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군단VS군단(2)
"...그가 두려워 하고 있어."
"그래. 나도 느껴져."
"그리고 깊은 원한도 느껴져."
"오빠는 그날 이후 마물들을 혐오하고 증오해왔어. 우리 가족을 파탄냈으니까."
"감히..."
분노가 끓었다.
외부에서 유입된 감정이 아닌. 군단이 스스로 느끼는 강렬한 분노.
군단 전체가 동요했다.
"진정해. 오빠는 지금 게이트를 넘었고,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있잖아."
강도연이 나서서 군단을 달랬다.
군단은 곧 이성을 되찾았다.
강도연 스스로가 군단이 자신에게 바란 점이 이런 점임을 알고 있었다.
"맞아. 그를 만나려면...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해."
"마, 만난다고? 만나서 어쩌게?"
"...몰라."
군단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경우가 아직까지는 꽤 많았다.
분명 알고 있는데도 자신의 이성과 감정이 서로 따라잡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
이제 어느정도 지식을 쌓은 군단은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쌓은 지식과, 동원할 수 있는 연산력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고 자아가 부실하기 때문이었다.
"이래서는 효율이 좋지 않아."
군단의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자아가 생겨버린 탓에 비효율을 겪는 것이었다.
그것을 줄이기 위해 써먹으려는게 강도연 같은 서브마인드들.
하지만 군단보다 '어른스러운' 강도연도 아직은 결국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17세 소녀일 뿐이었다.
[정찰병들이 계속해서 요격당하고 있다. 역시, 놈들은 발달한 지능과 연락망을 갖고 있는게 확실했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지? 가서 놈들을 상대해."
"...알겠어."
생각을 전환한 군단은 다시 다른 곳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위해 사지에 뛰어들었다.
그러니 반드시, 자신도 성과를 봐야만 했다.
"그으으으..."
어둑한 통로, 구슬프면서도 어딘가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사방으로 퍼진 군단의 정찰병들이 놈들의 모든 모습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공유했다.
[평범한 파멸균 감염체와는 다르다. 그 외형도, 행동 양식도 데이터와 다르다]
40층계 이상에서 하나 둘 조우하기 시작하는 파멸균 감염체들.
그러나 그 모습들이 하나같이 이상했다.
분명 달빛요정들을 비롯해 동굴의 생명체들을 감염시킨 놈들이기에, 과한 종양이 생기거나 신체의 일부정도가 변형되어 있는게 전부였다.
"이게 무슨..."
하지만 놈들은 달랐다.
분명 달빛요정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데 머리로 보이는 무언가를 가슴팍에 달고 있거나 팔다리가 기괴한 갈고리로 바뀌어 있거나 등등.
변이의 정도가 원형을 해칠 정도가 되어 있었다.
[분명 포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었다. 윗층계의 감염체들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위험하여 선조들이 반드시 피하라 했다고]
놈들은 징그러운 외형에도 불구하고 다른 감염체들에 비해 적극적이었다.
정찰병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촉수를 뻗거나 손을 휘두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잡아먹었다.
[알 수 있다. 저 특이한 변종파멸균들은, 지금 잡아먹은 정찰병을 통해 군단의 유전정보를 조작하려들고 있다. 군단이 유전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상대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감히.'
군단은 당연히 격노했다.
다른것이라면 모를까, 유전자 조작과 분석은 군단이 가진 자부심 중 하나였다.
미개하고 불완전한 것들을 먹어치우고 분석하고 결합하여 발전하는 것이 바로 군단이다.
지금 저 변종파멸균은 군단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름 없었다.
"죽이라고."
강도연은 이를 악물었다.
가면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그녀도 어느정도 성장했고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검을 뽑아들었다.
심장에 박힌 동력기관이 에너지를 뿜어내었다.
심장, 양 팔, 양 다리.
그녀의 몸에 박힌 군단의 동력기관은 무려 5개.
심장에 하나씩 가진 다른 군단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으로, 그녀가 땅을 부수며 박차올랐다.
"그...아..아아아아!"
[접근을 알아차린 감염체가 군데군데 달린 입으로 추정되는 기관에서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는 커다란 갈고리발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징그럽고 기괴한 모습에 결국 동요한 강도연의 얼굴이 절반 정도 가면으로 덮였다.
동시에, 검붉은 기운을 폭발하듯 뿜어낸 검에서는 에너지가 참격의 형태로 뿜어졌다.
"으아..."
강도연은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자신이 뿜어낸 일격이지만 본인도 이정도일줄 몰랐다.
이번이 동력기관을 이용한 첫 전투였기에 군단에게도 데이터가 없었으니까.
뿜어진 참격은 2m 이상 되는 덩치를 가진 감염체를 반으로 가르고 바닥까지 크게 베어 십수미터 이상을 긋고 나서야 사그라졌다.
"징그러."
그러나 감염체는 그 즉시 죽지않았다.
반으로 갈린 몸뚱이에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거나 기어서라도 그녀를 공격하고자 다가왔다.
[다른 감염체들이 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어딘가 이질적이다]
공동, 아니 일대 전체가 진동했다.
이를 악문 강도연은 땅을 기어오면서 갈고리 발톱을 휘두르는 적을 다시 한번 베었다.
결과적으로 다진 고기가 되어버렸으나 그럼에도 숨을 완전히 끊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군단은 놈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결정했다]
곧 괴성을 지르며 미친듯이 달려오는 변종감염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군단도 그에 맞서기 위해 병력을 보내었다.
어차피 감염체들과의 전쟁은 이제 익숙하니까.
"읏?!"
그녀가 순식간에 날아든 무언가를 고개를 틀어 피했다.
쏘아진 것은 커다란 독침 같은 뼈가시.
분노한 군단이 마찬가지로 독가시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쉽지 않을지도.'
강도연은 물론 군단 전체가 직감했다.
지금 저렇게 맹렬하게 몰려드는 적들은, 어쩌면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적들보다 강할지도 모른다고.
군단이 앞으로 땅을 박차고 감염체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면 충돌한 첫 충돌에서 강도연은 다시 한번 참격을 전방으로 쏘아냈다.
[정예 군단병들이 각자의 출력을 끌어올렸다]
그래도 군단은 이미 또 한번의 도약을 마친 상태였다.
[공명과 증폭. 이것은 우리가 달빛요정들의 신목에서 가져 온 능력]
어느새 얼굴 전부를 가면으로 덮은 강도연을 비롯, 선두에서 내달리던 군단병들의 몸 앞에 검붉은 에너지가 응집해 방어막이 되었다.
[파멸균의 가장 오랜 숙적이던 달빛요정들. 그들의 마지막 유산으로 놈들을 제압한다]
"끄륵..."
"키엑!"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에너지 역장에 부딪힌 감염체들은 그만큼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튕겨나갔다.
독침과 산성액 등등.
변종파멸균의 감염체들이 가진 다양하고 끔찍한 공격수단들은 이 에너지 역장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장 안에서 공격하는 군단병들의 공격은 놈들에게 틀어박혔다.
다양한 구성과 크기로 된 검은 물결이 약간의 주춤거림 끝에 다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공격성도, 능력도 기존의 파멸균과는 비교할 수 없다]
둥지의 한복판, 군단의 병사들이 전투를 지속하는 사이.
군단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중소형의 일부 병력을 이용해 전장에서 생산되는 파멸균 감염체의 조각들을 계속해서 둥지로 운반했다.
"감히 군단을 자신들의 일부로 변형시키고 잡아먹으려한 건방진 놈들."
동시에 군단의 영양분이자, 분석하여 알아낼 대상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묘한 분노까지 섞여 있었다.
"분해하고, 소화한다."
꿈틀거리는 살덩이들을 향해 군단의 촉수가 자비 없이 덮쳐들었다.
촉수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군단의 소화액.
점액에 들어찬 수많은 세포들이 대상을 약화시키고 새포단위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희생물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분해, 해체당한다.
"...?!"
[하지만 이번의 적은 애초에 우리가 만난 생물들 중 유일하게 세포단위 전쟁이 가능한 놈들이었다. 놈들이 공격을 가하던 군단의 세포들을 역으로 잡아먹어가기 시작했다]
소화를 진행하던 군단의 둥지가 빠르게 굳어가며 동시에 뒤틀리기 시작했다.
변종파멸균이 내뿜는 독소에 군단이 밀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가장 먼저 감염시킨 군단의 세포를 이용해 양분 조달 체계를 점령했다.
투입한 에너지는 오히려 놈들의 배를 불려주었고, 그덕에 파멸균은 군단 내부에서 암세포처럼 무한히 증식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전체가 놈들에게 당한다. 그 무엇이든 잡아먹는 포식자인 군단이 역으로 잡아먹히는 것이다]
탐식은 군단의 타고난 본질이자 본성.
그것을 부정당한다는 것은 존재의의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아니."
그러나 군단은 이미 모든 계산을 마쳤다.
동시에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다.
"발톱과 이빨만 키워서는 부족하네."
그동안 군단병들의 강화에만 신경쓴 것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본인의 능력에 감히 대항할 수 있는 적을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경험으로 삼아 대비하면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것이 군단이 내린 결론이었다.
군단은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둥지 내부에 새로운 형태의 공격을 시도했다.
마치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가느다란 조직들이 감염된 조직내에 강제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뿌리들에서, 강한 에너지 파동이 연쇄적으로 뿜어져 주변에 있던 모든 세포들을 사멸시켰다.
"형상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
군단병들에게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을 준 또다른 힘.
군단의 신목은 이미 가장 넓은 줄기층의 한가운데에서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 힘이 굳이 눈에 보이는 전투에만 쓰이라는 법은 없었다.
가면 속 눈이 반짝였다.
본인을 강하게 만들어줄 지식을 향한 갈망 역시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