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66화 (66/254)

66화-심연의 괴물(5)

"제가 알려드릴건 검술입니다. 제 스승님이 검을 쓰시기에. 아직은 저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지만, 분명 도움이 될겁니다."

"하지만 지창현씨는 검이 아니라..."

"제 이능인 불로 싸웠었죠. 하지만 곧 알게되실겁니다."

그는 내게 검을 하나 주었다. 놀들이 쓰던 투박한 검이 아니라 날이 세워지지 않은 좋은 품질의 장검이었다.

나쁘지 않다. 군단도 자연스럽게 검, 혹은 검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를 통해서 형상력을 이용한다.

지금까지 총을 들고 뛰어다녔지만 개인화기 수준의 총은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니 나도 이제 신체강화 수준에서 한단계 올라갈 필요는 있다.

"강신우씨. 혹시, 무협지 보신적 있습니까?"

그때 자신의 검에 타오르는 불길을 휘감고 있던 지창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무, 무협지요?"

"스승님도 인정하셨습니다. 내력은 내공이니 무공이니 하는것과 얼추 비슷하다고요. 물론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만. 처음은 호흡법부터 시작할까요? 분명 당신에게 재능은 있습니다."

호흡을 통해 내면의 힘을 안정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그 힘을 움직인다는게 설명의 전부.

나는 일단 그가 시키는대로 행동했다. 그러면서 한쪽에 세워둔 휴대폰을 흘끔거렸다.

지금 이 모습을 찍고있는 저 휴대폰은 지창현도 복습할때 쓰라면서 허락한 것이었다.

단지 저것은 내 진짜 휴대폰이 아니었다.

군단에게 하사품으로 주었었던 공기계. 배터리가 방전된 그것은 제물로써 다시 내게 돌아왔다.

"무언가 느껴집니까?"

"...분명, 다른 흐름이 느껴지는군요. 하지만 이 이질감이 제가 또다른 힘을 익혀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차이는 금방 알게될 겁니다."

내면의 변화는 금세 눈치챘다. 단지 이 변화가 정말로 내력수련법의 영향인지, 아니면 내가 기존에 기본만 익혔던 주술 천혼술의 영향인지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더 단단해집니다. 이제 그 몸에 맞는 전투법을 수련한다면 하나의 무술이 되는거죠."

"이런 힘을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공개적으로 배울 사람을 받으신다고요? 아무런 대가 없이요?"

"그럼요. 대혼돈의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과 주변 사람들을 지킬 힘을 원합니다. 저희가 가입하는 회원들에게 원하는건 단 하나, 그 무엇이든 사람을 지키는 것 입니다. 자기 몸이든 가족이든 이웃이든간에요."

"이, 이유는 그게 전부입니까? 분명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몇년 전까지 이어지던 헌터들의 권리투쟁도 상당히 거칠었다고 기억하는데..."

아무리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지만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던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가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분명 지금이 평범했던 일상이 지속되던 때라면 불가능했겠죠. 하지만 이제 전세계 위정자들도 다 압니다. 자기들의 밥그릇은 커녕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고 싶다면 지금은 그 같잖은 사상이니 이념이니 다 때려치우고 얌전히 숨만쉬어야 한다는걸. 도움이 되지 못할거면, 방해는 하지 말아야죠."

"...알겠습니다."

그가 평소에도 검소하고 사려깊은 영웅적인 헌터로 칭송 받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반짝이는 그의 눈을 직접 보니 그 이상으로 진심인것 같아서 깊게 엮이기는 좀 그랬다.

하지만 그런 예감이 짙게 드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그들이 지금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는 이 게임의 판도를 아주 강하게 뒤흔들어버릴 존재가 될 것이라는.

[그래서, 그 휴대폰에 담긴 정보를 군단에게 넘길 것인가?]

"...생각중이야."

그날치 훈련은 끝났다.

우리 임무는 중지 상태, 즉 허공에 붕 떠버린 상태다. 덕분에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던 나는 독방에 앉아 머리만 싸매고 있었다.

[그 지식까지 흡수하면 군단은 분명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냥 덥석 주는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주기는 줘야겠지. 하지만 군단이 달빛요정들을 무참히 쓸어버리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것을 영상으로 확인한 나는 카타르시스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내가 직접 몸으로 굴러보고 상대해보니까 알 수 있다.

지금의 군단은 강하다. 품에 동력기관을 가진 상위종의 군단병? 장담하는데 나는 절대 못이긴다. 초격에 내 몸이 토막날 것이다.

그런 이들이 방금 전 전투에 투입된 숫자만 수십이었다. 심지어 그게 전력도 아니었다.

"자세히 읊어봐. 어떤 데이터로...그래. 숫자로 띄워봐. 지금 대체 군단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ㆍㆍㆍ데이터 계산중ㆍㆍㆍ]

에상대로, 녀석은 계산중이라는 푯말을 걸어두고 잠시 침묵에 빠졌다.

나는 그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군단은 매번 양분이니 효율이니 철저하게 따져가며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최소한의 병력만 굴렸다.

그건 어디까지나 여유가 있으니까 가능한 짓이다. 심지어 파멸균과의 싸움에서도 군단은 끝끝내 양분을 아꼈다.

[계산이 끝났다]

"답은?"

[보여주지. 지금 네 유닛이 가진 힘을, 만약 현재의 군단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 한종류의 병종만 집중 생산했을때, 한번에 어느정도의 병력을 뿜어낼 수 있는지를]

[ㆍ동원 가능 상위종 군단병 52,400개체ㆍ]

[ㆍ동원 가능 대형 군단병 244,400개체ㆍ]

[ㆍ동원 가능 중형 군단병 1,559,000개체ㆍ]

[ㆍ동원 가능 소형 군단병 49,000,000개체ㆍ]

문자열이 주르르륵 떠올랐다. 그것들을 읽어내리는 내 눈이 점차 크게 흔들렸다.

[물론 이 데이터는 매우 극단적인 데이터다. 저만큼의 병력을 운용하면 지금의 군단은 매번 조금도 쉬지않고 포식을 진행해도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신목이나 감염균 같은 특수한 병력은 제외한 수치다]

"그래. 어차피 진정한 강함은 병력 조합에서 나오는거니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블린 사이즈의 소형 군단병만 몇천만마리가 덤빈다 한들...아니다. 몇 천만마리?! 이건 상식을 넘어선 미친 숫자다.

게다가 저게 전부가 아니었다. 군단은 더 성장한다. 그리고 진화한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더 많은 양분을 흡수한다면 저 숫자를 배 이상으로 늘리는건 일도 아닐 것이다.

[휴대폰을 보낼 것이냐]

"잠시 기다려."

한동안 얼굴을 감싸고 고민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이제 막 걸음마 시작한 내가 뭐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지금 뭐 하는거지?]

"뭐. 이게 뭐 어때서. 이제 슬슬 얼굴도 봐야지."

나는 대충 휴대폰을 세워두고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하사품과 제물 시스템을 이용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된 이후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이걸 왜 이제야 떠올렸는지는 내 지능 문제겠지.

"야, 크흠..오랜만이다. 별건 아니고..."

나는 그대로 말을 시작했다.

별 중요한 내용이 있는건 아니었다. 겉보기엔 그냥 동생에게 할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었다.

"실은, 이번 전쟁과 관한 영상을 봤어."

그러나 군데군데 군단에 대한 언급을 꼭 넣었다.

애초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군단에게 남기는 것이니까.

잘 싸웠다느니, 멋있었다느니...뻔한 아부 같았지만 차마 학살을 '멈춰!' 같은 헛소리는 할수 없었다.

"너희가 무사했으면 좋겠어. 끝까지."

결국 내 영상편지는 뻔한 이야기나 하다가 끝났다. 이런 영상을 찍은 의도는 단 하나.

군단과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교감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공기계를 회수, 그대로 사진으로 찍었다.

공기계는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

"에볼루션 한국 지부의 스텝 업 헌터 차지연씨."

"...화룡의 지창현씨. 당신이 유닛일 줄은 몰랐는데."

"그거야 피차 마찬가지 아닙니까."

막사 입구. 주둔지에 도착하자마자 막사에 들어가려던 차지연은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지창현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안에 든 마나석이 빛나고 있었다

서로 마주친 이후 경계심을 끌어올린 덕에, 두 사람의 청각에는 빈 막사에서 누가 혼자 떠드는건 들리지도 않았다.

"이거, 놓으세요."

그녀는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두 사람의 기세가 맹렬하게 들끓었다.

이 둘은 같은 세상의 유닛. 즉 서로 죽여야만 하는 관계니까.

"한가지만 묻죠. 강신우씨는 이미 당신의 정체를 압니다. 이 사악하고 불합리한 게임 시스템도. 그러니 이용해먹을 생각은 버리시길."

"...그것 참 웃기네요. 그 사람은 원래부터 관계자였는데."

그녀가 차갑게 되받아치자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걸 본 차지연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상대보다 자신이 우위인걸 알아차린 탓이었다.

"그럼 대체 무슨 관계죠?"

"당신보다는 깊은 관계거든요."

"만약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잠시 기세를 누그러뜨린 지창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붉은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플레이어가 자신의 유닛을 이용해 허튼짓을 한다면 앞으로의 대의를 위해서도 그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대의? 하지만 플레이어는...!"

"제 스승님, 제 플레이어가 당신의 플레이어와 대화를 원하시는군요."

그는 발끈하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어차피 알 것 아닙니까. 사악한 마물들과 그놈들을 조종하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 목표는 바로 당신네 에볼루션, 그리고 연합군입니다. 나는 수호자 연합(The Guard)의 일원으로 연합군이 그들에게 상하는걸 두고볼 수 없습니다."

그는 먼저 몸을 돌리더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차지연은 기가 차서 코웃음을 쳤지만 이내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가 흥미를 느꼈다. 따라가라]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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