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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61화 (61/254)

61화-얽히고 설킨(5)

"스승님이라는건 무슨 소리죠? 나라에서 손에 꼽는 헌터신데."

나는 모르는척 태연하게 물었다. 그 스승이라면 당연히 플레이어나 유닛이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아직 내 정체를 모르는 것 같다는게 더 신경쓰였다. 정말로 모르는건지 아니면 연기하는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만의 이능을 가지고 싸우는 헌터에게 스승이 있다는 말은 좀 안 어울릴 수도 있지만 정말입니다. 저희는 이번에 새로운 기관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성사되자마자 달려온 것이죠."

"새, 새로운 기관이라니요?"

"...격변과 변화에 속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저항할 힘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그런 기관."

그의 표정은 어딘가 초연해보였다. 나는 적어도 기만 같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꼭 모시고 싶으니."

그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

나는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사촌동생의 시신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듣자니 윤수아는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몰래 자원해서 왔다던가.

쉽게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인지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그래봤자 게임에 묶여 있다면, 결국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벌써 결심을 하셨습니까?"

그는 내가 다가가자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한번 들어는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기도 하고."

"현재 에볼루션 소속이신데, 혹시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셨는지 물어도 됩니까? 차지연, 그녀는 절대 평범한 헌터가 아닙니다. 저와 같은 불합리한 부류죠."

그는 몸을 돌리며 차지연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유닛인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볼 생각이었다. 스스로를, 불합리하고 칭하는 사람의.

"그리 짧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지창현은 내게 그 자리에서 어플과 게임, 플레이어와 유닛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미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가 눈여겨본건 그의 태도였다.

*

"..."

[그는 지금 좀 바쁘다. 알림을 보냈지만,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딱히 상관 없어."

바닥에서 육신의 머리만 내민 군단이 숨긴 육신을 다시 꺼냈다.

그동안 강도연은 미간을 찌푸린채 지금 군단에 수집되고 있는 정보를 분석했다.

군단은 마침내 대군체를 전부 소화시키는데 성공했고, 위로 올라가는 통로를 확보한 상태였다.

[현재 두가지 갈림길이 나타났다]

당연히 정찰활동이 이어졌다.

지금 그 정찰활동으로 인한 정보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첫번째 갈림길은, 우리가 벽을 부수고 넘어간 또다른 미궁의 존재다. 파멸균으로 가득하던 이 또다른 미궁의 상층부는 파멸균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특별한 주술로 막혀있다. 마치 36층계에서 스스로 통로를 봉인했던 달빛요정들의 주문과 비슷하다]

"또 다른 생존자? 분명 수많은 도시들이 존재한다고 했지."

군단은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아직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층부에서 연결된 또다른 미궁에, 절멸한 줄 알았던 달빛요정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남은 하나의 갈림길은 변종파멸균대군체가 몸으로 막고 있던 통로. 그곳으로 향했던 정찰병들이, 대체 왜 대군체가 스스로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찾아냈다]

"저게 뭐지?"

눈을 감고 정찰병의 시야를 공유하던 강도연이 중얼거렸다.

군단의 시선이 돌아갔다.

정찰병들이 탐사하는 47층계의 줄기층.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곳은, 파멸균이 없는 평범한 생태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곳에는 수십마리 이상의 '그것'들이 있었다.

생김새는 마치 큼직한 돌들이 붙어 만들어진 거인과 닮았다. 덩치 역시 가장 작은 놈도 3m를 넘어갔다.

특이한 점은 가슴팍으로 보이는 부분에 박혀 있는 빛나는 광석 하나. 군단은 그 광석이, 달빛요정들의 신석이나 군단의 동력기관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장치임을 알아차렸다.

"무기체를 엮어넣고 형상력의 흐름으로 동작시키는 일종의..."

"골렘이다!"

강도연이 단 한마디로 군단이 중얼거리며 특정하던 놈들의 정체를 압축시켰다.

"이제 알 것 같아. 왜 파멸균들이 싸움을 포기했는지."

[놈들은 무기체다. 주문의 힘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만약 힘과 숫자마저 밀리지 않았다면 파멸균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

파멸균의 싸움 방식은 감염, 그리고 변종들은 그 감염을 통한 동화와 흡수로 상대의 힘을 복제하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단지 그 모든 힘은 상대가 자신과 같은 생명체여야지만 가능.

상대의 전신이 그냥 돌덩이로 이루어졌다면 형상력의 개념을 모르는 파멸균은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짓눌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놈들은 절대 자연적으로 생긴 놈들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패배자의 사연 따위에는 관심 없던 군단은 다른 곳에 집중했다.

저 골렘들의 플레이어, 창조주, 신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 해답은 당연히 더 위에 있겠지]

"맞는 말이야. 군단장. 지금 당장 준비해."

둥지 전체가 꿈틀거렸다.

그동안 에너지를 비축하고 군단병들을 더욱 개량한 군단이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파멸균들이 넘어서지 못했던 무생물체 군단이라는 벽.

"우리는 이번에 저 돌덩이들도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플레이어의 영향을 받아 형상력의 개념을 습득한 군단에게는 생명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 벽을 부숴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작게 한숨을 쉰 강도연이 본인의 무기를 챙겨들었다.

전체가 검붉은 광석으로 이루어진 장검.

몇번의 개량을 거친 끝에, 섞거나 결합하는 것보다는 그냥 통짜로 만드는게 더 폭발적이고 강하다고 탄생한 무기였다.

"..."

이곳은 47계층.

파멸균을 청소하고 몰아낸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평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식생들은 먹고, 번식하고, 죽어가며 자신들의 본능을 다할 뿐. 이곳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골렘들은 파멸균이 사라진 이후 그 가동을 중단하고 극히 드물게 시험가동을 하는게 전부였다.

"...?"

그러나 마침내 지금.

미세한, 그리고 낯선 진동을 감지한 골렘들이 하나 둘 마력을 공급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은 상대가 이미 자신들에 대해 샅샅이 조사해갔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대규모 집단 생명체 발견-

놈들 중 하나 밑층계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을 발견했다.

집단으로 몰려오는 칠흑의 물결.

평범한 돌로서 지내던 놈들이 프로그래밍 된대로 순식간에 적의를 불태웠다.

상대가 파멸균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절멸 명령 수행, 모든 집단 생명체의 말살-

명령체계의 한계로 놈들은 파멸균만 골라 죽이지 못했다.

무리짓는 모든 생명체가 놈들이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순식간에 쿵쿵 거리는 진동과 함께 골렘들이 모여들었다.

놈들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그냥 명령 받은 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했다.

-말살-

모여든 골렘들이 질량과 덩치를 믿고 마구 달려들었다.

그 어떤 생명체도. 하물며 그 포악한 파멸균마저도 변종이 생겨나 통제할만큼의 무심함과 과격함.

"넘어뜨려!"

그러나 그들 이상으로 과격하고 거침없는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터져나갔다.

거대한 지저생물인 마계땅강아지를 베이스로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채굴형 군단병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골렘들이 디디고 있던 바닥을 날려버렸다.

골렘들이 감지한 이상한 진동은 이것이 원인이었다.

-대응방법 모색-

땅에 넘어지고 구른 골렘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에 날아드는 것은, 강도연이 날린 검붉은 참격이었다.

몸에 이식된 동력기관과 검이 공명하며 뿜어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골렘들의 주인이 놈들에게 심어둔 에너지와 같은 부류의 힘.

-대응...-

평범한 이빨과 발톱으로는 생채기도 내지 못하던 골렘들의 몸이 두부 잘리듯 베이고 터져나갔다.

'짓눌러라.'

군단은 기존과는 새로운 전술로 골렘들을 짓밟았다.

채굴형 군단병들도 그렇고, 동굴소를 베이스로한 돌격형 군단병등 그 크기와 무게가 골렘 이상인 대형종의 병사들이었다.

모두 군단의 개조를 받아 그 크기와 힘이 절대 이 동굴 생명체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수준.

그들은 지금까지 질량으로 승부를 보던 골렘들을 역으로 찍어누르며 제압했다.

[단순히 제압하는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놈들은 아파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걸 얻어야 한다는거고."

붉은 안광을 빛내던 강도연이 제압당해 버둥거리는 골렘의 가슴팍 위에 올라서서, 검을 겨누고 그대로 찍어내렸다.

그녀는 적출된 골렘의 동력기관을 회수했다.

그녀의 머리통만한 크기.

심장부에 동력기관을 이식한 다른 상위종 군단병들 역시, 각자의 방법으로 형상력을 이용해 골렘의 저항을 깨고 동력기관을 파괴하고 꺼내들었다.

'군단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굳이 따지자면 달빛요정들의 방식과 비슷.'

동력기관에 복잡하게 그려지고 새겨진 주문은 마치 과거 만났던 달빛요정들의 주술과 비슷했다.

즉, 역산하여 분석하는데 채 몇초 걸리지도 않는다는 뜻.

'보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겠어.'

"으극."

군단은 그자리에서 강도연을 비롯한 상위종 군단병들의 몸을 개조했다.

눈을 휘둥그레뜬 그녀의 손에서, 미세한 뿌리 같은 것이 자라나 들고있던 골렘의 핵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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