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얽히고 설킨(2)
"크...크으윽.."
"통한다?"
화면을 보던 나는 감염체의 이상행동을 눈치챘다.
당연하다는 듯 미친듯이 달려들던 감염체가 자기보다 훨씬 거대한 군단병과의 충돌 직전, 멈춰서서는 어미 앞에 선 강아지마냥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파멸균 군체들은 군단의 군체의식처럼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라인이 있다. 변종인 대군체는 그것을 극대화하는 능력을 가졌지]
일종의 텔레파시. 군단은 그 능력을 그대로 가져왔다.
과거 군단이 달빛요정들이 관여한 수호정령들과의 싸움에서 겪었던 상황과 비슷했다.
수호정령들의 우두머리였던 그 나방이 영적인 공격을 통해 군단의 군체의식을 순간 끊어버린 것 처럼, 군단이 파멸균 군체의 정신체계에 침범하여 간섭하는 것이었다.
끙끙대던 파멸균 감염체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픽 쓰러졌다.
군단병들은 놈을 그대로 질질 끌어, 둥지로 던져버렸다.
[파멸균은 앞으로 우리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양분이 될 것이다]
둥지에 던져진 파멸균은 그대로 소화되기 시작했다.
변종과의 싸움으로 강화된 감염력은 이제 일개 파멸균따위는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신감응능력. 다른 방법으로도 쓸 수 있겠지?"
[아직까지는 활용 방법이 마땅찮으나, 당연히 가능할 것이다. 군단의 강대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정신감응은 강력하다. 대군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멸균 감염체들이 무지성으로 돌진해오는게 보였다.
군단이 또 하나의 무기를 손에 넣음과 동시에 새로운 양분공급처를 얻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정찰을 먼저 하겠지?"
[그렇다. 지금 정찰병들을 파견했다]
그동안 계속 지켜봐 왔으니 군단의 행동 양식은 나도 잘 안다.
내 생각대로 군단은 곧바로 탐색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정찰을 게을리 할 이유가 없었다. 군체의식을 활용한 동시다발적 실시간 정찰은 정찰활동의 단점을 모조리 커버할 수 있었으니까.
한때 작은 최하층의 공동에서 시작한 지도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지도 전부가 곧 군단의 몸, 둥지였다.
"지금 애들은 뭐 하고 있지?"
화면을 돌렸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걸 모르는 군단은 지금 자기 몸을 가지고 동생과 함께 있었다.
"이겼다!!"
"...다시 해."
지금 애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내가 하사품으로 넣어 준 카드.
역시 상대에게 아무리 뛰어난 두뇌가 있어도, 운에 기대는 승부는 강도연도 할만 한 것 같았다.
"알았어."
히죽 웃은 동생이 다시 카드를 섞더니 몇장씩 나누기 시작했다.
카드를 살피는 가면 속 안광이 반짝였다.
승부욕을 불태우는 그 모양새가 전투를 치룰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다.
[군단은 강도연이 보는 모든 것, 듣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진정한 승부를 위해 그 정보를 스스로 차단했다. 자존심 높은 존재이니, 강도연과의 카드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 꼼수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보기 좋은데."
[이것이 바로 네가 바라는 그림인가?]
"성장에 대한 광기, 나에 대한 집착. 그런 것도 다 좋지만 쉴때도 있어야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전문가도 아니고, 경험자도 아니다.
그건 지금 군단의 옆에 붙어있는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건, 군단에게 탐식 외의 다른 종류의 행복도 알려주고 싶다는 것.
정말 내 자식이라도 된 것처럼 신경쓰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내게는 자식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특이사항 있으면 말해. 예를들면 대체 저 윗층계에 뭐가 있었길래 파멸균대군체가 포식을 포기한건지. 아니면 새롭게 발견한 통로에는 대체 뭐가 있는지."
나는 거기서 화면을 껐다.
그 뒤 군단이 준 물건을 챙겨서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아...윤 중위님."
막사를 나왔더니 윤수아 중위와 마주쳤다.
군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이미 자신의 무장까지 완전히 마친 상태였다.
"전시니까요. 저는 군인이라."
"아아."
그녀가 피식 웃었다. 긴장한 것 같은 모습은 없었다.
"사실 어서 싸웠으면 해서요. 솔직히 시간 너무 끌리는거 아닌가요?"
적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이미 그 사연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드디어. 이야기는 계속 나오던걸요. 놈들이 먼저 움직일 수도 있다고. 그럼, 꼭 살아서 봐요."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이 임시 주둔지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사이렌 종류는 적습을 알리는 다급하고 빠른 박자의 붉은 빛.
"중위님!"
"네?!"
"혹시 싸우게 된다면 조심하세요. 절대 방심하면 안됩니다. 마법이든 뭐든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항상 경계하세요!"
나는 달려가는 그녀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다.
부디 알아듣고, 믿어주기를 바랬다.
"움직여! 놈들이 온다!"
"빨리 이리 와!"
나도 달려가는 윤수아의 반대로 달리며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달려갔다.
기다리고 있던 로버트는 내게 총을 쥐여주었다.
"혹시 모르니까."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총을 받았다. 그래도 여기 올때만해도 직접 싸울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물론 지금나는 총보다는, 품에서 굴리고 있는 광석의 힘을 더 믿었다.
*
"저 괴물들이 미쳤나..."
분기탱천한 연합군 사령부가 후끈거렸다.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는 적진에서 적들이 대놓고 진군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행군하면 곧 아군 자주포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러면 다른 방향으로 오는 낌새도 없습니다. 공중지원까지 갈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 태도가 너무나 당당해서 지휘부가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만하다 몇번 데여본 상태였다.
"혹시 또?"
"일단 우회하는 움직임은 걸리는게 없습니다. 열적외선, 음파탐지 모두 다!"
"...에볼루션에서 제공한 탐지기는?"
"그것도 문제 없습니다."
혹시 양동작전이 아닌가 철저히 대비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말로 저 마물연합군은 정면으로 똑바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 개자식들이!"
당연히 그들은 분노했다.
잠시 주춤한 이유도 상대의 신묘한 기술과 게릴라일뿐, 전면 힘싸움에선 밀릴리 없다는 전제는 그대로 깔고가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조금 당하기는 했어도 마물들에게 얕보였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었다.
"놈들이 갈라집니다! 정확히 사정거리 직전에서..!"
"그래봤자지. 지금 당장 포격합시다!"
연합군 사령부는 현재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진 자주포대를 먼저 움직였다.
주둔하고 있던 포병들의 포신이 일제히 적들의 좌표를 향해 방열되기 시작했다.
"쏴버려!"
그리고 지체없이 사격을 시작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번쩍이는 불빛들에 마물들이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155mm 포탄의 화력은 분명 놈들이 자랑하는 주문과 장비로도 부담스러운 일격.
곧 화면 전체가 폭발에 휩싸여버렸다.
"...결과는?"
"오 이런."
1차 포격의 여파가 사그라들었다.
예상대로라면 포격에 훤히 노출된 녀석들이 반절은 죽었어야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건가!"
사령관의 얼굴이 구겨졌다.
결과적으로 놈들은 꽤 많은 사상자를 남겼으나, 예상한 만큼 죽지는 않았다.
"지, 지금 정면에서 놈들이 돌진해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놈들의 움직임은 일종의 성동격서였다.
미리 대기하던 포격이 끝나자마자 놈들은 재포격이 이루어지기 전 그 짧은 시간 정중앙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건 설마...."
그 선두에 섰던 코볼트 하나가 히죽 웃으며 안광을 번득였다.
사거리가 닿자마자 시전된 공간도약진.
거대한 마법진이 전방에 펼쳐졌다.
그곳을 향해, 칠흑의 갑주를 입은 부대가 뛰어들었다.
그 도약진의 반대편은 주둔지 코앞.
단숨에 수십km의 공간을 뛰어넘은 적들이, 조금의 감속도 없이 맹렬하게 주둔지를 향해 돌진해왔다.
"다시 방열해서 포격을..."
"하지만 너무 가깝습니다! 그리고 놈들의 본대는 저 이상한 마법진을 쓰지 않고 이대로 돌격해옵니다!"
"일단 지금 당장 전 병력은 주둔지 방어를!"
사령부가 뒤집어졌다.
대기하던 병력들은 모조리 방어를 위해 지정된 곳으로 투입되었다.
"정 하사님. 저놈들이..."
"그냥 다 쏴버려! 쏴!"
현장에 배치된 병사들은 단숨에 이곳까지 쳐들어오는 적들에게 미친듯이 총탄을 퍼부었다.
기관총 집중사격 정도는 칠흑의 마력을 품은 놈들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유독 강력한 개체들.
전신에서 마력을 흘리는 그놈들은 불타오르는 검을 휘둘러 쏘아낸 마력으로 숨어서 총을 쏘던 병사들을 학살했다.
개인 화기로는 상대할 수 없는데다, 대형화기로는 잡기 너무 작고 날랜 적.
"다른 놈들 계속 쏴주세요. 저놈들이랑 1대1로 싸울 수 있게."
그때 누군가가 총탄을 씹어삼키며 돌진해오는 적을보고 절망한 한 젊은 상병의 방탄모를 손으로 짚고 타넘어 내달렸다.
이런 상황을 위해 대기하던 윤수아 중위를 비롯한 헌터들이, 각각 강한 적들을 맡아 상대하기 위해 각자의 이능을 폭발시키며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