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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49화 (49/254)

49화-군단VS군단(3)

[증식감염변종파멸균소군체: 6N1535]

"...이게 그놈들 이름이라고?"

[그렇다. 기존의 파멸균과는 아예 다른 종류다]

"소군체라는건 무슨 뜻이지?"

[군단의 분석에 의하면, 놈들은 이제 막 제대로 된 군체의식에 다가서고 있는 놈들이다]

듣자니 상당히 골아픈 놈들이었다.

변종파멸균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오랜시간 성장을 지속해온 파멸균으로, 변이의 원인은 다름 아닌 동족포식이라고 추정한다고 했다.

[극단적인 휴면에도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양분 섭취가 불가능해져 결국 동족포식을 반복하며 변이체가 탄생했다. 변이체들은 기존에 하나의 파멸균 군체가 지배하던 육신을 두개. 세개의 군체가 함께 지배하게 되며 육체가 뒤틀리고 끔찍하게 변형된 것도 그탓이다]

"왜 지들끼리는 또 안먹고?"

[변이를 거치며 놈들도 진화한 것이지]

변종파멸균은 자기들끼리의 동족포식은 그만두었다고 한다.

대신 다른 파멸균 감염체들을 잡아먹으며 버텨왔다.

물론 또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되진 않은건지.

"이길 수 있는거지?"

나는 혀를 차며 화면을 바꾸었다.

전쟁이 한창이다.

그 한중간에,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가면을 쓰고 안광을 번득이며 검붉은 힘이 깃든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차마 쉽게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24시간 이상 쉬지도 않고 싸우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그건 아직 모른다. 분석에 따르면, 지금 상대하는 놈들은 결국 소군체일 뿐이다. 소군체보다 더 발달한 대군체의 등장 가능성도 항상 염두하고 있다. 무엇보다 군단이 비축한 에너지가 점진적으로 우하향을 그리는 중이다. 더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 방법을 찾거나 추가적인 보급이 필요하다]

"하, 지금은 좀 힘든데."

나는 귀를 기울여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고성과 고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물론 나한테 하는 소리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찔리는게 사실이었다.

"오빠 괜찮은거 맞지?"

"지금 나보다는 네가 더 걱정이야."

"나, 난 괜찮아."

강도연이 전선에서 잠시 이탈했다.

전적으로 군단의 배려였다.

"고맙다는 말 전해줘. 어, 알아들을수도 있잖아?"

"응."

눈가리고 아웅이다.

그래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육신은 인간의 육신조차 아니고, 가면덕에 정신적 피로도도 괜찮다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수척해보이는 얼굴에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넌 알잖아. 내가 동생을 전투에서 빼달라고 하면, 군단이 수락할까? 그 뭐냐...책사 같은 역할로 쓸 수도 있잖아."

[과연 그럴까? 지금 군단의 입장에서, 강도연을 군단장으로 부리는건 전혀 문제될게 없다. 탐식을 통한 성장은 군단이 가진 이상이다. 그것은 심지어 너에게도 적용되는 대전제이며, 강도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군단의 품 아래 죽음에서 자유로우며 끝없는 싸움을 통해 무한히 강해질 수 있다. 그것이 군단에게는 지극한 상식이자 세상의 법칙이다]

"젠장."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유닛들을 봐왔다.

그들의 관계는 플레이어나 유닛을 가리지 않고 천차만별이었다.

서로 의지하는 든든한 동지, 어느 한쪽의 장기말, 보살핌 받는 소중한 존재 등등.

한가지 확실한건 모종의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단순한 말로는 강제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군단이 내 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한들, 그걸 자기 입맛대로 곡해해도 내 입장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것이 이미 기초적인 가치관을 정립한 군단에게는 당연한 정답일 테니까.

그러니 다른 방법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감도 안잡혔다.

"그걸 노리고 시간을 끈거겠지. 개자식."

[동생에게 더 남길말은?]

...지를 욕할때는 시치미 뚝 떼고 못들은 척이다.

"근데 어떻게 하는거야? 거기 와이파이 돼?"

"당연히 안 되지. 어플의 힘이래."

강도연의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급조한 막사들이 자리한 이곳은 연합군이 1차적으로 점령하기로 결정한 주둔지.

지구와 연결된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지금도 병력 배치 및 막사 건설등이 한창이었다.

"찍어서 보여주고 싶기는 해."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곳이 그 끔찍한 마물들의 본거지라는건 차치하고,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어쨌든 우주복도 필요 없는 이세계에 발디딘 것이다.

있는거라고는 척박한 기암괴석뿐인 땅에 밤인데도 불구하고 충분히 밝을 정도의 무수한 별빛과 달빛.

나는 무슨 판타지 세상에 나오는 것 같이 3개의 달이 함께 떠있는 모습에 잠시 말을 잃었다.

"보고싶다. 하늘."

"...하늘을 보고 싶다고."

나는 순간 움찔했다.

동생은 말 못하겠지만, 과연 하늘을 보고 싶다는건 누구의 바람일까.

벌써 몇 주간 동굴에서 살고 있는 강도연인가.

아니면 단 한번도 저 높은 하늘을 본 적 없는 군단인가.

"그런데 휴대폰 배터리 다 달면 어떡해?!"

"걱정 마. 직전에 방법이 생겼으니까."

군단이 파멸균과 처음으로 전투하여 승리할 즈음.

내 계정 레벨이 5를 달성했다.

사실 레벨이 늘어봐야 보내줄 슬롯과 지급 가능한 먹이의 양이 늘어나는 것 뿐이라 별로 신경 안쓰고 있었다.

그러나 레벨 5를 달성한 순간, 한가지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제부터 휴대폰이 없어도, 네 각막을 이용하여 어플을 이용할 수 있다]

"으아아악!"

처음 그 기능을 사용해 봤을 때.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지는 대형 스크린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군단의 모습에 엉덩방아를 찧었었다.

"...애초에 휴대폰 뺏기면 아무것도 못하는게 말이 안되긴 했어. 게다가 외계인들은 휴대폰 안쓸거 아니야."

"그건 다행이네."

"또 뭐 할말 있어?"

할 말 없냐는건 동생에게도, 동시에 군단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군단과 직접 소통하고 싶었다.

단지 본인이 거부하니 이렇게 간접적인 방법을 쓸뿐.

"그게..."

녀석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저게 군단의 뜻을 전하는거라는걸 눈치챘다.

*

"어째 심심해 보이는군."

"그야...아무것도 안하니까요?"

"주둔지 건설이 끝나야 뭘 하든말든 할테니. 안전한 집은 있어야 하잖나."

카드를 만지고 있던 로버트가 낄낄거렸다.

나는 영 불편한 눈으로 밖을 바라봤다.

지금도 뼈빠지게 일하는건 군인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우리 막사에서 그냥 하는 일 없이 쉬는게 끝이었다.

"우리 일은 유사시 싸우는 일이지, 삽들고 땅파는 일이 아니라고. 애초에 우린 군인이 아냐. 돈 받고 할일하는 용병이지."

"그, 그렇군요."

용병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건지 뭔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도 그냥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으나 오래 있지는 못했다.

차지연이 나를 호출했다.

"읭? 그 번개녀가?"

"예. 일단 가보겠습니다."

"별일이군. 우리 임무는 그 번개녀랑..."

눈을 동그랗게 뜬 로버트는 별일이라는 반응이었지만, 또다른 단원 스니키가 그에게 히죽이며 속삭였다.

그러자 로버트나 나를 보며 입꼬리며 눈꼬리를 한껏 치켜올리고 히죽 웃었다.

그 표정을 보자니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단단히 하는 것 같은데.

"잘 갔다오게. 거, 너무 티내지는 말고 크흠."

"...이상한 오해 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진짜 프로인 사람입니다."

차지연의 성격을 아는 내게는 얼토당토 않는 오해였다.

그녀는 분명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

그러나 며칠간 같이 지내봤지만 진짜 아무런 헤프닝조차 없었다.

바쁜 사람이었고, 집에서도 늘 수련에만 힘쓰던 사람이었다.

박준석은 그걸 보고 감히 쳐다보지 못할 존경심이 들정도였다고 하니.

"보고 싶어서 불렀어요."

그러나 그녀의 막사에 찾아간 순간 뜻밖의 말을 들어야 했다.

"수련의 성과도 봐야하니까. 개인 단련은 계속 하고 계시죠?"

"아?! 아 예. 그럼요."

"그래도 역시 좀 편한 것 같네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를 비롯한 에볼루션 인원들은 따로 움직인다고 들었다.

분명 플레이어의 지시일 것이나, 어쨌든 그걸 위해 동분서주하는게 그녀의 일이었다.

"편하다니요?"

"저는 불과 얼마전만 해도, 미숙한 24살짜리 C급 헌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대규모 작전에서 따로 움직일 분대로 빠질 정도가 되었죠. 솔직히...대통령이니 사령관이니 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갖는것도 어색하고 힘들어요."

"...그렇네요."

자꾸만 망각한다. 그녀는 나보다 고작 1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올해 대학을 졸업한 내 여동기들보다 1살 많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또래인 신우씨와 이야기 할때면 좀 편했어요. 박준석씨도 29살이긴 한데 좀 심하게 능글맞아서."

"그럼 이제는 말 편하게 하실래요?"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사실 그동안 서로 깍듯하게 예의차리면서 말하는게 신경쓰이기도 했고.

하지만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얼굴을 보니 괜히 먼저 말했나 싶어 흠칫했다.

"...그럴까?"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을 놓았다.

그 모습에 나도 슬며시 웃었다.

이정도 되면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분명 호감을...

[군단이 네 감정을 알아차렸다]

"푸흡."

그러나 갑자기 눈앞에 홀로그램마냥 떠오르는 글자로 인해, 나는 헛기침을 하며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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