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살아남기 위한 투쟁(5)
"다른 방법이요?"
"가령 지난번에 만났던 고블린은 웬 불덩이를 쏘던데..."
"확실히,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죠. 헌터들의 상태창도 마찬가지인걸요."
수련을 봐주던 차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긍정했다.
형상력, 그것을 위한 수많은 방법들.
나는 군단이 원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기로 결정했다.
"가령 천혼술은 본인의 혼이 일정 역량 이상 받쳐주지 못하면 배울 수 없습니다. 일개 고블린들이 이 주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들에겐 나름의 방법이 따로 있겠지요."
"알것 같네요."
순간 내 머리에 군단이 스스로 찾아낸 방법이 스쳤다.
분명 군단에게는 천혼술이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군단의 영혼은 강대하지만 하나이기에, 여러개로 쪼개게 되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그 대신 찾아낸 방법이 신석, 차지연은 마나석이라고도 부르는 특수한 광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제 플레이어는 형상력을 발현시킬 때 위력 즉, 출력 만큼이나 효율과 신속함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천혼술은 그 모든 조건을 부합한다고 덧붙이면서."
"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것도 사실 미리 들었다.
군단 역시 다양한 요소를 결합한 조건을 따져가며 방법을 찾았다고.
에너지가 깃든 광물인 신석을 신체에 결합해서 사용한다는 개념이 그런걸 고려한 군단이 스스로 개발한 것이었다.
어쩌면 군단만이 사용 가능한 방법일수도 있겠다.
스스로의 몸에 돌들을 박아 넣는다는게 쉬운게 아니니까.
"한번 배운걸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다른 생각은 집어 넣어야 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녀에게 배운 것을 발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녀의 플레이어가 본 것은 군단의 영혼인데 내가 과연 될까 싶은 마음은 다행이 기우였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느껴진다.
그것에 집중하고, 배운대로 움직이려 시도했다.
"눈을 뜨세요 신우씨. 성공했어요...!"
차지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새 내 몸 주변에, 희미하게 빛나는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기초를 익히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제 플레이어가 탐을 내고 있네요."
"탐을 내요? 뭘요?"
그녀는 말 없이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순간 움찔했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이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다.
"동생분을 해친 놈들에 대한 정체를...알려주겠대요."
"뭐라고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내 예상을 부수는 말이었다.
차지연은 플레이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꺼낸 동생 이야기에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그냥 말해주겠다는겁니까?"
"플레이어는 신우씨가 놈들에 대해 분노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이건 뜻밖의 수확이다.
차지연은 내 상처를 후벼파는 것 같아서인지 미안해하고 있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해주세요. 이야기."
나는 괜찮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우주에 인간종은 저희만 있는게 아니래요."
"...그렇겠죠? 온갖 외계인들이 다 나오는데."
따지고보면 오크나 고블린도 외계종족이니까.
이런 마당에 다른 세상에 사는 또 다른 인간이 산다고 못믿을건 없었다.
"잠깐, 혹시 그 슈트와 총등이 전부?"
"저희 플레이어가 부르길, 우주 어딘가에 인간연맹이라 부르는 강력한 하나의 세력이 있다고 해요."
차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인들이 상상하며 영화, 만화 소설등 다양한 매체로 그려 온 고도로 발달한 인간종.
그런 이들이 정말로 실존하며 그들 중 하나가 지구인들 중 몇몇을 유닛으로 거느린 플레이어다.
나 같은 놈도 플레이어인 마당에 너무나 말이 되는 개연성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가 말하길, 그들은 오랜 세월 서로 다투고 주변으로 탐욕의 손길을 뻗치는 등 매우 악독한..."
"그 부분, 좀 악질적이네요. 플레이어는 결국 개인일 뿐인데."
"그런 것 같아요."
플레이어의 말을 쭉 읊어주던 차지연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모를거라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고, 그녀의 플레이어는 정말로 그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플레이어는 개인. 플레이어가 속한 집단의 성향이 어떻든 플레이어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하나의 정신이나 신념을 공유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인간종이라고 한 이상,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제 동생을 사냥하려든 놈들은 당연히 증오스럽고 쳐죽이고 싶지만, 그것을 그 플레이어가 속한 집단까지 확장시키고 싶진 않습니다."
일단 너무 위험하니까.
애초에 내 가장 큰 목적은 일단 살아남는거다.
차지연도 현명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고려하긴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예?"
"만약 플레이어가 자기가 아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발설하여 자기가 속한 집단을 움직이려 한다면."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게임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이들이 이 게임판에 집단으로 끼어들어 깽판을 놓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마치 지금 게이트 너머로 마물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원정을 준비하는 지구 각국의 연합군처럼.
그걸 주도적으로 이끈게 바로 차지연이 속한 플레이어의 유닛집단 에볼루션이었다.
"에볼루션은..."
"서로 이득이 있으니 움직이는거겠죠."
차지연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녀를 비롯한 스텝 업 헌터들이 정보를 공유하고도 별 문제 없는 이유.
그들 하나하나가 강한 헌터기도 하지만, 일단 각국 정부나 협회등 세력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아군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오늘 수련 끝난거야?"
"그래. 성과를 좀 봤지."
차지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휴대폰을 켰다.
아니 사실 킨지 조금 되었다.
몰래 켜서, 군단과 동생을 좀 지켜보다가 말을 건 것이다.
군단은 이번에도 내가 온다하니 서둘러 육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뭐 필요한거 없어?"
"필, 필요한거?"
"뭐 예를들면 책이라던가."
나는 그냥 대놓고 말했다.
군단과 동생의 대화를 엿들으며, 군단이 지식에 목말라 한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동생은 자기가 보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당연히 믿지 않았다.
애초에 책이라곤 만화책 밖에 안읽던 애였다.
"맞아...혹시 좀 보내줄 수 있어? 뭐든."
"어렵지 않지."
"그, 근데 꼭 보내줘야 할게 하나 있어."
그런데 내가 미처 모르던게 있었던 것 같았다.
강도연의 얼굴이 어째 어색하고 묘했다.
"뭘 보내달라고...?"
"성..경."
동생이 땅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의 ㄱ자도 가본 적이 없었고 믿는 종교가 있지도 않았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군단의 입장에서 창조와 신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종교가 합리의 종족과는 딱히 어울리지 않아서."
[단순히 참고삼으려는 것일수도 있지]
군단이 종교에 빠져들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건 사실이었다.
일단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나 더 있어."
하지만 강도연을 대신 시키는 군단의 욕망은 거기서 끝이 아닌 것 같았다.
동생이 차마 못할소리 한다는 듯 눈을 해괴하게 일그러뜨리더니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오빠 이상형이 뭐야?"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듣는 나도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저 말을 왜 저녀석한테서 들어야 하는거지?!
"그으래...내 이상형을 왜 갑자기 네가 물어?"
"뭐 대단한거라고. 물어볼 수는 있잖아. 그리고 내가 좋으스 그르는그 으니으."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팔에 돋은 소름을 문질렀다.
물론 나는 저 질문을 누가 시켰는지도 알고, 무슨 의도로 했는지도 안다.
일단 나는 대답을 고민했다.
어차피 지금 군단이 취할 수 있는 형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간인 동생 강도연을 제외하면 달빛요정들?
하지만 그들의 너무 창백한 피부와 이종족스러운 모습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당연히 예쁜게 좋지."
"그러니까 그 예쁨의 기준이...아니야. 그냥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연예인 한명 대봐."
"싫은데?"
어딜 쉽게 돌아서 가려고.
나는 충격 받은 표정의 동생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한번 직접 생각해봐. 누군가의 모습을 빼다 박는다면 특별함이 느껴질 것 같지 않으니까. 닿을수도 없는 완벽함을 추구할 이유는 없어. 불완전함을 좋아할 수도 있는거야."
거기서, 나는 강도연이 아닌 지금 이 대화를 전부 듣고 있는 군단에게 직접 말했다.
과연 내 말을 알아들었을지.
"내 말 안 빼먹고 제대로 전한거지? 군단의 성장에 방해된다고 빼먹거나 조작하지 않고?"
[그렇다. 이미 말했듯, 나는 이제 관여하지 않을거다. 과연 지금의 군단이 방금 네 말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을까]
"...뭐 이상하게 알아들을 건덕지는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군단에게 알려주고 싶었던건 너무 완벽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잠시 책방에 갔다와야, 아니다. 그냥 E북을 넘겨주는게 더 빠르겠어."
나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이용해 근방에서 금방 공기계 하나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곳에 여러가지 책을 옮겨담기 시작했다.
과연 인간이 이룬 학문이 군단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나도 몰랐지만.
"인문학을 배우면 좀 얌전해지냐?"
실없는 소리를 하며, 나는 공기계를 하사품으로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