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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46화 (46/254)

46화-살아남기 위한 투쟁(6)

"신석을 이용한 형상력의 활용. 하지만 달빛요정들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 신목에서 나온다고 했어."

군단이 주력을 잠시 재정비 하는 사이.

나는 강도연이 이동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생존자들의 본거지였던 이곳.

그곳에는 이제 단 하나의 생명만이 남아있었다.

"느껴져. 이 어린 신목에도 힘이 깃들어 있어."

"...혹시 군단은 그것마저 이용하려는건가?"

동생이 천천히 나무를 쓰다듬는사이, 내 눈은 주변에 널브러진 말뚝들에 향했다.

복잡한 조각이 새겨진 채 신목을 감싸고 있던 말뚝들이다.

듣기로는 플레이어의 하사품이라고 했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과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 플레이어는 마지막 하나 남은 자기 유닛이 우리 군단에게 고문 받으며 정보를 토해내고 죽는걸 어떻게 바라봤을까.

마지막 생존자가 죽으면, 본인도 죽는데.

[두려워하지 마라. 군단이 그걸 느끼고 있다]

"이런."

나는 서둘러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른 감정들은 그렇다쳐도, 군단에게 약한 모습만큼은 보이기 싫었다.

"우리는 이 신목을 먹어치울거야."

"가능해? 어...나는 지금까지 군단에게 살아있는 식물을 준 적은 없어."

군단의 선택은 예상대로였으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떼었다.

지금까지 식물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저 척박한 이세계의 동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 따위 내 주변에 없으니까.

"만약 식물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중엔 광합성으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몰라. 어쨌든, 군단은 이미 결정을 내렸어."

신목을 쓰다듬던 강도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뒤에서는 군단의 둥지가 촉수와 육벽을 뻗어오고 있었다.

[달빛요정들의 신목이 가진 힘. 힘의 공유와 링크를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발달시키고 있는 형상력은 또 한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게 군단의 판단이었다]

"형상력..."

나는 둥지에 의해 서서히 소화당하는 신목을 보며 중얼거렸다.

헌터들의 이능 역시 그것과 같다지만 알게 된지 얼마 안된 개념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몸 조심해."

"어? 아, 알았어."

가겠다고 말만 전했지만 사실 끄지는 않았다.

나는 잠자코 휴대폰을 지켜보았다.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던 동생 곁에, 어느새 나타난 누군가 쪼르르 다가왔다.

"사용법을 알려줘."

그것이 입을 열었다.

뒤에서는 하사품으로 주었던 공기계를 발톱으로 집어들고 날아 온 비행종이 공기계를 그것의 손에 툭 떨어트렸다.

나는 거기서 휴대폰을 껐다.

"특이사항 있으면 알림 반드시 보내."

[당연하다]

확실하게 말 안해두면 또 빈틈을 찌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단단히 말해둔 뒤, 방문을 열었다.

마침 차지연이 들어오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 지구의 주류는 차지연씨가 속한 에볼루션 같거든요."

"무슨 뜻이죠?"

"그냥 한번 생각해본거에요. 어, 그러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

간소한 식사를 진행하는 사이.

평소 자기 방에서 조용히 지내던 박준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박준석씨의 유닛들은 어떤 이들이죠?"

나는 그틈에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질문했다.

다행히 그는 히죽 웃으면서 갑자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귀여운 이들이죠?"

그 속에 있는건 캡쳐된 사진들이었다.

그의 유닛들은 전체적으로 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족보행하는, 흔히 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형태의.

일단 사는 곳이 동굴은 아니었다.

"정보를 남기는건 그리 좋지 않아요."

"그건 알지만, 어차피 제가 죽으면 아무 의미 없는거 아닙니까."

차지연은 신중하게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플레이어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숨어든다 쳐도 차지연씨 처럼 어떤 이들은 찾아낼 수 있을 능력도 갖추고 있고."

"...그래서요?"

"아마 다른 플레이어들도 서로 뭉쳤을 것 같은데. 유닛을 포함해서. 그런 놈들이 가장 경계하는건 역시 가장 강한 세력이겠죠?"

그의 말은 뼈가 있었다.

결국 서로 죽여야 하는 유닛과 유닛은 본질적으로 절대 뭉칠 수 없다.

그래서 차지연이 속한 에볼루션은 가장 강력하고 규모도 큰 이 세상의 지배자인, 일반인들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 행위는 분명 다른 유닛들에게는 경계심을 품게 될 행위였다.

"제 플레이어는 생각이 있겠죠."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내게 자신은 장기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한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견제가 들어온다해도, 이번 원정을 막지는 못할거에요."

"그렇...겠죠? 이번 원정 뒤집어지면 전세계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건데."

나는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 뉴스에선 한가지 이야기밖에 안떠들었다.

전세계 주요국의 연합군이 에볼루션의 주도로, 역으로 게이트를 열고 마물들의 본거지를 친다는 것.

그동안 전 지구에서 벌어진 약탈행위에 이미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유닛 집단이라도 일반인들을 적으로 돌릴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유닛들과 싸우는 것도 바쁠테니까.

"일단은, 우리 모두 거기서 살아남는것만 생각해요."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단순히 살아남는걸로는 만족 못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그곳에 가는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니까.

"아, 전 돌아오실 때까지 얌전히 숨어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홀몸이 아니라서."

박준석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진짜 얼마 안남았다.

스스로 전쟁터에 뛰어들 때가.

*

[달빛신목: 3n1699]

"신목이..."

"이 생명체는 근처에 있는 품고 있는 형상력을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공명시켜 증폭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진짜 힘은 따로 있어."

39층계 줄기층의 한복판.

이미 둥지화가 거의 진행된 이곳의 한가운데에, 검은 껍질을 가진 나무 하나가 바닥의 육벽에서부터 자라난 상태였다.

나무는 벌써 묘목을 넘어 어린 나무 수준으로 커가고 있었다.

강도연은 고개를 젖혀 자신보다 커진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저게 설마."

"맞아. 저것이 이 나무의 진정한 힘."

그녀의 눈이 커졌다.

군단의 개조를 받은 이 나무는, 전과는 달리 단 하나의 이파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라 비틀어진 것 같은 가지 끝에서, 붉은색의 무언가가 맺히더니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군단은 에너지를 집중시켜 그것의 성장을 가속시켰다.

어느새 갓난아이 주먹만큼 커진 그것이, 툭 하고 떨어져내렸다.

강도연이 그것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검붉은 광택을 가진 투박한 광석이었다.

"신석."

"새로운 군단병은 에너지의 형태를 가공하고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흡수한 영양분을, 형상력이 담긴 신석으로 바꾼다거나."

군단이 새로운 군단병들을 호출했다.

완전히 새롭다기 보다는 기존의 군단병들을 약간 개조한 것.

강도연은 자신에게 다가온 만능형 군단병의 몸 속에 심장처럼 박혀 있는 신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군단은 일부의 병사들을 정예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시도했다.

"우리 군단만의 새로운 동력기관이지."

움찔한 그녀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사실 이미 그녀의 몸 속에도 신석이 들어있었다.

이 신석은 달빛요정들의 유산에서 얻은 가장 좋은 품질의 물건이었지만, 이제 군단은 그런 신석을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

군단병 하나가 다가와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을 본 강도연이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받았다.

"가장 강한 검."

군단의 갑각에잘게 부순 신석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특별한 검.

그것이 그녀의 심장을 대신하는 신석과 공명하여 검붉은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앞으로 전진할때다]

"...알겠어."

명령을 수신한 강도연이 결국 몸을 돌렸다.

에너지가 부족하다.

군단의 덩치가, 뇌가 커지고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을수록 필요한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무엇이든 먹어치워야했다.

[군단의 검이 전쟁을 위해 떠났으니 군단의 뇌도 할 일을 해야하지 않느냐]

"이미 봤어. 그리고 기억했어. 전부 다."

군단의 발톱이자 이빨인 군단병들이 쉼없이 움직이는 사이.

군단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배터리가 다 닳기 전에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외워야 한다.

하지만 군단의 뇌는 이제 일개 휴대폰 따위보다는 훨씬 거대하고 빨랐다.

[그래서, 원하던 지식은 전부 얻었더냐]

"아니."

군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에 닥치는대로 담겼던 과학책들, 인문학책들, 공학책들 등등.

찰나의 순간 스캔하듯 전부 읽고 외워버렸지만 군단에게는 지금 당장 그리 끌리는 것들이 아니었다.

기계공학도, 과학기술도, 철학도 지구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자신에게는 그저 참고자료일 뿐이었으니까.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이나 먼저 요청했던 성경이 더 흥미가 있었다.

그와 자신이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가 곧 신화라고 믿고 있었다.

"그치만 정작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아."

[...]

일단 지금 대부분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군단도 그가 자신의 동생에게 한 말을 들었다.

그게 사실상 자신에게 한말이라는건 눈치 못채고 단지 좋은 정보를 얻었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쉽게 답을 내리긴 힘들었다.

"아름답다는게 뭐지?"

가면을 벗은 군단이 스스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강도연의 얼굴과 완전히 같은 얼굴.

분명 강도연은 수려한 외모로 주변에선 유명한 편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상대'는 그녀를 예쁘다고 생각하긴커녕 그냥 같이 사는 생물체 1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군단의 입장에서 강도연의 얼굴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더 많은 데이터.'

결국 군단이 내린 결론은 전과 다를게 없었다.

더 많은 데이터를 쌓아서 새로운 몸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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