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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44화 (44/254)

44화-살아남기 위한 투쟁(4)

[군단은 시간을 들여 포로를 심문해 꽤 많은 것을 알아내었다. 그들의 언어, 역사, 특성, 문화, 종교 등등]

"...지금 그게 중요해?"

[새로운 유닛들을 절멸시켰다. 보상이 있을 것이다]

"의도가 뭔데. 왜 이걸 지금까지 숨겼다가 지금 보여주는거지?"

뭐라뭐라 떠드는 글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한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영상들을 확인했다.

차지연의 눈치가 보여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사이 벌어진 일들이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갖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 뿐이다]

글자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폭탄처럼 보내진 영상들.

그것들의 내용은 모두 군단이 벌인 일들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스스로 몸을 만든 일부터 시작해서, 그걸 나에게 숨기고 최근엔 강도연에게 가면을 씌운 일까지.

"이, 이해할 수 없어. 왜 하필, 지금?! 차라리 처음부터 알려주던지!"

[스스로 생각하고, 부디 답을 찾아라. 내가 왜 이중첩자 노릇을 하며 네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인지]

항상 나불대던 녀석이 말을 아꼈다. 제약이 있는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끙끙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지만 고삐를 채우면 그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할 수 없다]

"...잠재력?"

마지막 말이 힌트가 되었다.

감을 잡은 내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군단에겐 지금 같은 과격한 성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러니 그걸 내게 처음부터 알리지 않은건 내가 그것에 방해될까봐. 하지만 진실은 알아야 하기에 이렇게 알려준거라고."

[정답에 근접했다. 이제 군단은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폭주하는 기관차, 가속도는 충분히 붙었다. 그래서 말해주는 것이다]

"엄청나게 뻔뻔하네. 하긴 첫 만남부터 그랬지."

마음이 복잡했다.

날 믿지 못했다면, 그럼 끝까지 숨기기라도 하던지.

어차피 내가 이렇게 알아봤자 의미 없는 짓 아닌가.

[자식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아야지]

"농담할 기분이 아니야."

[그래도 차지연과의 수련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며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을 깨달아라. 엄연히 군단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너와 연결된 스트링이며, 지금 자아를 발달시켜가는 군단은 모든 것을 너와 연관지어 사고하고 있다. 그것이 그나마 간섭할 방법 중 하나다]

"...미친."

실시간으로 감정을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이것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내가 이 말을 어떻게 믿지? 지금도 거짓말 하는거 아닌가? 교묘하게 숨기고 속이면서 쥐락펴락하려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이미 너는 신뢰를 잃었어. 앞으로도 이런 짓을 벌이지 어떻게 알아."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잊고 있는게 하나 있지 않느냐. 이 게임의 본질이 싸우고 살아남아야 하는 생태계라한들, 결국은 하나의 게임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맞아. 이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강제로 벌어진 게임이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플레이어든 유닛이든 이득을 얻었든 더 강해졌든 어쨌든 계속 싸우고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대체 진짜 목적이 뭔데? 이 게임의 목적. 서버라고 부를 수 있는 각 세상에서 가장 강한 유닛들을 만들어내서, 대체 뭘 하려는거지?"

서버통합전 같은 개소리만 아니길 빌었다.

[살아남은 가장 강한 이들을 양성하는게 맞다. 한계를 넘을 새로운 이들을]

"...그런 집단들을 서버, 아니 세상마다 만들어서 대체 뭘하려고."

[마지막 전쟁. 이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살아남은 승자가 되면 알것이다. 한가지 단언하자면 진정한 적은 따로있다]

그게 끝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애초에 휘말린게 잘못이었다.

['우리'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라는 글자가 눈에 밟혔다.

평소에 말하던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결국 너희에겐...플레이어든 유닛이든 그 목적을 위한 장기말일 뿐이겠네? 걸려있는 제약은 같은 관조자끼리의 경쟁을 위해 붙여놓은거지?"

[문제가 되는가? 변하는 것은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지켜보고 안내하는 존재일 뿐, 결국 중요한 판단은 다 너희들이 하는 것이다. 정보를 숨기고 굳이 먼저 말하지 않은 사실이나 너희에게 거짓을 알려줄 수는 없다. 나를 잘 이용하는 것도 너희의 능력이다]

대놓고 인정한 뻔뻔한 대답이지만 말문이 막혔다.

설령 내가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들.

이미 이 세상은 휘말린지 오래였다.

지금도 습격당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끔찍한 고깃덩이가 되어 누워있던 동생의 모습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고 군단의 일부로나마 동생을 살릴 수 있었던건 모두 게임에 참여한 대가였다.

"보상이나 말해. 우리는 뭘 얻었지?"

화제를 돌렸다.

오랜만에 군대에서 끊은 담배가 땡겼다.

"300G...이게 끝이야?"

[패배하여 멸망당한 종족에게 후한 값을 쳐줄리가 없다. 하물며 제대로 발전하지도 못한 일개 부락수준의 이들을]

유닛, 달빛요정 생존자들을 죽이고 얻은 가치는 척살권 하나만도 못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입맛이 쓴건 어쩔 수 없었다.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야. 유닛도 플레이어도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있으나 마나한 이상한 제한사항을 제외하면 아무런 밸런스패치가 없잖아."

분명 달빛요정들은 잠재력 있는 이들이었다.

멸망당한 난민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마을에서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세상에 완전한 공평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억울하다 토로해도 아무 소용 없었다.

결과가 어떻든 약하면 죽는다. 단지 그게 법칙의 전부였다.

[이것은 한 종류의 유닛을 절멸시킨 보상이다]

[유닛 소환권x1]

대신 다른 보상이 있었다.

이번것은 확실히 범상치 않아보이는 물건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건가?"

[자신의 유닛을, 일정시간 소환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이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걸 사용하면 군단이 이곳에도 뿌리내릴 수 있는건가 싶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송환된다. 군단이 가진 모든 것은 자신의 일부다. 뭘 남긴다 한들 그것들도 통째로 환수당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곧바로 진압당했다.

그래도 충분히 좋은 물건이었다.

짧은 시간이어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시스템적 보상은 이게 끝이군. 하지만 우리가 얻은건 이게 다가 아니잖아. 보여줘."

[군단은 이미 많은 정보를 알아내었다]

어둡던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며 공동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파멸균 감염체들을 내쫒고, 여기까지 뻗친 군단의 둥지가 지금도 꿈틀거리며 주변을 덮어가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걸 모르는거지?"

[그렇다. 지금 네가 자고 있다고 말했으니]

둥지의 한켠에선 휴면상태에 들어간 군단병들이 영양분을 보충받고 있었다.

그건 강도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 아니 그것이 있었다.

동생과 똑같은 체형에 가면을 쓴 생명체 하나가.

"지금 내가 잠에서 깨서, 휴대폰을 키려 한다고 말해봐."

[그대로 전하겠다]

나는 시험삼아 내 말을 전하게했다.

말이 전해진건지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동생은 눈을 번쩍떴다.

"..."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던 군단은, 순식간에 자신이 만든 인간형 육체를 육벽 안으로 호다닥 숨겼다.

앉아 있던 거창한 의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이렇게 보니 좀 깨는 것 같았다.

내게 알려주지 않는게 자신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듣고나니 더더욱.

"오빠! 들려?!"

그때 동생이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영상 봤어. 네가 싸우는 모습."

"어?! 으응...나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야. 내가 선택한일이야."

거짓말은 티가 난다. 아마 저렇게 말하라고 시켰겠지.

단지 그 거짓말을 시킨 군단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 못하는 것 같았지만.

경험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그래."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군단이 동생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안다.

그 행위가 거칠어도 의도 자체는, 그리고 그 결과는 동생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에 일단은 참았다.

"너도 마음 쓰지 마. 그들은 유닛, 결국 어느 한쪽은 죽어야만 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가...죽었겠지."

내가 달래보려 하니 녀석은 애써 웃어보였다.

나도 마음의 평정을 위해 노력했다.

내 감정이 동요하면 군단이 그걸 알아차리니까.

방금 전 모습으로 확실하게 확인했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무섭고 과격해도 군단은 아직 이 미궁도 벗어나지 못한 경험부족의 미숙한 아이였다.

[포로가 토설한 정보를 바탕으로한 그들의 플레이어는, 이든이라는 세계에서 세계수 가르실을 키우고 있는 요정족 중 하나]

"지금은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니네. 다음은."

[그들은 본디 근근히 살아가던 생존자들의 후손으로, 약 200여년 전 멸망한 문명의 잔해에서 가까스로 살아가던 이들이다]

나는 차분히 획득한 정보를 들었다.

200년전 멸망했다? 그렇게 오래되었나?

[파멸균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나 한가지 확실한것은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달빛요정들은 우리가 짐작한대로 지상에서 쫒겨나 이 미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나름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멸균의 습격에 미처 뭉치지 못한 것이, 그들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결국은 또 위로 올라가야 뭘 알 수 있다?"

얻은 정보는 많았으나 부족했다.

장담하는데 파멸균 감염체들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더더욱 강해졌다. 포로를 통해 알아낸 것이 있다. 그동안 쏠쏠하게 사용해왔던 금강저의 푸른 광석. 그들이 신석이라 부르는 그 광석에는 형상력에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잠들어 있었다]

군단병들의 일부가 생존자들의 은신처를 포함해 근처 공동들을 뒤졌다.

그 광석과 비슷한 광물이 달려 있는 무기며 장식품등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왜 그들은 이걸 이용하지 않았지?"

[가장 큰 가능성은 사용 기술의 유실. 물론 군단에겐 그들은 모르는 활용 방법이 있었다]

수집한 광석들이 한군데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 위력도 똑똑히 봤다.

내 의도대로, 단숨에 천혼술을 배운 군단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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