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세상의 비밀(6)
[플레이어가 말하길, 혼과 마나를 이용한 천공의 주술은 그 누구보다 강한 혼과 굳건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큭."
땀이 이마를 타고 한방울 흘렀다.
탱크탑 하나만 입고 있던 차지연의 온 몸에 푸른 빛이 빛나고 있었다.
[너는 분명 훌륭한 영혼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선택 받은 것이다]
그녀의 새하얀 등에 마치 타투처럼 그려진 푸른 문양이 어느새 어깨를 넘어 한쪽 팔까지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자신의 플레이어에게 전수 받은, 이능을 극대화하는 방법.
종족특성 [상태창]을 이용해 주술과 이능을 결합하여 강화하는 것이 그녀와 같은 '종족'으로 묶인 스텝 업 헌터들의 비결이었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났다.
전수 받은 것 이상의 전투력을 보여주었으니까.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그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플레이어의 권속이에요."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어차피 우리의 적이 아닌 것을]
그녀의 플레이어는 늘 냉철하고 계산적이었다.
플레이어에게 그녀는 결국 하나의 장기말이었을 뿐.
그러나 필요하고, 쓸모가 있다면 일개 장기말에게도 과감한 투자를 하는게 그녀를 유닛으로 둔 플레이어의 성향이었다.
"그럼...정말 그에게 천공의 주술을."
[그렇다. 플레이어는 그자가 강대한 영혼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정도의 존재감은 감히 일개 인간종 따위가 가질 수 없는. 정말 나오기 힘든 영웅의 혼이다]
플레이어는 단호했다.
차지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은은히 빛나는 푸른 눈이, 당황한 채 현관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정작 신우는 가벼운 차림으로 거실에 앉아 빛에 휘감겨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움찔거렸다.
"크흡..."
"정말이에요."
나는 받아든 커피를 뿜는걸 겨우 참아냈다.
영문 모르고 집에 들어와서, 신비로운 수련을 하는 그녀를 보고.
겨우 진정하고 커피를 얻어 마시려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제 플레이어는 신우씨가 아주 강한 영혼을 갖고 있다 했어요."
"믿기...힘드네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강하다? 내가?
나와는 전혀 안어울리는 말.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를 스쳤다.
지금 나는 온전한 혼자가 아니었다.
영혼의 끈 스트링.
분명 나와 군단 사이의 스트링은 특별하다고 했다.
어쩌면 그녀의 플레이어가 본 강대하다는 나의 영혼은, 그 하나의 스트링으로 연결된 군단의 영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정할만 했다. 군단의 영혼이라면.
"어차피 마나석을 다루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니까요."
그녀가 손바닥 위에 대뜸 빛나는 붉은 마나석을 올렸다.
플레이어, 즉 오윤아를 찾을 때 썼던 그것이다.
"거 들어보니까 꽤 대단한 것 같은데. 전 못배운답니까?"
그나마 지금은 문제가 없었다.
곁에는 또 다른 플레이어인 박준석이 있었으니까.
그녀가 돌을 집어넣고 등을 돌렸을 때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변명을 준비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운 좋게 위기를 넘긴 것 같았다.
"생각은?"
"당연히, 배우겠습니다."
표정을 관리한 나는 그녀가 내민 푸른 광석을 받아들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배울 수 있다면 군단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군단에게, 새로운 기술을 알려줄 기회다.
동시에 나 스스로도 강해질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저는 제약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겠죠."
그리고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제대로 선을 그었다.
쓰게 웃은 차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상대 플레이어가 허락한 모양이었다.
대단하긴 하다. 자기 유닛도 아닌 사람에게 힘을 빌려주겠다는거니까.
"근데 전 헌터도 아닌데 배우는게 되는 겁니까?"
"저도 제 이능과 결합해서 사용하는 것일뿐. 주술, 천혼술은 따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기회는 잡아야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라는 말을 평소 새기려고 노력한 나는 최대한 귀를 열었다.
이건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니까.
내가 살아야, 군단도 산다.
"크흠, 그럼 저는 이만."
들러리가 된 박준석은 헛기침을 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졸지에 단 둘이 남은 거실에서, 나는 그녀와 마주보고 앉았다.
...이렇게 보니까 눈 둘곳이 참 마땅찮았다.
"잘 배우셔서. 더 강해지셔서. 꼭, 그날 살아남으세요."
그러나 그녀가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그녀의 눈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
"그가 보고 있지 않은건 확실?"
[그렇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바쁘다. 주술 천혼술은 세한샤라는 세상에 사는, 카르코스라 불리는 특별한 계층의 이들이 다루는 주술이라고 한다]
"영혼이니, 정신이니 거창한 소리를 늘여놓지만 결국 그 근본은 뇌파, 즉 정신파를 극대화한 강력한...일종의 사이오닉 에너지."
공동, 신우가 휴대폰을 보지 않는다는걸 확인한 군단은 자신의 육체를 육벽을 개조한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당연히 지금 신우가 차지연을 통해 배우고 있는 이세계의 주술.
군단은 초월적인 연산력을 동원해 실시간으로 그 모든 가르침을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천혼술의 진정한 의미를 단번에 간파한 군단은 다리를 까딱거렸다.
일단 파악한 바, 천혼술과 군단은 궁합이 잘 맞았다.
결국 영적인 힘으로 정신력을 극대화하는 천혼술의 조건은 용적이 거대한 공동에 맞먹는 뇌를 자유롭게 다루는 군단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었으니까.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이것이 네가 원하던 지식의 탐식이지 않느냐]
"맞아. 단순히 육체만 강해져선 안 돼."
군단이 입꼬리를 움직였다.
이제 웃는 것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내, 입꼬리를 내리고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그런데 왜, 지금, 내 가슴이, 감정이 이렇게 두근거리지."
군단은 스스로 그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
감정의 자극은 당연하게도 스트링에 의해서였다.
이제는 익숙한 것이었으나, 군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그 내용이었다.
분명 강도연에게 배웠기에 더욱더.
[그의 행복이 네 목적 아니였느냐]
"그건 그렇지만, 어딘가 불편해."
그가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랬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로지 자신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과거 자신이 전쟁에 승리하고 성장하면 분명 그가 좋아했으니까.
지금까지는 미처 생각치 못한 감정이었다.
[...지금 39층계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먹이다."
그런 군단에게, 39층계에서 목표물들이 감지되었다.
군단 전체가 그곳에 집중했다.
상대가 알게 된다면, 묘하게 억울할법한 분노를 품은 채.
"대체 뭐야?"
39층계.
군단은 마침내 감염체들을 힘으로 밀어내었다.
38층계에서 부터 이어진 전장의 최전선인 그곳에서 군단병을 지휘하던 강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묘하게 가슴이 간질거리고 피가 뜨거워졌다.
인간인 그녀에겐 익숙한 감정, 분노.
군단의 일부이기에 그녀 역시 군단 전체와 동조하여 이 은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캬아아...끽!"
그녀에게 달려들던 달빛요정 감염체 하나가 곁에 있던 돌격형 군단병의 앞발에 맞아 사지가 뜯겨나갔다.
그 일격에도 묘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분노는 곧 힘.
군단은 이미 전투에 감정을 이용하는데 통달한 상태였다.
"또다. 이 흔적, 분명 생존자야."
강도연은 군단병이 가져 온 시신 하나를 분석했다.
등에 화살이 꽂혀 있는 감염체의 시체였다.
그것도 단단한 갑각을 가진 붉은등갑동굴지네의 시체
박혀 있는건 꽤 제대로 된 화살이었다.
그녀의 눈이, 한구석에 뻗어 있는 통로로 향했다.
이곳 39층계는 줄기층.
줄기층에는 적게는 1개, 많게는 대여섯개의 대층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미궁은 나무를 거꾸로 세워둔 것 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줄기의 규모가 커졌다.
가지에 비교되는 대층계도 하층의 줄기층에 맞먹을 만큼 컸다.
즉 뭐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정찰을, 하지만 빠른 정찰을 위해 대규모 정찰을 시도하겠다고.'
강도연은 군단의 명령을 수신했다.
지금껏 군단의 정찰은 늘 은폐 엄폐가 쉽도록 가장 작은, 벌을 베이스로 한 정찰병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은엄폐는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기동력이 좋은 비행종과 짐승을 베이스로한 돌격형 군단병들이 달려가 사방의 통로로 퍼지기 시작했다.
"읏."
그녀는 눈을 찌푸리고 뇌에 폭포수마냥 쏟아지는 정보를 읽어내렸다.
군단이 1차적으로 거르고, 더 빠른 분석을 위해 본뇌에 비하면 고양이손이나 마찬가지인 그녀의 뇌까지 빌려 연산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흔적을 더 찾았다. 많다. 그리고, 누군가 고의로 닦아놓은 것 같은 길.'
대규모 정찰로 군단은 단숨에 흔적을 찾아내었다.
군단의 눈에, 미세한 차이로 움직여서 스르륵 닫히는 돌벽이 보였다.
어쨌든 무언가 있는게 분명했다.
'너무 두껍고, 무거운 돌. 통로도 좁아서 대형 군단병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군단은 저 돌벽을 부숴야한다고 결론내렸다.
문제는 바로 그 방법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 비행종이 턱에 푸르게 빛나는 보석을 물고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러 강도연에게 날아왔다.
"이걸 이용하라고."
그녀는 착잡한 얼굴로 그것을 받았다.
군단은 막혀버린 상황에서 단숨에 결론을 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 그것은 달빛요정 대족장의 금강저에 박혀 있던 푸른빛의 광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