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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8화 (28/254)

28화-그가 진심으로 바라는것(4)

언제나와 같이 평화롭던 생태계에 하층계에서 기어 올라오는 괴물들이 난입했다.

버섯이 숲을 이루고 있던 공동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모여든 수호정령들은 사력을 다해 이 하층계의 침략자들에게 맞섰다.

[군단이 새롭게 정립한 새로운 병단의 주력은 오크를 베이스로 한 만능형 병력이다]

"유닛이 되기 전의 오크들이라면, 지금이 더 세보이는데."

[당연히 육체적으로는 비교할 수가 없다. 군단의 정수가 담겨, 비효율적인 모든 부분은 다 쳐내고 오직 전투를 위해 개조되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직립보행을 하는 그들은 2m정도의 키에, 오직 폭발력을 내기 위한 압축형 근육으로 전신을 무장했다.

베이스가 된 기존의 오크 역시 근육질에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했으나 생김새는 물론 애초에 그 궤가 달랐다.

쓸데 없는 내장기관은 전부 제거해 오히려 마르다고 할 수 있는 몸이지만, 그덕에 더 유연하고 탄력적이었다.

[전신에 무장한 갑각 역시 동굴거북, 지룡의 비늘, 거대 딱정벌레등 가장 강한 갑각을 조합해 만들었다]

전신에 두른 검은 갑주가 번득였다.

전체적인 형태는 기존의 고블린 베이스와 비슷했으나, 덩치가 커지고 들어찬 근육량이 늘어난 만큼 그 힘은 배 이상이 되었다.

[만능형 병사들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가 어떤 형태의 공격을 해오든 손쉽게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광을 번득이는 세개의 머리에서 불을 뿜으며 달려드는 거대한 늑대를 향해, 양 손에 검을 든 군단병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신체 구조적으로 불리하지만 주르륵 밀리는 선에서 그쳤다.

군단병이 단순한 생명체가 아닌, 철저히 계획적으로 설계된 하나의 병기이기에 가능한 일.

"크아악..."

날카로운 이빨을 막아선 이 만능형 군단병은 쩍 갈라진 등갑 사이에서 한쌍의 팔을 더 꺼냈다.

동시에 양 손을 막느라 무방비하던 수호정령의 목을 날카롭게 세운 손톱으로 꿰뚫어 버렸다.

[만능형 다음은 돌격형이다. 이 형태에 속하는 이들은 대부분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군단의 가장 큰 장점은 전혀 다른 형태의 병종들이 조금의 틈도 없이 치밀하게 움직이며 몰아친다는 것.

덤벼들던 수호정령의 목을 베어버린 만능형 군단병의 곁으로 거칠게 내달린 커다란 4족보행의 짐승 하나가 또 다른 수호정령에게 덤벼들었다.

단단한 갑주로 무장한건 비슷하나, 강한 앞발과 턱힘을 가진 병력이다.

한번에 여러마리가 달라붙어 물어뜯는 공격에 덩치 큰 상대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져갔다.

"끝났네...애초에 숫자도 우리가 많아."

[방심할 순 없다. 확실히 이 수호정령 카테고리의 생물들, 전투력이 상상 이상이다]

"그래봤자, 생산력에서 상대가 안되는걸."

효율과 유지비 때문에 계산하고 있을 뿐.

군단은 한번에 지금 이상의 군세를 뽑아낼 수 있다.

확실히 수호정령들은 잘 버텼다.

악착같이 버티고선 수많은 군단병들을 쓰러트리고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곁에서 아무리 죽어나가도 군단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오직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호정령들은 비상식적인 그 진득한 살의에 그대로 짓눌리고 있었다.

[놈들이 버섯 숲에서 밀려나자 포격형 군단병들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승기는 이미 기울었다]

두꺼비를 개조한 초기 형태에서 벗어난 새로운 군단병들이 튼튼한 다리로 땅에 자신의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살을 찢고 나오는 등가시를 조준했다.

덩치가 커진 만큼 가시의 크기도 커지고, 사출할 수 있는 힘도 폭증했다.

[허공을 가로지른 독가시가 놈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연약한 털가죽으로는 막을 수 없다]

"전선이...밀린다."

수호정령들은 점차 뒤로 밀렸다.

검은 물결이 그만큼 세력을 넓혀갔다.

[드디어 나서는가]

그러나 그 순간, 수호정령들도 숨겨둔 하나의 패를 꺼내들었다.

강력한 전격. 아니 전격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터져나와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다행히 눈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말 전기인가?!"

[군단은 이정도의 전기에 대한 지식은 없기에 모른다. 하지만 마치 처음 산성액이나 불을 접했을 때처럼 지금까지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힘이다]

전격 같은 섬광을 터트린 존재는 군단이 목적으로 잡았다던 그 나방이었다.

한번에 수십의 군단병이 그 일격에 쓰러졌다.

다만 생체기 하나 없는 그 모습이 전기에 타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탐이 난다]

"그래 당연하겠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군단은 욕심을 부렸다.

무차별적인 탐식은 군단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

미리 대기하고 있던 비행종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쳤다.

[군단이 보유한 가장 뛰어난 공중전 능력. 지구의 조류들에게서 가져 온 그 능력에 군단의 재해석을 더했다]

그 형태가 깃털 날개를 단 벌과 비슷했다.

그런 비행종 수백마리가 일시에 놈을 덮쳐들었다.

[다시 한번 섬광이 터지고 이번에도 수십이 죽었다. 두번의 경험으로 이질감을 발견했다. 놈의 공격을 받으면 알 수 없는 특수한 작용이 일어나, 개체간의 연결이 모조리 끊기고 군체 의식이 꺼져버린다]

"군체 의식이..!"

[보면 볼수록 반드시 얻어야 할 힘이다]

군단은 두번째 병력을 파견했다.

결국은 한쪽이 지쳐야 끝나는 소모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모전은 군단이 자신 있어 하는 것 중 하나였다.

[더 이상 저항할 힘을, 의지를 잃었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승리다]

더 이상 나방은 푸른 섬광을 뿜어내지 못했다.

나방이 채 도망가기 전에, 입을 쩍 벌린 대형 비행종들이 일제히 화염방사기 같은 불길을 뿜어내었다.

"분석은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하루는 필요하다]

군단은 승리했다.

대장 같아 보였던 나방도 사냥했고, 저항하던 모든 수호정령들을 죽였다.

남은건 전리품을 분석하는 것 뿐이었다.

"후우우..."

나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지켜보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길거라 내심 생각했지만 그래도 붙잡고 있던 긴장이 탁 풀렸다.

"보면 볼수록 이상하긴 하네. 대체 그 동굴은 뭐지? 자연적인거 맞아?"

[그건 아직 모른다]

"아직 많이 남았네."

긴장이 풀린건 풀린거고,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안그래도 현실에 신경쓸게 많은데, 점차 넓어져가는 저쪽 세상도 문제였다.

뭔가 있는것 같긴 한데 분명.

"아냐. 이게 뭐가 중요하냐."

그렇게 심각해졌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방법은 하나였다.

저쪽 세상에 무슨 비밀과 사연이 있든간에 결국 결말은 하나였다.

우리에게 전부 잡아먹히는 엔딩이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죽는다는 뜻이니까.

[이제 나름 군단답게 생각할 수 있게되었군]

"네 칭찬은 별로 안 기뻐."

나는 힘 없이 코웃음을 치고 방에서 나왔다.

밖에서는 동생과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 좋은 소식이 들린지는 꽤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차지연씨가 속한 에볼루션...이번에 각국 정부와 연합해서 게이트를 넘겠다고 했어. 그동안 제대로 된 연구도 안되던 게이트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대. 이건 분명 그거겠지?"

"...그래?"

날 보자마자 다가 온 강도연이 속삭였다.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차지연은 유닛, 그리고 그녀의 플레이어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능숙한 존재.

어떤 수를 쓰든 움직일게 뻔했으니까.

"당분간 더 조심하자."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우리 가족의 안위였다.

10년전 아버지를 잃은 그날 뒤로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불안함이, 막연한 걱정에서 진화하며 지금 점점 실현되고 있었다.

*

[스트링. 그것은 유닛과 플레이어를 이어주는 끈]

적막이 흐르는 둥지.

이따금 꿈틀거리는 육벽의 움직임이 전부였다.

하지만 적막과는 달리 지금 군단 내부는 그 어느때보다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는 어느정도 답에 근접했다. 이번에 흡수분해한 대줄기수호정령 4n1236이 갖고 있는 힘은 지난번 흡수했던 마물, 레이스의 조각과 같지는 않지만 흡사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군단의 모든 연산력이 새로운 개념을 학습하는데 소모되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였으나, 군단은 지금까지 그랬듯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것이...우리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 군단이 영혼이란 것에 처음으로 다가선 순간이다]

"..."

군단 전체가 박동했다.

일시에 행동을 멈춘 모든 군단은 이 짜릿한 감각에 잠시 쇼크 상태에 빠졌다.

세계가, 감각이, 상식이 확장되었다.

[내게도 명확하게 느껴진다. 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그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더 명확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스트링이 다른 유닛과 플레이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화되었다. 우리는 여럿이자 하나. 플레이어와 연결된 스트링이 각각의 개체에 수백 수천 수만 갈래로 나뉘어지는 다른 유닛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와 오직 단 하나의 스트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망령의 조각으로 계기를, 수호정령으로 힌트를 얻었다.

그것으로 군단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 느껴지고 있는 이 영혼의 연결이 자신들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다고.

그들이 굶주려 있는 지식의 탐식을 채워 줄 수 있는 일종의 동아줄이었다.

[생소한 감정과 기묘한 느낌이 스트링을 타고 흘러들고 있다. 이것은 분명 그의 감정과 성향이다. 느껴지지 않느냐. 우리는 지금 그와 굉장히 가까워졌다]

군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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