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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36화 (36/254)

36화-세상의 비밀(2)

어둑한 둥지 한가운데.

누군가는 굳게 결심한 행동을 개시하고, 누군가는 점령한 지역의 둥지화를 지켜보고 있을 때.

군단의 기원이자 뇌가 있는 이 가장 깊은 곳에서도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박동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그 심장박동의 근원지는 한쪽에 마련된 특별한 둥지.

그 특별한 둥지 안에 한 생명이 잠들어 있었다.

지금껏 모든 군단병은 알의 형태를 이용해 생산되었다.

이렇게 자궁을 닮은 특별한 둥지에서 태어난 존재는 지금까지 단 하나뿐이었다.

[따지고보면 태어난 것은 아니지. 하지만 그래, 이번엔 다르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능력으로 만들고 태어나게 만들었다]

육벽이 쩍 갈라지고 양수의 역할도 겸하던 점액이 촥 쏟아졌다.

이어서 무언가가 불쑥하고 틈에서 튀어나왔다.

부드럽고, 하얀 손.

그 손은 육벽을 잡아 벌리고 곧 자신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현재 군단이 가진 인간의 유전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녀와 똑같다]

그녀, 아니 '그것'은 점액이 뚝뚝 떨어지는 나신으로 바닥에 내려섰다.

소름끼치는 무표정이었지만 그것의 얼굴과 모든 신체 특성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간, 강도연과 똑같았다.

강도연은 이 사실을 모른다.

군단이 정보를 통제했으니까.

[왜 그러느냐. 기껏 막대한 에너지를 들여 만들어놓고 폐기하려 하다니. 마음에 안드느냐]

그러나 이내 강도연을 복사한 그것은, 스스로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고민하느냐. 그의 동생과 똑같은 모습은, 온전한 너를 나타낼 수 없다고? 벌써 그만큼 성장했군]

손 끝이 떨렸다.

실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웃기지 않느냐. 애초에 네 정체성은 이제 만들어가는 중인데. 효율적으로 생각해야지. 이 육신, 어딘가엔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아, 아."

그것이 입을 열어 육성을 내었다.

아직 군단은 인간의 언어를 익히지 않았다.

지금 내뱉는 건, 순전히 강도연이 말을 할때 움직이는 근육과 신경의 반응을 그대로 기억했다가 발성기관을 똑같이 움직여 재연하는 것이다.

"시.끄.러.워."

[...그래. 그렇겠지]

군단은 강도연이 괴성을 지르던 적들에게 짜증을 부리며 내뱉은 말을 똑같이 복사했다.

알고 쓰는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의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의 몸이 비틀리더니, 골격이 뒤바뀌고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군단의 일부로 활동하는 강도연과 흡사한 모양새.

그러나 잠시 망설인 군단은 한가지 추가적인 장치를 달았다.

[곧 죽어도 그녀와 똑같은 얼굴은 싫다는 거냐]

얼굴에 마치 가면과도 같은 갑각이 덮였다.

가면의 눈 부분에서 붉은 안광이 번득였다.

[그녀에게 가서 배워라. 그래야 그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군단의 욕망이 집속된 실험체나 마찬가지였으나.

[이것이...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군단의 자아가 한차원 위로 성장한 순간이다]

어디선가 촤라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음?"

36층계, 주술이 시전된 신전 안.

나름 이곳을 수색하고 있던 강도연은 낯선 기척을 느끼고 움찔했다.

군단의 군체의식에 연결되어 있기에 알 수 있다.

"...뭐야?"

그녀는 그래도 군단의 일부인 자신이 모르는 상대의 등장에 본능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었다.

더구나 그 상대가, 비록 가면을 썼다한들 자신과 체형도 헤어스타일도 심지어 평소의 자세마저 비슷하다면.

"..."

그러나 그것은 조금의 말도 움직임도 없이 가면의 틈으로 안광만 빛내고 있을 뿐.

순간 강도연은 소름이 돋았다. 소름이 돋을 모공이 없지만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너...군단이구나."

그녀는 정보를 통제당했음에도 자신의 직감과 눈치로 그것의 정체를 때려맞췄다.

직감과 어림짐작. 모두 합리와 계산의 종족인 군단은 갖지 못한, 설령 가진다 한들 쉽게 쓰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느껴지지 않느냐? 군단은 네게서 배우고자 한다]

"배우다니. 무엇을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잖아요."

[유전자 분석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것. 군단이 통제하던 정보의 일부를 다시 네게 전송하고 있다. 네 임무는 잠시 중지다]

강도연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곤 입술을 깨물었다.

흘러드는 정보에는 단순한 정보만 담긴게 아니었다.

"알겠어."

그녀도 결국 군단의 일부.

그 뜻을 이해한 강도연은 한숨을 쉬었다.

"말부터 시작..할까? 학습이란게 뭔지는 우리 알고 있잖아."

"그.래."

마주하고서는 처음으로 대답이 나왔다.

자신의 귀로 듣는 자신의 목소리, 그녀는 움찔해서 주춤거렸다.

물론 저 그래라는 단어 역시 기억을 바탕으로 그 뜻을 유추해 내뱉은 것이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궁금해하네? 이건 당황스럽다고 하는거야."

그녀는 결국 수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하얀 도화지에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이다.

말도, 감정도 당연한 상식도 하나하나 전부 다.

"이해 했어."

그러나 그 도화지는 현재 말도 안 되는 하드웨어를 가진 하나의 거대한 하이브마인드.

강도연이 가진 17세 인간 소녀가 쌓아 온 지식과 경험 정도는 채 몇 시간이 안 되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배운걸 해석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그리 큰건 아니었다.

"...정말?"

"쉬워. 각종 생명체의 유전자를, 처음 접하는 개념과 세상을 한줌의 단서만으로 계산하고 분석하는 것에 비하면."

그것, 군단은 등을 돌렸다.

"강도연. 최초의 군단장. 나머지 배움은, 나중에. 37층계로 가. 또 다른 적이다."

그리고서는 손가락으로 37층계로 향하는 통로를 가리켰다.

동시에 강도연의 뇌에도 지금 군단이 보고 있는 광경이 전송되고 있었다.

"가, 갈게!"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가 허겁지겁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서 있을 뿐.

[이제 알겠느냐. 네가 느끼는 것, 네가 보고 듣는 것, 네가 생각하는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되는지]

"..."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에게 인간을 배웠으나. 그 배움을 우리 것으로 만든 순간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결국 참고 자료일 뿐이지]

분명 강도연은 군단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자신이 아는만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것은 완벽하지도, 스스로의 성에 차지도 않았다.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그. 강신우."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턱대고 지식을 쌓고 완벽히 암기했지만 아는것을 실제로 매칭하는건 단순히 하드웨어가 좋다고 해결되지는 않았다.

지금 군단의 자아는 아직 아기나 마찬가지.

강도연에게서 배운 그 어떤 감정도 이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

"뭐야. 무슨 일인데?"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37층계에서, 정찰병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런. 뭐 아직 시간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일단 알림이 울리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실제로 상황이 급박해보였다.

강도연이 이끄는 군단병들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취하던 휴면상태에서 깨어나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뭔데?"

[37층계에서 발견한, 움직임. 그 영상기록을 보여주지]

이번엔 시점이 정찰병으로 넘어갔다.

분명 폐허를 수색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보였다.

"사람?! 아, 아니. 어쨌든! 살아있는! 설마 죽었나?"

흥분해서 말이 꼬였다.

하지만 분명 흥분할만했다.

[맞다. 그 모습과 외향이 우리가 지난 층계에서 봤던 망령들과 비슷하다. 물론 죽은지 오래된 시체는 아니다. 몸에 주술의 문양이 그려지지도 않았다]

"대체 뭐 하는거지?"

나는 미간을 찌푸린채 보다 자세히 살폈다.

일단 여성으로 보였다.

몸에 걸친 다 삭아버린 거적을 보니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분명 생기는 있어 보이는데, 마치 죽은 것마냥 고개를 푹 쳐박고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정찰병이 가까이 접근했으나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분명 살아있다. 정찰병이 탑재한 기관이 미약한 호흡을 감지했다]

정찰병이 웨엥 하고 날아가 얼굴에 턱 하니 앉았다.

그러나 엄지손가락보다 큰 벌레가 얼굴을 기어다닌데도 조용했다.

"설마 자나?"

[아니]

그러나 그 순간.

번개 같은 속도로 정찰병이 붙잡혔다.

시야가 어지러이 돌더니, 붉은 점막과 새하얀 이빨 사이로 사라졌다.

이어서 들리는 우지직 하는 소리.

"지금...잡아먹힌거야?"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다음 영상이다]

정찰병이 잡아먹힌게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는 차치하고.

나는 이어지는 영상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이 영상은 또 다른 정찰병의 기록이었다.

바로 첫번째 정찰병이 저 괴인에게 잡아먹히는 순간을 관측한.

"...저 미친."

한소리 안할 수가 없었다.

정찰병을 단숨에 잡아먹은 괴인이 몸을 일으켰다.

마구 뒤틀리는 몸이, 희번덕 뜬 눈이, 질질 흐르는 타액과 으르렁거리는 숨결이 저 여자가 정상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저들이 멸망하고 스스로를 봉인한 이유가 저것이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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