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심연의 괴물(8)
"그는 어때? 그는 뭘 하고 있지? 기뻐해?"
[...당연히 지금 너희가 보낸 영상을 확인하고 있다. 아마 많이 바쁠 것이다. 그래, 아주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
군단의 질문공세에 결국 관조자도 입을 열었다.
"오빠한테 최적화 시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강도연도 곁에서 투덜거렸다.
사실 초지능을 갖고 있는 군단이 개량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심법'을 군단의 방식으로 배운뒤 인간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최적화시킨건 강도연의 업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군단의 도움을 받아 뇌기능을 극대화한덕에 지금 그녀는 굉장히 피로한 상태였다.
"하지만 새롭게 만든 공명(共鳴)법은 결국 반쪽에 불과해."
다만 군단은 형상력을 다룰 새로운 심법에 대해 애매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철저하게 인간을, 아니 인간형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니까."
"하지만 상위종은 모두 인간형...이잖아?"
강도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군단은 그 질문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군단이 형상력을 운용하기 위해 생산하는 상위종은 모두 인간, 오크등 팔다리를 가지고 무기를 사용하는 형태를 띠고있었다.
"형상력을 사용하는 짐승, 아직 본 적 없으니까."
이유는 심플했다. 군단은 아직 형상력을 사용하는 다른 종류의 생물과는 조우한 적이 없었다.
직접 창조하는 것의 비효율을 꺼려하는 군단은 굳이 그런 모험을 하지도 않았다.
"결국 인간형이기 때문에, 다른 기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지."
다만 이런 만능형 병종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덩치, 혹은 이빨이나 발톱을 발달시킨 다른 종류의 병사들에 비해 무기가 없으면 적을 즉사시킬 수 있는 치명률이 떨어진다는 것.
그렇기에 가시 꼬리등을 달았으나 결국 팔과, 손을 갖고 태어났다면 무엇이든 쥐고 휘두르는게 제일 좋았다.
"검술이 필요해. 창술이든, 체술이든 전부 다."
군단이 가면속 눈을 반짝였다.
무기야 만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무기는 분명 신체의 일부가 아니고, 반드시 사용법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더 효율적이니까. 실제로 나름 체계적인 검술을 발달시켜 온 달빛요정들과의 싸움에서 그것을 체감했다.
바로 이것이 군단이 개발해낸 심법 공명법이 반쪽이라고 판단한 근거였다.
"그럼 해결 된거네. 지창현이 오빠한테 알려준다던 무술은 검술이라했어."
"칫."
강도연의 말에 군단은 굳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칫?"
"이상한 목소리가 아니라 그에게 영상으로 직접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가르쳐줘야 그가 기뻐해."
[...]
"...이런 면에서는 진짜 솔직하구나."
도통 예상하기 힘든 군단의 반응에 혀를 내두른 강도연이 슬쩍 눈치를 보았다.
자신에게서 감정과, 그 감정의 표현 방법을 배워가던 예전의 군단이 아니었다.
이제는 스스로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왜 오빠가 그렇게 신경쓰는지 알 것 같아.'
지금 하나의 존재로 묶여있기에 더 잘 알았다.
순간순간은 평범하고 특이한, 가끔은 어린 동생 같은 이 생물체가 그 실상은 한없이 잔혹하고 끔찍하게 돌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현재 68층계까지 정찰이 완료되었다. 동시에, 흔적도 이곳에서 끊겼다]
"가능성은 한가지."
군단이 시선을 돌렸다.
그 위치는 이곳에서 10층계 이상 위에 있는 곳.
이미 예전부터 뿌려둔 정찰병들은 조금의 방해도 없이 그곳까지 가서 활동하는 중이었다.
"골렘의 흔적이야. 설마 그 아이가 골렘에게 당한건가?"
"끊긴 흔적은 위로 이어져 있어. 골렘은 생존 개체를 위로 데려갔다."
같은 정보를 취하더라도 도시에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처리할 수 있는 군단은 강도연의 추리를 부정하고 위를 가리켰다.
군단은 이미 달빛요정 생존자 옐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소년이 맡은 임무까지도 이미 소화까지 다 시킨 대족장의 입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인간."
둥지 전체가 살짝 움찔했다.
움찔한 강도연은 습관처럼 박동하지 않는 자신의 심장부를 손으로 짚었다.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군단은 이미 지상의 인간들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군단의 사냥은, 상대 종족을 모조리 포식하여 절멸시키는 것 오직 단 한가지를 의미했다.
"군단장."
"으응.."
"지금 당장, 지상으로 올라가자.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가지러."
재정비는 끝났다. 군단은 지상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모든 층계는 인간들의 골렘이 청소한 이후, 당연히 우리의 적이 될만한 이들은 없다]
소름끼치는 침묵과 함께 군단병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미궁에 무성한 식생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미궁 전체를 먹어치우는 둥지의 확장은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되며 어차피 천천히 먹으면 되니까.
방해되는 것은 인간들이 관리용으로 뿌린 골렘들 뿐이었으나, 놈들은 모두 상위종의 검에 핵이 부숴지며 무너저내리듯 쓰러졌다.
[정찰병들의 위치, 78층계다. 이곳에서 놈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다만 조금 오래된 흔적이다]
[88층계다. 동굴박쥐로 보이는 놈들에게 정찰병들이 공격당해 상하기 시작했다]
[96층계다. 인위적으로 갈고 닦은 통로와 공간들이 보인다. 육중한 문이 통로를 막고 있으나, 미세한 틈정도는 있다]
[99층계다. 저 위에, 빛이 보인다]
'찾았다.'
군단 전체가 동요했다.
100층계. 군단의 정찰병은 그곳에서 인간들을 발견했다.
100층계는 전체가 꽤 거대한 시설이었다.
꽤 많은 인간들이 이 시설에 모여서는 무슨 이상한 수정구 같은걸 하나 두개씩 붙잡고 있었다.
살아남은 정찰병이 조심스레 그들 중 일부에게 접근했다. 어차피 조금 큰 벌에 불과하니까.
자기들끼리 떠들던 그들은 정찰병을 눈치채지 못했다.
로브를 걸치고있던 그들은 수정구는 본체만체 잡담에만 여념이 없었다.
"역시 무슨 마법사...인가?"
골렘이 과학적 방법이 아닌 특수한 방법으로 움직인다는걸 이미 알고 있던 강도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군단도 마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지구의 지식으로 알게 된 허구의 마법이 아닌 달빛요정 대족장의 증언으로 알게 된 이세상 인간들의 마법을.
"수정구에 비치는 시선. 동굴의 풍경이군. 골렘들의 시선을 보고 있는거야."
군단은 수정구들에 보이는 화면이 비슷한 풍경들을 수많은 구도로 보고 있다는걸 확인하고, 그 정체를 파악했다.
"자동이 아니었...그럼 우릴 봤다는거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조용한데."
"수정구의 숫자는 총 69개, 인간들의 숫자는 38개체. 애초에 모든 골렘들을 보는게 아니야."
금세 계산을 마친 군단은 새로운 계산에 들어갔다.
개구멍을 통해 놓쳐버린 달빛요정 생존자가 있었지만 아직 인간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은건 확실했다. 이걸 이용하면 보다 효율적인 전투를 치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밖을 보고 싶어."
잠시 행진을 멈춘 군단이 정찰병 하나를 따로 움직였다. 중간에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벌레 하나를 단숨에 잡아먹으면서.
소형 정찰병의 경우 에너지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도록 소화기관이 멀쩡히 달려있었다.
[비효율을 감수할만큼 간절했나. 그렇다면, 그토록 고대하던 밖을 보니 어떻지?]
정찰병은 그 이후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풍경이 바뀌었다.
사로잡힌 포로처럼 힘없던 동굴의 발광석과는 전혀 다른, 근원과 생명의 힘을 품은 청명한 태양빛이 온 세상을 비추었다.
진정한 자유를 품은 바람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어쩔 수 없이 흐르던 지하 미궁의 바람과는 격이 달랐다.
흙도, 그 위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의 기운도 모두 다.
이곳에 살며 늘상 보는 이들은 느끼지 못할 그 모든 것은 이제서야 처음으로 땅속을 벗어난 군단에게는 전부 새로운 것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눈을 떠 세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 동굴의 일개 공동 하나에서 시작한 군단의 세상이 다시 한번 확장되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느냐. 밖에 무엇이 있는지, 태양이 무엇인지, 이 세상이 무엇인지]
'아니야...전혀..달라.'
분명 성장하며 습득한 수많은 지식덕에 알고는 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보고 들은 일개 지식일 뿐.
자신의 일부를 통해 직접 보고 겪는 풍경은 순간 그 초월적인 뇌가 멈춰버릴 만큼 군단에게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하늘. 신들이 사는 곳, 동시에 그 넓은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창.'
군단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하늘은 이전부터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색. 특별히 발달시킨 정찰병의 시각은 아주 맑은 색으로 그 푸르름을 정확히 전했다.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 저 창천의 하늘을 태어나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 하늘 아래 탁 트인 이 세상의 풍경은 아무리 큰 공동이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름다움의 기준이 뭔지 아직 명확히 정하지 못하던 군단은 처음으로 아름답다의 기준을 정했다.
[그렇다면 저 하늘을, 이 세상을 보고 드는 생각은]
'갖고 싶다.'
그에 대한 집착은 잠시 사그라들고, 그 전에도 망설임 없던 군단의 탐식에 더 강하게 불이 붙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갖는다. 그것이 군단의 상식이었으니까.
이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자신의 세포로 물들이고 싶다는 타고난 강렬한 본능에 군단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