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심연의 괴물(3)
"어린 아이들은 모두 뒤로! 놈들을 막아라!"
오로테, 가장 힘이 강한 전사로 불리는 사실상 돌격대장 역할을 수행하던 덩치 좋은 전사.
그는 동료 전사들을 이끌고 괴물들이 습격한 도시로 내달렸다.
"이 놈!"
가장 선두에 서서 시가지에 뛰어든 그는 은은히 빛나는 검을 휘둘러 사람들을 습격하던 괴물을 향해 내리쳤다.
"큭?!"
그러나 상대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군단병들 중에선 중형에 속하는, 고양잇과 특유의 발달한 상체와 근육이 군단의 개조로 더더욱 극대화된 이 사족보행 돌격형 군단병은 그의 검을 피한뒤 억센 앞발을 휘둘러 그를 후려쳤다.
체중도 덩치도 어지간한 호랑이 이상이었다.
그 압축근육에서 뿜어지는 충격을 모든 힘을 끌어올려 막아낸 그는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방패가 우그러질 정도의 일격이었다.
"으아아아!"
그는 방패를 버리고, 톱날이 돋아있는 날카롭고 번쩍이는 이를 쩍 드러내며 덤벼드는 군단병의 미간에 검을 찍어내렸다.
마력이 담긴 검에 단단한 머리갑주가 부숴지며 군단병의 머리가 크게 쪼개졌다.
'이게 대체 뭐지?'
오로테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젊지만 꽤 많은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사냥을 위해 수많은 동굴의 대형 짐승들과도 싸웠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한 적은 분명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짐승과 달랐다.
'소름끼친다.'
싸우는 순간에도, 죽는 그 순간에도 조금의 울음소리도 비명도 지르지 않는 침묵.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번득이는 안광.
지금 싸우는 상대가 정상적인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오로테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오로테! 여기 도와줘!"
"이런! 엘라!"
숨을 헐떡이던 그는 자신을 찾는 다급한 소리에 허겁지겁 그곳으로 뛰어갔다.
"렐이 깔렸어!"
"기다려. 지금 꺼내줄테니."
혀를 찬 그는 무너진 잔해에 깔려있는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힘껏 돌들을 들어올렸다.
아이는 비록 한쪽 다리가 뭉게졌지만 목숨을 건졌다.
"이럴수가..."
그러나 그들은 금세 포위당했다.
동굴거대거미를 베이스로한 중형의 거미형 군단병들이, 갑각에 덮인 8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독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독니를 딱딱거렸다.
거미주제에 사람보다 크고, 게마냥 온몸에 갑각을 두른 놈들이었다.
'이놈들도 마찬가지다.'
오로테는 붉게 빛나는 안광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여인과 다친 아이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
"내가 반드시 지켜."
달려드는 거미들을 향해 그는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빈틈을 노려 찔러들어오는 다리를 마구 베고, 물어뜯으려는 입을 반으로 갈랐다.
"으아아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그는 자신을 짓누르려던 다리를 움켜쥐고 그대로 메쳐버렸다.
거구의 거미가 그대로 들려서는, 땅에 내려찍어지며 바둥거렸다.
'할 수 있어.'
그의 몸에 새겨진 문양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신목도 그와 함께한다. 모두가 함께.
그는 끝끝내, 마지막 거미까지 베어 죽였다.
"꺄아아악! 오로테!"
"엘라!"
그러나 그렇게 그가 거미들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
허공에서 날아든 맹금의 발톱이 여인과 아이를 통째로 낚아챘다.
"아아...아아악!"
발톱에 잡아채인 그녀는 이미 비행종들이 장악한 허공을 가로질렀다.
장수말벌을 베이스로한 전투형 비행종은 6개의 길쭉한 다리에 맹금의 발톱을 가지고 그녀를 붙잡아, 말아올린 꼬리의 독침으로 그대로 관통했다.
독침이라지만 황소만한 크기의 비행종이 가진 독침은 창이나 마찬가지.
"끅...끄윽.."
품에 안고있던 아이까지 관통해버린 독침을 회수한 비행종은 그대로 시체를 땅에 던져버렸다.
힘 없이 떨어지던 시체는 어지러운 싸움판 한가운데의 돌바닥에 부딪히며 산산히 부숴졌다. 오로테는 그 모든 광경을 눈으로 쫒고, 절망했다.
"으아아!"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른 그가 근처에 있던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너희는 대체 무엇이냐!!"
땅을 박차고, 지붕을 박차고 몸을 날린 그가 검을 적의 거대한 등판에 내리찍었다.
순간 발휘한 초월적인 힘으로 덤프 이상의 크기를 가진 채굴형 군단병의 머리를 단숨에 관통시킨 그는, 손잡이까지 박힌 검의 손잡이를 잡고 비틀거리는 몸 위에서 버티다가 완전히 무너져린 몸뚱이에서 검을 뽑아내었다.
"어서...피해."
그는 공격당하기 직전이던 이들을 보며 힘겹게 내뱉었다.
도망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시체에서 뽑아낸 검을 겨누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문양이 그 어느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와이트님이 늘 말씀하시던 성장인가.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는게, 이런 의미였던가.'
숨을 내쉰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새로운 적이 보였다.
꼿꼿하게 세운 척추, 가느다랗고, 동시에 날렵하며 탄력적인 몸.
4개의 팔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꼬리까지.
"검을 쓴다고! 짐승들 주제에!"
분노를 터트린 그가 고함쳤다.
정작 그를 상대하기 위해 온 상위종의 만능형 군단병은 오직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뿐.
4개의 검, 그리고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꼬리 하나가 정확히 그의 급소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흐윽.."
그는 4개의 검은 모두 막았지만, 휘어져 들어오는 꼬리에 한쪽 다리를 꿰뚫렸다.
'이딴 놈들에게.'
그는 고통을 눌러참고 자리를 지키고 서서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했다. 몸이 의지를 벗어나 그대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끄..아..."
꿰뚫린 그의 다리에서부터 검은 혈관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공기중에 뿌려진 것은 신목의 정화로 막을 수 있어도, 몸에 직접 주입된 것은 이길 수 없었다.
"흐.."
그러나 사태를 파악한 그는 오히려 히죽 웃었다.
동시에 군단병의 팔을 붙잡았다.
"내가 혼자..죽을 것 같으냐..."
그는 검은 혈관이 얼굴까지 번지는 순간에도 꿋꿋하게 정신을 잃지 않았다.
동시에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양을 과부하시켜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네놈은, 분명..대장.."
그리고 그의 몸이 그대로 강한 충격과 함께 폭발했다. 상위 군단병의 베리어를 부숴버릴 만큼의 충격.
두 형체는 동시에 육편이 되어 산산히 부숴져버렸다.
"너무 많아..!"
"이대로..아아악!"
제대로 충돌하자마자 달빛요정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군단의 계산 이상의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결국 그뿐.
오직 요정들의 비명과 고함만 들리는 이곳은,한때 가장 강한 힘의 전사라고 불리던 자가 처절한 혈투 끝에 상위종의 군단병 하나와 자폭한 자리.
그곳에 그들이 발을 디뎠다.
적어도 수십은 되는 이들이 각자 심장부에 있는 동력기관을 작동시켰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도시 중앙의 신목.
특수한 주문으로 보호 받고 있는 그곳을 함락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부숴라.'
명령이 떨어졌다. 꼬리가 없던 절반은 등의 갑각을 쫙 벌리더니 투명한 날개 한쌍을 꺼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물리법칙을 비틀 수 있는 형상력을 이용, 이제는 나는게 불가능한 신체 조건에서도 날 수 있었다.
나머지는 빠르게 땅을 박차며 땅을 내달렸다.
"놈들이...옵니다! 대족장!"
"자리를 지키세요. 우리는, 신목과 함께합니다. 그것이 동포들을 지킬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신목의 앞에 정좌하고 앉아있던 대족장이 손에 든 금강저를 움켜쥐었다.
과거 상당부분 유실된 조상들의 주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해독하여 사용할 재능이 있는건 아직까진 늙은 대족장, 그녀가 유일했다.
'놈들은 파도이고, 역병이며, 재앙이다.'
심호흡을 한 그녀가 금강저를 내리찍었다.
목표물은 지금 허공을 가로지르며, 마치 창과 같이 길죽한 무기를 들고 돌진해오는 놈들.
그녀는 지금 도시를 유린하는 수많은 괴물들이 굳이 이곳을 덮치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 주문을 부술 이들을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 날아오고 뛰어오는 저것들이고.
"죽어라 사악한 심연의 괴물들아!"
그녀가 발동시킨 주술이 터져나오며 응집한 마력이 마치 포탄처럼 쏘아졌다.
공중에서 멈춰선 상위종들이 서로 베리어를 공명시켜 포탄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그덕에 대족장은 시간을 벌었다. 이제 이렇게 하면, 더 버틸 수 있다.
'이제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마지막이자 유일한 희망이 아주 작은 개구멍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에게 도움을 청하러 나가는 것이다.
일단 목숨은 구하고 보는게 맞는거니까.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게. 저 끔찍한 괴물들을, 지상의 인간들이 묵과할리 없으니까!"
그녀는 함께 마력을 공유하며 주문에 힘을 보태는 주변인들을 독려했다.
정말 마지막 남은 희망이 바로 이곳이었다.
"대..대족장..."
"칼튼..."
그러나 그 희망, 지금 부숴졌다.
뒤를 돌아본 대족장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신목의 줄기를 뚫고 뿜어진 가지가 곁에 있던 원로 하나의 가슴팍을 관통한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군단의 감염력. 식물도 예외가 아니지]
"아..아아..."
그녀의 눈에, 실시간으로 으지직 거리며 내부부터 분쇄당하는 신목의 모습이 보였다.
그 신목의 줄기를 뚫고 튀어나오는 것은, 검고 뒤틀린 또 하나의 신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