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심연의 괴물(10)
"그가 보고 있지 않은게 확실해?"
[그렇다]
"그럼 상관 없어."
으슥한 공동 한구석. 군단은 이곳에서 우선 가장 중요한 것부터 확인했다.
실제로 지금 크리스, 차지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신우는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물론 남들은 보지 못하는 화면으로 전부 지켜볼 수 있는 그가 굳이 화면을 끈 것은 이유가 있었다.
"흐으...크흡.."
"조금 더, 대화 하자."
군단은 자신의 곁에서 벽에 기대 부들거리는 사내를 붙잡고 히죽 웃었다.
정작 그 포로는, 인간여성과 비슷한 형태를 취한 괴물이 가면 속에서 안광을 번득이며 자신에게 속삭이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지만.
포로를 심문하는 경험도 이미 풍부했다.
감염균을 전신에 퍼트려 몸을 장악하고, 신경계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고통이란 검이 곧 진실을 토하게 만드는 효율적인 도구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후 줄곧 애용해오던 방법이었다.
단숨에 혀를 깨물만큼 제아무리 긍지 높은 요정도 채 한시간을 견디지 못한 극악의 고통.
"전부 다 말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언어 체계조차 달랐지만 그런건 의미가 없었다.
약간의 단서만으로 군단은 단숨에 인간들의 언어를 익혔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전부, 다."
"커흑...끅.."
신우가 보지 않는게 이것 때문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이 끔찍한 고통에 질려버린 희생자는 반쯤 정신을 놓은채 벌벌 떨며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군단은 그 모든 정보를 모조리 외워 기억했다.
물론 교차검증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이번에 얻은 정보가 진실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계산을 시작했다.
'뇌를 분석해서, 그 안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렇게 고문해서 정보를 뽑아내는건 그리 고등한 방법도 아니란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군단은 대상자의 뇌세포를 완벽히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 든 정보를 해석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했다.
그나마 외적인 것으로 소통하며 단서를 얻어갈 수 있는 언어와는 달리, 뇌세포 분석은 지금 수준에선 참고할게 전혀 없었으니까.
[그래서. 방침은 정했나]
"물론이지."
끝내 모든 정보를 들어낸 군단이 몸을 육신을 일으켰다.
그순간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된 희생자의 눈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스쳤다.
"아아..아아악!"
하지만 제어되고 있던 감염균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희생자를 완전히 먹어버려, 뇌를 부수고 그의 자아를 완전히 파괴했다.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마구 발버둥 치던 희생자의 몸부림이 천천히 멎어갔다.
눈에 흐른 마지막 눈물 한방울을 끝으로 완전히 검은 핏줄에 잠식된 희생자는, 이대로 살아있는 고깃덩이가 되어있다가 훗날 군단의 둥지가 여기까지 오면 그대로 소화돼 양분이 될 것이다.
'이제 끝났으니 움직이자 군단장.'
군단은 가면을 쓴채 대기하고 있던 강도연에게 명령해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상대해야 할 적이 어떤 이들인지 전부 다 알았으니 이제 웅크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전부 먹어버릴거야.'
이미 계산을 끝냈다. 군단은 즉시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지금 입구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봐 보리스. 왜 연락을 안 받나!"
"이것들이 단체로 빠져가지고, 교대 하기 전에 보고부터 먼저 하랬더니..."
동굴 밖에서 해가 져갈 즈음.
몇 시간 전 이곳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한무리의 마법사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교대하기 위해 찾아 온 그들은 지금 잔뜩 성이 나있었다. 본래 주기적으로 이상 없음 보고를 해야 하는데, 기존 근무자들이 단 한명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한직이라도 최소한 지키는 척이라도 할 기본적인 규율은 있으니까.
"...뭐야."
"왜 아무도 없지?"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없는, 심지어 사소한 인기척마저 없는 텅 빈 공허에 당황해 허둥거렸다.
이곳이 만들어진지 이미 수십년.
이제는 볼장 다본 이런 한적한 구석지역에서 설마하니 이런 변수가 일어날거라 예상치 못한 이들이 서둘러 수정구들을 확인했다.
다만 정말로 이곳에 아무도 없는건 아니었다.
그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수많은 눈들이 그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뭐야...골렘들과의 연결이 전부 끊겼어."
"여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수정구를 확인한 그들이 순간 본능적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책상과 수정구, 종이와 책만 난잡하게 어질러진 지루하고 따분한 직장일 뿐이던 이 동굴이, 이제는 과거의 음산함과 스산함을 되찾았다.
종유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어이 신입. 지금 당장 본부로 가서 보고해. 우린 조사를 해봐야겠으니. 제길, 규정은 무시하고 그냥 통신구를 가져오는건데."
그중에서 나름 고참으로 보이는 반대머리의 중년 마법사가 젊은 사내를 향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평소에도 자주 받는 취급이었던 듯, 사내는 그 심각한 목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몸을 돌렸다.
"어..?"
"너희는, 못 나가."
그러나 사내가 입구로 달려가던 그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누군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가느다랗고 볼륨있는 여체의 몸에 검은 갑주를 두른, 이제 완전히 어둑해진 초저녁의 푸르스름함을 등진 그 존재는 짙은 흑발을 엉치까지 늘어트리고선 가면 속 붉은 안광을 번득였다.
"무슨..."
"멍청아! 숙여!"
군단을 마주한 사내가 당황한 사이. 그에게 명령했던 고참이 사태를 빠르게 파악하곤 단숨에 얼음 송곳을 불러내 날려보냈다.
그러나 그 얼음 송곳은 갑작스레 나타난 검붉고 반투명한 베리어에 막혔다.
순간 모두가 적막에 빠졌다. 그 와중에, 군단은 손가락을 들어 그들을 가리켰다.
'죽여.'
대기하던 군단병들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바로 밑층계에서 대기하던 비행종 군단병들이 마치 수문이 열린 댐에서 물이 쏟아지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방어막! 당장!"
덮쳐드는 거대한 날짐승들에 기겁한 몇몇 마법사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날카로운 발톱과 독침등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어차피 전부 죽이기로 작정한 이상, 굳이 감염시킬 필요도 없었다.
급히 모여든 일부 생존자들은 구석에 붙어 방어막을 펼치고 각종 마법을 난사하며 군단병들에게 대항했다.
'미궁관리소의 직원들, 대부분 하급 마법사.'
그러나 그들의 정체와 그들이 보여주는 마법에 대해서 포로를 심문한 정보로 이미 알고 있던 군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형상력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라는건 당연히 흥미가 갔지만 스스로 판단컨데 저정도 수준이라면 배울 가치가 없었다.
"너무 많..."
"살려줘!"
아예 비행종들에 덮여버린 그들은 한겹의 방어막 안에서, 눈앞을 가득 채운 검은 괴물들에 맞서 힘겹게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어막은 무한하지 않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이들도 없다.
게다가 눈앞의 괴물들이 가진 포악함은 일반적인 짐승과는 그 결이 달랐다.
인간을 먹잇감으로 보는 것이 아닌, 철저히 죽여야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달려드는 무수한 괴물들.
마법사들은 그 진득한 살의를 눈치채고 패닉에 빠졌으며 그렇게 심적으로 불안하고 흔들릴수록 그들이 주문으로 펼친 방어막은 더 얇아지고, 점차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학회, 그리고 도시.'
군단은 결국 방어막을 유지하지 못하고 잔혹하게 찢겨 죽는 그들을 보며 이미 다음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 세상의 인간들 중에는 이런 하급 마법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강한 이들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들 정도의 힘이라면 배울 가치가 있어보였다.
[둥지화에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린다]
"상관 없어."
군단은 우선 이곳 100층계에 둥지를 만들었다.
거대한 두꺼비를 닮은 것 같은 군단병들이 뱃속에 담아 온 끈적한 점액을 토해내면, 그 점액에서 육벽과 촉수가 자라나며 땅을 덮어가기 시작했다.
둥지는 아직 저 깊숙한 지하, 70층계도 다 삼키지 못한 상태였으니 일단은 본둥지에서 양분을 공유할 연결만 만들고 이곳에선 병력들에게 양분을 소화하고 공급할 수단만 만들면 되었다.
"먹이는 많아. 전부 먹어치우며 규모를 늘린다."
동굴 입구에 선 군단이 양 팔을 벌려보였다.
아득히 펼쳐진 숲과, 그곳에 살아가는 동식물들과 저 멀리 보이는 꽤 큼직한 도시 등등.
절대 먹을게 부족하는 않았다. 오직 돌, 돌, 돌뿐이던 미궁과는 다르다.
지금 펼쳐진 이 모든것이 자신의 에너지가 될 수 있었다.
군단은 그대로 암석 뿐이던 동굴을 나와, 잡초가 돋아난 부드러운 흙바닥에 자신의 육신으로 발을 디뎠다.
날카로운 발톱도 돋은 거친 괴물의 발이지만 충분히 느끼는게 가능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의 흙을 손으로 쓸어본 군단은, 이내 히죽 웃었다.
그 손에 겁 없이 올라탄 개미 하나가 올라타 기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