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67화 (67/254)

67화-심연의 괴물(6)

"내가 화면을 껐다고 말해봐."

[그가 화면을 껐다. 그리고 그의 하사품이 도착 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휴면중인 비행종 하나가 휴대폰을 낚아채 둥지를 가로질렀다.

최상층의 둥지에는 내가 화면을 껐다고 하자마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보였다.

거의 엉치까지 내려오는, 부드럽고 찰랑이는 흑발을 늘어뜨린 가면을 쓴 한 소녀...가.

비행종은 그 손안에, 휴대폰을 툭 떨어트렸다.

"강도연은? 그 애는 어디 있지?"

[현재 둥지 한쪽에서 양분 공급 및 수면을 취하며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는 중이다. 군단은 네 하사품을 먼저 강도연에게 보여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설마 동생을 경쟁자로 여기는거야? 걘 내 동생이야."

[글쎄, 군단에게 그딴건 아무 상관 없다. 당장 중요한건 네 마음. 그리고 서열의식 뿐이다. 자신의 서열이 강도연보다 높으니까]

"하..."

여러모로 마음이 심란했다.

동생을 군단에게 보낸건 목숨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녀석을 외계의 괴물들 사이에 던져 놓은 것 역시 못할짓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효율만 추구하는 군단이 '인간을 위한' 편의를 봐줄리도 없으니 앞에서 티는 안내도 힘들어할게 분명했다.

[내가 영상의 저장 경로를 알려주었고, 지금 군단이 네가 보낸 영상을 확인하려 한다]

그때, 액정을 톡톡 두드리던 군단이 내가 보낸 영상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너무 당황한 모양이다]

군단이 먼저 튼 영상은 내 영상 편지였다.

겉모습은 동생에게 보내는 거긴 한데, 어쨌든 한 몇 초정도 영상을 보던 군단은 순간 둥지 전체를 요동치게 만들더니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몸을 숨겼다.

머리부터 육벽을 향해 돌진해 쳐박더니, 쩍 갈라진 틈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져 지금은 발만 보였다. 이내 그 발도 완전히 사라졌다.

애처롭게 뒤집힌 휴대폰에서 내 목소리만 웅얼웅얼 들려오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진게 나도 느껴져. 아니 대체 왜?"

[아무래도 네 얼굴을 본게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런 것 같다. 군단은 그동안 네 얼굴을 궁금해하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해왔으니까]

"내 얼굴을?"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곧 강도연이 현장에 도착했다. 찡그린 얼굴을 보니까 아무래도 군단의 명령으로 강제로 일어나게 된 것 같았다.

"이건 그냥 오빠가 보낸 영상일 뿐이야.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고."

녀석이 휴대폰을 주워들고선 허공을 향해 외쳤다.

그 상태로 시간이 좀 지나자, 꿈틀거리던 벽이 다시 갈라지더니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끄러워 하는게 아니야. 나는 분명..."

"나도 네 감정을 알 수 있어. 너 부끄러워하는거 맞아."

"아니야."

"...내게 흘러드는 감정을 차단해도 소용 없어. 다 티나."

"아니라고."

둘 사이에서 뜬금없는 티키타카가 벌어졌다.

나는 그것으로 지금 군단이 품은 감정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안심하느냐]

"잘 모르겠어. 적어도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으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가장 무서운건 군단이 좀 컸다고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영향력을 크게 끼치고 있는 것 같으니 망정이지, 만약 이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면 이제 내 힘으로는 군단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여기까지 쳐들어 온 군단은 나를 산채로 둥지에 파묻어 양분만 공급해 목숨만 붙여둘 수도 있을 테니까.

"일단 좀 제대로 보자. 보니까 이건 오빠가 나한테 보낸 영상이란 말이야. 배터리 달면 어떡해."

보다 어른스럽게 투닥거림을 멈춘 강도연이 영상을 다시 틀었다.

영상을 보는 동생의 눈이 흔들렸다.

사실 내 얼굴을, 아니 자신과 같은 인간의 얼굴을 보는건 녀석도 굉장히 오랜만일 테니까.

점차 눈물이 젖어가는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이, 이건 오빠가 네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 잘 들어봐."

그런 와중에 내 의도를 파악하고 군단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군단이 훗날에라도 동생을 놔줄 가능성이 있을까? 내가 부탁하면, 보내주지 않을까?"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별로 도움 안될거 알면서도 물어봤다.

답변은 역시나 뻔하디 뻔한 답뿐.

"잘 싸웠다고..? 멋지다고..?"

[군단이 지금 즉시 지난 싸움에 활용했던 병사들의 정보를 재검토하고 있다]

그와중에 군단은 실시간으로 내 말 몇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중이었다.

수많은 병력을 통솔하여 이 미궁 속 수많은 종족의 씨를 말려버리던 초월적인 생물체 답지 않게 이런 면에선 아직 어린아이, 단순하기 짝이없다.

그런 모습으로 다시금 확인했다. 저 애에게 내가 끼치는 영향력은 아직 크다.

이 영향력이 더 줄어들기 전에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야했다.

이것도 일종의 싸움이었다. 군단의 자아에 내 영향력이 더 크게 미치는지, 아니면 타고난 본성을 비롯해 다른 환경적 요소들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

"아직 좋아하긴 일러. 영상이 하나 더 있어. 이것도 오빠의 선물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영향력 싸움에서 현 상황을 용케 이해하고 있는 동생의 도움이 컸다.

비록 전투와 성장이 진정한 축복이라 여기는 군단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신세라지만, 이런 면에서는 연장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어느새 군단을 옆에 앉혀 놓은 강도연이 두번째 영상을 틀었다. 내가 지창현에게 그의 힘을 전수 받는 영상이었다.

"호흡법에 딱히 이름은 없습니다. 말그대로 숨을 쉬는 것 뿐이니까. 한번 익혀놓으면 이제 우리는 숨을 쉬는 것 만으로 체내에 가진 힘을 순환시킬 수 있게됩니다."

지창현은 이 호흡법이 앞으로 익힐 힘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꽤 진땀 흘리면서 배웠다. 사람이 자기 호흡을 계속해서 조절하고 의식하면서 다른일을 하는게 쉽지가 않다.

"호흡이라는 반복되는 행위로 무의식의 순환구조를 만들어, 그 순환의 힘으로 에너지를 공명시키는 것. 순환은 천혼술과 공명은 신목과 비슷."

하지만 군단이라면, 수많은 멀티태스킹은 물론 자신의 몸을 세포단위로 조작할 수 있는 존재라면 너무나 쉽겠지.

군단은 영상을 보는 즉시 쉽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몸을 조작했다.

"오. 나도 된다."

그리고 그건 군단의 일부인 강도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멍하니 탄식했다.

저렇게 대놓고 사기적이면 비교할 마음도 사라진다.

[새롭게 익힌 술법이 기존에 익히고 있던 천혼술, 그리고 달빛요정식 술법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공명과 공명을 중첩시키는 새로운 개념의 운용법. 그 힘으로 힘은 더욱 증폭 된다]

군단이 자신의 팔을 뻗었다.

순식간에 터져나오는 검붉은 힘이 그 팔에 휘감기더니, 손바닥 끝에 마치 휘몰아치는 거대한 드릴의 형태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군단은 그것을 그대로 전방에 뿜어냈다.

둥지의 일부가 굉음을 내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둥지 역시 군단이다. 충격이 덮치는 순간, 형상력을 이용한 베리어를 뿜어냈다.

하지만 쏘아낸 에너지는 그 베리어를 모조리 부수고 둥지의 일부, 그리고 그 뒷편 암반까지 날려버릴 정도였다.

"증폭, 평균 80% 이상."

만족스러운 듯, 군단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나는 그 광경에 잠시 굳어버렸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벌인거지? 내가 알려준 이세계의 술법을 한순간에 해독하고, 그것을 익혀 기존의 힘과 결합하여 진일보한 새로운 체계의 힘을 또 한번 만들어냈다.

"이 힘, 조금 더 개량해서 오빠한테 알려주자. 분명 도움이 될거야."

그 힘을 익힌건 지식을 공유받는 강도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동생은 또한번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군단에게 제시했다.

"오빠가 기뻐할거야."

"기뻐...해?"

거기서 군단은 그 제안을 단 한마디만 듣고 덥석 물었다.

"저걸 받고 나면, 당연히 답례를 준비해야겠지."

[무엇을 줄거지?]

"...그게 문제야."

이제 아예 의자에 눕듯이 파묻힌 나는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다.

정말 겉모습만 보면 또래의 여자애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노는 모습이다.

그 애들의 몸이 갑각과 질긴 가죽으로 된 괴물의 몸이라는 것만 빼면.

지금 저 애들은 내게 보낼 영상을 찍고 있다.

다만 나는 지금 속편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고민거리로 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군단은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물론 오만한 생각일 순 있지만, 나는 군단을, 저 아이를 믿었다.

그렇기에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단 한번도 저 아이를 터치한 적이 없었다. 그저 지켜보고, 감정으로나마 공감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어떠한 명령이나 부탁을 했을때. 그것이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 한들 군단은 내 말을 들어줄 것인가.

이것이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너만큼은 너무 방심하고 있지 마라]

"그게 무슨 소리지?"

[원론적인 이야기다. 이 게임에 참가한 유닛들, 플레이어들...그리고 그들과 엮여있는 세력들 중에는 결코 얕볼 수 없는 이들이 많으니, 군단은 당연히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

그 타이밍에 마치 노렸다는 듯 떠오르는 글자들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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