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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38화 (38/254)

38화-세상의 비밀(4)

[놈들의 유전자를 분석해내는데 성공했다. 놈들이 가지고 있던 감염 공격의 모든 프로세스를 알아냈으니 적어도 놈들의 공격은 더 이상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

전쟁을 거치며 군단은 동시에 이 작은 박테리아들을 분석했다.

분석이 끝났다는건 말그대로 모든 것을 알아냈다는 뜻.

상대의 모든 수를 알고 있는 이상 공격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증식감염파멸균: 6N1523]

[이번 전투의 성과로, 군단은 세포단위의 새로운 전략전술을 손에 넣었다. 다른 세포를 공격하고 감염시킬 수 있는 독소를]

"혹시 세균전을 생각하고 있는거야? 이...좀비처럼."

"흥미로워. 하지만 비효율적. 물론, 비장의 한 수로는 언제든지 사용 가능."

강도연은 조심스럽게 질문했으나 이미 계산을 마친 군단은 감염능력을 그다지 좋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분명 상대방의 세포를 감염시키고 잡아먹어 수를 불린다는 전술은 뛰어난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세포단위로 조작이 늘어나면 그만큼 군체의식의 부담이 커진다. 분석 결과 놈들은 분명 군체를 이루고 있으나, 외부와의 연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런 방식이 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놈들은 독립된 소규모 군체라는 거구나."

강도연은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군단의 군체의식은 특별하다.

특별한 수단이 없어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자세한 원리는 군단도 모르지만 추측할 근거는 있었다.

세상의 벽을 뛰어넘어 플레이어와 유닛을 이어주는 영혼의 끈 스트링.

군단의 군체의식 역시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수호정령의 영적인 공격에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럼 척살권은. 우리는 여럿이자 하나. 척살권에 당하면 우리 전부 한번에 죽는거 아니야?!"

"척살권으로 해당 개체의 연결까지 죽어버리면, 결과적으로 군단에는 해가 없어."

여럿이자 하나는 결국 서로의 연결에 기인한다.

연결이 끊기면 결국 남남.

그리고 군단의 군체의식은 영적인 면도 존재한다.

군단은 척살권을 사용하면 대상의 숨이 끊기고 그 연결이 먼저 사라지기에 다른 개체에는 문제 없을거라 판단했다.

문답무용으로 적을 죽이는 시스템적 보상인 척살권의 존재를 떠올리고 움찔했던 강도연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군단병들의 육체를 개조, 놈들의 공격에 면역이 되도록 개량했어."

"그러면..."

"군단병들을 이끌어 계속해서 윗층계를 점령해."

군단은 강도연에게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당연하다는 듯 해왔던 일이다.

적에 대해 알아내고 대비까지 했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알았어."

강도연에겐 사실 선택권이 없었다.

영양분 보충만 끝낸 그녀는 곧바로 다시 위로 향해야 했다.

"그런데, 왜 오빠에겐 말 안하는거야?"

떠나기 직전. 그녀는 군단에게 한가지 질문을 남겼다.

신우가 지켜볼 당시, 티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군단이 언어를 배웠다는 사실도 말하지 못했었다.

"나는 불완전해."

군단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대체 우리 오빠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오빠는 평범한...윽."

"닥.쳐."

강도연의 입이 저절로 닫혔다.

순식간에 사방의 분위기가 험해졌다.

군단 전체가 요동쳤다.

"나에겐 아니야. 너는 몰라. 알게 되면, 그 귀여운 뇌가 다 타버릴 테니까."

"으읍.."

앞으로 다가 온 가면의 눈구멍에서 붉은빛이 번득였다.

강도연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아직 어린 군단의 자아는 그녀가 알려준 인간의 지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성장을 거치고 있지만 그 성장에는 예상과 달리 그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괜찮...겠지..?'

결국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그덕에 군단이 어떤 가치와 어떤 신념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아를 정립한 이후 의외로 과격하게 나오는 군단은 그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아."

"이건."

그러나 그 순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스트링을 통해 전해지는 강력한 감정의 고동.

이 연결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가 느끼는 것이었다.

[그가 결단을 내리고 마침내 움직인 것이다. 지켜볼 방법은 없냐 묻느냐? 없다. 알고 싶다면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봐라]

그러나 그 이상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늘 들어오던 목소리가 군단의 정신에 울려퍼질 뿐이었다.

*

달빛 격노.

달빛 아래, 강력한 늑대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마침 지금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오늘도 별 수확은 없다. 아니 애초에 차지연 그 여자는 유닛이 확실하다며. 그 여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거 아니냐?"

"그, 그치만 추정등급 S급이라는 헌터를요?"

아지트로 쓰이는 도시 외곽의 한 건물에서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동료들도 그렇고, 두 사람 모두 본업이 따로 있는 평범한 사회의 일원이었다.

단지 얼마 전부터 그들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다.

일단 힘을 얻었다.

요즘 같이 혼란한 시기에 나름의 힘이 있다는건 충분한 메리트였다.

"그러니 일단은 계속 숫자를 늘려나가야지."

"그 이상한 슈트 입은 놈들도 유닛이겠죠? 결국 슬슬 견제가 시작되네요."

그리고 지식도 얻었다.

다른 일반인들이 종말이니 말세니 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때.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당사자였으니까.

그렇기에 이렇게 은밀히 움직이며 세상의 변화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킁."

멍하니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꺼내던 그는 순간 코를 킁킁거렸다.

그 옆에 있던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이거..."

"개 냄새. 숙여!"

그 순간, 눈을 번쩍 뜬 그는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곁에 있던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유리창이 와장창 부서지며, 은빛 털을 휘날리는 거체의 무언가가 창문을 부수고 난입했다.

"늑대!"

그는 기겁하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핀 거대한 늑대가 두 발로 서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 상태로 갑작스런 전투가 발생했다.

그들도 저항할 힘은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밤에 더 강해진다.

"이 자식..!"

땅을 박찬 그가 몸에 돋아나기 시작한 비늘과 도드라진 송곳니를 드러내고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늑대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마치 흑요석 같이, 검게 번득이는 무언가.

"어?"

그것이 휘둘러지더니 그의 몸이 크게 베여 피를 뿌렸다.

늑대는 곧바로 당황한 그에게 추가타를 날려 벽으로 날려보냈다.

"하..."

뜨겁게 끓어오르던 피가 가라앉는다.

분명 그들은 평범해 보이던 사람들, 하지만 그 내면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손에 든 검을 보았다.

군단이 내게 준 첫번째 제물이었다.

그것에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건 의외로 도박수였다.

상대의 실력도, 내 실력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습 하나만 믿고 돌진했다.

게다가 만약 플레이어가 나를 보고 척살권을 사용했더라면.

그렇다고 근거가 아예 없던건 아니었다.

상대의 움직임이 너무 여유로워, 플레이어가 주시하고 있을 확률은 적었으니까.

그래도 도박은 도박이었다.

[합리적이진 않았군. 군단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 중요한건 내가 성공했다는 것 뿐이야."

변신이 풀리기 전에 빠르게 몸을 숨겼다.

벗어둔 옷이 있는 곳으로 와서, 빠르게 옷을 입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들의 시신을 찍지 못한게 아쉬웠다.

하지만 만에하나라도 내 모습을 노출하는건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닐 것 같았다.

어차피 그들도 괴물이다.

시신이 외부에 유출되기 전에, 자기들이 알아서 덮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부터 괴물이었던거냐 아니면 유닛이 되고나서 괴물이 된거냐? 전자면 좀 끔찍한데."

[세상엔 비밀이 참 많지. 네 상식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마라]

"...미치겠군."

분명 같은 지구인이라는 카테고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어플이 없어도 원래 그들은 괴물이었다?

아니면, 나와 같은 사람이어도 무언가 공통되는 점이 있어 하나의 무리로 묶였다던가.

녀석은 늘 그렇듯 명확한 답을 알려주진 않았다.

[화면을 봐라. 분석을 끝낸 군단이 파죽지세로 치고올라가고 있다]

"많다...역시 잠들어 있던 놈들을 우리가 깨운건가."

일을 치루고 집으로 가는길.

사실상 사망처리된 동생 일로 충격을 받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계시는 어머니껜, 잠시 친구를 만난다고 변명한 나는 당연히 이 순간에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전투를 치룬 것처럼 군단도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대상은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모여들고 있는 파멸균의 감염체들.

하지만 군단병들은 이미 놈들에게 면역을 얻었다.

선두에 보이는 강도연을 중심으로, 군단병들은 감염체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파멸균 감염체들은 감염능력을 상실한 순간 전투력이 급감했다. 게다가 놈들은 주술이 걸린 시체들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 즉 먹이다. 소화시켜 에너지로 삼을 수 있다]

자기들끼리 소통이라도 하는건지 마구 내지르는 괴성을 듣고 윗층계에서도 놈들이 쏟아져 내렸으나 숫자는 이쪽도 만만찮다.

[한때 하나의 종족을 파멸로 몰아간 지배자라지만, 영원한건 없다]

"하나의 종족..만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화면을 보다 쓰게 웃었다.

통로가 진동하더니 감염체들이 쏟아져 나오는 좁은 입구가 박살나며 무언가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뛰쳐나왔다.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소와 닮았다.

단지 파멸균에 감염되어 여기저기 부풀고 너덜한게 좀 그로테스크하긴 했는데.

"크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키 170인 강도연과 비교하니 체감이 확 되었다.

적어도 덤프트럭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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