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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54화 (54/254)

54화-군단VS군단(8)

"아..."

그것이 땅을 부수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거대한 괴물.

"으아악!"

내 정신을 일깨운건 누군가의 비명이었다.

나는 몸을 튕기듯 일으켜 뒤로 물러났다.

찰나의 순간 내가 있던 곳에 놈의 억센 손이 내리쳐졌다.

[놈이 사냥감을 정했다]

"나도 알고 있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글자를 신경쓸 틈이 없었다.

나를 향해 포효하는 괴물을 보며, 나는 서둘러 몸을 피했다.

동시에 내가 배운것을 운용했다.

천혼술을 이용한 신체강화. 짧은 시간 겨우겨우 배운 이것이 그나마 가진 능력이었지만 이것으로 저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유닛이야? 아니야? 그것만 말해!"

[시도해봐라]

유닛이 아니라면 척살권이 아니더라도 상대할 방법이 있다.

놈들의 등장으로 어느새 난리통이 되어버린 주변을 슬쩍 본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를 최소화하며 이런 순간만을 위해 아껴 온 것이다.

'제발.'

여러번 써먹을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만약 이게 안먹히면 조금 골치아프다.

그러나 다행히 내 걱정은 기우였다.

땅을 울리며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뿜어내던 괴물은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유닛이 아니란 뜻이었다.

[전송한 살아있는 표본 중 가장 크고 강한 놈이다. 군단이 놈을 사냥하는걸 봐라]

"됐어. 난 믿어. 그러니까 지금은 볼 시간 없다고."

나는 고개를 저어 화면을 치웠다.

지금 주변은 날 공격하던 놈이 뿅하고 증발했음에도 그 누구도 그걸 신경쓰지 못할만큼 난장판이었다.

[그렇다면 몸을 숨기고 안전을 도모해라]

"...그럴수도 없어."

[네 목숨은 네것만이 아니다]

"분명 맞는 말이지."

쓰게 웃은 나는 떨리는 다리를 움직였다.

숨으려고 움직이는건 아니었다.

"연결되어 있는 군단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 행동의 의미와 뜻을."

나는 공격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뛰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애초에 여기 부득불 따라 온 것도 미친 짓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신은...!?"

"어서 가죠."

총탄도 가볍게 무시하는 놈들도 결국은 살아 숨쉬는 생명이란건지 용병들이 쏜 최루탄은 질색하며 버둥거렸다.

나는 그틈에 사람들을 구했다.

어차피 내 능력으로는 놈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으니까.

저 갑각에 기스 하나 샐 수 있으면 대단한거겠지.

[무의미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지금 당장 피하는걸 추천...]

"그럼 네가 어쩔건데. 내가, 내 뜻대로 움직이겠다는데?!"

나는 떠오르는 글자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외국인이던 연구원이 한국어로 내뱉은 내 말을 알아듣진 못해 놀라서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군단이 나름의 가치관을 확립했다는건 인정해. 하지만 아직이야. 기회는 있어."

이건 사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군단이 지금까지 보이는 행보.

그리고 우리의 의지대로 열리는 게이트를 보며 든 상상.

나는 그것들을 통해 떠오르는 안좋은 생각들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군단은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결심한 것이다.

나의 행동을 통해 적어도 한가지만은 알아주길 바랬다.

인간을, 이 세상을 단순히 먹잇감으로 보지 않기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 인식하기를.

그렇기 때문에 군단이 나를 향한 집착을 유지하는 것도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좋아. 이 세상 이 우주의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본성을 위해 파괴와 살육을 이어가는 미친괴물군체보다는, 차라리 투정부리고 질투하는 어린애가 나아. 너는 군단이 감정을 가지고 자아를 가지게 되면 더 포악하고 파괴적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 다른 방법이 분명 있어."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렇게 행동해라. 무엇이 옳은지 언젠가는 알게될 것이니]

나는 대답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한방 먹일 줄 알았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답을 했다.

"아, 저기...!"

"여기 계세요!"

나는 안전한 곳에 부축한 연구원을 두고 다시 땅을 달렸다.

한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 단순히 군단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었다.

10년전, 아버지를 무참히 죽인 괴물들에게서 우리 가족을 구해준 이들이 있었다.

이제 내게도 힘이 있으니 나도 그때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의외로 저 괴물들과 맞서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덕에 틈이 생겼다.

"...군인?"

허공을 박차며 손에 든 검을 휘두르고 있는건 분명 군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생각나는게 하나 있었다. 나라에서 헌터들을 모집해 창설한 헌터특수부대.

분명 그 사람일 것이다.

"정신차리세요 J. 지금 옮겨드리게요."

그 사이 남은 연구원들을 대피시킨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용병에게 달려갔다.

주변에 핏물이 흥건했다. 그의 상반신 한쪽이 심하게 뜯겨나간 상태였다. 순간 패닉이 찾아와, 내 손은 어쩔 줄 모르고 허공을 방황했다.

"난 이미 늦었어."

"하지만..."

"역시 초짜는 초짜군. 사람 죽는거 처음보나."

그는 죽어가면서도 힘없이 웃었다. 그러고서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로버트에게 내 가족을 봐주겠다던 약속이나 잘 지키라고 말해줘. 그 양반은 결국 살아남을 테니까. 그리고...기억해. 이런 일은 흔해."

"압니다. 저도."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고..."

내 팔을 잡았던 그의 팔이 힘이 빠져 툭 떨어졌다.

그의 눈에서 점차 생기가 사라지는 모습, 나는 분명 보았다.

"가서, 도와줘. 다른 사람들."

"...네."

그리고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의외로 충격은 적었다. 아니 적은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달렸다.

[군단은 이미 강대한 존재가 되었다. 고작 네가, 그런 존재를 계도할 수 있다고 드느냐. 플레이어라고 유닛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나는 거대한 뇌 같은게 없어서 그런거 모르지. 그냥 하는거야."

오히려 내가 나서야 한다는 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나는 그 이후로도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잡아끌고, 총을 들고 놈들의 주의를 끌며 시간을 벌어주었다.

"좋아! 후퇴하자. 후퇴!"

누구 것인지 모를 피로 피투성이던 로버트는 내가 다른 이들을 다 대피시켰다고 말하자 유탄발사기를 집어던지고 후퇴하라고 소리쳤다.

"아, 이런 씨발."

"큭..."

그런 우리 앞을 한놈이 가로막았다.

우리는 저절로 뒷걸음질 쳤다.

지금 이렇게 마주선 상황에서 저놈에게 맞설 방법이 없었다.

"끼이익!"

그때 나타난게 그녀였다.

괴물의 뒤에서 튀어올라, 손에 든 검을 놈의 머리에 정확히 찍어내린 군인.

"전부 피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괴물을 피해 달리는 사이, 나는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

"아무튼 다시 준비하고 있으라고. 쓸모없는 유탄 같은 것 보다는 최루탄이 더 효과있으니 그것들 더 챙겨야지."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로버트는 내 어깨를 툭 치고 밖으로 나갔다.

예상외의 상황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바둥거린 것 치고는 의외로 내 평판이 꽤 좋아졌다.

그래도 절박하게 뛰어다닌게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로버트도 무능하다 욕하기는커녕 이제 나를 초짜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려 하지 마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쫄리냐?"

이 잠깐의 틈에 나는 군단의 모습을 확인했다.

내 뜻이 전해지기는 했는지 몰라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라져. 도태된 무쓸모한 쓰레기."

"..."

그리고 화면에서 날 맞이해주는건 변종파멸균과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군단의 모습이었다.

그 압도적인 모습은 그렇다치고, 나는 군단이 지금 굉장히 흥분하고 들떴다는걸 알 수 있었다.

"그, 그럴 수 있지."

잠시 골이 띵해져서 눈을 꿈벅거렸으나 금방 이해했다.

일단 변종파멸균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명백한 적이었으니까.

"모든걸 먹어치우고 더, 더 올라가야."

다만 전쟁에서 승리한 군단이 저 위를 보면서 중얼거릴때.

나는 결국 동생을 호출했다. 저건 단순한 호승심이 아니었다.

내게도 군단이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 흘러든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피가 끓었다.

이건 분명한 광기였다.

이래서는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할 것 같았다.

...그건 안 된다. 나는 이미 결단을 내렸다.

그러니까 군단은 앞으로도 계속 내게 집착해야했다. 나만을 봐야했다. 내 통제를 벗어나면 안 된다.

"다친데는? 다친데는 없어?! 얌전히 도망이나 가지 왜 나섰어!!"

"후, 그래. 난 괜찮아."

겨우 진정한 나는 군단이 자기 육신을 후다닥 숨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건넸다.

강도연은 그간 있었던 내 말을 전해듣자마자 화를 내듯 소리치며 내 걱정부터했다.

"괜찮으니 진정해, 그리고 나보다 더 심하게 구른건 너잖아."

"난 괜찮아. 이제 사람도 아닌걸. 최근에 느꼈어. 나 이제 촉수로 밥먹으면서..."

"아니. 넌 사람이야."

자조적으로 웃는 녀석에게, 순간 얼굴이 굳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몸이 무슨 상관이야. 그런건 상관없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변하든 결국 자기 생각이 중요한거지."

나는 이번에도 동생과, 군단 모두에게 말을 전했다.

의도는 내가 굳이 사람들을 구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말한 것과 같았다.

그저 듣기 좋은 소리라고 욕먹어도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내 뜻을 알아주길 바랬으니까.

과연 알아들었을까? 제발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본인이 거부하는데 그럴수도 없고.

"그, 그런데 있잖아. 중간 즈음에 오빠 감정이 또 한번 흔들리던데."

그때 잠시 눈치를 보던 동생이 화제를 돌렸다.

이제는 척보면 척이다. 이건 군단이 지시한 말이었다.

"호감을 느낀거? 별거 아니야. 아까 말했잖아. 위기의 순간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그 사람들에게 느낀 감정일 뿐이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설명했다.

최대한 사람들의 도움을 어필했다. 그저 한명의 인간인 나에게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그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군단이 설령 질투를 느낀다 한들, 정말 언젠가 이 지구에 도달하더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차마 그들을 넘보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그들은, 내게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들이야."

졸지에 성자스런 발언을 해버렸지만 꾹 참았다.

멍하니 서있던 강도연의 얼굴이 미친놈을 보는것처럼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흥미로운 소리를 하고 계시네요."

그때, 나는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을 하며 눈앞에 펼쳐진 어플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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