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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30화 (30/254)

30화-군단의 보은(1)

[벌써 15번째 줄기이자, 35층계에 도달했다]

"설마 이대로 끝인가?"

군단은 파죽지세로 위로 올라갔다.

물론 모든 층계를 점령한건 아니었다.

정찰병들을 계속해서 올려보내는 것 뿐이었다.

우리의 행위를 이해하고 막아서는 세력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우리가 먼저 특이 사항을 발견하거나 할때까지.

"말도 안 돼."

[군단은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때.

군단은 정찰을 멈췄다.

특이 사항을 먼저 발견한 것이다.

"대체 뭐지? 문명의 흔적?!"

[그건 아직 알 수 없다. 군단은 세력을 반으로 나누었다. 절반은 계속해서 점령한 층계를 먹어치워 간다. 나머지 절반은 최대한 빠르게 위로 향해 표본과 정찰을 시행한다]

"건축물이잖아?!"

뭐라뭐라 하는건 눈에 안들어왔다.

나는 눈을 비비고, 휴대폰 액정을 뽀득뽀득 닦았다.

그래도 바뀌는건 없었다.

자그마한 벌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정찰병이 그곳을 계속해서 살폈다.

35층계...이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다만 한가지 다른 것은, 식생으로 가득 차 있는 다른 동공과는 달리 그 어떤 생물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절대 자연적으로 생길리 없는 조각상과 구조물등 유적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하."

나는 화면에 보이는, 바닥에 쓰러져 반쯤 부숴진 조각상을 보고 탄식했다.

반은 부숴져 있지만 그래도 이목구미를 알아보는게 가능했다.

눈 두개, 코, 입 등...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대체 뭐지?"

[네가 모르는 것, 당연히 군단도 모른다. 하지만 군단의 역사는 늘 미지의 것을 분석하며 시작되었다. 적어도 저 조각상들이, 무언가를 형상화 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하긴 눈코입 달린건 고블린이나 오크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군단과는 별개로 나도 두뇌를 풀가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명의 흔적이라고 보는게 맞았다.

영화 같은데 나오는 고대의 유적인가?

그렇다면 저것들을 만든 존재들은 어디 있지?

만약 그들이 실존한다면 수호정령들과 관계 있는 것도 그들 아닐까.

그럼, 그들은 대체 어떤 이들일까.

어떤 이들이기에 이런 동굴에 저런 유적을 만들었나.

[정찰병들이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겪어 온 자연환경과는 전혀 다른 이질감을 이용해, 군단은 이 구조물들이 우리의 둥지 같이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추론했다]

정찰이 지속되고, 거대한 유적의 내부도 볼 수 있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이 거대한 공동 전체가 유적이었다.

수많은 방과, 제단으로 보이는 구조물 등등.

심지어 위층계로 향하는 통로는 이 유적 한가운데 있었다.

"...구멍?"

정찰병이 고개를 쳐들었다.

거대한 원통형의 통로가, 천장에 뻥 뚫려 있었다.

그 주위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문양등이 새겨진 상태였다.

[이곳이 어떤 곳이든간에, 분기점으로 삼을만한 곳임은 확실했다. 판단을 마친 군단이 병력을 움직였다. 우선은 이곳을 점령하고 중간 기지로 쓸 생각이었다]

군단의 본대가 정찰병들이 훓고 지나간 길을 그대로 가로질러 이곳으로 향했다.

어차피 다른 식생들은 더 이상 우리의 앞을 막아설 수 없으니까.

구석구석 뻗은 잔가지까지 전부 확인해서 특이사항이 없다는것만 확인하면 아마 그대로 내버려 둘 확률이 높았다.

[유적이 발견된 35층계 바로 밑, 34층계. 이곳이 그 나방이 있던 곳인가]

바로 직전까지 도달한 만능형 군단병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녀석이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희고 반짝이는 무언가.

지난번 상대했던 나방의 나방가루였다.

[수문장이 존재한다는건, 당연히 그 너머에 지켜야 할게 있다는 것]

군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문제의 35층계에 처음으로 발디디는 순간이었다.

[함정이었을까?]

바로 그 순간에, 변수가 발생했다.

"뭔데 이건!"

[지금 군단도 파악중이다]

유적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곳곳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들.

그 문양들에 서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기겁했지만, 군단병들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저게 대체..."

[아, 차라리 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이용 가능한건 살아있는 생물체 뿐이다. 저 정체 모를 놈들을 분해하고 먹어치우면 단서를 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적의 벽이 쩍쩍 금이 가더니, 그곳에서 창백한 팔다리가 펑펑 튀어나왔다.

속이 비칠정도로 매끄럽고 창백한 피부, 키크고 가느다란 몸, 번득이는 눈.

그 창백한 몸에는 마치 낙인처럼 새겨진 기묘한 문양을 잔뜩 그리고 있는 그들이 하나 둘 깨어나 군단병들에게 적의를 드러내었다.

"유닛...일리가 없지. 이렇게 깨어나는걸 보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사람과 닮았다.

심지어 머리칼의 길이라던가 성기의 유무로 남녀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도저히 단순한 짐승이나 괴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도구를 쓰는 상대였다. 군단은 흥미를 보이며 당연히 맞상대했다]

손에 낡은 검과 창등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군단병들도 앞으로 몸을 숙였다.

우리야 물러설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

충돌 직전 포효하듯 괴성을 지르는 놈들의 몸에 새겨진 문양과 눈이 번쩍이며 빛났다.

그 직후 이어진 충돌.

가장 놀란건, 의외로 저 창백하고 가느다란 놈들이 힘에서 우리에게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었다.

*

"어쨌든...등교는 계속 하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를테니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큰일인지."

오윤아가 중얼거렸다.

어딘가 어수선한 분위기의 학교.

고블린들의 습격을 받았었던 강도연과 오윤아의 학교로, 오늘 등교를 재개했다.

다만 도저히 공부 분위기는 아니었다.

책상 곳곳에 꽃이 놓여 있었고, 교사들도 반 이상이 출근하지 못했다.

실종자의 가족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례식마저 반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구출해올 수 있을까?"

"글쎄. 입장을 바꿔서, 내가 그 괴물놈들한테 끌려갔다 생각하면 하루도 못버틸거 같아."

오윤아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먼저 말을 꺼낸 강도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굳센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였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무너질 자신이 있었다.

"우린 그런 일 절대 안 겪고, 끝까지 살아가는거야."

오윤아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가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그, 그건...어쨌든! 다 같이 잘되면 되는거잖아. 우리 청산족 사람들이 충분히 캐리해줄거야!"

그녀의 코웃음에 흠칫한 오윤아가 발뺌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강도연도 그것엔 관심을 가지고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얼핏보면 영화나 드라마라고 오해할 수 있을 테지만, 오윤아의 휴대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실존 인물들이었다.

"대체 저 사람들의 능력이 뭔데?"

"종족특성이라는게 있어. 일종의 고유능력인데, 우리 청산족의 경우 본래 내려오던 부족의 주술이 극도로 발전해 땅과 바람의 정령과 직접 소통하게 되었지."

오윤아는 죄책감이 있어서인지 낙인을 믿는 것인지 뭘 물어보면 술술 대답해 주었다.

물론 강도연 본인은 현재 빨대 꽂은 오윤아를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 지 정보를 기억해 두었다가, 진정한 자신의 편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 뿐이었다.

"아무튼 우리 부족은 유능하고 똑똑해. 이제 주변 부족도 다 통일했고, 뻗어나갈 일만 남았다구."

"...너는 따로 움직일 생각 없는거지?"

"윽."

움찔한 오윤아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스스로를 유닛이라고 오픈한 셈인 차지연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과 접촉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과 긴밀한 공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었다.

오윤아는 물론 강도연도 그 조직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가만 안둔댔어."

"그래. 무차별한 살인이잖아. 게다가 괜히 네가 표적이 되면 어떡해."

"좀 아쉽긴 하지만. 차지연씨가 주는 그 물건들, 가능하다면 우리 부족에 주면 분명 좋을 것 같아서."

"그러네...그런 방법도 있구나."

서로 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경우의 수가 굉장히 많았다.

혀를 찬 강도연은 문득 자신의 오빠가 키우고 있는 유닛들을 떠올렸다.

'사람...같지는 않았는데.'

서로 극도로 조심하곤 있지만 그래도 몇가지 들은건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강도연은 신우의 유닛들이 절대 사람은 아닐거라 판단했다.

"아무래도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어."

"그래. 애초에 오늘 거의 다 자습이었잖아."

"그럼 잘가."

단축으로 평소보다 이른 하교시간, 오윤아와 강도연은 정문에서 헤어졌다.

오윤아는 픽업을 온 어머니의 차를 타고 떠났다.

집 방향도 정 반대였고, 매번 미안해하며 딸을 쥐어박는 어머니의 모습이 부담스러워 동승은 그녀가 거절했다.

멍하니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길을 걸었다.

'잘 된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찌어찌 강제로 휘말리긴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낫다고 생각되었다.

만약 자신이 진실을 몰랐다면, 혼자서 끙끙거리는 신우를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으응..? 으읏!"

그러나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그녀는 손목에서 느껴지는 타오르는 아픔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손목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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