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군단의 보은(2)
"정말 공격해도 되는거지요?!"
"멍청아! 탐지기가 울리고 있잖아!"
"하, 하지만 평범한 학생 같은데..."
첫 실전이다.
긴장하고 당황했지만, 그들은 움직여야만 했다.
"말 못들었어?! 타깃에 남녀노소는 관계 없다고. 겁나면 빠져 애송이."
"그, 그건 아니고요!"
신경질을 낸 다소 왜소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곁에 있던 젊은 청년은 허겁지겁 그를 따랐다.
'내 알반가. 나는 그냥 시키는대로 하고, 약을 구하면 그만이야. 그것만 생각하는거야.'
거친 얼굴을 구기고 이를 악문 그는 태우던 담배를 퉷 뱉어낸 뒤, 손목에 찬 무언가를 작동시켰다.
"크흐.."
짜릿한 통증과 함께 손목에서 시작한 푸른 물결이 그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받은 하사품.
곧 얼굴을 포함해 전신을 나노슈트로 덮은 그의 얼굴에 십자의 푸른 안광이 번쩍였다.
"우왁.."
"저거 뭐야?"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목표물을 향해 똑바로 걸었다.
숨이 가빠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는 쩍 갈라진 허벅지 부분의 슈트에서 무장을 꺼내었다.
일반적인 권총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탄환을 발사하는 고도의 첨단 무기.
'할 수 있어.'
그는 그것을 타깃을 향해 겨누었다.
탐지기가 가리키는 타깃은 주차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모녀였다.
이름도 모르는 그들에게 원한은 없다.
다만 원하는 것을 위해, 그는 그들을 죽여야했다.
"엄마!!"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바로 그 순간.
반사적으로 이곳을 돌아 본 여고생이 눈을 황금색으로 번득이며 소리쳤다.
"큭, 뭐지?!"
당황한 그는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여고생의 몸에서 뿜어진 반투명한 황금색 방어막에서 불꽃이 튀며 총탄을 막아냈다.
주변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시간을 길게 끌 수 없었다.
"멍청아! 빨리 쏴버려!"
그는 뒤에 있을 자신의 동료를 윽박질렀다.
다행히 동료는 그 이상 얼타지 않고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난 몰라!"
그가 접근하는 사이 마찬가지로 슈트를 입은 청년은 이를 악문채 대구경의 총을 꺼내어 여고생을 겨누고 저격했다.
뿜어진 대구경 철갑탄이 소리를 찢으며 날아가 허공을 가르고, 방어막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방어막이 막아내지 못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어막이 깨지고 핏물이 사방에 튀었다.
눈을 찌푸린 그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했다.
"이런 씨."
"어, 엄마..."
그러나 저격은 실패였다.
어머니는 그 찰나의 순간 몸을 날려 자식을 구했다.
그녀는, 뿜어진 선혈에 피칠갑을 한채 머리가 참혹하게 박살난 어머니의 시체 밑에 깔려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꼬마야. 네가 죽어야, 우리 애가 산다."
그는 권총을 들어 그녀를 겨누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없었다.
"커억..."
"빨리 뛰어!"
누군가가 던진 큼직한 벽돌이 강속으로 날아와 그의 머리에 직격했다.
슈트덕에 타격은 거의 없었지만 그는 아직 초짜.
그가 당황한 사이, 사색이 된 또다른 여고생이 패닉에 빠진 친구를 잡아끌었다.
"야이 등신아아!!"
"히익.."
뒤늦게 정신차린 그는 방해꾼을 방치한 동료에게 오만가지 욕설을 퍼부었다.
시간이 없었다.
경찰이 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타깃을 처리해야했다.
"넌 튈 준비나 하고 있어! 마무리하고 갈거니까!"
동료에 대한 기대를 접은 그는 땅을 박찼다.
슈트덕에 초인적인 각력을 낼 수 있었다.
내장된 인공지능이, 친구를 부축해 근처 건물로 올라가는 타깃을 잡아내었다.
'귀찮게 구는군!'
이를 간 그가 새로운 무장을 꺼내들고 그녀들을 쫒았다.
이미 한번 살인을 경험했다.
두번은 어려울까? 죽인다.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
"엄마...엄마가..."
"알아. 나도 봤어. 그래도 지금은 정신차려 제발 윤아야!"
강도연은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사실상 정신을 놔버린 오윤아를 질질 끌면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도와주세요! 도와줘요! 살인범이야!"
"무, 무슨...히익!"
그녀는 주상복합아파트의 상가 건물을 오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렀다.
황급히 나온 몇몇 사람들은 피칠갑을 한 오윤아를 보고 기겁하며 구급차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있는데.'
강도연은 잠깐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지독히 안일한 생각이었다.
"우와악!"
"무슨...아아악!"
그녀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단 한번의 도약으로 3층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푸른 슈트의 괴인이, 곁에 있던 사람들을 걷어차고 집어던져 날려버렸다.
"너희에게 원한은 없다니까? 근데 여기서 죽어줘야 된다고."
그가 손등에서 뿜어져 나온 서늘한 칼날을 들이밀었다.
칼날에 에너지가 공급되자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안 돼.'
결국 그녀의 리미트가 깨졌다.
저항해야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패닉에 빠져 이가 딱딱거리고 호흡에 곤란이 오기 시작했다.
굳이 낙인의 반응을 보고 여기까지 와서, 위기에 처한 오윤아를 구출한건 단순하고 감정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플레이어인 오윤아를 알아내고 노릴 정도라면 자신의 오빠인 강신우도 위험하다.
그러니 오윤아를 어떻게든 살려서 연줄이 있는 차지연에게 다른 소속의 유닛을 발견했으니 부탁해야 한다라는 나름의 계산 때문이었다.
"아.."
그러나 지금 여기서 죽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주저 앉은 강도연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푸른 섬광을 보며 작게 탄식했다.
"크악..."
"유, 윤아야."
칼날이 그녀를 베어버리려는 순간.
괴인은 강한 충격파를 맞고 뒤로 날아갔다.
그녀의 곁에 어느새 창백한 얼굴로 웬 이상한 지팡이를 들고 있는 오윤아가 있었다.
"도망..도망치자."
그녀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안일하게 생각할 순 없었다.
'이건 전쟁이야.'
이를 악문 강도연이 우월한 신체능력을 이용해 오윤아를 끌고 더 높이 올라갔다.
어차피 출입구는 여러개다.
몸을 숨기고 조용히 기다렸다 이곳을 탈출하면 된다.
"절대 못 놓치지."
"꺄아악!"
그러나 상대가 너무 강했다.
분명 비상구 문을 잠궈버렸지만, 플라즈마 블레이드는 두꺼운 쇠문을 단번에 반토막 내버렸다.
"으..으아아!"
그 찰나의 순간,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강도연이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방심한 상대의 면전에 작은 주먹이 그대로 틀어박혔다.
"끄억."
으직 하는 소리와 함께 슈트에 강한 충격이 덮쳤다.
주술로 강화된 그녀의 신체능력을 무시한 대가로 상대는 시야를 잃어버렸다.
"조, 조금만 버텨!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오윤아가 제물로 받은 지팡이를 이용해, 각인된 또다른 주술을 발동시켰다.
그 사이 강도연은 비틀거리는 상대의 사타구니를 강하게 걷어찼다.
비명을 지르며 급소를 부여잡는 상대의 모습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동반격실행]
지금까지는.
"어?"
자신감이 붙어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리던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핏물을 뿌리며 날아가는 무언가.
자신의 얼굴에 뿌려진 핏물에 숨을 들이켰다.
그건 분명, 교복 소매에 덮인 자신의 팔이었다.
"아..."
그러나 자신의 팔이 잘려나간걸 인식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어느새 걷어차인 한쪽 무릎 관절 역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뜯겨나갔다.
움직임 자체가 달라진 슈트의 십자눈이 붉게 번득이고 있었다.
"미안해 도연아..."
그녀가 허물어지는 그 모습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린 오윤아가 주술을 취소했다.
주술의 취소 대가는 과부하.
자폭을 택한 오윤아의 선택으로 응축한 강한 에너지가, 제멋대로 폭발하며 적을 향해 뿜어졌다.
*
[군단은 전략상 후퇴를 선택했다. 놈들은 죽여도 죽지 않는 놈들이다. 심지어, 무력도 뛰어났다]
"그래도 계속 몰아치면 될것 같은데?"
[맞다. 어차피 이번 전투는 서로의 힘을 알아보는 탐색전일 뿐이었다. 이 다음은...]
말이 끊겼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나는 스팸인가 싶어 끊을까 했지만, 그냥 받았다.
이상하면 바로 끊으면 되니까.
"예. 누구시..."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은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상대가 다급하게 떠들고 있는데도 내 귀를, 내 스스로가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어서 병원으로 뛰어라!]
녀석이 내게 소리칠 때까지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서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이미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아 탄 이후였다.
"이게...이게 어떻게.."
[정신을 잡아라. 위험한 상황이다]
나는 패닉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위험한 상황? 당연히 위험한 상황이겠지.
혹시나 싶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나, 나 이게 두번째야.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어. 얘까지 잃으면 나...버틸 수 없어."
내가 미친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내 앞에 의식 없이 누워있는 동생은 말 그대로 숨만 붙어 있는 고깃덩이 신세였다.
팔다리도, 얼굴도 다 잃어버리고.
마찬가지로 의식 불명인 오윤아와 비교해도 더 심각했다.
그 참혹한 모습에, 내 눈이 덜덜 떨렸다.
[아니, 넌 할 수 있다]
"뭐..?"
[화면을 봐라. 그리고 믿어라. 군단을, 네가 빚어낸 작품을]
화면이 반전했다.
미궁의 최하층계.
우리의 기원이 되는, 동시에 군단의 뇌가 자리한 그곳.
[군단은 네게 은혜를 갚으려 한다]
그곳에, 집결한 군단병들이 일제히 시립해 있었다.
그들의 붉은 안광이 마치 화면 너머 나를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