

실제로 군단병들이 내리치는 발톱과 독침등이 모두 이 반투명한 황금빛 보호막에 일렁이는 파동을 만들어내며 막혔다.

"대체 이놈들은 뭐지...?"

"지금 그런것 신경쓸 때인가! 공격해!"

마법을 유지해야 하는 그는 다른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와 함께 온 학회의 마법사들, 수비대장을 비롯한 몇몇 정예병들이 각자의 마법과 마력을 두른 무기를 휘둘러 방어막 안에서 이 괴물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괴물들은 마치 지휘라도 받는 듯 균일하고 일정한 움직임으로 뒤로 물러서며 피해를 최소화했다.

"내버려 두고, 어서 지원요청부터 해!"

"들리나! 지금 당장 지원을! 습격당했다!"

그들은 그사이 통신구를 사용해 도시와 연결했다.

가까스로 버티는데는 성공했지만 포위당한 것도 여전하고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움직이는 신세였다.

"다들 침착하게. 다행히 저 괴물들은, 이 방어막을 뚫을 능력이 없어보이니까."

"부소장님. 분명 미궁에서 이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습니다."

"...맞네. 어쩌면 이놈들이 미궁에서 튀어나온 놈들일지도."

찰나의 대치 순간 그는 식은땀을 주륵 흘리며 놈들을 노려보았다.

단순한 괴물들이라기엔 놈들은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이상했다.

'살아있는 생물이 맞긴 한건가?'

이제는 한물간 골렘등 각종 마도병기를 접해본 그는 이 검은 괴물들의 모습에서 어딘가 익숙함을 발견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라기엔 너무나도 조용하고 이질적인 이 괴물들은 짐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명령대로 움직이는 마도병기에 더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

"어?"

"사람인가..? 여자애?"

그리고 그 순간. 그가 주시하고 있는 전방이 아닌 후방을 경계하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터져나왔다.

'여자애?'

당황한 그가 미처 뒤를 살필 시간도 없었다.

괴물들 사이를 가르고 나타난 작은 여체가, 검붉은 광석으로 된 검을 치켜들었다.

"말도 안 돼! 검..."

그 모습을 본 수비대장이 경악했으나 일말의 자비 없는 참격이 먼저 뿜어졌다.

힘을 머금은 검붉은 참격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방어막에 충돌했다.

"크허억..."

공을 들여 유지하고 있던 방어막이 단 일격에 부숴지며, 그 반동으로 부소장은 각혈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오, 온다!"

"막아라!"

쓰러진 그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방어막이 사라진 그들을 향해 괴물들이 다시 한번 돌진해왔다.

비명, 고함, 병장기가 부딪히는소리, 그리고 살이 꿰뚫리고 베이며 피를 뿌리는 소리.

전장이라는 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한가지 특이점은 그 모든 소리는 아군들의 소리만 있다는 것.

전장에서 들리는 아군만의 처절한 비명과 단말마, 그에 반해 겨누어진 창칼을 향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드는 괴물들의 모습은 투지와 사기를 대폭 깎아먹었다.

'어리석었다. 너무나.'

땅에서 벌레처럼 부들거리던 부소장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고작 자신 수준의 힘으로, 보호막 주문 하나로 틀어막을 수 있는 놈들이었다면 달빛요정들이 구원을 청하지도 않았을테니까.

"부소장님?! 부소장님!"

그는 땅을 기어, 바닥에 떨어진 수정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화면이 뒤집어진 수정구에서는 도시에 남겨둔 학회 직원이 당황해서는 땅을 향해 다급히 외치고 있었다.

"...네놈, 아니 네년은..."

그러나 그가 손을 뻗는 순간 수정구는 짓밟은 발에 의해 산산히 박살났다.

날카로운 발톱등이 돋아난 괴물의 발, 그위로 올라간 그의 시선에는 검은 갑주에 쌓인 가면의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검은 단발을 찰랑이고 있었다.

"오냐. 끝을 보자."

패배, 그리고 전멸을 직감한 그는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마력을 움직여 마법 하나를 준비했다. 체내의 마력을 모조리 동원하고 동시에 과부하시키는 자폭기에 가까운 기술.

'적어도 이놈들, 아니 저 괴물년이라도 잡아야한다.'

그는 이미 살기를 포기했다. 이제 주변에서 살아남아 저항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졌다.

자포자기하고 울며빌며 목숨을 구걸해봤자, 이 검은 괴수들은 가차없이 숨통을 끊어버렸다.

"내 실력이 비록 학회 한직의 중간 관리직이라지만, 이 일격은 막기 힘들 것이다."

그야말로 한 마법사가 자신의 마법 인생,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뿜어내는 공격기.

그의 마력에 주변 공기가 뒤틀렸다.

'여기서 최대한 줄인다. 그래야 도시가 버틴다. 고작해야 수백마리, 방비만 충분하면 막을 수 있다.'

눈코입으로 핏물을 흘리던 그가 완성한 마법을 전방을 향해 겨누었다.

마침 주문 역시 전투에 쓰일 화염 계통의 마법을 주로 연구하는, 화력만큼은 알아주는 블레이클 학회의 상급 마법 화염폭사.

그것도 과부하를 곁들여 위력을 배 이상 뻥튀기한 화력의 불기둥이 어둑한 숲을 대낯처럼 밝히며 터져나왔다.

'성공했나?'

자신의 몸마저 태워버리는 그 주문에, 그는 상대가 자신의 몸에 검붉은 방어막을 생성하는 모습을 보며 뒤로 튕겨날아갔다.

"대체...정체가 뭐냐..."

어느새 다시 적막을 되찾은 숲속. 들리는건 타닥거리며 나무와 풀이 타오르는 소리뿐.

한쪽 팔은 완전히 타버린채, 바닥에 대자로 뻗은 그는 고통을 삼키며 휘영청 뜬 달을 보곤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른 놈들은 많이 줄였으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가면 속 붉은 안광은 여전했다. 그슬린 흔적조차 없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른 괴물들은 그의 주문에 대부분 폭사했다.

정작 처참한 꼴이 되어 바닥에 뻗어있는 건 자신이지만, 그는 괜히 자기가 이긴 것 같아 씩 웃었다.

"도시를...습격할 생각이었느냐. 크, 고작 몇십마리 데리고는...불가능할 것이다. 어리석은...고대 미궁의 미물들아..."

그는 피식피식거리며 마지막 힘을 짜내 상대를 조롱했다. 알아듣냐 마냐는 중요한게 아니었다.

"이제..곧.. 몰려올 지원군이...너희를..."

"..."

상대는 검을 들어올렸다. 피식거린 그는 예상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할 일은 다 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로의 명예와 긍지를 지키며 자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려고했다.

"웃기는구나."

"...이럴 수가."

"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이 미물아."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잔혹히 짓밟혔다.

가면을 쓴 또 하나의 존재가 인간의 언어로 그를 비웃고는, 치렁치렁한 칠흑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어둠속에서 걸어나온 순간.

그리고 그 주변으로 수백, 수천, 수만의 괴물들이 튀어나와 대기와 땅을 진동시키며 하늘과 지상을 가로질러 도시로 직행하는 것을 본 순간.

그의 목에 검이 날아들어, 짙은 허무와 절망으로 물든 그를 단칼에 참수했다.

*

[파견한 군단병들이 도시로 향하고 있다. 습격, 전쟁, 포식이 너의 목적인가]

"아니."

군단은 달려나가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방금 전 전투, 단순한 사냥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토착종과의 전투였다. 태생이 침략자인 군단은 이미 이런 전쟁을 지겹게 겪어왔다.

그리고 그 전쟁을 통해 성장해왔다. 방금전 전투는 토착종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맛보기에 불과했다.

"사로잡을 만한 가치가 있는 포로는 스스로 자폭해버렸고...그래도 상관은 없지."

[수준있는 마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나]

"마법사는 많으니까. 시간도...많고."

군단이 딛고 서 있는 흙바닥을 비볐다.

애초에 이만큼 성장한 군단의 진짜 목표는 전쟁 따위가 아니었다.

'이 숲에 있는 모든 것을,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군단의 진짜 목표는 침략이 아닌 침식.

이빨과 발톱에 불과한 군단병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쏙 빠져 있을 때.

군단은 이 세상을 개미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그 양분으로 군단병들은 더 많이 생산되고, 놈들의 저항은 짓밟히겠지]

이미 첫단추는 끼워졌다. 군단이 디디고 있는 흙이 점차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미궁에서 시작한 침식이 어느새 그 주변을 먹어치워간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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