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세상의 비밀(3)
[이 폐허에서 우리가 기껏 발견한 생존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군단은 정찰을 중단하고, 놈을 제압하기 위해 군단병을 투입했다]
만능형 군단병 하나가 긴급히 투입되었다.
상대의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이쪽은 키 2M에 뿜어낼 수 있는 힘은 오크의 몇 배를 상회한다.
[1대1로 붙여보고 그 힘을 판단할 생각이었다]
어느새 도달한 군단병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상을 향해 접근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럴수가."
먼저 달려든 것은 오히려 상대였다.
괴성을 지르며 미친듯이 땅을 달려오는 적을 향해 군단병이 팔을 뻗어 그대로 붙잡았다.
신장 차이, 팔 길이 차이로 상대는 그대로 찍어눌려버렸다.
"캬아악! 키익..."
그러나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상대는 그 손아귀 안에서 미친듯이 발광하며 이를 딱딱거리고 괴성을 질러댔다.
[이성을 잃은 상태는 주술에 걸렸던 망령들과 비슷하나 다르다. 우선 기묘한 힘 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여자는 계속해서 발버둥쳤다.
계속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불편해질 지경이다.
[제압해서 분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예상외의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변수는 그때 생겼다.
마구 발버둥치던 그녀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붙잡고 있던 군단병의 손을 확 물어버렸다.
[군단병의 전신은 갑주로 쌓여 있고 드러난 관절부도 거칠고 질긴 가죽으로 처리해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손가락 관절의 가죽에 미세한 생채기를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평범한 상태라면 이런 눈에도 안보일 생채기는 아무 의미 없을 것이나]
"무슨 일인데..?"
[직접 보아라]
애초에 이 영상은 이미 있었던 일의 기록.
갑자기 배속이 느려지더니 화면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더, 더욱 더.
화면을 가득채운 손가락 이상으로.
마치 현미경으로 본 것 같이 확대된 화면에서야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세포단위의 전쟁은 오랜만이나 분명 경험이 있다, 문제는 현재 군단병의 세포는 에너지 효율을 위해 자율적인 기능은 대부분 제거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거..."
[놈의 타액에 섞여 있는건 독이 아니다. 살아있는 수많은 박테리아. 놈들이 뿜어내는 독소가 군단병의 가죽을 약화시키고 저 연약한 이빨로 생채기를 낸 것이다]
"좀비잖아!"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좀비였다.
사람을 물고, 감염시키는 그런 창작물 속 존재.
지금 화면에는 두가지 세포들이 보였다.
한쪽은 평범한 원래의 세포들이고, 반대쪽은 침략자들이다.
이 기괴한 침략자들은 멀쩡한 세포를 보자마자 가시 같은 것을 마구 뿜더니 끝내 찔러 죽였다.
[당해버린 세포는 모든 기관을 파괴당하고 이내 놈들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전체적인 작용이 마치 암세포와 같다]
화면이 다시 축소되었다.
군단병의 팔이 마구 부풀고 비틀리고 있었다.
혈류를 타고 전신으로 퍼진 적들은 이내 군단병의 전신을 장악하고 변질시켰다.
[흥미롭다. 비록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는 것이나 어쨌든 과속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군단병은 몸을 통제하는 뇌가 없는데도 놈들은 문제없이 침식을 이어갔다.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외의, 또 다른 '군체'의 가능성이다]
"흥미로워 하는게 맞는 반응이냐..? 대응 가능한거야? 지금 우리 군단병이, 우릴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데."
[...물론이다]
영상이 거기서 끝났다.
이제 보이는건 실시간이었다.
"이길 수 있어!"
뛰어가고 있는 강도연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순간 동생이 위험해질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걱정마라. 군단은 네 동생을 위기에 빠트리진 않는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군단은 아직..."
[네 동생이니까. 단언하지, 군단은 네가 슬퍼하는건 바라지 않는다]
말문이 턱 막혔다.
그 사이, 강도연은 덤벼드는 감염된 군단병을 향해 검을 겨누고 그대로 땅을 도약했다.
[군단의 품을 떠난 군단병이, 제 힘의 반이나 낼 수 있겠느냐. 오로지 군단의 이빨과 발톱으로 설계된 존재다]
강도연의 검은 상대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확실히 내가 봐도 군단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군단병의 움직임은 형편없다.
"샘플을 확보했군. 문제는 저걸 분석할 수 있냐 없냐잖아. 여차하면 역으로 당하는 생물병기라고."
[당연히 분석 가능하다. 저 정체불명의 박테리아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대항하지 못하는건 다른 생물들이나 그렇다. 세포단위까지 조작이 가능한 우리 군단은 오히려 찬란한 하나의 문명과 종을 결단낸 저 자그마한 포식자들에게 대적할 유일한 호적수일 것이다]
호언장담이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다.
"더 지켜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안 되겠네."
[늘 그렇듯 특이사항은 알림으로 알리고 기록되니 상관없다]
나는 거기서 휴대폰을 꺼야했다.
잠복한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목표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닛을...?!"
"신우씨도 아시겠지만, 현재 저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내가 차지연을 만나 의뢰를 받았을 때.
그녀는 내게 한가지 제안을 건넸다.
"덕분에 유닛의 정보를 알아내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한국에서는 활동을 포기했죠."
"...그렇죠. 대한민국 땅에, 전격 능력자는 손에 꼽으니."
"대신 제 플레이어는 신우씨가 이 의뢰에 성공하면 이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과거,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것 같은 돌조각이었다.
"이게 대체 뭐죠?"
"마나석. 제 플레이어가 직접 만든, 안에 주문이 새겨진 귀물입니다."
그녀는 내게 마나석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들으며 한가지 뇌리에 스친 것은, 군단이 발견한 금강저에 박혀 있던 보석.
에너지를 품은 광석에 복잡한 주문을 새겨 발동시키는 것.
너무나 닮은 개념 아닌가.
"쓸모 있겠나요?"
"예. 받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진짜는 이게 아니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목적은 이런 보상이 아니었다.
인정을 받아서, 곧 벌어질 게이트 원정에 참가하는게 목적이었다.
그곳에서 건질 수 있는 것들은 분명 군단의 급성장에 도움이 될테니까.
"그럼..."
"어,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푸른 눈을 어둡게 뜬 그녀는 날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럴만 하다. 그녀가 아는 나는 지금 멀쩡한 상태도 아닌 것 같았으니까.
"감사합니다. 다음에 봐요."
그러나 현재 나는 그 어떤 때보다 냉정하다 자부했다.
나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몰린 동생을 내 손으로 군단의 일부로 만들었다.
다른 일들은 그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설령 살인이라 한들.
어차피 유닛이든 플레이어든 이 어플에 참여한 순간 다 야생으로 뛰어든거잖아?
죽고 죽이는게 생태계의 법칙이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어, 난데. 지금 들어가는 중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내 목표물이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겉보기엔 평범한 덩치 큰 사내다.
하지만 차지연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그는 플레이어의 지시를 받는 유닛이었다.
나는 미리 음료수 병에 채워 둔 물약을 들이켰다.
*
[지금 그는 자신의 임무를 시작했다. 오직 너를 위해서다]
"...거짓말. 그는 나에 대해 몰라."
[왜 그에게 너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지?]
왜일까?
그것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와의 만남과 교감은 그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그토록 바라고 염원하던 것.
하지만 정작 그 수단을 손에 넣은 지금은 망설여졌다.
"신...이라는게 뭐냐고? 신은 말이지..."
강도연은 신에 대한 개념도 알려주었다.
물론 다소 장황한, 평범한 여고생 수준의 지식이었지만 어쨌든 핵심은 있었다.
그리고 군단은 판단을 내렸다.
[그는 신이 아니더냐? 그럼 대체 그는 네게 무엇이냐]
"글쎄."
군단은 가면속 얼굴을 찌푸려보였다.
강도연에게 배운 감정의 표출법 중 하나였다.
그는 대체 누구인가.
신도 아니다. 부모라지만 부모도 아니었다.
플레이어? 유닛?
분명 시스템에 속한 유닛이지만 그딴건 군단에게 단 한줌의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하나."
그것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나의 연결로 서로의 혼은 이어져 있다.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다. 발달하면 발달할 수록 더 잘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일개 세포였을 때부터 자신에게 관여했다.
둥지를 포함 군단 전체가 두근거렸다.
"우리는 하나."
[...샘플이 둥지에 도착했다. 새로운 적을 해체분석할 시간이다]
아직 명확한건 없다.
사고를 끝낸 군단이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강도연이 토막내서 가져오는 시체.
그 시체에 아직 적들의 정보가 남아 있었다.
[여차하면 놈들이 둥지를 역으로 감염시킬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전쟁에서 패했을 경우의 이야기다]
군단은 해오던 것 처럼 소화를 시작했다.
둥지의 육벽으로 잠겨가는 시체에서, 아직 살아있던 박테리아들이 새로운 세포들을 보고 먹잇감으로 인식해 달려들었다.
감염시켜 자신들의 동족을 늘려가기 위해서.
하지만 이번엔 지금까지와의 상대와는 전혀 달랐다.
[가시를 찔러대는 놈들을 향해, 세포벽을 강화하고 촉수와 집게를 장착한 아군의 세포들이 집단으로 달려들었다]
결국 지금까지 치뤘던 전쟁과 똑같았다.
군단은 착실히 적들을 죽이고, 분해했다.
감염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