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43화 (43/254)

43화-살아남기 위한 투쟁(3)

"하..하하."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올정도였다.

계속 자리를 지켜봤자 그대로 말라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활로를 뚫어보려했다.

적들이 다시 한번 패퇴하고, 이번에는 그 텀이 좀 길었으니까.

어쩌면 끝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품었다.

"피, 필릭스님..."

그러나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그들이 은신처로 삼은 공동 밖 대층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수많은 검은 짐승들이었다.

방금 전 시체가 산을 쌓을 만큼 미친듯이 죽여댄 그놈들.

놈들이 바닥은 물론 천장과 벽에도 바글거렸다.

"다들 무기를 들어. 이게 마지막이다."

필릭스는 그제서야 눈치챘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이건 전쟁이 아니다.'

감염체들과는 다른 절제된 행동과 모습덕에 잠시 착각했었지만 전쟁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계속 해왔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일뿐.

지면 죽고, 이기면 살아남는다.

"시간이 아주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희미하게 중얼거린 그는 이가 다 나간 검을 들어올렸다.

이쯤되니 모든게 아쉬웠다.

신목이 조금만 더 일찍 자랐다면.

이번에 들키지만 않았다면.

"으아아아!"

그리고 선두가 되어, 오히려 먼저 군단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모습에 감회된 마지막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모든걸 걸고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이 순간이, 바로 군단이 유도했던 순간이었다.

[과연 꾸준히 우상향하던 그들의 전투력이 최고점을 찍었다. 체력도, 숫자도 떨어지지만 이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힘]

무아지경이 되어 검을 휘두르는 필릭스는 이미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의 검과 몸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타올랐다.

몸에 그려진 문양은 그 어느때보다 밝게 빛났다.

비록 검술은 도시를 지키던 기사출신 망령에 비해 못하나, 그에게는 망령에게는 없는 폭발력이 있었다.

[군단이 가장 강한 만능형 병사를 내보냈다]

군단무리중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군단병이 있었다.

그 형태는 기존과 비슷했다.

오크와 인간, 최근에 얻은 달빛 요정들의 몸을 베이스로한 2m정도 되는 키.

탄력있고 가느다란 신체와 전신을 덮은 검은 갑각.

그러나 추가로 최하층계의 지배자였던 도마뱀들에게서 가져 온 길고 튼튼하며 동시에 날렵한 꼬리가 있었다.

"큭..."

움찔한 필릭스는 기겁하며 뺨을 스치고간 무언가를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마치 채찍같이 휘둘러진 꼬리는, 그의 얼굴을 스쳐 바닥에 깊고 가는 상흔을 남기고 회수되었으니까.

"정말 정체모를 놈들이구나. 살아있는 생명이 맞기는 한것이냐."

그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이런 괴물들은 본 적이 없었다.

한 끔찍 하는 파멸균 감염체들과는 또다른 종류의 끔찍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겨야만한다.'

검을 뽑아들고 덤벼드는 군단병을 향해, 그도 땅을 박찼다.

검과 검이 충돌했다.

갑각으로 만든 검에, 쩍 하고 금이 갔다.

순식간에 휘둘러진 꼬리를, 그는 고개를 숙이며 피했다.

등갑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또다른 한쌍의 팔은 허리를 틀어 피했다.

여전히 검을 맞댄채로.

모든 공격을 흘려낸 그는 그대로 검을 끌어올려 군단병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길 수...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직감했다.

흥분으로 가슴이 쿵쿵거렸다.

"넌, 뭐냐."

그렇기에 새로운 적의 등장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가느다란 체형, 몸의 굴곡, 찰랑이는 흑발.

다른 괴물들에 비하면 너무나 이질적인 모습.

필릭스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얼굴을 덮은 검은 가면의 틈으로, 붉은 안광이 번득였다.

*

"세뇌 같은게 아니야..."

달빛 요정들이 생존을 위한 최후의 공격을 감행한 사이.

강도연은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가면은 자신과 하나되어, 몸에 녹아든 상태.

자신의 상태는 스스로가 알 수 있었다.

'군단이 원하는건 나의 자발적인 행동.'

가면이 대체 무슨 작용을 할지는 몰랐다.

적어도 자신의 행동을 강제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군단의 의지에 반하는 생각을 용납하지도 않을게 뻔했다.

[새롭게 만든 만능형 군단병이 일격에 당해버렸다. 역시 형상력을 다룰 수 있느냐의 차이가 굉장하다. 그러니 지금 군단은, 자신이 만든 가장 강력한 존재를 보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자신이 나설 때였다.

하지만, 분명 본인과 닮은 지성체와 싸우는 것은 가벼이 여기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군단은 평범한 인간소녀였던 네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으으읏!"

약한 마음을 먹은 순간 가면이 스르륵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면이 하는 일은 그녀가 '군단의 일부'로서 임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아아..."

가면이 씌워지는 순간 체내의 호르몬계가 강제로 조작당한 그녀의 마음은 강제로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평온해진 마음에는 군단이 내린 명령이 우선적으로 들어찼다.

'죽이고, 먹어치워라.'

그녀는 검을 빼들었다.

피투성이에 만신창이인 상대가 자신을 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사선을 넘나드는 전사인 그의 눈빛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면을 쓴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의 실력은 이미 지겹게 보았다.

군단병들이 죽어가며 치룬 전투데이터.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

검을 휘두른 상대는 그녀가 단 한번의 발걸음으로 자신의 검을 피하자 눈을 부릅떴다.

'그들에게 절망을 주어라.'

두번째 검격을 허리를 비틀어 피한 그녀가 발차기를 날려 그의 다리 한쪽을 부러뜨렸다.

부러진 정강이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이를 악물고 내지른 팔을 피하고, 손날을 세워 그대로 베어버렸다.

그러자 하나 남은 팔과 다리로 펼치는 최후의 일격이 날아들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검.

맞으면 제아무리 그녀라도 죽는다.

그러나 그녀는 갑각으로 만든 검은 상대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는 그 검에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팔뚝에는 절반정도 빛나고 있는 푸른 광석이 반쯤 박혀 있었다.

그 보석을 중심으로 뜨거운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아."

그는 그것을 보고 외마디 탄식을 남겼다.

"흐아아...하아..."

[그들은 진정한 절망을 맛보았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걸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거산이 나타났기 때문에. 이제 남은건 공포에 잠식된 이들을 처리하는 것 뿐이다]

군단병들이 일제히 몰려가 전선을 밀어넣었다.

강도연은 가면을 벗고 숨을 헐떡였다.

팔뚝에 박혀 있던 광석은 이제 그 빛을 잃고 땅에 툭 떨어졌다.

"척, 척살권이 있으면 어쩌려고. 나한테 쓸 수도 있는거잖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척살권 하나로 우리는 죽지 않아.'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돌아오는 군단의 의지는 냉정했다.

'약속해. 어차피 네 혼도 모든 데이터도 내게있다. 네가 죽는다 한들 다시 살려내는건 쉬워. 너는 그의 소중한 것, 절대 잃을 수 없지.'

"그럴수가..."

군단은 사실 나름의 친절과 호의를 진심으로 베푼 것이다.

단지 그 방식과 방향이 인간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기준을 따른다는게 문제였을뿐.

강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은 대가였다.

목숨과, 힘을 얻은 대신 내어준 대가.

'견디지 못하겠다면, 언제든 가면을 써.'

머릿속에 계속해서 끔찍한 학살의 데이터가 흘러들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견뎌내었다.

군단이 굳이 그녀에게 뒷정리를 명령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배려였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받았는데 여기서 더 징징댈 수도 없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거짓말.'

"맞아. 거짓말이지. 하지만 말이라도 해야 하잖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면을 쓴다고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아니다.

손 끝에 여전히 감각이 남아있다.

살인 할때의 감각이.

자신을 보던 번득이는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겠어."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분명 전투에서 이긴 것은 자기 자신이었지만 스스로는 패배라고 생각했다.

가면이 없었다면 졌을테니까.

[포로를 잡았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지?'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에, 강도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이거 놔...이거 놔라!"

생존자들의 은신처.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남김 없이 살육당한 가운데, 한 생존자가 붙잡혀 끌려왔다.

군단은 그를 통해 몇가지 사실을 알아내려했다.

[우선은 언어부터다. 군단이 언어를 습득한 방법은 단 한가지]

'대화하자. 우리와.'

"내, 내가 순순히 너희 같은 괴물들에게...커헉."

[저항하는 자의 입을 쉽게 열게 하는 방법 역시 미리 고안해내었다]

군단병들이 붙잡은 포로의 몸에 세균형 군단병들을 주입시켰다.

순식간에 피부 전체가 검은 혈관으로 도배된 포로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움에 미쳐 날뛰었다.

"이제 내 말, 들리겠지."

군단은 그의 몸 구석구석에 침투해 감염시킨 뒤 세포를 변질시켜 망가뜨렸다.

단순한 고통이 아닌 신경에 직접 박히는 끔찍한 고통.

포로의 저항 정신은 단숨에 무너져내려 군단의 의도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협조적이지도 않고 강도연처럼 하나로 만들지도 않았기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하나 둘 의문점이 풀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