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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7화 (27/254)

27화-그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3)

"살, 살려...끄으윽.."

레이스, 망령이라고도 불리는 영체형 마물.

놈들은 반투명한 몸을 가진 유령들이다.

총탄도 통하지 않는 B급의 상위종 마물.

"...."

방금 내 앞에서, 키 2M의 유령에게 붙잡혀 모든 생기가 빨린 젊은 여성이 바싹 마른 시체가 되어 툭 떨어졌다.

놈은 내 상식속의 망령과는 조금 달랐다.

거적데기 덮어 쓴 것 같은 조잡한 생김새가 아니라, 마치 해골 같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추고 갑옷까지 입고 있었다.

"유닛."

나는 놈들이 변이종, 즉 유닛임을 알아차렸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기어서 뒷걸음질 쳤지만 놈은 이미 날 봤다.

뼈가 시린 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

놈이 뭐라 말하는 것 같지만, 내가 마물의 말 따위를 알아 들을 수 있을리가.

공격당한 전철은 그대로 멈춰서버렸고, 주변에선 계속해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날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썩은 나뭇가지 같이 거친 놈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 왔다.

"꺼져 개자식아!"

[척살권]

그리고 이를 악문 나는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동안 애지중지 아껴 온 내 유일한 한방이 지금 사용되었다.

마치 무언가 몸에서 훅 빠져나가는 느낌.

"-----!!!!!!"

"큭.."

마치 종이가 찢어지는 것 처럼 놈의 몸이 갈기 갈기 찢어지기 시작했다.

유령의 비명은 상상 이상으로 소름끼쳤다.

귀를 틀어막은 나는 실눈을 뜨고, 놈이 점차 사라져가는걸 지켜보았다.

"저건.."

[어서 사진을 찍어라. 이건 놈이 시체를 남긴 것이다. 과연 군단이 저것을 분석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놓치기는 아까운 기회 아닌가]

숨을 헐떡이는 사이 휴대폰이 징징 울리면서 다급한 문자를 띄우고 있었다.

확실히, 놈이 있던 자리에 점차 희미해져가는 무언가가 남았다.

돌조각 같기도 하고, 살점 같기도 한 무언가가.

그 말이 맞다. 어쨌든 이건 기회다.

나는 그걸 카메라로 찍었다.

"...이제 살아 나가야겠어."

다행이 내가 타고 있던 칸에는 내가 죽인 그놈이 끝이었다.

더구나 저 밖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소음을 듣자니, 적절한 타이밍에 구원도 온 것 같았다. 일단 살았다.

"다들 바쁘겠네."

어느새 해가 졌다.

구조된 나는 멍하니 현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오크들의 습격에 버금가는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정도면 방송에서 가능성만 언급했던 계엄령이 실제로 내려질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일단 군단은 망령의 잔재를 흡수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지금의 우리는 모르는 신비로운 힘이 담겨있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무언가였다]

"결국 쓸모 없다는 거 아닌가?"

[글쎄, 한가지 확실한건 군단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쌍두도마뱀의 비늘을 흡수하지 못했을 때, 기어코 방법을 찾아내어 그 단단한 비늘을 우리의 갑옷으로 만들었다]

신비로운 힘은 아마 유령인 레이스가 갖고 있던 힘 영력, 즉 헌터들이 말하는 마나와 비슷한 것일 것이다.

마나는 헌터들이 다루는 이능의 동력이자 그들을 초인으로 만드는 신비로운 에너지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까지 과학적으로는 조금도 알아내지 못한 그 기적을 군단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만약 이해하고 그걸 이용할 수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어."

[그건 군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한 난제를 풀어내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변화와 성과를 가져다 주는지 이미 학습이 되어 있다]

만약 군단이 헌터들처럼 마나를 다룰 수 있다면? 소름이 돋았다.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한차원 위로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니까.

[화면을 봐라. 군단은 지금 2개의 줄기층을 전부 먹어치운 데이터를 싹 뒤져 실마리를 찾고 있다. 너만큼이나 군단도 진심이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우리가 수집한 생명체들의 데이터는 코드의 형식으로 전부 저장되었다.

나는 그 수많은 글자들이 주르륵 올라오며 멋대로 사라졌다 합쳐졌다 나타났다 하는걸 바라보았다.

[모든 데이터를 뒤졌다. 시스템상 코드가 부여된 총 1601개의 생물종이다]

"..답은?"

[실패다. 하지만 희미한 실마리를 잡았다. 이걸 봐라]

화면에 새로운 영상이 펼쳐졌다.

이것은 군단의 역사에 기록된 한순간의 일로, 군단병들에게 무참히 쓸려나가는 토착 생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건 뭐지?"

[코드 3n8888, 유영하는요정벌]

해괴한 이름을 가진 무언가가 반짝이는 빛과 함께 둥실둥실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박쥐의 날개를 단 비행종이 한입에 삼켜버린 그것은, 짓이겨진 고기가 되어 둥지에 뱉어졌다.

둥지는 그 즉시 그 생물체를 분해하고 흡수하며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반딧불이가 뭔데 대체."

[별볼일 없는 하찮은 미물이었다. 그나마 쓸모있는건 특유의 발광기능정도. 하지만 이 당시 군단이 모르고 넘어갔던 데이터가 하나 있다]

화면이 다시 한번 뒤로 돌려지며 확대되었다.

비행종의 턱이, 요정벌을 집어 삼키는 바로 그 순간으로.

나는 턱에 짓이겨지는 그순간, 요정벌의 몸에서 스르륵 빠져나오는 뿌연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저거 설마.."

[아직 자세한건 모른다. 일단 요정벌의 시체를 분석한 결과 발광기능의 구조를 이해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 발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단이 이해할 수도 구할 수도 없었기에 재현이 불가능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

과연 그것이 정말로 마나인가?

마물, 레이스가 품고 있던 힘과 동일한가?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면 분명 단서가 더 있다. 실제로 층계가 올라가면 식생은 더 다양해지고 강해진다]

가능성을 찾아낸 군단의 눈이 뒤집혔다.

지금도 빠르지만, 그동안 일정비율 비축하고 있던 에너지를 풀어 폭발시켰다.

단숨에 병력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반드시 찾는다]

집결한 병력들은 검치호 수호정령들을 제압하고 점령한 2번째 줄기와 그 주변 가지들을 다 먹어치우기도 전에 위로 향하는 통로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렬한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적, 적극적이네 정말로."

[모두 네가 유도한 것 아니냐]

"내가?"

[너도, 그리고 군단 스스로도 강해지는 것을 가장 우선한다. 서로의 바람이 합치했다. 다른 곳에 눈돌릴 필요가 없다]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축 늘어지듯 누워서도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

어둑한 미궁, 그토록 오랜 시간 변화가 없던 이곳에 본격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 없었던 변화였다.

그것을 가능케 한것은 아주 사소한 변수 하나.

그리고 일개 세포 수준이었던 그 변수는 불변의 법칙을 깨고 어느새 미궁의 뿌리를 넘어 줄기까지 먹어치우고 있었다.

"..."

그 변화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오랜 시간만에 자신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던 또 하나의 본능을 기억해냈다.

아직 확보한 샘플이 적어, 군단은 미처 이해하지 못한 본능.

그들은 그렇게 한곳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잊혀졌던 그들의 존재 의의이자, 의무였다.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 역시 하나의 언어를 분석하고 알아내는 것 이상의 노력을 요한다. 일단 놈들이 유닛일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생물종은 또 절대 아니었다. 분석할 가치가 있다. 놈들에 대해 알아내면 우리가 태어난 이 거대한 미궁에 대해서 알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찰에 진심인 군단의 시선에도 집결하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걸어오는 싸움, 절대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뻤다.

특수한 사건이 생기면 생길수록 그것들은 모두 군단의 양분이 된다.

쿵쿵 울리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정비를 마친 군단의 새로운 병력들은 기존에서 한단계 진화했다.

바닥에서도, 공중에서도 벽에서도 검은 물결이 이어졌다.

[전쟁이다. 다만 익숙하지 않느냐]

군단을 알아본 다양한 수호정령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포효하며 위압감을 뽐냈다.

반면 이쪽은 조금의 소음도 없이 굉장히 적막하고 조용했다.

애초에 군단은 발성기관을 굳이 만들지 않았으니까.

수호정령들이 움찔거렸다.

그들은 절대 멍청하지 않다.

그렇기에 위화감을 느끼고 당황했다.

"크륵..."

"..."

전체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침묵을 유지하는 군단병들의 모습은 자연적이지 않은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도저히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소름끼치는 침묵과 기세.

[우리는 공포 같은 쓸데 없는 감정은 배우지 않았지]

군단이 전진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군단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도 자유로웠다.

[우리의 눈에 특이한 녀석이 보였다. 은은한 빛을 내며 허공에 떠 있는 저 나방 같은 녀석이다. 그 생김새가 실마리가 된 요정벌과 흡사하다]

전투 돌입 직전 전체에게 동일한 명령이 하달되었다.

집결한 수호정령들 위에 반짝이는 나방가루를 흩뿌리며 떠 있는 거대한 나방 한마리.

군단은 다른건 몰라도 저것은 반드시 잡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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