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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47화 (47/254)

47화-군단VS군단(1)

"기초라도 확실히 익힌다면 눈 먼 공격에 죽지는 않을거라고...생각해요."

"솔직히 긴장하셨죠?"

"흐, 네."

차지연이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나도 억지로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긴장해서 이대로 돌이 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지금 우리는 짐을 다 챙겼다.

우리는 전쟁터로 간다. 가서, 괴물들과 싸울 것이다.

"여."

기다리고 있는 사이, 짙은 선팅이 된 승합차 한대가 멈춰섰다.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큼직한 덩치를 가진 젊은 백인 남자가 선글라스 쓴 눈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미리 말해준 동료이자 같은 소속의 유닛 크리스였다.

"타죠."

우리는 바로 차에 올라탔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현재 그들은 기존의 S급 헌터들이나 탑급 연예인 이상인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그런 사람들이, 수행하는 사람 하나 없이 직접 차를 몰고 다닌다니.

"그래, 이쪽이 네가 얘기한 그 뉴비?"

"우리 소속이 아니야. 선은 지켜."

"소속이 아니어도 함께 전장에 간다면 그딴거 없지. 게이트 방어전에서 예의차리는거 봤어? 거기, 내 말 알아듣나?"

크리스가 바로 뒷자리에 앉은 나를 흘끔거리며 히죽였다.

"들립니다."

나는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그래도 영어공부를 놓지 않는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좋아. 설마 말도 안통할까 걱정했는데."

그는 마음에 든다는 듯 휘파람을 불더니 속도를 더 높였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

바로 연합군이 집결하고 있는 군부대였다.

"신분증 잘 들고 있으라고. 그리고 옆에 딱 붙어 있어. 에볼루션 소속이면 괜히 귀찮은 일 없을테니."

바글바글 몰려든 언론사와 군장병들의 가족등으로 집결지 인근부터 북적거렸다.

수차례의 위병소와 검문을 프리패스로 통과한 우리는 더 깊숙한 곳까지 달렸다.

"동아시아의 연합군중 일부는 이곳에서 출발해요. 이곳을 포함 전지구 67개의 거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쳐들어가는게 계획이죠."

"저기 저 사람, 너 찾는 것 같은데?"

"후, 대통령비서실장 민준용...일단 다녀올게요."

혀를 찬 그녀가 중간에 내렸다.

외국인인 크리스와 단 둘이 남는다는게 살짝 긴장되었지만, 겉으로는 높은 사람들도 서슴 없이 만나는 그녀가 놀라웠다.

하긴 요 며칠 같은 집에서 생활했지만 그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강함도 강함이지만, 국내에서는 유일한 에볼루션과의 링크니까.

"듣자니 자원한거라던데. 플레이어가 정체까지 밝히면서 허락할 정도면 뭐 다른건 볼 필요 없겠고. 이유는 듣고 싶거든."

그때 차를 세운 크리스가 시동을 끄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몸을 뒤로 돌렸다.

"우리야 뭐...알겠지만 나름 받은 것도 있고. 근데 그쪽은?"

"음, 복수라고 하죠."

나는 미리 생각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동생은 멀쩡히 살아있지만 어쨌든 공격당한건 팩트였으니까.

"그렇군. 그 SF스러운 놈들에게. 그래서 복수하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참전했다라."

그는 동생 이야기를 듣자마자 태도를 바꾸고 눈치를 보았다.

아무래도 괜히 물어봤다 싶은 모양새였다.

"어...일단 원하는 바를 꼭 이루길 바라지. 내가 아까 같이 전장에 간다고 했지만, 사실 나나 차지연이나 같이 싸울 일은 거의 없을거야. 다른 사람들이랑 차분히 경험을 쌓아."

"명심하죠."

"이제 내려. 준비하자고."

우리도 차에서 내렸다.

주변엔 진짜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가득했다.

자의로 참전한 헌터들도 몇몇 보였다.

내가 크리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에볼루션 관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야기 들었다. 그...뭐냐 강.."

"강신우입니다."

"난 그냥 로버트라고 부르지. 이쪽은 스니키."

날 알아보고 맞이해준 관계자란 에볼루션에 고용된 용병들이었다.

내가 맡은 임무는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사실상 경비 및 경호.

딱 원하던 종류의 임무였고, 동시에 그들과 함께 맡게 된 임무였다.

"헌터라며? 능력이 뭐지?"

"그냥 육체강화 계열입니다."

나는 호기심에 모여든 그들에게 내가 배운 것을 보여주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이 초짜인 나와 함께 일을 맡은 이유도 내가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좋군. 역시 그냥 몸쓰는게 최고지. 괜히 이상한 불꽃놀이나 할줄 아는 놈들은 쓸모가 없어. 하지만."

로버트는 낄낄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그 거칠고 주름진 얼굴을 굳혔다.

"제일 중요한건 정신머리야. 온갖 허풍 다치던 놈들도 막상 총탄이 날아들고 시체가 늘어나면 울며불며 엄마나 찾는다고. 자네는 어떤가."

"...전 이번 원정에서 꼭 얻어야 할게 있습니다. 제가, 홀몸이 아니라서."

그 깊은 눈에 나는 진심을 담아 답했다.

과연 정말로 알아주긴 했을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검은뱀과 함께 하게 된걸 축하하네."

혹시나 했던 시비 같은건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지금 우리는 실전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프로였다.

"실상 후방에 빠져 있을 확률이 높은데, 그래도 불안해 미치겠네."

[위기가 닥치면 부딪히고, 부숴버리고 짓밟는게 군단이 아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가끔은 그런 모습을 배워보는게 어떠냐]

"너까지 그러는거야?"

슬쩍 뒤에 빠져있던 나는 휴대폰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하긴 녀석도 결국 군단의 성장을 바라고 있으니 이렇게 말하는거겠지.

[널 믿으니까 하는 소리다]

"웃기네."

게다가 오늘따라 혀도 길었다.

*

"모두 물러서!"

"시간 없어! 비켜!"

부대 한복판, 빠르게 날아 온 헬기 하나가 착륙하더니 누군가가 거기서 후다닥 뛰어나왔다.

"이봐! 케이지!"

"꾸물댈 시간 없다고! 24시간 안에 전 지구를 다돌아야 하는데!"

선두에서 달리는 사내는 다른건 다 무시하고 미리 준비된 장소로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넑직한 공터로, 바로 게이트를 열기로 결정된 곳이었다.

"정말 괜찮은겁니까?"

"이미 12개나 열고 왔거든. 토할 것 같으니까. 이것들 좀."

그는 여러 중진들과 함께 달려 온 차지연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마나석들.

게이트를 여는데 쓰이는 물건들이었다.

"...알겠어요."

그녀는 서둘러 그것들을 챙겨, 정해진 위치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긴장한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 효과는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주저 앉아서 헉헉거리는 저 히스패닉 사내는 플레이어에게 유일하게 공간조작의 주술을 전수 받은 존재.

그는 지난 몇시간동안 북미 동부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여기까지 오며 커다란 게이트를 12개나 열어젖혔다.

게이트는 그동안 헌터들의 상태창과 함께 지구의 인류가 그 실마리를 조금도 밝혀내지 못했던 것.

신이 주신 기적이라는 상태창과 함께 종말의 재앙이라던 그 게이트가, 어쨌든 지금 인류의 손에 의해 열린 것이었다.

"뭣들 합니까. 어서 준비를!"

다만 멍청히 감탄하고만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이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리자마자 내부로 들어가 거점을 구축하는게 제일 먼저 수행되어야 할 임무였다.

"...이럴수가."

"공간이 갈라진다."

그리고 머지않아,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쩍 하고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말을 잃고 지켜보기만했다.

"다음! 다음은 상해였나!?"

헥헥거리던 케이지만이 서둘러 다시 헬기로 향할 뿐이었다.

'저 기술을, 만약 군단이 알게 된다면. 당장 지구로 오겠지.'

그리고 서서히 넓어지는 게이트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우는 휴대폰을 쥔 손을 덜덜 떨었다.

군단이 가진 집착은 알고 있었다.

만약 저런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지금까지 봐왔던 군단병들이 지구로 쏟아져 내린다면.

[군단이 지구를 점령하는걸 원치 않는다면 지금부터 잘 가르쳐라]

그의 목울대가 휴대폰에 떠오르는 글귀를 보고 꿀꺽 움직였다.

"이제 움직여! 정신 바짝 차려라!"

"아아, 여기는 시조새..."

사방에서 군용 장비들의 엔진이 쿠르릉 하고 울리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자원자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편성된 한국군 1개 사단을 비롯, 주변 국가에서 모집된 군단급 규모의 1차 연합군이 게이트를 향해 포신과 궤도를 향하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저희도 이동하죠."

차지연과 크리스를 중심으로한 에볼루션 한국지부도 함께 움직였다.

차량에 탄 다들 말이 없었다.

겪을 것 다 겪은 헌터나 용병도, 이런 대규모의 전쟁은 처음이었기에.

"저들을 봐. 평범한 군인들이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원해서 이 원정에 참여했다고 하는군. 모두들...마물들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이들이니까. 최근에 워낙 날뛰어야지."

신우는 로버트의 말에 곁에서 달리는 차량을 바라봤다.

그들은 동남아에서 온 군인들. 그들의 얼굴이 비장했다.

그들만이 아니라 한국군 역시 대다수의 병력이 자원한 이들이었다.

'마물들에 대한 원한.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에게 마물들은 원래 쳐죽여야 할 적이었다.

말그대로 원수였으니까.

단지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로 잠시 잊었던 것 뿐.

이제는 힘도 명분도 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로버트씨도 마물들이 밉습니까?"

"아니? 난 돈이랑 사람이 더 무서워. 아직까지는. 뭐 이번 원정에서 그 생각이 바뀔수도 있고."

로버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차량은 흐물거리는 게이트로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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