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세상의 비밀(5)
[현재 군단이 가진 화력으로 처리하기엔 너무 오래걸리는 거체의 적. 군단은 손에 넣은 새로운 무기를 바로 써먹기로 결정했다]
새로 얻은 무기는 바로 감염.
포격형 병사들이 독가시를 사출해 저 거대한 소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질량으로 군단병을 짓눌러 으깨버리던 놈의 몸에 수십발의 가시가 피부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시에 발린건 이제 산성독이 아니라, 개량된 또다른 군단병. 세균형 군단병이다]
세포 수준의 병사는 만드는데 시간도 금방이었으니까.
거대한 몸이 비틀거리더니 구슬픈 울음소리를 질렀다.
강도연을 비롯한 군단병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한번에 많은 숫자의 균이 투입되어, 그 전파속도가 빠르다]
"...효과 좋네."
마구 몸부림치는 소의 몸이 펑펑 터져나가며 울룩불룩 부풀었던 종양과 살덩이들이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군단병으로 개조된 파멸균마저도 검은 색소를 띄고 있다.
덕분에, 마치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검은 혈관이 온 몸을 덮은 것 같이 변형된 소는.
"그오오오!"
울부짖으며 그 두꺼운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군단병들도 짓누르던 거체의 몸을 적들이 감당할 수 있을리가 없다.
"가자!"
길을 뚫는 소를 앞세워 강도연이 다시 한번 군단병들을 이끌고 돌격했다.
정찰병들이 허공을 가로질러 이대로 진격해나갈 다음 층계로 빠르게 나아가는게 보였다.
[과연, 괜히 그들이 입구를 틀어막고 본인들의 손으로 본인들의 마지막을 결단했는지 알 것 같다]
"...저거, 끝은 있는건가?"
[끝이 있든 없든 상관 없다. 파멸균은 지치지 않는 몸으로, 저 어마어마한 숫자로, 물러서지 않는 포악함으로 지금껏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나는 화면에 보이는 끝도 없는 감염체들의 모습에 질려버렸으나, 군단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놈들보다 떨어지는게 대체 무엇이냐. 지치지 않는 것도, 그 어떤 상황에도 겁먹지 않는 것도, 숫자도 우리가 놈들을 상회한다]
군단이 아껴두던 하층 식생들을 잡아먹으며 비축한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내 눈엔 실시간으로 둥지 전체에서 생산되는 수만마리의 군세가 보였다.
[놈들의 시체는 우리의 먹이다.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식생들도 우리의 먹이다. 놈들은 살아있는 동물만 먹어치웠지만 우리는 놈들을 포함해 살아있는 모든걸 먹어치운다]
37층계에서 꾸역꾸역 밀고 올라간 군단병들이 38층계로 몰려드는 놈들을 상대해 다시 한번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
그 괴물들에 맞서 소름끼치는 침묵의 검은 물결이 덮쳐들었다.
마치 달빛같은 발광석 빛이 빛나는 넓직한 공동 전체에서 벌어지는 수천 단위의 전쟁.
나는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그 전쟁을 하염 없이 바라만 봤다.
절대 가볍게 끝날 전투가 아니었다.
어느 한쪽이 밀릴때까지 몇날 며칠이고 전력을 퍼붓는 소모전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늦은 밤.
오는 길에도 계속 화면만 보고 있던 나는 집에 돌아왔다.
집은 조용했다.
어머니가 있었지만, 멍하니 앉아계신 어머니는 동생의 사진만 보고 계셨다.
지금으로서는 해드릴 수 있는게 없었다.
어플과 게임에 대해 알려드리면, 걱정만 더 커질게 분명했다.
결국 동생은 괴물이 되어 괴물들을 이끌고 끝없이 싸워야 하는 몸이 되어버렸으니.
"..."
나는 속으로 사과드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동생도 동생이지만 이제 나도 사고를 쳐야, 아니 이미 쳤으니까.
"예. 차지연씨. 성공했습니다."
차지연에게 연락했다.
이제 나는 그녀에게 합류할 생각이었다.
플레이어인 나와 함께 있으면 어머니도 위험하다.
"짐 챙겨서, 그곳으로 오세요."
차지연은 늘 보던 안전가옥으로 오라고 지시했다.
나는 말 없이 짐을 챙겼다.
어머니한테는 이미 말해두었다. 학교와 관련된 합숙으로 알고 계시겠지만.
[군단이 네게 제물을 바치려한다]
"무, 뭐?"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착잡함. 군단도 그것을 눈치챘으니까]
그러나 그때.
뜬금 없는 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렸다.
"대체 뭘...아니 그보다 나는 아직 하사품을 주지 않았는데?"
[굳이 뭘 먼저 줘야만 한다는 규칙은 없다]
곧 빛무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거 설마."
[방아쇠를 당기면 내부의 가스가 폭발해 독가시를 사출할 수 있는 장치다]
군단은 이번에도 내게 쓸모 있는 물건을 하나 전해주었다.
이렇게 무능한 플레이어에게.
[무능? 아니, 넌 생각을 바꿔먹어야 한다. 생태계에선 그저 살아남는게 전부다. 특히 플레이어라면. 죽어나자빠진 놈들에 비하면 넌 충분히 할일을 다 하고 있다]
"차지연의 플레이어에 비하면 무능력하잖아."
[과연 그럴지는 이 게임이 끝나면 알게 될 것이다]
이 게임이 과연 끝나기는 할까?
나는 굳이 입을 다시 열지는 않았다.
그나마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은 군단이 날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
"나도 뭘 줘야겠네."
나는 미리 인터넷으로 구매해 쌓아놓은 마지막 포도당 사탕등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먹이 제공 기능은 어디까지나 극초반을 위해 안배된 기능이니 이제 거대하게 성장한 군단에겐 아마 이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갈 것이다.
단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뿐.
나는 찍는김에 동생에게 줄 빵도 사다 찍었다.
*
[너무 재촉하지 마라. 그가 곧 네게 보답을 보낼 것이다]
하사품이 나타나는 둥지 가장 깊숙한 곳.
그곳에 군단은 자신의 몸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머지않아 빛무리와 함께 무언가가 나타났다.
군단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먹어 온 단순한 사탕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와서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의 마음이 담겨 있어."
가면이 하관 부분만 스르륵 사라지더니, 붉은 입술과 작은 입이 드러났다.
그리고 사탕을 봉지째로 입에 넣어, 으드득 씹어먹었다.
"이게, 맛있다는거지?"
[...]
종이로 된 봉지도 같이 씹어먹던 군단은 처음으로 느끼는 달콤한 맛에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모든 사탕을 다 부숴먹었다.
물론 몸에 소화기관 따위는 없어 그대로 다 배출해서 둥지에 넣어야 했지만, 군단은 비효율마저 감수하고서 굳이 직접 먹었다.
[그 빵은, 강도연에게 주고자 넣은 것이다]
"...알아."
남은건 빵 봉지였다.
그러나 군단은 그것을 들고 멍하니 바라봤다.
묘한 느낌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걸 네가 먹을 셈이냐?]
"강도연 역시 내 일부. 내가 먹는게, 그녀가 먹는것."
군단은 결국 빵을 강도연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식탐때문이 아니었다.
강도연도 입으로 씹고 맛을 느낄 뿐 결국 소화하진 못하고 그대로 토해내야 했으니까.
"맛있다."
빵들이 입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부드럽고 달콤함에 군단은 또 하나의 감정을 배워갔다.
"나를 위해 주었으면."
이 빵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분명 그는 자신도 챙겨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걸 독차지하고 싶었다.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결국 군단은 마지막 빵까지 자신의 입에 우겨넣었다.
어려운건 아니었다.
어차피 강도연 역시 자신의 일부일 뿐이었으니까.
[지금도 감염체들과 전쟁이 한창이다. 네가 주의식을 돌려 빵이나 먹고 있는 지금도 말이다]
"문제 없어."
군단은 한번에 듣고 한번에 보고 한번에 사고하는게 가능했다.
거기다 현장에는 뇌를 가진, 서브마인드인 강도연도 있으니 통제력에 문제는 없다.
혹시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강도연의 뇌를 빌리면 된다.
치열한 전장.
이곳에서는 끝도 없이 몰려드는 감염체들과 계속해서 보충하여 대적하는 군단병들의 싸움이 몇 시간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놈들은 계속해서 몰려오지만, 우리는 이미 이 공동의 절반을 점령했다. 놈들을 죽여 흡수하는 에너지 역시 본전을 찾을 정도는 되었다]
군단은 잡아 죽인 시체들도 신속히 둥지로 이동시켜 그 즉시 흡수해 에너지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군단은 파멸균에 의해 변이되고 변질된 세포를 복구하는 방법까지 개발해 내었다.
[달빛요정: 1k2232]
[대공동들소: 3j5569]
그 힘으로 감염체들의 유전자를 복구하고 알아내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분석한 유전자는 동시에 군단의 힘이 되었다.
"요정."
군단은 강도연이 설명해준 요정과 엘프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본 창작물을 기준으로 설명해 주었을 뿐이었지만, 유전자를 분석한 군단은 흥미로운 부분들도 몇 발견했다.
[감염된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어쩌면, 생존한 개체들이 이 미궁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는건가]
"가치는 충분."
군단은 가능성을 본 순간 금세 결단을 내렸다.
과거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전에는 그저 먹어치우고 해체분석을 하는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보다 다양한 방법을 손에 넣은 상태였으니까.
군단의 정찰병들이 미쳐 날뛰는 감염체들의 머리 위를 지나 각 통로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기도, 저기도 모두 파멸균의 감염체들 뿐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동물들은 이미 당한 가운데, 이내 윗층계로 올라간 정찰병이 흔적을 하나 발견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상흔...이것은 분명 전투의 흔적이었다. 우리가 추측한 생존자 존재 가능성에 증거가 되는 흔적이었다]
벽과 바닥에 여기저기 긁히고 묻어 있는 핏자국등은 서로는 공격하지 않는 감염체들의 짓으로는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