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군단의 보은(3)
"나보고 얘를 찍으라고. 군, 군단에게...보내라고,"
[우리를 믿는다면]
믿는다면. 그 한단어가 점차 희미해지던 내 정신머리를 가까스로 봉합했다.
나는 덜덜 떨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수습해야했다.
"미안, 미안하다..."
나는 주체못할 정도로 떨리는 팔을 들었다.
다른 손으로 붙잡아야 될 정도로 떨었다.
숨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다 나 때문이었다.
다 나 때문에.
[찍어라. 시간이 많지 않다. 숨이 끊어지고 뇌손상이 오면 기억을 장담할 수 없다]
눈을 질끈 감았다.
무능에 대한 대가는 잔혹했다.
찰칵하는 셔터 소리와 함께.
나는 결국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뒷일은 우리에게 맡겨라. 여기서 주저앉을테냐. 또 다시 잃기만 하고 지켜만 볼것이냐]
"...아니, 절대 그렇게는 못해. 절대."
[그렇다면 움직여라. 너는 분명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한글자 한글자가 내 마음을 후벼팠다.
나는 여전히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게이트!! 돌발 게이트다!"
"환자들 챙겨요!"
거의 동시에 병원 외부에서 사이렌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괜히 말세니 종말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게 아니다.
하지만 진상을 아는 이들에게는, 지금은 치열한 전쟁이 한창인 상태였다.
나는 충격으로 울다 지쳐 현기증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병원 복도를 내달렸다.
유리창이 깨지며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나면, 환자 하나 실종된건 자연스럽게 묻힐테니까.
*
"..."
[그의 감정, 똑똑히 느껴지느냐. 거센 분노와 증오. 우리는 그것을 배우는 중이었다. 무력감과 죄책감 따위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 증오를 태워라. 분노는 힘이다]
어둑한 공동.
순간 빛이 번쩍이며 전신이 붕대에 감긴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감정들이 곧 우리의 힘이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그 누구보다 뜨거운 존재가 될 것이다]
군단병 몇이 조심히 움직여, 처참한 상태인 강도연의 몸에서 붕대등을 벗겨내었다.
이대로 냅두면 그녀는 곧 숨이 끊어진다.
동시에 군단의 둥지가 움직였다.
그녀를 향해 촉수를 뻗었다.
[그는 진심으로 동생의 생환을 바라고 있다. 그의 슬픔이 느껴진다. 슬픔은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그 슬픔을 지워줄 차례였다]
촉수들이 천천히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촉수에서 분비되는 끈적한 점액으로 시작된 육벽이 서서히 그녀를 감쌌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동안 군단이 보여준 소화흡수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과정은 전혀 달랐다.
[우리의 세포를 그녀의 몸에 동화시킨다. 차분히, 천천히.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를 우리의 몸으로 대체시킨다]
그녀의 각 신체 조직 일부로 인간의 유전자에 대해 완벽히 분석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덕에, 군단은 자신의 몸으로 그녀의 육신을 대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역사에 기록된다. 군단 최초로,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고 활동할 지휘 개체가 탄생할 것이다]
이는 엄청난 특별대우였다.
그동안 오직 포식과 학살, 분해와 분석만을 반복해온 군단에게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만한 군단내 또 다른 자아의 등장은 애초에 가정조차 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을 가능케한것은 직통으로 이어진 스트링으로 전해지는 강한 염원 때문이었다.
[두려워 말라. 장담하는데, 그녀 강도연은 우리의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으니]
강도연은 어느새 완전히 육벽에 잠겼다.
둥지 한가운데, 그녀가 들어있는 큼직한 육벽은 마치 인간의 자궁을 형상화 한것처럼 생겼다.
그녀는 그 안에 들어찬 점액에 완전히 담겨 있었다.
그 점액은 군단의 세포가 끝도 없이 모여 만들어진 것.
그녀의 몸을 구성한 기존의 세포들이 세포 단위로 분해됨과 동시에 새로운 세포를 써 완벽히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었다.
[마침 잘 되었다]
군단은 전체가 행동을 멈추었다.
오매불망, 강도연이 담겨 있는 특별한 둥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35층계의 적들은 특별하고 강하다. 기존의 방법으로 뚫어내려면 막대한 에너지의 손실이 예상된다. 그러니 전력을 보강해 가는게 당연한 이치다]
군단은 35층계의 적들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진즉에 시체 하나를 빼돌려 분석을 시도했으나, 몸에 그린 문양의 불이 꺼지는 순간 그들은 바싹 마른 미라가 되어 후두둑 부숴졌다.
애초에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 분석 따윌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엔 이긴다]
그래도 상대의 밑천을 전부 확인했다.
군단은 이미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동시에, 우리의 뇌도 더더욱 발달한다]
이렇게 비는 시간에 군단은 다른 부분을 더 강화했다.
이번에 강도연에게서 얻은 17세 인간 소녀의 뇌 조직일부.
그것으로 완벽히 분석한 인간의 뇌기능을 더해 군단의 뇌 역시 급격히 성장한다.
오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도의 두뇌.
비록 완벽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한들 군단은 그 구조를 모방하고 용적은 수천배 이상 키웠다.
[이젠 정말 확실히 알 것이다. 아직 배우지 못했다지만, 배운다면 육성기관을 만들어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뇌는 이제 공동 하나를 혼자 가득 채울 정도였다.
아직은 백지에 가깝지만 어쨌든 중심을 잡아주는 뇌의 발달은 군단 전체의 연산력과 통신 속도를 급증시키고 군체의식 자체를 성장시켰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한번 진화했다.
[보았느냐]
"...그래."
[이것이 군단의 진심이다]
"믿었어."
이 광경을 전부 지켜보던 그는 어두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동생이 들어있는 둥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연락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
"강신우입니다."
"네. 강신우씨."
늦은 밤.
나는 택시를 타고 차지연에게 향했다.
차지연과의 합작은 이제 내게 필수조건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사냥당할지 모르니까.
내 정체를 오윤아의 권속으로 알고 있는 그녀는 탐탁찮아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오윤아는 동맹 활동에 그닥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당장 오늘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니까.
그녀가 보기엔 나는 그다지 이용 가치가 없는...
"소식 들었습니다. 동생분의 소식...시체마저...놈들에게."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탄식하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솔직히 놀라서 눈이 커지고 말문이 막혔다.
그녀정도 되는 강하고 중요한 존재가 그런걸 신경써주다니.
"저는 유닛이기 이전에, 헌터였고 사람이었습니다."
쓰게 웃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러고보니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군단병 같이 군단의 일부가 아닌, 엄연히 하나의 인격체인 그녀는 과연 자신의 플레이어에게 절대적으로 동조하는건지 아닌건지.
"위로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일로 온겁니다."
"다른 일이라고요?"
"증명하겠습니다. 그러니까...앞으로 있을 게이트 공략전, 저도 데려가 주세요."
이를 악문 나는 결심한 내용을 그녀에게 전했다.
차지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위험하게 다닌다고 군단에겐 미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걸 바라고 있을테니까.
나는 이제 그걸 알 수 있었다.
"증명하겠다고요?"
"의뢰를 주세요. 제가 처리해 보겠습니다."
"그건...일단 알겠습니다. 저희 플레이어도 흥미롭게 생각하는것 같네요. 전력의 증가는 언제든 환영이라."
차지연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믿는 구석이 없는건 아니었다.
[35층계를 넘어 미궁의 진실을 파헤쳐라. 그렇다면 챕터 3에 도달할 것이고, 추가적인 기능을 이용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걸음 남았다.
"이제 스물 셋, 어린 나이에 고생하시네요."
"어, 헌터님도 이제 스물 넷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건 그렇지만.."
처음엔 좀 놀랐다.
너무나 어른같던 그녀가 고작 1살차이였다니.
그녀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동생분을 해치고 오윤아를 공격한 정체 불명의 유닛들, 저희 플레이어는 이미 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승리를 장담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겁니다."
"대체 어떤 놈들이죠?"
"제게도 정보를 잘 알려주질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알게될거에요."
그녀가 걱정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복수는 어차피 상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군단이 직접할거니까.
"감사합니다."
단지 그냥 무시해도 될 내게 이렇게 마음 써주는게 고마웠다.
[되도록 붙어있는게 좋을 것이다. 적들은 플레이어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 다만 그놈들이 과연 오윤아를 플레이어라고 생각해서 저격한걸까?"
차지연과 헤어진 나는 머리를 문질렀다.
박살난 멘탈을 수습하고 생각해보니 걸리는게 있었다.
플레이어를 저격한다는건 같은 세상에 속했다는건데, 내가 아는 오윤아의 유닛들은 CCTV등에 찍힌 그 첨단 슈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아니면 우리 같이 대리해서 상대를 죽여주는 집단일수도 있고. 그건 모르겠다."
혀를 찬 나는 다시 택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