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살아남기 위한 투쟁(1)
"..."
잠시 활동을 멈춘 강도연은 광석을 손에 쥐었다.
그것에 잠든 미묘한 에너지가 간질거리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에 깃든 에너지를 이용할 방법을 알고 있다.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적화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폭발력을 재현하는건 가능했다]
"큭..."
그녀는 광석을 꽉 움켜쥐었다.
동시에 손과 팔에서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체변형은 전신이 만능세포로 이루어진 특별한 개체인 그녀만 가능한 것.
몸의 일부가 뒤틀리고 재배치되는 끔찍한 감각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버텼다.
[우리가 분석하는데 성공한 달빛요정. 그들중 일부 개체의 신체에는 신비로운 힘을 다루기 위한 또 하나의 혈관이 존재했다]
'그때.'
눈을 찌푸린 강도연의 뇌리에, 감각기관을 극대화한 자신과 1대1 대결을 펼쳤던 유독 강했던 망령의 모습이 스쳤다.
은은히 빛나는 검으로 커다란 돌격형 군단병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던 그 모습이.
[천혼술이 말하는 영력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군단은 그 두가지를 합쳐서 응용하는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군단은 천혼술 자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강도연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팔뚝에 반 이상 박혀 버린 광석을 바라봤다.
달빛요정의 신체를 모방한 새로운 혈관이 팔에 박힌 광석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다.
[우리의 영혼은 강대하나 하나뿐. 그것을 발톱과 이빨인 수많은 군단병들에게 공유시키는건 위력도 효과도 떨어지니 천혼술로 위력적인 일격을 가하는건 힘들다. 그 대용으로 고안된 것이 이것으로, 이미 힘을 품고 있는 광석을 이용하자는 것]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천혼술의 주인이 들으면 격노하겠지만, 군단에게 천혼술은 광석에 깃든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보조하는 역할이면 족하다.
강도연은 천천히 광석이 박힌 팔을 들어올렸다.
광석에 잠든 힘이 깨어나고, 폭발하듯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역사에 기록되었다. 비록 그 시작은 미약하고 불완전하나 군단이 독자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비트는 한 단계 위의 힘, 형상력(形相力)을 운용한 최초의 시점이다]
다른 이들이 마나, 마력, 영력, 신성력 등으로 부르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발현하는 초월적인 힘.
아무나 다룰 수 없는 그 힘이 겨누어진 강도연의 팔에서 폭발하며 쏘아졌다.
"으, 으아아아..!"
대규모로 폭사하는 푸른 섬광에 강도연 자신도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터져나온 푸른 섬광은 곧 두꺼운 한줄기 광선이 되었고, 전방의 돌벽에 직격한 섬광은 불길이 되어 대폭발을 일으켰다.
강도연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날아갔다.
군단병의 튼튼한 신체로도 견디지 못할 반동.
한쪽 팔이 완전히 타서 바스라졌고, 군단병 하나가 튕겨나간 그녀를 받쳐주었다.
"위력 조정은 필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군단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며 대기하고 있던 다른 군단병들을 곧바로 투입시켰다.
정찰은 필요없었다.
아니 소용없었다.
어차피 저 안에 무엇이 살고 있든, 전부 죽이고 먹어치울 것이기 때문에.
검은 물결이 맹렬하게 달려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군단은 병사들의 눈을 통해, 그곳에 대체 누가 있는지 보았다. 적어도 파멸균에게서 살아남은 이들이라면 기본은 되어 있다는 뜻.
그렇다면, 잡아먹었을 때 얻을 것도 많다는 뜻이니까.
군단은 입맛을 다셔보았다.
이것도 배워서 한번씩 써먹는 표현 중 하나였다.
*
"일단 물러난건가?"
"...조용합니다."
"애초에 놈들은 절대 소리를 내지 않아. 싸울때도, 추격할 때도, 심지어 죽을때도."
걱정스런 얼굴로 모여든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광장 한복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던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엔 공포심이 가득했다.
뾰족한 귀 끝이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 수색대의 일원으로 그가 보여주던 용맹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의 술렁임은 더 커졌다.
"대체 그놈들은 어디서 온걸까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답을 내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랜 세월 밖을 점령한 파멸균 감염체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다.
살아있는 모든 동물을 감염시키는 파멸균은 그동안 이 미궁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싸워왔기에, 도망쳐왔기에 잘 안다.
"믿을 수 없었지.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이 넘을 감염체들과 전쟁을 벌이던 그 모습. 우리는 마침내 감염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체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정체모를 세력의 등장으로 인근의 감염체들의 숫자가 짧은 시간 급감하자 차라리 이이제이를 바랬다.
그러나 그건 지독히 안일한 생각이었다.
오랜 포식자를 들이친 새로운 포식자는 너무나 압도적이었고, 오히려 더 소름끼쳤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필릭스."
"나리안님."
그때 모여든 사람들이 갈라지며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대를 이어 이 무리의 수장을 맡고 있는 귀족 계층의 사람.
필릭스라 불린 그는 그녀를 보고 겨우 표정을 풀었다.
"오히려 기회입니다. 저희 선조들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지속된 억압에서 탈출할 기회."
"저는..."
"이 틈을 잘 이용한다면 저희에게도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움찔한 필릭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희망. 분명 그들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그녀, 나리안이 몸을 돌렸다.
필릭스를 비롯한 다른 주민들도 시선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삶의 터전으로 닦아 온 큼직한 공동.
이 마을 중앙에 그들의 희망이 자라고 있었으니까.
"선조들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플레이어라는 은인을 내려주셨으니, 그분의 은혜로 우리는 신목을 다시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막 자라고 있는 묘목을 보며 말했다.
평범해 보이는 묘목일 뿐이지만, 묘목 주변에 박힌 말뚝들은 특별하다.
말뚝들은 모두 그들에게 주어진 하사품으로, 그들이 미처 복원하고 있지 못하던 선조들의 자산을 다시 심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신목의 힘으로,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습니다."
그녀가 그려진 문양에서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오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신목은 그녀의 종족과 연결된 특별한 나무.
유실된 힘을 되찾아, 종족을 부흥시킬 수단이기도 했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았어. 충분해. 우리는 할 수 있어."
필릭스는 동료들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부정적인 생각은 애써 치워버렸다.
'어차피 남은건 투쟁 뿐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선 싸워야했다.
그 대상이 오래전 이 세상을 멸망시킨 끔찍한 감염체들이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괴물들이든.
계속 싸울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상황이 좋았다.
얼마 전부터, 그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존재가 하나 생겨났었으니까.
"필릭스님. 이, 이거 드세요."
"고맙다 니아."
그는 자신에게 음료를 가져다 준 꼬마의 머리를 웃으며 쓰다듬었다.
"너희가 우리의 미래야. 너희가 어른이 될 쯤이면 신목이 크게 자랄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저도 수색대가 될거에요."
"아니. 그때가 되면, 진정한 전사가 되는거다. 우리가 이곳에서 나가서, 그리고 이 미궁을 나가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그때에."
"그럼 가장 강한 전사가."
아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강한 전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뒤를 이어줄 훌륭한 이들이 많으니까, 자신은 그 길을 닦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
"으아아악!"
그러나 그 순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삼엄하게 지켜지고 있던 두꺼운 석문이 박살나며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이, 이럴 수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엎드린 필릭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두꺼운 석문은 선조들의 지혜가 들어간 방어장치 중 하나.
지금껏 그 어떤 감염체도 뚫지 못했던 그 두꺼운 돌벽이 일격에 박살났다.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빛나는 것은, 그 갯수를 새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붉은 안광들.
"전, 전부 무기 들어!! 적이다아아!!"
누군가의 찢어지는 듯한 고함소리에 그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신목이시여. 그리고 누군지 모를 또다른 세상의 요정신이시여.'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폭음으로 인해 먹먹한 귀에서는 터질 것 같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와 숨소리만 들리던 그는, 충돌 직전 저 뒤에서 놀라 뛰어나온 나리안과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다.
"죽어라 짐승아!"
머리 갑각의 틈으로 붉은 안광 여섯개를 빛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거체의 검은 짐승을 향해, 그는 마찬가지로 몸에 그려진 문양에서 빛을 뿜으며 검을 내리그었다.
검이 강한 저항을 받으며 갑각을 부수고 살에 파고들었다.
군단병의 근육은 질기다 못해 끈끈할 정도였으나, 그는 힘으로 그것을 베어내었다.
결국 필릭스는 첫 일격으로 적을 쓰러트리는데 성공했다.
"아..."
그러나 그것은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뿐.
함성을 지르며 덤벼든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는 끝을 알 수 없는 군단의 침입을 막아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