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얽히고 설킨(3)
"좀 세네?"
적의 검을 쳐낸 윤수아는 애써 웃었다.
그녀의 이능은 [절단], 말 그대로 검에 절단의 힘을 담아 내지르는 힘.
꽤 좋은 특성인 덕에 지금까지 검이 적의 몸에 닿기만 하면 그 공격력 자체에 문제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상대가 두른 마력 역시 그녀의 이능과 같은, 형상력이라는 것.
여지껏 싸워 온 그 어떤 마물도 이런 힘을 이용하지 않았으니 그녀는 처음 보는 유형의 적을 맞아 아슬하게싸우고 있었다.
"큭."
힘에서 밀린 그녀가 뒷걸음질 쳤다.
문제는 마물들이 강해진 지금 앞으로는 이런 싸움이 많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겨내야해.'
이른 악문 그녀가 땅을 박찼다.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물러설 수 없었다.
휘둘러진 커다랗고 검은 대검을 막아내고 몸을 숙인채 빠르게 파고들었다.
"하아앗!"
그리고 적이 미처 반응하지 못한 사이 검을 올려치며 그 흉갑을 길게 그었다.
절단의 이능이 터져나왔다.
적의 흉갑이 그 힘에 길게 그어지며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됐다!"
그녀는 자신의 승리에, 가능성에 확신을 가졌다.
흥분한 가슴이 쿵쿵거렸다.
"놈들이 더 온다!"
"놀이랑 코볼트다!"
윤수아는 주변의 외침에 저 앞에 자리한 빛나는 마법진을 바라봤다.
괴물들을 꾸역꾸역 토해내는 마법진. 자신감을 충전한 그녀는 군인들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그놈들 중 특별해 보이는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설...마 주둔지가 뚫리지는 않겠죠?"
"나도 몰라. 젠장 어째 제대로 풀리는게 하나도 없는거냐고."
포성과 총성, 그리고 고함소리가 끊이질 않는 주둔지 한복판.
현재 대기 상태인 로버트는 긴장되는지 줄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그 모든게 연합군의 예측을 매번 빗나가게 만드는 적들 때문이었다.
"생존자 구출이니 하는 명분이고 나발이고 그냥 미사일이나 핵폭탄 난사로 끝냈으면."
"이지경까지 되었는데 아직도 그런 속편한 소리 하지는 않겠지. 다만 지금 와서 그게 통하기나 할지 의문이다. 난 이제 저 괴물들이 총을 쏜대도 믿을 것 같거든. 이상한 마법들도 쓰는데 못쓸 것 같냐."
불안함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다스리려 애써봐도, 무서운건 무서운거였다.
[유닛소환권x1]
내 눈에 남들은 볼 수 없는, 내가 쓸 수 있는 최후의 한방이 떠올라 있었다.
문제는 이건 정말로 최후의 한방이었다.
지금 여기서 소환한다쳐도, 그 후폭풍을 생각하면 미친짓이었다.
정말로 내가 죽기 직전까지 가는게 아닌 이상 쓸 수는 없다.
주둔지 방어가 뚫린다던지.
"방어가..!"
"방어가 뚫린다! 엘리트 마물들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안좋은 일들은 어째 계속 들어맞는 것 같았다.
"후방으로 물러나자! 우리 목적은 자사 연구원들의 호위다!"
로버트는 그 즉시 연구원들을 데리고 주둔지 후방으로 빠졌다.
혼란은 점점 더 가중되고 있었다.
"좋아. 아파치가 다 쓸어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그 혼란은, 발진한 전투헬기들이 미사일과 기관총을 쏘며 앞으로 나서자 더욱 커졌고.
"..."
적진에서 뿜어진 푸른 광선들에 헬기들이 모조리 요격당하자 맥스를 찍었다.
나는 들고있는 총의 손잡이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군단은 언제든 너를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은 아니야. 아니여야만 해."
주둔지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군단의 힘을 빌리는건 옳지 못한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있을 수밖에]
"시끄러워."
이를 악물었다. 현실과 욕심의 타협.
나는 끝끝내 소환권을 쓰지 않았다.
전차들이 급한대로 길을 틀어막을 때도.
우회해서 쳐들어 오는 놈들이 주둔지 습격으로 흔들리는 포격을 뚫고 접근해오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가장 우선할 목적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내 목적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살아남는 것이다.
적들에게서, 그리고 군단에게서. 지금 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어그로 끌었다 일이 틀어지면 최악의 자충수였다. 더, 더 위험한 최악의 순간에 쓰고 싶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도 싸워야 할 것 같구만."
로버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몇 만명이 주둔하는 주둔지는 넓다.
방어력을 긴급히 투입한 정면도 밀리는데, 포병들이 위치한 좌우의 방어력이 정면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았다.
"놈들의 특수전력을 막을 헌터 병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가고 싶으면 가도 돼. 내가 수당은 확실히 챙겨줄테니까."
"예?"
콕스의 말에 대체 뭘 오해했는지 로버트가 내 등을 툭 건드렸다.
당황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건 내 업보였다.
여기서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군단에게 설명했던 가장 강력한 명분이 힘을 잃는다.
'그냥 나섰다고 거짓말해도 될 것 같은데...'
물론 망설여지는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군단이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내가 말해줘야 하는거니까, 속이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자신 있느냐]
그러나 내 유약한 마음은 눈앞에 떠오르는 글귀 하나에 혼쭐이 났다.
숨을 들이킨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꼭! 반드시 전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했고, 마물놈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나는 적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주둔지 좌측으로 뛰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단순히 군단만 관련있는게 아니라, 마물놈들은 내게도 원수였다.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 역시 단순한 명분 쌓기 따위가 아니였다.
*
[그는 아군과 합류하여, 습격해오는 적들을 맞아 싸우고 사람들을 도왔다. 정면에서 쳐들어 오는 검은 갑주의 적들에 비하면 다소 전력이 떨어지는 놈들이다. 형상력을 사용하는 특수전력 역시 미약한 강화주문 수준이었다. 놈들은 양측에 포격이 집중될걸 알고, 고의로 미끼로 쓸만한 약한 이들을 몰아넣은 것 같다]
"그는 지금..."
"오빠는!? 오빠는 괜찮은거야?!"
얌전히 중계를 듣던 중 결국 참지 못한 강도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으읍.."
군단은 좀처럼 안정하지 못하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입 부분만 생겨난 가면이 그녀의 하관과 입을 덮었다.
"감정의 격류를 해석할 수 있어. 흥분, 극도의 흥분, 안도, 그리고 다시 흥분. 지금 적 하나를 벤 거지?"
[그렇다. 들고 있던 총으로 병사를 공격하던 놀 하나를 쏴죽였다. 지금 그에게 몸에 형상력을 두른 놈 하나가 덤벼들었다]
"결과는."
[침착하게 뒤로 도약한 그가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치고 발로 걷어찼다. 놈이 들고있던 검을 빼앗아 그대로 내리찍었다]
"잘 싸우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어."
군단은 가면 속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군단은 그가 살아남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싸우며 강해지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강해지기 위해 싸우는게 아니었다.
"어째서?"
군단에게 싸움의 목적은 오직 성장, 그리고 포식뿐.
그렇기에 누군가를 구하고 돕기위해 싸운다는 개념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흘러드는 그의 감정으로 그가 진심임을 알기에 더더욱.
"읍! 읍읍!"
그때 강도연이 자기 입을 퍽퍽 두드렸다.
그걸 본 군단은 가면을 풀어주었다.
"싸움에는...꼭 한가지 종류만 있는게 아니잖아."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고? 어째서지? 약자는 도태되고, 잡아먹히는게 당연한 이치. 생명의 법칙인데. 미리 말하지만 내게 인간 따위의 생명 가치관을 강요하지 마."
"난 그런건 모르고, 어쨌든 오빠는 네게 가르쳐 주려는 거잖아. 자신의 생각을. 그것마저 무시할거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다만 남매가 함께 가르치려는 새로운 사상의 가치는, 군단으로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잘 모르겠다면 계속 지켜봐라. 그는 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운다]
"성장에는 하등 도움 안되는 짓...하지만 잘 모르겠어. 내가 훨씬 강해져서 그를 돕는게 더 빠를거야. 내가 모든 인간들을 잡아먹으면 그가 지킬 필요도 없잖아."
"그, 그건 오빠가 원하는게 절대 아닐거야. 슬퍼할거라고."
강도연은 필사적으로 군단을 설득하고 유도했다.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했으니까.
[부상자들을 돕던 그의 앞에, 유독 강해보이는 녀석이 하나 등장했다. 놈이 걸친 장비들이 예사롭지 않다. 손에 든 검날에 에너지가 공급되자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른 손에 든 장비에선 푸르스름한 에너지 역장이 펼쳐져 총탄을 방어했다]
"...다른건 모르겠고, 저 미개한 털복숭이들은 언젠가 전부 씹어 삼키고 싶어."
군단이 분노했다.
강도연은 그 분노는 말리지 않았다. 마물에 대한 분노와 혐오.
군단은 남매가 가르치려고 했던 것 중 하나는 어찌어찌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네가 준 제물을 사용했다. 개조한 신목의 힘으로 만들어낸 군단의 동력기관. 단순히 에너지를 방출할 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적은 방패째로 폭발에 으깨져 죽었다]
"더 줘야지."
자신이 준 무기를 이용해 난적을 죽였다는 소식에는 금세 히죽 히죽 웃었다.
다시 가면이 씌워질까, 강도연은 그 이후로는 눈치만 보면서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