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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72화 (72/254)

72화-침략과 침식(1)

"하지만 레이나! 시간이 늦었다!"

"이야기, 이야기만 더 듣고 오겠습니다. 조사조차 않는게 말이 됩니까?!"

늦은 밤 고함 소리가 울려퍼졌다.

도시 리헬름, 대륙의 외곽지역에 자리한 이곳은 과거 고대의 미궁을 탐색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이들이 세운 나름 큰 도시였다.

비록 지금은 미궁 탐색도 중단에 대륙 패권의 판도가 대륙 중앙으로 이동해버린 탓에 관심도가 뚝 떨어져 과거의 영광을 잃고 한적한 변방의 도시가 되었다지만.

"이미 너 부학회장한테 찍혔다면서. 여기서 더 눈에 띄었다 제명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부학회장이 떠나기 전에 자세한 이야기만이라도 듣고 오겠습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 세상의 마법사로서, 현재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마법학회 중앙으로의 출세는 당연히 누구나 바라는 것.

하지만 누군가는 때로 다른 것을 더 중요히 여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부소장님. 일단은..."

"크, 큰일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채 사무실을 벗어나기도 전에, 부소장의 책상 위에 놓여 웅웅거리던 통신구에서 다급한 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연달아 닥치는 문제에, 부소장은 안그래도 없는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그래. 또 무슨 일인가 보브. 잡부들 임금 체납 같은 하찮은 문제로 이런 호들갑이면 가만 안두겠네."

"관리소 소속으로, 미궁감시대에 근무하는 마법사들이 대규모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뭐?"

다만 이번에 들려 온 소식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와 곁에서 듣고 있던 레이나의 눈이 마주쳤다.

"지금, 아마 소장님이랑 같이 저택에 계실거다. 내일 일찍 떠나실텐데."

"제, 제가 이야기를 듣고 오겠습니다. 부소장님은 시장님께 연락하고 어서 조사대를 보내세요."

"그, 그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소장이 태세를 바꾸었다.

그녀는 그렇게 부학회장의 위치를 알아내고 서둘러 겉옷을 챙겨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절대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는데...'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그녀는 점차 엄습하는 불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오랜기간 아무일도 없었던 미궁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세력을 복구하던 달빛요정들이 어린 아이까지 보내며 긴급한 구원메시지를 전했다.

그렇기에 너무나 태연히 대처하던 부학회장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생각은 레이나가, 지금 부회장이 그녀는 상상도 못할 다른 곳에 온 정신이 팔려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품을 수 있는 생각이었다.

"자, 잠깐! 이곳은 블레이클 학회의 연구소장 오르네 님의..."

"학회 연구마법사 레이나다! 어서 소장님을, 아니 부학회장님을 뵈야해!"

헐떡이며 달려온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은 경비병에게 소리쳤다.

그 기세에 움찔한 경비병은 얼결에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는 그대로 저택 안을 가로질렀다. 어차피 이미 일도 터진 것 같으니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그렇기에 당황한 소장이 직접 나타나 호통칠때도 오히려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하...혹시 통신구를 받지 못하셨습니까? 지금 일이 터졌습니다."

"일이 터져?"

그녀와 복도에서 대치하던 소장 오르네의 눈썹이 까딱거렸다.

거의 동시에, 노집사가 허겁지겁 무언갈 들고 달려오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멈춰서곤 눈치를 보았다. 그 손에는 누군가 소리치고 있는 통신구가 들려있었다.

"그래 부소장. 대체 무슨 일이지?"

혀를 찬 소장이 수정구를 받아들고 화면에 나타난 부소장에게 보고를 받았다.

레이나는 얌전히 듣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듣고만 있어도, 소장의 얼굴이 알아서 딱딱하게 굳어갔으니까.

"벼, 별일 아닐 수도 있잖나."

소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이제 중앙으로 올라가는구나 하며 희희낙락하던 상태에서 듣게된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소장님. 마법사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문제가 터졌다며 미궁에서 구출된 요정의 증언도 있고요!"

"그래서?"

"일단 그 요정 아이를 만나게 해주세요. 하다못해 어서 적절한 행동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이 일은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레이나가 아무것도 안하는 그를 향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나 소장의 상태는 점점 이상해졌다.

눈은 더 격하게 흔들리고, 식은땀이 더 심하게 줄줄 흘렀다. 평소 하급자에겐 권위적이면서도 고압적으로 굴던 태도와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그건...그것이..."

"진정하게. 둘 다."

그때 나타난게 부학회장이었다. 단정하게 정리한 수염과 날카로운 눈매로 평소에도 무게감을 갖고 있던 그는 사뭇 엄숙한 목소리로 현장을 휘어잡았다.

"문제가 심각함은 사실인듯 하군. 소장. 그녀와 함께 연구실로 가지."

"ㅇ ㅖ...? 예?! 하지만!"

"지금 내 말을 거역할 셈인가?"

부학회장은 눈을 번득이며 얼굴이 창백해진 소장을 다그쳤다.

레이나는 왜 소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의문을 가졌으나, 금세 신경을 껐다. 지금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니까.

"이쪽으로."

그는 소장과 레이나를 데리고 저택 지하에 있는 지하실험실로 향했다.

레이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개인 연구실이자 지하시설주제에 꽤 제대로 된 설비들이 가득했다.

"아..?"

"참 신기하더군. 그들이 어릴적부터 몸에 새기는 문양은 성장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마력의 영향을 받아, 특별한 하나의 기관으로 성장하지. 마력혈을 연구할 아주 좋은 소재였어."

그러나 레이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어..어떻게 이런..."

아니 말문이 막힌 수준이 아니라 충격으로 순간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시험관 안에서 몸과 따로놀며 둥둥 떠다니는 잘린 머리에 달린 소년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러게, 적당히 나서야지."

-비살상모드-

그녀가 그렇게 충격을 받은 사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 그가 단숨에 그것을 겨누고 그녀의 가슴팍에 발사했다.

주문을 발동해 대응할 틈도 없었다. 단숨에 발사된 바늘들이 옷을 뚫고 그녀의 몸에 파고들어, 강한 전기충격으로 그녀를 기절시켰다.

"대, 대단하십니다. 대체 그 귀물은..."

"혹시 모를 상황에서 내 몸을 지켜줄 물건이지. 그건 신경끄고, 오르네 자네는 뒷처리나 신경쓰게."

"주, 죽은 겁니까?"

"아니."

쓰러진 레이나를 발로 툭 건드린 그가 소장의 말에 씩 웃었다.

"이번에 이 토착요정족을 해부해서 얻은 데이터, 적용해볼 실험체도 찾아야지. 이왕이면 마력을 갖고 있는 존재로."

"설마..."

"잘 가둬놓았다가 써먹게. 일단은 대체 뭔지 모를 그 문제부터 처리하고 나서. 학회에도 못들어온 떨거지 놈들 한테 문제 좀 생겼다고 무슨 일이 있겠느냐만은."

그가 경악한 소장을 무시하곤 손에 든 총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그는 나름 치밀했다. 이 총은 그가 현재 자신의 일시적인 동맹에게서 얻어낸 물건.

혹시 모를,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이 세상의 유닛이나 플레이어들을 저격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멍청한 마법사 놈들이 제아무리 덤벼봐야 내 마법과 이 무기들이 합쳐지면 문제 없다. 남은 문제는 척살권인가?'

히죽 웃은 그는 외부에서 터진 문제를 해결하라고 소장을 닦달하여 쫒아냈다.

[방심하지는 마라. 이건 원론적인 이야기다 로제스. 절대, 방심하지마라]

"나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극도로 조심히 움직이는 것 아닌가! 그 어떤 검사도 마법사도 내 몸에 손댈 수 없을 것이다!"

혼자 남은 그는 머릿속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짜증을 부렸다.

*

"빠르게 수색해라!"

"탐색마법은 어찌 되었지?!"

"지금 준비가 다 끝나갑니다!"

이미 늦어버린 새벽에 꽤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숲에 진입했다.

굳이 농지로 개발하지 않고 남겨두고 있는 이 숲은 미궁의 존재로 출입금지 지역으로 지정된 곳 답게, 대규모의 인원이 이동하기에는 그리 적합한 지형이 아니었다.

"부소장님. 역시 너무 많은 인원을 데려온게 아닌지..."

"소장님 지시라 어쩔 수 없었네."

부소장은 함께 온 도시 수비대장의 말에 쓰게 웃었다.

보고할때만 해도 그리 큰 반응이 없던 소장이 갑자기 통신을 걸어, 어서 빨리 일을 처리하라고 닦달했기 때문이었다.

'레이나 그녀석이 또 무슨 짓을 한건가? 역시 기다렸어야 했나?'

싱숭생숭한 마음에 그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둑하고 스산한 숲. 그나마 거의 백여명에 달하는 인원들과 함께라는게 아니었다면 거북함이 느껴졌을 공간이었다.

너무 많지 않은가 싶었지만 현재 완전한 안정화가 이루어진 이 지역에서, 아무리 인정 받지 못하는 무소속 마법사들이라 한들 집단으로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탐색 마법!"

"지금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전원 정지! 행동을 멈춰라!"

그는 탐색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모든 인원들을 정지시켰다.

마법사 몇이 가운데 자리해서,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를 펼치고 삼각형으로 섰다.

"오오. 저것이."

"마법진을 다루는 유칼레리아 학회가 자신있게 선보였던 마법일세. 움직이는 일정 크기 이상의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지."

그는 수비대장의 놀랍다는 반응에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마법을 설명해주었다.

어느새 마법 실행이 끝나갔다. 마법사들의 의도에 따라, 옅은 마력풍이 바람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걸리는 것들이 마법진 위에 나타날테니, 어서 지도를 덮게. 축척은 지도와 똑같네."

그의 명령대로 마법진 위에 준비한 지도가 덮였다.

아니나다를까 금세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오! 혹시 이 빛나는 점들...이..."

반색한 수비대장이 손가락으로 빛나는 점들이 나타나는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러나, 이내 들떴던 수비대장은 말을 잃었다.

"이, 이게 무슨..."

말문이 막힌건 순간 얼굴빛이 창백해진 부소장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를 확인한 좌중에 술렁임이 퍼져갔다. 지도 위에 떠오르는 점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십수개, 수십개, 수백개씩 멈출 줄을 모르고 주르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들이 모여, 마치 면을 이루기라도 할 것 같이.

"...이런."

그제서야 마법진에서 눈을 뗀 부소장의 시선에 무언가가 보였다.

어둑한 숲, 그 어둠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검은 물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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