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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35화 (35/254)

35화-세상의 비밀(1)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감각의 확장과 추가.

강도연은 비틀거리면서도 히죽 웃었다.

군단이 직접 나서준덕에 그녀의 뇌는 이제 원활하게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뇌가 자극당한 그녀는 기묘하게도 쾌감을 느꼈다.

[분명 범상치 않은 적이다. 실력자로 추정된다. 우선 군단은 포격형 병사들에게 포격을 지시했다]

"...!"

단번에 수십개의 가시뼈가 허공을 가로질러 그들에게 쏟아졌다.

가장 선두에있던 사내는 물론 다른 전사들도 일제히 검을 들어 가시들을 모조리쳐내고 베어버렸다.

"내가 가야겠네."

강도연이 굉음과 함께 땅을 박찼다.

사내 역시 부하들을 두고 검을 빗겨든채 홀로 뛰어오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적들 중, 단연코 강한 상대였다.

"흣."

충돌 직전강도연의 허리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동시에 서슬퍼런 검날이 그녀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쳤다.

[그의 동작은 절도 있고, 예리하고, 날카롭다. 군단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시선을 집중하여 그 움직임을 모든 방향에서 머리에 새겼다. 검으로는 감히 대적할 수 없다. 저것이 바로 검을 쓰는 법이었다]

강도연은 초월적인 감각과 신경반응으로 적의 검을 상대했다.

검술로는 상대가 안되니 순수한 육체능력으로.

검날이 계속해서 그녀의 눈앞을 스치고 몸에서 빗나갔다.

상대 역시 보통이 아닌 육체능력을 보여주었으나, 군체의식을 빌려 신경을 조작하는 그녀에 비해 속도가 느렸다.

"어딜!"

그녀가 자신의 허리를 노리는 그의 검을 피하고, 그대로 허리를 틀어 발차기를 날렸다.

허리를 튼 불안정한 자세에서 시작한 발차기지만 허리뼈가 스스로 부러지며 동시에 허벅지의 근육이 파열을 감수하고 폭발했다.

[상대법을 찾은 것인가. 물론 만능세포가 아닌 평범한 군단병으로는 시도하기 힘든 전술이다]

이 기괴하고 변칙적인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걷어차인 상대는 북터지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쉽게는 안 끝나는건가..."

[대기하던 나머지 병력이 움직인다. 우리도 그에 맞춰 대응한다. 이미 파악은 끝났다]

순식간에 부러진 허리와 파열된 허벅지를 재생한 강도연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상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위기임을 인식한 적들이 이제 단체로 몰려오고, 군단도 그에 맞춰 움직였다.

[그래도 전부가 우두머리처럼 수준이 높아보이진 않는다. 군단은 우리의 특기인 집단전술을 사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만능형 군단병들이 일제히 검을 들고 내달렸다.

개체 하나하나가 맞춰 움직이는 조밀한 합격과 연계기는 인간과 오크등을 베이스로 만든 만능형 군단병들만이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강도연도 비틀거리며 일어난 상대를 향해 다시 한번 덤벼들었다.

'이제 보인다.'

그녀는 힘이 빠진 상대의 검을 피하고, 자신이 검을 휘둘러 그 팔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곧바로 목을 베었다.

푸르게 불타던 안광과 문양이 꺼졌다.

"...슬퍼하나?"

군단병들이 계산하고 계획한 전술대로 남은 적들을 몰아치는 사이.

그녀는 멍하니 미라가 되어버린 시체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적의 몸이 동시에 달려든 아군에 의해 쓰러졌다]

"아직 끝난게 아니야."

"맞아. 내부에 뭐가 있는지 봐야해."

군단은 승리했으나, 긴장을 풀기는 이르다.

나는 천천히 놈들이 지키려던 그 구조물로 다가가는 강도연을 지켜보았다.

녀석의 시점에 맞춰서 화면을 확대했다.

"여기, 정말 신전 같은데."

[정찰병을 먼저 투입하겠다]

곁에 있던 군단병 하나가 정찰병 역할을 수행했다.

거대한 석문을 열어젖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번엔 그 정찰병으로 시야를 옮겼다.

"저, 적인가?!"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다른 놈들처럼 살아있는 상태도 아니다]

이 넓직한 공간에는 오직 하나의 존재가 가부좌를 틀고 한가운데 앉아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피로 그린 것 같은 오래된 마법진이 바닥 전체에 그려져 있었다.

"저 사람이야. 저 미라를 중심으로, 이곳 전제에 퍼져 있던 흐름이 순환하고 있어."

강도연이 그걸 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군단병 하나가, 저벅저벅 걸어 그 미라가 품에 꼭 안고 있던 무언가를 빼내었다.

"...금강저?"

"그게 뭔데?"

"있어 그런거."

물론 당연히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법구인 금강저와 닯았다.

군단병은 손으로 금강저의 중간에 박힌 무언가를 비틀어 빼내었다.

[기묘한 문양이 새겨지고, 스스로 발광하는 보석이다. 문양은 어쩌면 이곳에 그려진 다른 문양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묘한 흐름, 망령들을 부리던 주술의 근원은 이 보석이다]

내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

그걸 인계받은 강도연도 멍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용한다던가, 분석하는게 가능한가?"

[아직은 불가능하다.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바로 써먹는건 힘들어 보였지만.

"여기 단서가 있어. 이것 봐."

"그래. 읽을 수도 없는 문자보다는 이게 낫다."

당장은 그림의 떡인 그 발광석을 챙기고, 강도연은 어딘가로 이동했다.

[군단도 큰 관심을 보였다. 대체 벽에 그려진 저 해괴한 문양들이 어떻게 단서라는 것이냐? 하지만 이내 그 문양들이, 무언가를 '묘사'하고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이건 그림이라는거야. 벽화 같은데? 뭘 그린거지?"

강도연이 그림의 개념을 처음 접한 군단에게 자신의 지식을 알려주었다.

군단은 즉시 신전 안에 그려진 모든 그림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거 봐. 보여 오빠? 여기가 시작 점 같은데."

그때 강도연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도 해당 부분을 확인했다.

역시 벽화였다.

정확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한 동굴로 들어가고 있는 사진.

그것도 창을 든 다른 이들에게 위협당하면서 말이다.

"이 사람들...지상에서 쫒겨난건가?"

나나 동생 모두 비슷하게 해석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옆을 확인했다.

그 옆은 화려하게 치장한 누군가를 중심으로 지하 도시를 발전시켜나가는 이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강도연의 분석을 또 한번 분석한 군단이 이번엔 스스로 그림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일단 이 벽화에 따르면 이 도시 같은 곳이, 한두곳이 아닌 것 같다고]

"수많은 도시들이 그려져 있네. 그런데 그 다음은 뭐지? 그 도시들이, 하나 둘 없어지고 있어."

벽화가 절반쯤 해독되었다.

여기서부터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다.

[도시들이 하나씩 함락당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다급히 대피했다. 그러나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도시 하나로 모였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스스로 입구를 봉인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주술에 참여했다. 자신들의 터전이, 마지막이 짓밟히는걸 지키기 위해. 밑에 층은 일종의 전초기지였구나. 도망칠 곳을 찾기위해 만든. 하지만 그 밑에서 올라온 우리는 알지. 밑에는 도망칠 곳 따윈 없었으니까."

강도연이 마지막 그림을 보고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진상을 아는데는 성공했으나 그만큼 새로운 의문도 생겨났다.

[한때 번성하던 이들을 자멸로 몰아간 정체불명의 괴물들, 놈들은 부디 살아있는 생명체이길]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군단은 어서 빨리 포식할 수 있는 먹이를 만나길 바라고 있었다.

"봉인은 어쩌게."

[화면을 봐라. 우리가 금강저를 부순 순간 봉인은 이미 깨졌다. 이미 군단은 정찰병들을 보낸 상태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엔 허공을 가로지르는 정찰병의 시점으로 화면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곳 36층계 다음 37층계 역시 구조물등이 존재했다.

다만 상태가 좋았던 밑에 비하면 말 그대로 폐허였다.

"식생이 살아있다. 봉인되어 고립된 곳이 아니라 그런건가?"

군데군데 특유의 버섯과 이끼를 비롯한 동굴 식생들이 보였다.

다만 어느정도 덩치 있는 생물의 움직임은 감지되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 역시 개발된 줄기층 답게 매우 넓었다. 보다 자세한 정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밑층계의 둥지화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탐사하지 못한 소규모 공동들도 탐색해야한다]

군단은 바쁘게 움직였다.

물론 이제는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 정도는 손쉽게 할 지경이지만.

"혹시 뭐 있으면 알려주고."

나는 거기서 휴대폰을 껐다.

군단은 늘 그렇듯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니, 나도 움직여야 할때였다.

'할 수 있을까? 아냐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야.'

나는 차지연의 메시지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유닛들도, 플레이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얌전히 숨어 있어도 위험하고 활동해도 위험하다면 활동하는게 맞다.

결국 이 미친 게임도 생태계와 같다.

조금의 자비도 없는 냉혹함.

뒤쳐지고 약해지면 결국 더 강한자에게 잡아먹히고, 양분으로나 쓰일 뿐이다.

무조건 앞으로 달려야했다.

나는 품에 챙긴 물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건 내 완전범죄를 도와줄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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