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70화 (70/254)

70화-심연의 괴물(9)

[동굴 밖 세상을 처음으로 본 순간 다짐한 것이 저것이다. 감당할 수 있나]

"대, 대충 예상은 했어."

화면을 껐다고 했지만 사실은 몰래 지켜보고 있던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한테 알려줄 영상을 만든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서 살짝 마음을 놓았던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방심하진 않았다.

저것은 막을 수 없는 군단의 타고난 본성이다.

나는 공기계에 담긴, 동생이 찍어 보내준 군단의 심법, 공명법 강의 영상을 내 휴대폰에 옮긴 뒤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그래서. 지저를 빠져나와 처음 세상을 본 군단은 세상을 먹어치우겠다고 선언했지. 그걸 위해 어떻게 행동한다든."

[화면을 봐라. 가장 우선되는 것은 정보로, 실제로 지금 정보를 얻기 위해 행동하고 있으니]

군단은 망설이지 않는다. 군대를 움직이는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 행위 따윈 필요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결정하면 조금의 틈도 없이 몰아붙인다.

조금 특별한 비행종들이 소수로 나뉘어 어둠을 가르고 층계들을 가로질렀다.

마법사들을 지켜보고 있는 정찰병들의 시야도 화면 일부분에 떠올랐다.

그들이 직접 조종하는 골렘들은 다른 골렘들과는 달리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일종의 CCTV인 그 골렘들의 시야를 보고 확인하며 판단을 내려야 하는건 저 마법사들 아닌가.

"@#%~₩."

"&%^~@? #####."

하지만 지금 수정구는 본체만체 지들끼리 떠들고 낄낄거리는 저 꼬라지들을 보니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대체 이 미궁을 얼마나 얕보고 있기에 저렇게 여유로운건지.

"명복을...빌면 조금 위선적인가?"

아직 그들이 어느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끝이 좋지 않을거라 예상한 나는 쓰게 웃었다.

"@%?"

[군단의 소형 비행종이 놈들 몰래 100층계의 천장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놈들은 지금까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군단이 파견한 소형 비행종은 독침 꼬리를 빼면 털가죽부터 시작해서 완전히 박쥐를 닯았다.

네쌍의 피막 날개를 가진 이 군단병은 천장을 거꾸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고, 조용히 생체 가스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가스 안에 군단이 파멸균과의 전투로 극한까지 개량한 감염균이 포함되어 있다. 달빛요정들은 신목의 힘을 공유 받으며 공기중에서 침투하는 감염에는 면역을 갖고 있었지만, 인간들은 어떨까]

"화면 확대해."

슬쩍 막사 밖 눈치를 본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그렇게 확대한 화면이 미시세계를 보여줄 정도가 되자, 지금 공기중을 날아다니는 세균형 군단병이 보였다.

그것들은 공기중에 흩어져 있다가 자연스럽게 마법사들의 호흡기와 눈의 점막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에이취!"

재채기와 눈물 등 몸의 방어기제가 곧바로 작용해, 주변 세포들을 공격하기 위해 독소를 분비하는 세균형 군단병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정도로는 막을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그들 역시 품고있는 특별한 힘 때문에, 이런 편한 방법으로는 감염이 불가능한 것 같다]

갑작스레 세균형 군단병들이 사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동시에 놀라서는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무언가 눈치챘듯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았다.

[그렇다면 대량의 강력하고 무거운 감염균을 직접 혈관에 주입하는 수밖에]

물론 군단에겐 여러가지 플랜 중 하나가 막혔을 뿐.

천장에 자리한 비행종들이 슬며시 꼬리를 각자의 타깃에게 겨누었다.

"@?%."

"%..."

마법사들은 딱히 깊게 신경쓰지 않는듯 다시 자기들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겨누어진 독침꼬리가 펑 하고 폭발하며 내장된 독침이 엄청난 속도로 사출되었다.

"흐윽!?"

독침이 목에 깊숙히 박혔다. 주삿바늘보다 두껍고, 길고, 무엇보다 역방향으로 난 톱날이 마치 갈고리처럼 살에 파고들어 빼기도 힘들다.

"@%^~!"

그들은 갑작스레 목, 머리, 어깨등을 저격당해 상처를 부여잡고 쓰러진 십수명의 동료들에게 기겁하며 달려왔다.

[공기전파가 아닌 직접 주입되는 이들은 다르다. 더 강하고, 더 크다. 심장박동만큼 미약한 형상력 정도엔 당하지 않는다]

"크으..."

거품을 무는 희생자의 상처부위가 급격히 물들어가며 주위 혈관을 따라 검은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세포단위 전쟁은 이제 군단의 특기.

산채로 자신의 온갖 세포들이 파괴당하고 잡아먹히는 희생자들의 눈이 뒤집히고 몸이 발작하듯 벌벌 떨리며 기괴하게 꺾였다.

정작 결단을 내려야 할 마법사들은 갑작스런 저격에 크게 당황해 어쩌지 못하고 골든 타임을 그렇게 놓쳐버렸다.

"크아악!"

이내 중추신경계와 뇌까지 퍼진 군단병이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가져왔다.

희생자들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자신들을 살펴주던 동료들을 덮쳐 이로 물어뜯었다.

"아...아아아악!"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들에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사람이 산채로 뜯겨먹는 좀비물 그 이상의 고어함은 차마 의연히 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저것은 영화 따위도 아니었으니까.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당연히 저항한다]

그 와중에 유독 빠르게 정신을 차렸는지, 다른 동료들은 처참히 뜯겨나가는 그 순간 한 사내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동료에게 손에서 뿜어낸 불덩이를 던졌다.

위력은 상당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폭발은 어지간한 수류탄급.

게다가 그 남자는 손으로 복잡한 동작을 그리더니 그런 화염탄 십수개를 동시에 생성해 던져댔다.

[군단이 저들의 힘을 측정하고 있다]

"...솔직히 세 보이는데?"

나는 살짝 당황했다. 일단 내가 상상하던 마법보다 더 강하고 빨랐다.

이제 혼자 남은 그는 달려드는 자신의 동료들을 하나씩 쓰러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다 놓치겠는데?"

무언가 웅얼거리던 그는 자신의 몸에 또 하나의 주문을 시전했다. 움직임이 빨라진 그는 옆에서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던 동료의 안면을 주먹으로 내리쳐 코를 으깨버렸다.

싸우면서도 서서히 뒷걸음질 치던 그는 이제 동굴 밖으로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면서 결국 끝내 마지막 남은 동료에게 불타는 화염창을 날려 상반신을 터트린 그는,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탈출하지 못했다. 허공을 찢으며 날아든 창 한자루가 그의 몸에 둘러친 반투명한 베리어를 깨부수고 관통했다.

검붉은 기운 넘실거리는, 전체가 검붉은 광석으로 이루어진 그 창을 던진 것은 나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사이 이곳까지 도달한 상위종의 군단병.

"어, 언제..."

내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이, 이 상위종 군단병은 날개를 접어 등갑에 넣고 저벅저벅 걸어 창을 회수했다.

[계획대로 모든 이들을 무력화시켰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정보의 습득]

"@..."

군단병이 각혈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의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군단의 손에 걸린 이상, 그는 죽고싶어도 죽지 못할 것이다. 벌써 감염균을 투입시킨 상처가 얼기설기 낫고 있다.

[군단은 이들을 이용해 이 세상과,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뒤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화면 꺼줘. 특이사항 있으면 반드시 알려주고."

거기서 화면을 껐다. 어차피 이 다음에 벌어질 광경은 뻔하고, 굳이 그런 장면까지 전부 챙겨보고 싶지는 않았다.

"신우야. 안에 있어?"

"네. 들어오세요."

어차피 지금 더 못보는 상황이기도 하고.

나는 밖에서 인기척을 내던 차지연을 안으로 들였다. 다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에볼루션의 동료인 크리스도 함께였다.

*

"수호자 연합."

"솔직히 좀 웃기지만, 그래...욕하고 싶지는 않군. 어쨌든 우리에 비하면 대단한 자들이니."

크리스가 코웃음을 치며 커피를 홀짝였다.

두사람이 내게 전해준 것은 다름아닌 에볼루션과 수호자 연합의 협력.

수호자 연합의 중심이 플레이어와 유닛이라는걸 알기에 내게는 살짝 의외인 선택이었다.

그들의 플레이어는 굉장히 오만하고 폐쇄적인줄 알았는데.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그만큼 또라이들이기도 하니까. 동시에,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도 않으니까. 알고 있겠지만, 마물들이 유닛들을 중심으로 서로 연합해서 아주 개같이 굴고 있지. 여기는 오히려 상황이 좋다고? 동유럽 지역 연합군 중 한개 군단은 지금 궤멸이랬어."

"궤멸이라고요?"

"우리가 흔히 미노타우로스라고 부르던 우두귀들도 유닛들이었거든."

말을 마친 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소의 머리를 한 근육질의 마물 우두귀.

피지컬만큼은 오크도 씹어먹는 키 3m짜리 A급 괴물들이 유닛이라. 순간 소름이 돋았다.

"상황이 이렇게 심상찮게 돌아가니까 사람들의 민심이 수호자 연합으로 향했어. 그들은 조건 없이 베풀기로 약속했고 이미 많은 헌터들이, 사람들이 그들의 품에 들어갔지.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야.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구하는 것."

"그래서 또라이들이라고. 그놈들은 눈치도 안봐. 그동안 강대국들이 공공연히 눈감아주던 중동의 테러단체, 그놈들 손에 하룻밤만에 몰살당했어. 세계적인 일치단결을 강조하는데 무슨 종교단체 보는 것 같다니까."

차지연의 말에 크리스가 진저리를 치며 덧붙였다.

나는 뭐라 반응할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순간 지창현의 얼굴이 스쳤다. 그와 그의 플레이어는 정말로 그것을 게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건가.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 이 빌어처먹을 데스 게임과는 별개로도."

크리스가 마지막 커피를 입에 털어넣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