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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50화 (50/254)

50화-군단VS군단(4)

"모든 거점에서, 주둔지를 구축하는 작업이 끝났다더군."

평소 태평하던 로버트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그럴수밖에 없다. 어수선한 준비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면 우리도 임무를 수행해야 하니까.

"곧 작전이 시작되고 병력들이 움직이겠지. 우리가 맡은 임무는 알고 있듯이 에볼루션 소속의 연구원들을 호위하는 일이다."

에볼루션은 유닛 집단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일부인 하나의 회사이기도 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주력인 스텝 업 헌터 외에도 산하의 연구원들도 이곳에 파견했다.

우리는 그들의 경호를 맡았다.

"전투 끝나고 시체쪼가리 뒤지는 일이라 널널할 것 같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지. 그러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라고."

"정말 마계라고 부를만한 곳이죠."

우리의 시선이 밖으로 향했다.

해가 떴는데도 오직 돌과 흙먼지뿐인 이 광활한 황무지에 깃든 척박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설마 전부 이러겠냐. 걔들은 땅파먹고 산다던."

그때 굉음과 함께 발진한 무인 정찰기들이 일제히 하늘을 가로질렀다.

군단과 같다. 정찰은 모든 행동의 기본이었으니까.

하물며 생전 처음 발디디는 세상이라면, 물러섬이 없는 군단도 진군을 멈추고 탐색부터 할 것이다.

"정찰이 끝나고, 미리 세워둔 작계 중 하나가 시행된다."

"솔직히 지구도 아니고, 핵폭탄 같은거 막 쏴버리면 좋을텐데."

"일단 명분 중 하나는 납치당한 사람들 구출인데 그러겠냐."

정찰기들이 하늘로 날아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우리가 나설 일은 없었다.

나는 멍하니 출발하는 차량들을 바라보았다.

차지연과 크리스를 비롯한 중요 헌터전력들도 저기 섞여서 출발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질까요? 그동안 문제가 된건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지 못한다는거였지,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이야 민간인들 상대로 기습하던 놈들이지만 지금은 이쪽도 군대가 나서는데."

단원 중 한명, 콕스라는 사내가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근거가 없는건 아니었다.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분석한 결과에서도 군대와 군대가 붙었을 때 화력은 지구의 군대가 적들을 압도한다고 나왔으니까.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예전의 멍청한 마물들이라면 그 말이 맞겠지만 최근의 놈들은 좀...달라."

로버트의 감이 꽤 좋았다.

나도 낙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닛이라고 추정되는 마물종만 십수종이 넘어갔다.

유닛이 어디까지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는지 봐왔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었다.

[그렇다. 성장의 가능성. 그것이 바로 유닛과 플레이어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다. 사소한 변화와 계기가, 증폭제가 되어 폭발적인 성장을 끌어낸다]

휴대폰을 꺼내보이기 힘든 지금 상황에, 내 눈앞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글자들이 주르륵 나타나고 있었다.

화면이 돌아갔다.

군단은 여전히 변종파멸균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세상을 멸망시킨 존재들을 청소하는 일이다.

끝없는 소모전인건 기존의 파멸균들과 똑같았지만, 변종들은 한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키이이..."

날렵하고, 가느다란 몸체.

"캬아악!"

4개의 팔에 달린 큼직한 갈고리 발톱과, 휘둘러지는 채찍같은 꼬리까지.

차이점은 치명적인 독소를 머금은 타액을 질질 흘리면서 괴성을 지르는 것과 갑각의 색이 회백색이라는 것 정도.

차지연과의 일에서는 흠칫했지만 다행히 군단은 다른데 신경쓸 겨를 없이 지금 굉장히 바쁜 상태였다.

[군단의 만능형을 그대로 카피한, 그러나 분명 다른 미친 괴물이다]

놈이 휘두른 갈고리 발톱으로, 상대하던 만능형 군단병 하나를 베어내고 닥치는대로 물어뜯었다.

"이런 미친..."

팔다리를 가진 만능형 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끔찍한 종양 덩어리 같았던 변종파멸균의 모습이 전투를 지속할수록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기준은 다름아닌 상대하는 군단병들이었다.

다양한 4발 짐승을 베이스로 한 돌격형부터, 허공을 가로지르는 비행종, 독가시나 산성탄등을 뿜어내는 포격형까지.

저놈들은 미친 괴물들이었다. 군단과의 전투를 반복하며, 군단이 가진 모든 것을 역으로 흡수복제 해나갔다.

반면 군단은 놈들에게서 훔쳐올게 없었다.

놈들은 군단에 비하면 애초에 아무것도 없던 놈들이었으니까.

[이제 군단이 놈들에게 앞서는 부분은 동력기관을 이용해 형상력을 사용하는 상위개체들 뿐이다]

뿜어진 검붉은 에너지 파동이, 달려들던 변종파멸균 감염체 십수마리를 일격에 태우고 날려버렸다.

검을 통해 그 에너지를 뿜어낸건 가면을 쓴 강도연이었다.

놈들이 녀석을 향해 포격을 날리자 곁에 호위하듯 서 있던 두 만능형 군단병이 자신들의 방어막을 가동해 공격을 막아주었다.

...그러나 이내 동생의 팔에 붙어 있던 광석이 그 빛을 잃고 툭 떨어져내렸다.

군단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동력기관을 이용해 형상력을 조금의 딜레이, 계산 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저 방법은 계속 충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압도적이었던 교환비의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있다. 군단이 적의 전체적인 규모를 모름에도 소모전을 건 것은 이 압도적인 교환비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잖아."

[맞다. 지금의 군단은 본디 뒤가 없는 존재다. 패배하면 그 즉시 전력이 약화된다. 싸우고, 그리고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그 어떤 적을 만나도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던 군단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동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에 의해서.

'내가 뭘 해야 하지.'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지금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내가 뭘 해줘야 한다.

"변수."

나는 홀린듯이 중얼거렸다.

군단은 이미 그동안 얻은 데이터들을 이용해 최적 최강의 군단병들을 갈고닦았다.

여기서 한단계 더 성장하려면, 새로운 표본이 필요했다.

내가 괜히 여기서 이러는게 아니었다.

군단에게 도움을 줘야했다.

*

"킁.."

마치 개를 닮은 코가 킁킁거려졌다.

굉음을 내는 비행체 하나가 저 높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과거였다면, 그들이 멍청한 하나의 짐승이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것이 새가 아니라 누군가 조작하는 기계장치임을 알고 있었다.

[이미 협정은 맺어졌다. 우선 가장 거슬리는 존재들을 청소한다. 이제 계획대로 움직인다]

그들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선두에 있던 녀석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번득이는 안광과 전체적으로 하이에나를 닮은 것 같은 두상.

구부정한 자세로 2족보행을 하는 그들은 한때 지구인들에게는 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하급 마물들이었다.

"우리, 이름, 아슈크루드."

그러나 굉장히 멍청하다는 편견과는 달리 날카로운 이가 돋은 주둥이에서 분명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으르렁거린 녀석이 손목에 찬 장치를 작동시켰다.

동시에 주위로 흐릿한 역장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장치는 그들의 신이 준 하사품이다.

흐물거리는 역장에 덮인 그들의 모습이 점차 주변과 동화되어 지워지기 시작했다.

"이동."

그 상태로,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들은 이미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으니, 적들을 미리 기다렸다 덮쳐드는게 그들이 할 일이었다.

손에 쥔 반달검이 번득였다.

"이상 없음. 별다른 움직임도 없습니다."

"좋아."

본대가 한창 이동하던 때, 무인기를 통제하던 통제실.

이곳 사람들은 무인기가 관측하는 적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었다.

"규모가 꽤 크긴 한데 허접한 놀들의 부락 수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미사일 몇 발 꽂아주고 싶은데. 닭잡는데, 아니 개새끼 잡는데 소잡는 칼 쓸 수는 없지."

지휘관이 낄낄거렸다.

솔직히 방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물들과의 전쟁은 이미 여러번 논의되어 온 사실.

변변찮은 무기도 장비도 없는 마물들에게 현대 화기로 중무장한 현대의 군대가 전면전에서 진다는건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어?"

어디까지나 지금까지는.

화면 안에서 무언가가 순간 반짝였다.

그리고 그때, 쏘아진 번쩍이는 광선에 화면이 암전되었다.

"준, 준장님..?"

하급 장교 하나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벌어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정찰기가 격추되었소."

그나마 현실을 짚어준건 곁에 같이 있던 타국의 장교였다.

"큰일났습니다!"

"본대가 습격당했습니다!"

"동북쪽 120km방향! 무언가 거대한 집단이 갑자기 나타나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행군하고 있답니다!"

게다가 정찰기가 격추된 직후, 급한 소식들이 연달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알잖아 크리스. 놈들도 분명 계획이 있었겠지."

우선적으로 점령할 포인트의 반도 못가서 일이 터졌다.

차지연은 손에 쥔 병을 품에 챙겼다.

플레이어의 하사품이자, 언젠가 닥칠 위기를 타파하는데 쓰일 물건이었다.

[놈들은 유닛이다. 일단 싸워라]

플레이어의 명령도 떨어졌다.

그녀는 그 즉시 차에서 내렸다.

"..."

그 순간 무언가 그녀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맨손으로 잡아챘다.

손이 욱신거렸다.

쏘아진 것은, 통짜 강철로 만든 묵직한 화살.

"쏴! 쏴버려!"

"대체 정찰을...커헉.."

사방에서 총성이 미친듯이 들렸다.

간간히 날아드는 저격에 방탄모와 방탄복이 뚫려 사망하는 군인들이 늘어갔다.

함께 움직이던 기갑 부대의 포신이 불을 뿜으며, 은신 상태로 소리소문 없이 움직이던 적들을 향해 포탄을 쏘아댔다.

"저것 좀 봐 크리스."

"...저놈들이 엘리트들이군."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큼직한 방패를 들고 타오르는 에너지로 기관총탄을 모조리 튕겨내고 있는 한 놀.

놈은 각력을 터트리며 땅을 박차더니, 기관총 사수를 쳐죽이고 방패의 끝으로 전차를 내리찍어버렸다.

"가자."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인해 주변은 아비규환이었지만 눈을 빛내는 그녀는 침착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 전투 양상이었다.

플레이어와 유닛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변수와 다각화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이것을 플레이어의 명령대로 연합군 상부에 조심하라고 꾸준히 건의했지만, '게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일개 마물 따위가 강해질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그녀의 말을 그리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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